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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 2장

2018. 11. 22. 17:21 from BoOk/pHiLoSoPhY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첫장에서 道와 名에 대해 우선 화두를 던지고 名에 대해 주로 이야기 하였다면, 두번째 장은 名을 부여하는 의미와 道에 대해 운을 때는 듯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첫 두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이 두 문장은 얼핏 보았을 때는 爲美와 爲善이라는 문구가 있어 꾸미고 위선을 행하는 것이 추하고 선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아래의 내용과도 흐름이 어색하고 첫장의 내용과도 갑자기 방향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죠. 오히려 이 두 문장은 사람들이 대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또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추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만들거나 선하게 하려한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문구들이 전반적으로 대립되는 명제가 사실은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미의 설명으로 연결되는 것도 그렇고 성인이 무언가를 행하고 이루어낸다는 말을 감안하여도 아무것도 하지말아라라는 설명은 좀 앞뒤가 않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에 장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첫단계 성격이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개념을 정하고 나면 상대되는 추하다는 개념도 성립될 것이고 착하다는 개념이 성립되면 반대되는 선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규정도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사람들이 개선의 대상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후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게되는 것이죠. 


풀어서 이 두 문구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려한다

또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게 만들려 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글자는 "皆"자 입니다. 노자는 절대선이나 절대미, 이를테면 이데아적인 대상을 규정하고 사람들이 이를 추구해야된다는 당위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전반적으로 알려진 규정이나 관습에 따라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는 현상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추한 것이 있으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꾸미려 하고, 모두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하게 고치려 한다는 거죠.


영구불변의 선이나 미의 기준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발전이 없습니다. 오늘 이 방향으로 개선을 하고 내일 다시 고민하여 다른 방식으로 추가 혹은 근본적인 개선을 꾀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은 어떤 특정 엘리트 집단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회구성원의 전반적인 합의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습니다. 노자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우선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앞에 문장에 이어서 대립되는 대상들을 몇몇 열거하여 예를 들고 있습니다. 1장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有와 無가 서로 상생하는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고, 어려움과 쉬움이 상호 보완관계에서 성립되고, 길고 짧음이 있어 비교를 할 수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어 경사가 이루어지며, 음악과 목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전후가 있어 순서를 정해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길게 얘기할 내용은 저로서는 없네요.)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의 두 문장은 聖人 즉 본보기로 삼아야할 사람들이 어떻게 했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문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머무를 處'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되는지가 다소 어려움이 있는데요, 앞의 내용등을 감안하면 상식적인,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자리를 둔다, 선택한다 정도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이에 자기 주장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으며, 남들을 가르킴에 있어서도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교화한다."


다소 모순적일 수 있는 것은 절대적 기준으로 판단될 만한 聖人을 노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방법일 수도 있고, 또한 관습적으로 이러한 문구를 사용하였을 수도 있지만 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상대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노자에서 절대 기준의 대표적 이미지인 聖人을 사용한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聖人이 절대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대체적으로 道를 행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올바른 방향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두번째 문장은 앞에 聖人이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하면 너무 의미가 거창해져서 그보다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주고 의미를 만들어낸다라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만사에 있어서 누군가 최초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은 필요하니까요.  이를테면 다윈이 진화론을 알아내고,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알아내었더라도 그들이 무엇인가를 바라고 알아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연하죠, 우주를 어떻게 소유합니다.) 


이에 두번째 문장은 아래와 같이 해석합니다.


"성인은 만물의 의미를 찾아내어도 무언가를 바라여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를 찾아주어도 이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위의 두문장에서 이어서 계속 道를 행하는 기본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恃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어떤 자신만의 신념을 앞에 깔고 간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무언가 뒷일을 믿는다 (기대한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죠. 하지만 뒤의 내용들을 감안하면 이러한 해석은 먼가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어떤 일을 하고나서 그 과정을 너무 신뢰하지는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뒤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일단 첫 문장을 해석하면 뒤에는 다소 쉽게 해석되는 느낌입니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과정만이 옳다고 믿지 않으며, 힘들여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서 그 이룩한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성취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번의 성취에 만족하고 뒤에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는 일이죠. 기업의 예를 들면 더 이해가 쉬울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초대박 상품을 하나 만들어내게된다면 이후 아무 것도 안해도 그 제품이 천년 만년 그 회사를 먹여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혁신과 개선이 이루어져야되는 것이죠. 그런 과정이 있어야 이전의 성과가 의미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또한 한번 수립된 개선의 경험은 다음 또 그 후의 개선에 Reference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디 사라지는게 아니죠. 풀어서 생각하면 위의 두 문구는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려한다

또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게 만들려 한다. 

有와 無는 서로 상생하는 방식으로 공존하며, 어려움과 쉬움이 상호 보완관계에서 성립되고, 

길고 짧음이 있어 비교를 할 수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어 경사가 이루어지며, 

음악과 목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전후가 있어 순서를 정해 진행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이에 자기 주장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으며, 

남들을 가르킴에 있어서도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교화한다.

만물의 의미를 찾아내어도 무언가를 바라여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를 찾아주어도 이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과정만이 옳다고 믿지 않으며, 힘들여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이룬바에 만족하여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서 그 이룩한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