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에 해당되는 글 287건

  1. 2026.01.26 노자도덕경 61장
  2. 2026.01.03 25년 독서 리스트 3
  3. 2025.11.27 노자도덕경 60장
  4. 2025.11.11 노자도덕경 59장
  5. 2025.09.18 노자도덕경 58장
  6. 2025.08.01 노자도덕경 57장 7
  7. 2025.06.02 노자도덕경 56장
  8. 2025.04.29 노자도덕경 55장 1
  9. 2025.04.03 노자도덕경 54장
  10. 2025.03.04 노자도덕경 53장

노자도덕경 61장

2026. 1. 26. 16:53 from BoOk/pHiLoSoPhY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대국자하류 천하지교 천하지빈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

故大國 以下小國 則取小國

고대국 이하소국 즉취소국

小國 以下大國 則取大國

소국 이하대국 즉취대국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고혹하이취 혹하이취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대국불과욕겸축인 소국불과욕입사인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爲下

부양자각득기소욕 대자의위하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큰 나라는 강들이 모여드는 하류와 같아 천하의 모든 것들이 모이드니, 천하의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게된다.”

 

노자 61장은 큰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큰 나라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모여들어 이를 통해 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여건을 형성하게 된다 이야기합니다. 61장은 여기에 언급된 나라라는 개념에 국한하지 말고 Platform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보면 어떨가 생각이 됩니다.

 

논어나 맹자를 읽다보면 당시 전국시대의 군주들은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가지 않고 자신의 나라로 모여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듯 합니다. 왜냐하면 전국시대에서 백성이란 곧 그 나라의 국력을 이루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니까요. 백성은 농사를 통해 곡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군인이 되어 군사력에 기여하기도 하며, 제품을 만들고 상업을 일으키는 가장 직접적인 기본 요소였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인구 규모가 적었을 당시를 생각하면 그 나라의 인구수는 그 나라의 국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요소였습니다.

 

나라는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거대한 Platform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牝常以靜勝 以靜爲下

암컷은 항시 수컷을 안정시켜 다스리니, 고요함으로써 아래로 모여들게 한다.”

 

여기서는 靜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우선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靜은 흙탕물 같이 혼돈스럽고 혼탁한 상황이 진정되어 그 모든 것들이 밑으로 가라앉아 안정된 상태를 가르킵니다. 이를 고요하다고도 표현합니다. 그냥 순종하며 묵묵하게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흔히 당시의 남녀 차별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여성은 정숙하고 남성의 밑에 자신의 낮추고 머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2번째 문구를 해석하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첫번째 문장과 연결이 안되지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장에서 여러번 사용되는 下라는 단어도 여러 중의적인 뜻을 품고 있는 듯 합니다. 첫 문장에서와 같이 모든 것들이 흘러내려와 모여드는 기반을 가르키키도 하고, 자세를 낮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며, 가라앉아있는 안정된 상태를 가르킬 수도 있습니다.

 

牡 즉 암컷은 생명을 생성하는 것의 의미로 노자도덕경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牝常以靜勝牡이라는 내용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기서 牡 즉 수컷이라고 표현된 흥분하여 좌충우돌하는 요소들을 안정시켜 다스려야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수컷으로 표현한 내용은 여러 Platform의 정돈되지 않은 구성요소이며, 이러 것들을 안정화 과정을 통해 爲下 즉 강의 하류와 같이 축적되어 활용 가능한 상태로 모아야 한다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爲下라는 표현은 천하만물이 모여들게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가르킨다 생각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더 발전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거죠.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고요하고 안정된 환경을 조성해야된다 이야기합니다.

 

故大國 以下小國 則取小國

이러한 이유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들이 그 아래에 모여들 수 있도록 해야 작은 나라들을 취할 수 있다.”

 

결국 큰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을 힘으로서 굴종시키기 보다, 강이 아래로 흘러 큰 모래사장을 만들 듯 작은 나라들이 모여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된다 이야기 합니다. 첫 문장에서 예를 들었던 Platform 이야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Platform을 사용하는 동기를 만들어줘야 그것이 생산자가 되었던 소비자가 되었던 활발히 그 Platform에 참여하게 될 것 입니다. 강제로 그전부터 다른 부분의 을에 위치에 있는 업체들을 강요하여 신생 Platform에 참가시켜도 그곳에서 본인들이 얻을게 없다면 뭐하러 그 Platform의 발전에 기여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세번째 문장에서 노자는 작은 나라들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만들어주면 자연스레 작은 나라들이 찾아들어 큰 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小國 以下大國 則取大國

작은 나라 또한 큰 나라들이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큰 나라를 얻을 수 있다.”

 

작은 나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혼자서는 생존이 어려운 작은 나라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큰 나라가 어디인지 현명하게 판단하여 그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국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어떤 Value를 제공할 수 있을지 Appeal 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큰 나라의 Pool을 형성하여 작은 나라가 국익을 확보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야기합니다.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이렇듯 모여들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라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도 하고, 자신을 끌어드리도록 경쟁력을 키워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즉 큰 나라는 큰 나라대로, 작은 나라는 작은 나라대로 환경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익을 상대와 주고받는 협상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위에서 비유한 Platform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Platform 업체가 그 참여업체나 이용자에게 경쟁력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이를 통해 Platform 업체도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혼자의 영업망을 통해서는 발전에 한계가 있는 업체가 있다면 본인의 강점을 부각시켜 대형 Platform이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될 것입니다.

 

노자는 윈윈을 위해서는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각각 어떤 자세를 가져야될지를 여기서 설명한 듯 합니다.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큰 나라는 지나친 욕심 없이 작은 나라와 더불어 사람을 키우려해야 하며, 작은 나라는 지나친 욕심없이 큰 나라의 세력권에 들어가 사람을 세우는 것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兼畜人 이라는 내용은 대국이 여러 소국들을 자산의 영향권에 둠으로써 () 더 큰 인재 Pool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入事人 이라는 내용은 큰 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入) 자사의 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나라 간의 관계 형성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 바탕이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노자는 다른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며 사람을 키우고 또한 사람을 세우는 것에 주력해야된다 이야기 합니다.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爲下

양측이 각기 그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큰 나라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큰 나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노자는 마지막으로 강조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듯 하지만 현실은 또 그럴까 하는 생각입니다. 많은 경우 그것이 큰 나라가 되었든 큰 회사가 되었던 상대와 같이 발전하는 방향을 모색하기보다는 힘이 상대적으로 적는 상대가 간신히 살아남을 정도의 몫만 남겨주고 자신은 최대한 많이 가져가려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이 또한 소탐대실일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25년 독서 리스트

2026. 1. 3. 22:07 from BoOk

작년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본다.
 
1.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 다시 읽음
2.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 시작부터 잘못된 시스템은 고치기 매우 힘들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해 당사자도 모두 바뀌는 건 아니다.
3. 이기적 유전자 (리차드 도킨스) - 다시 읽음
4. 문화대혁명 (프랑크 디쾨터)
   : 독재자는 뻘 짓을 한다. 모택동은 지나치게 했다. 
5. 바깥은 여름 (김애란)
   : 단편 소설 모음집, 극한에 몰린 사람들의 마음에 불편하면서도 몰입하게 된다. 
6. 내가 의대에서 가르친 거짓말들 (로버트 러프킨)
7. 구토 (장 폴 샤르트르) - 다시 읽음
   : 대학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었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8. 병자호란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 (임용환 조현영)
   : 인조 정권이 위기상황에서 저지른 다양한 바보짓들을 읽다보면 분통이 터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9. 찬란한 멸종 (이정모)
10. 한중록 (혜경궁 홍씨)
   : 혜경궁께서는 그냥 본인의 친정이 가장 중요하고 걱정이었던 듯 하다. 
11.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디이비드 이글먼)
12. 넛지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 유명세만큼은 대단하지 않은 듯 
13. 쿼런틴 (그랙 이건)
14.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 다시 읽음
    : 40년전에 산 책을 다시 읽었다.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새책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15.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 이 책을 읽고도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까
16.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17. 어머니 (막심 고리키) - 다시 읽음
18. 꺼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19. 이야기 독일사 (박해식)
    : 독일 탄생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20. 새의 선물 (은희경)
    : 올해 읽은 소설 중 최고다. 이제야 이 책을 읽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21. 다세계 (숀 캐럴)
    : 도대체 뭔 소린지 ....
22.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
23. 어우야담 1권 (유몽인) - 다시 읽음
24. 스파이와 배신자 (벤 매킨타이어) 
    : 실화 바탕의 작품. 그는 만년에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았을까
25. 우주의 위대한 생각들 1부 (숀 캐럴) - 다시 읽음
26. 하루 밤에 읽는 한국 고대사 (이문영)
    : 빈약한 우리 고대사를 생각하면 몰랐던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27. 우주의 위대한 생각들 2부 (숀 캐럴)
    : 도대체 뭔 소린지 2 ....
28. 사기열전 상 (사마천 저, 송도진 역)
    : 몇몇 내용만 발쵀된 것이 아닌 제대로 완역된 사기열전  
29. 삼체 1 / 삼체문제 (류츠신)
    : 넷플릭스 보고 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30. 삼체 2 / 암흑의 숲 (류츠신)
31. 폭력의 유산 (캐럴라인 엘킨스)
    : 책 두께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제국주의 영국의 야만적 식민지 지배사 
32. 사기열전 하 (사마천 저, 송도진 역)
33. 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 너무 재미있다. 그냥 빨려든다. 
34. 뇌의 기막힌 발견 (스티븐 후안)
    : 그냥 그렇다. 뇌는 잘 모르겠고, 흥미 위주의 짤막짤막한 정신질환 환자 사례집.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60장

2025. 11. 27. 15:39 from BoOk/pHiLoSoPhY

治大國若烹小鮮

치대국약팽소선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이도리천하 기귀불신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비기귀불신 기신불상인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비기신불상인 성인역불상인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부양부상상 고덕교귀언

 

 

 

治大國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비슷하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행위를 생선 삶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기왕에 이에 비유하는 것을 봤으니, 생선을 삶는 행위의 목적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생선을 삶는다는 것은 누구나 연상할 수 있듯 요리를 위한 행위입니다. 개인적으로 생선을 삶아본 적은 없지만 몇번 구어보기는 했던 경험을 살려 이야기 하자면, 생선은 요리하기 매우 까다로운 재료입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한쪽이 너무 타던가 아니면 껍질이 벗겨지기 십상이죠. 여기서 더 잘못하다가는 머리나 몸통이 떨어져나가는 불상사가 닥치기도 합니다.

 

요리의 목적이 재료의 맛을 최대한 끌어올리는데에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될 것이 분명합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그 나라의 구성원과 자원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가 이루어져야된다는 이야기를 하는거라는 생각입니다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도로써 천하에 임하려면, 잡귀를 (추앙의 대상이 되는) 신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천하는 중의적인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 문구에 연장선 상에서 생각하면 백성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구성 요소들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스림의 대상인 큰 나라를 그 자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임한다는 것은 治 즉 통치의 다른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道는 Manual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천하를 대하는 메뉴얼은 당연이 어떠어떠 해야된다라는 것이 앞의 첫 다섯 글자의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듯 鬼가 神이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고대사회에서 종교는 구성원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행위의 근거와 당위성이 종교에서 비롯되며 결론에 대한 판단도 여기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종교의 역할을 감안한다면 사이비 잡귀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신앙은 다소 현세와는 동떨어진 형이상항적인 영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큰 그림부터 시작이 잘못되서는 안되다는 이야기를 노자는 하고 있습니다.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잡귀가 신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해야될 뿐 아니라, 신 또한 사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섬겨야될 신을 정함에 있어 그리고 그 신의 섬기는 행위의 목적이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우리는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이념을 수립하지만 이러한 시작과는 다르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을 보곤 합니다. 국가 존재의 첫번째 의미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에도 국가를 위한 희생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을 종종 보기도 하죠.

 

여기서 노자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결국 사람을 상하게하지 않는 인본주위가 우선함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신을 추앙한다고 사람들을 다치게한다면 그건 잡귀일 뿐인거라고 꺼꾸로 읽을 수도 있고요.

 

모든 것이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되며,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은 사람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신이 사람을 상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성인도 역시 사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현실적인 단계로 내려와서 형이상학적인 종교의 영역 뿐 아니라 사람들의 실질적인 본보기가 되는, 여기서는 성인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뭇 사람들의 희생을 야기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대개 이 둘이 서로 상하게 함이 없다면, 덕이 서로 영향을 주어 더 나아지는 바탕이 될 것이다.”

 

여기서 交歸라는 표현은 德으로 표현되는 좋은 사례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아 더 나은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가기 위한 우선 조건은 떠받들림을 당하고 사람들을 리딩하는 계층이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더 나은 방향으로 추진함을 우선시해야지 자신의 혹은 그 계층의 이익만을 위해 구성원을 다치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9장

2025. 11. 11. 09:55 from BoOk/pHiLoSoPhY

治人事天 莫若嗇

치인사천 막약색

夫唯嗇 是以早服

부유색 시이조복

早服謂之重積德 重積德則無不克

조복위치중적덕 중적덕증무불극

無不克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무불극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

 

 

 

 

治人事天 莫若嗇

사람들 다스리고 하늘을 받들음에 아끼는 자세만한 것이 없다.”

 

이번 장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嗇이 아닐까 싶습니다. 嗇이라는 한자는 아끼다, 탐하다, 거두다, 아껴쓰다, 농사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단어 중에 인색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때에 이 嗇이라는 단어가 쓰입니다.

 

노자는 나라를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다스리고 섬기는 대상을 우선 아껴야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이 嗇이라는 즉 아낀다는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있는데, 아무튼 섬겨야한다 그리고 존중해야된다라는 뜻으로 시작을 합니다.

 

夫唯嗇 是以早服

오로지 아낄 뿐이니 이로써 일찍이 섬기는 것이다.”

 

아끼는 마음이 깊어져, 그 상대를 접하는 시작부터 섬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을 다스린다고 할 때 이 治의 의미는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떠받들고 섬기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생각하면 고대 왕정의 계급적 질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민본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도 받게됩니다.

 

早服謂之重積德 重積德則無不克

일찍이 섬긴다는 것은 덕을 두텁게 쌓는 행위라 이른다. 덕을 두텁게 쌓으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

 

지도자의 안위나 탐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백성을 이롭게하고자 모든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면 이 행위 자체가 덕을 쌓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은 앞에서도 몇번 이야기했지만 결국 조직 어느 특정 집단이나 사람이 아닌 그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행위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조직 전체의 (여기서는 나라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게됩니다. 나라의 경쟁력이 점점 나아지게된다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게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無不克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극복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면 그 한계를 모르게 되니, 그 한계를 모르는 단계에 이르면 가이 나라가 가질 수 있게된다.”

 

위의 모든 것이 노자에게는 선순환의 또는 지속 발전 가능의 바탕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발전의 한계를 모르는 단계에 다다르면 나라가 유지될 수 밖에 없게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생노병사라는 단계를 거치게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 발전을 멈추는 순간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성장을 지속하기 위하는 것이 나라를 유지하는 방편이며 이를 위한 기본 바탕은 백성을 섬김에 있다고 노자는 이야기 합니다.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나라의 근본을 가지게 되면 가이 그 나라를 장구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를 깊고 단단한 뿌리라 이른다. 오래 유지하고 멀리 볼 수 있게하는 방법이다.”

 

여기에 추가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장에서 노자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백성을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마음대로 지시할 수 있는 통치의 대상이 아닌 섬기고 받드어야되는 대상으로 방향을 잡아야 그 나라가 번영하고 부강하게된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8장

2025. 9. 18. 16:51 from BoOk/pHiLoSoPhY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기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질

人之迷 其日固久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 방이불할 렴이불귀 직이부사 광이불휘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그 정치가 (어떻게 그리고 어떤 것을 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면 그 백성들은 더욱 순박해지나, 그 정치가 의심을 가지고 감독만 강화하면 그 백성들의 삶은 더 나빠지게 된다.”

 

여기서 悶이라는 한자는 고민하다, 번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悶悶이라고 두번 반복하여 이야기 함은 나라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야될 것 같습니다. 이렇듯 고민하는 이유는 우선 나라에 어려움이 닥쳐서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수립할지 선택의 문제가 걸려있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당면한 문제 때문이던 아니면 정책 방향 수립의 어려움 때문이건 고민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어찌할까하는 선택에 신중한 상황이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나라의 기본 구성이 되는 백성들은 오히려 더 淳淳 더 순박해지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유는 위기 앞에 결집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고민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수도 있겠죠.

 

이에 이어지는 다음 상황은 察察 즉 살피고 살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察이라는 한자는 따진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정부가 나라 안에 돌아가는 것을 매우 세밀하게 따지고 감시하려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察이라는 글이 앞의 悶 즉 고민한다는 이야기와 댓구를 이루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 자체에 대한 성찰은 없이 구성원들만 속된 말로 갈궈대는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이 경우 백성들은 缺 즉 이지러진다고 이야기합니다. 缺缺이니 매우 이지러졌다, 매우 삐뚤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요약하여 얘기하면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구성원들은 더 나아질 수 있는 자질이 고양될 수 있지만, 리더들이 관리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구성원들의 일탈이 갈 수록 심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는 복이 있는 곳에 기대어있고, 복은 화근이 있는 곳에 깔려있으니 그 지극함을 누가 알겠는가.”

 

주역 어느 문구에 나올 듯한 문구입니다. 뭐 따로 추가할 내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모든 일에 절대적으로 옮은 것은 없다. 한 때 옳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기이한 것이 되며, 한 때 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요사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앞의 문구에서 화와 복은 모든 상황에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내포되어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其無正이라는 첫 문구는 결국 어떤 상황도 끝없이 좋을 수 없고 또한 끝없이 나빠질 수도 없으며 항상 만능열쇠로 적용될 수 있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때의 정답도 오답이 될 수 있고, 한때 사람들이 선한 행위로 받아들이던 것도 언젠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復이라는 말은 이러한 순환이 반복된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된 듯 합니다. 돌고돈다는 거죠. (패션도 돌고 돌지않나요?)

 

여기까지의 내용은 노자 1장에서 내세웠던 ‘지금 통용되는 규정과 방식이 앞으로도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와 뜻을 같이 합니다. 하지만 1장에서의 내용이 끝없는 변화에 대한 자세를 요구한 것이라면 여기서는 극단에 이르지 말라는, 현재의 방식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는 오만으로 살피고 따지기만 하지말고 겸손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라는 결국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듯 합니다.

 

人之迷 其日固久

“사람이 미혹되면 이런 날이 고착되어 오래 가게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렇듯 고착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시작되게된다 경고하고 있습니다.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이런 이유로 성인은 방향을 정하지 편을 나누지 않으며, 청렴할 뿐이지 돈을 아껴 사람을 다치게하지는 않으며, 곧은 품성을 가지는 것을 오만한 것과 착각하지 않고, 빛이 나되 휘황찬란해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댓구를 이루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가요? 저는 ego 라는 생각이 됩니다. 내가 중심이 된 결정이나 행동은 타인의 반발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의 배경에는 독선과 독단이 깔려있기 십상입니다. 여기 이야기된 댓구가 되는 두 문자들의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첫 문구의 悶이라는 글자가 Key Word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순간 가장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된다는 거죠. 고민한다고 항상 좋은 답이 나올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더 나은 것이 없을까 고민을 시작하는 것에서 모든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7장

2025. 8. 1. 12:21 from BoOk/pHiLoSoPhY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以此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오하이지기연재이차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이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민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장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용이민자박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以此

올바른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병사는 예측하지 못하도록 전술을 세워 다뤄야하듯 천하를 얻으려면 무사함으로서 해야한다. 내 어떻게 이래야 함을 알겠는가는 다음과 같다.”

 

이번 장의 해석은 첫 문구부터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해석이 ‘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고 기묘한 방식으로 병사를 사용하며 무로서 일을 해야 천하를 취한다’라는 식이었는데, 이어지는 문구에는 앞의 두 내용, 以正治國 以奇用兵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以無事를 따로 떼어서 해석하는 것도 事를 명사로 본다면 거기에 대한 구체적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 동사로 본다면 목적이 되는 명사가 나와야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以正治國 以奇用兵와 같이 ‘00으로 00을 한다’라는 표현의 완결성을 감안할 때 以無事와 取天下는 따로 나눠서 해석하기 보다는 以無事取天下라고 붙여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 以正治國 以奇用兵에 대한 내용이 뒤에 나오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앞의 두 문구는 그냥 당연한 이야기, 마땅히 그러해야 되는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뒤에 이어 이와 같이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하는가 즉 無事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합니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바른 방법을 통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또, 군대를 운용함에 적이 예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전략을 수립해야됨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뒤 이어 천하를 얻으려는 방식 중의 우선되는 것은 無事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無事는 어떤 것을 이야기할까요?

 

우리는 평소 별일 없다는 의미로 無事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 '무사하십니까?' 사극에서 자주 사용하는 듯하군요.) 이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안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일 없이 안정되게 그날 그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요? 결국 以無事取天下라는 문구는 나라를 얻기 위해 가장 우선되는 방도는 안정인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정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하며 이에 대한 대비와 활용을 가능하게 합니다. 불안정한 사회는 어떤 모습을 그릴까요?  그에 대해서는 다음 문구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천하에 (구체적인 근거없이) 꺼리고 기피하는 바가 많으면 백성들이 두루 가난해진다. 사람들이 이를 피해 모두 이문이 많이 남는 물건으로 몰리게 되면 국가의 혼란이 거듭되게 된다.”

 

막상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되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거나 내세우는 방식의 하나로 무언가를 비이성적으로 금지하거나 못하게 하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 많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아직도 금서나 금지곡 또는 특정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가까운 예입니다. 아니면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이러한 규제가 경제 분야에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뭐, 민생과 직결된 분야가 아니라면, 이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독제 정권은 Inner Circle의 이익만을 감안하여 정말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분야에 대해서도 손을 댑니다. 이렇게 되면 그 전까지 해당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졸지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즉 而民彌貧 백성들이 두루 가난해지게 되는거죠. 그러면 눌린 풍선은 다른 곳으로 몰리게됩니다. 사람들이 시장의 안정감을 신뢰하지 않는 순간, 단기적인 이익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환금성이 강한 분야에 치우치게 되는거죠. 나라의 자산이 두루 퍼지지않고 특정 분야로 몰린다면 그 나라의 건강도는 손상받기 십상입니다. 즉 國家滋昏 국가의 혼란이 거듭되게 되는거죠.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사람들의 기교가 많아지고 기이한 물건이 많이 일어날 것이니, 이에 따라 법령이 많아지며 새로 만들어져 도적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번 문구의 내용은 앞에서 시작된 문제점이 어떻게 악순환에 빠지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에게서 시작된 쓸모없는 규제가 결국은 국가의 자원이 타당한 곳에 투입되는 것을 막아서 국가의 기본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분야가 아닌 쪽으로 자원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이에 따라 문제가 발생되면 이를 규제하기위한 방도를 만들면서 또 그에 대한 문제가 발생되는 식으로 말이죠.

 

이에 대해서는 중남미의 사례를 들어도될 것 같습니다. 부패한 정권이 국가의 기반시설이나 이권을 소수의 Inner Circle에 독점되도록 한 결과, 많은 일반 민중들이 실업자가 되어 빈부차가 확대되게 되고, 이로 인해 돈이 되는 마약이나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게 되면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력을 동원하여 단속을 추진하고, 이에 대항하여 거대한 범죄 카르텔이 형성되게되어 더욱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빠지는 겁니다.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이러한 이유로 성인께서 이야기 하기를 내가 바라는 바가 없어야 백성들이 스스로 어우러지고, 내가 고요함을 선호해야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일으키지않아야 백성들이 스스로 부유해지며, 내가 사적인 욕심을 거두어야 백성들이 스스로 순박해진다 한다.”

 

중언부언할 내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즉 57장에서 노자는 권력자가 자신의 사적인 혹은 측근의 이익만에 눈이 어두워 나라 전체를 혼돈스럽게하는 일을 벌이지 않기를 경계하라 이야기하고, 이렇게되면 백성들이 스스로 노력하여 나라가 더욱 부강해질거라 이야기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6장

2025. 6. 2. 13:06 from BoOk/pHiLoSoPhY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忿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故爲天下貴

고위천하귀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혜로운 자는 말을 아끼지만, 말을 내세우는 자는 지혜롭지 않다.”

 

노자 56장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리더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숙의하여 당면한 사항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되지만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하지않고 내 얘기만 하다가 자신이 혼자 판단하여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도 보곤 합니다.

 

가끔은 그 방식이 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하여서는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최종 의사 결정권자라고 모든 측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현장의 문제점을 모두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 옳을리는 없지만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알아내고, 대안을 찾아내는 것은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56장의 첫 문구는 내 얘기만 떠들어서는 않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의견 주장을 자제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忿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그 구멍을 메우고 그 문을 닫으며 그 예리한 바를 누그러뜨리고 그 분함을 풀며 그 빛과 조화를 이루고 그 티끌과는 동화하니 이를 玄同 즉 피아의 구별없이 속인과 하나됨이라 한다.”

 

이 행의 전반적인 내용은 마지막 문구 玄同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내용들은 말을 앞세우지말고 정말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서 행동하라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첫 문장부터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문제의 근원이 되는 부족한 구멍을 메우고, 넘치게 흐르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 그 출구를 걸어 잠그며,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부딛치는 부분은 완화시켜주고, 분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해결해주며, 잘 나가는 사람들과는 원만하게 잘 어울리되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과는 동화되라는 이야기로 보았습니다. 이 모든 행위들은 즉 구성원들과 하나가 되기위해 전체를 보고 살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전체를 보라는 이야기는 그리고 다음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이런 이유로 누군가와 친해짐이 지향점이 될 수 없으며 반대로 소원해지는 것도 목표가 될 수 없다. 단지 이득을 보는 것이 지향점이 될 수 없으며 반대로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귀해지는 것이 지향점이 되어서도 안되며 반대로 누군가의 지위를 낮추려는 것도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불가득은 금강경에도 나오는 용어로 구하려는 것이 허상이어서 얻을 수 없는 대상임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즉 위의 문구는 친해지고 소원해지며 이익을 얻고 해를 입히며 귀하게 되고 원한이 있던 누군가를 망하게 만들려는 일체의 행위가 허망함을 이야기하는 즉 달성할 수 없는 목표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목표는 일시적으로 달성된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으나, 결국 반대급부나 반작용이 일어나 뜻하는 바가 허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즉 전체적이나 전반적으로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목표를 삼아야지 어떤 한 대상이나 현상만을 바꾸려는 행위는 허사가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故爲天下貴

이러한 이유로 천하를 귀하게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천하, 즉 전체적이나 전반적으로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목표를 삼아야지 어떤 한 대상이나 현상만을 바꾸려는 행위는 허사가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이번 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5장

2025. 4. 29. 09:32 from BoOk/pHiLoSoPhY

合德之厚 此於赤子

합덕치후 차어적자

虺蛇不 猛獸不據 攫鳥不搏

봉채훼사불석 매수불거 확조불박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䘒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 和之至也

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최작 정지지야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

지화왈상 지상왈명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

 

 

合德之厚 此於赤子

덕을 더하여 도탑게 하는 것을 어린아이에 대자면”

 

노자 55장의 내용은 기존의 검증된 방식들을 새로운 방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활용해야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 문구인 合德之厚 즉 덕을 더하여 두텁게 한다는 이야기가 위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노자는 赤子 즉 어린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가에 대한 것으로 비유를 듭니다

 

虺蛇不 猛獸不據 攫鳥不搏

“(어린아이는) 벌, 전갈, 살무사, 뱀에 쏘인적 없고, 맹수의 발톱에 다친 적이 없으며, 먹이를 노리는 새에게 잡힌 적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제 갓난 아이는 인생의 모든 위험과 풍파를 걲은 바가 없습니다. 위에 비유로 든 무시무시한 경험도 다른 누군가는 했겠지만 아이가 경험하지는 않았겠죠. 여기서 이런 비유를 든 것은 꼭 직접 경험을 해야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벌에게 쏘인 적이 없는 사람도 벌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건 본능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알려줘서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단순하게 예를 든 것이지만,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는 스스로 터득한 것보다는 학습에 의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약을 안하는 것은 마약 중독에 당하고 나서 얼마나 마약 중독이 위험한 것인지를 스스로 경험해서가 아닙니다. 요리의 레시피도 혼자서 이 재료, 저 재료를 Trial & Error로 비율을 조정해서 얻어진 것이라기 보다, 이미 검증된 것을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䘒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 和之至也

“(아이의) 뼈와 근육은 유약하나 단단히 쥘 수 있게되며, 암수가 어떻게 교미하는지을 모르나 그 생식기로 (후세를) 만들어내니 그 결과가 더욱 또렷해진다. 종일을 부르짖어도 목이 잠기지않으니 조화를 이룸이 지극하다.”

 

즉 개인으로서의 역량은 미약하더라도 세상에 이미 축적된 지식들과 Know-How가 더해져 나의 역량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이 (赤子)의 비유는 혼자서는 보잘 것 없는 우리 모두를 비유로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이 사회에 축적된 지식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한계를 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 세번째 문장에서 이야기합니다.

 

세번째 문장에서 주목해야될 단어 두가지는 精과 和라는 단어가 아닐가 합니다.

 

精은 정밀하다는 단어에서 쓰이는 의미와 같이 더 세밀해지고 더 명료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뭉툭하고 모호했던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진다는, 더 개선된다는 의리로 보입니다.  그리고 和는 조화를 이룬다는 내용일테고요.

 

精이라는 단어 앞의 내용 중 단단히 쥔다 (握固) 및 생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䘒作)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재료들 중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잡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 더 나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 전의 과정이나 절차에 대비하여 더욱 정밀하고도 개선되게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뒤에 이어지는 종일을 주장을 하여도 목이 잠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기존의 통용되던 상식이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것으로 나아지게 되면 논란이 적어지게 된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和之至也 즉 조화를 이룸이 더 나아지게된다는 거죠.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아는 것을 常 즉 오래 통용되는 것이라 이르며, 이렇듯 오래 통용되는 방법을 아는 것을 明 즉 깨달음이라 행위라 한다. 생명을 더하는 것을 상서롭다하며, 마음이 기운을 다스림을 강함이라 한다.”

 

知和曰常 라는 문구는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만들려면 조화를 이룰 방법을 알아야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和 즉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한거죠.  뭐, 길게 이야기 할 문구는 아닌 듯합니다. 앞의 문장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느낌입니다. 결국 앞의 시작에서 이야기한 1 덕을 더하는 행위는 2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서 진행되어야 하며 3 이러해야 종일을 소리질러도 그 기운이 다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방식이 만들어지게 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속 가능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明 즉 깨달음이라하며, 이는 생명을 북돋으니 상서롭다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하여 주변의 기세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다스리는 행위를 강함이라 이야기 합니다. (心使氣曰強)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모든 사물은 성장하면 늙어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것을 길이 아니라 한다. 길이 아니면 빨리 그쳐야한다.”

 

마무리하는 마지막 문구입니다. 여기서 노자는 위의 그 모든 수고로운 행위가 왜 이루어져야 되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제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됩니다. 기존의 방식에 연연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不道 즉 길이 아니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기존의 질서나 방식에 연연하기 보다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기존의 방식과 체계들을 참고하여 모아서 담아내고 (合德之厚)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때로는 제어하고 때로는 수용하여 (心使氣) 조화 이룬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서 (和) 또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常) 세상을 더 좋고 (精) 밝게 (明) 만들 것이라고 이 장에서는 이야기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4장

2025. 4. 3. 13:31 from BoOk/pHiLoSoPhY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건선자불발 건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잘 만들어 진 것은 (무리에서) 뽑혀나가지 않으며, 좋은 것을 포용하게되면 (무리에서) 떨어져나가지 않으니,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노자 54장은 덕을 세워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의 마지막에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게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생존의 문제라는거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더 나은 방안을 만들지 못하면 도퇴되어 사라진다는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덕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냐? 여기에 대해 덕의 두가지 특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善建 즉 제대로 만들고, 善抱 좋은 것들은 포용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두 문장에서 어떻게 잘 만들 것이며 (善建) 어떻게 잘 포용할 것인가 (善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이를 몸에 수양하면 그 덕이 비로서 진실해질 것이며, 집으로 확대하여 수양하면 그 덕이 비로서 여유로움을 주며, 마을로 범위를 넓히면 그 덕이 비로서 성장하며, 나라로 적용 범위가 넓혀지게되면 그 덕이 비로서 풍요로워지며, 천하에 넓게 수양하면 그 덕이 비로서 보편적일 수 있게 된다.”

 

두번째 문장은 어떻게 하면 善建 즉 제대로 만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其德은 이제 막 만들어진 개선방안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떠한 Solution이 진실로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실천하고 시험하다보면 (修) 우선 알게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어느 정도 내가 확신을 갖게된 이후 그 범위를 자신의 집에서부터 점점 넓혀서 적용하여 그 내용을 보완하게 되면 그 방안이 혹은 결과물이 살아남을 수도 사멸할 수도 있게된다는거죠.

 

또한 이 문구에서는 방안이 확장되는 단계적으로 진실되었다가 (眞), 여유로워지고 (餘), 성장하며 (長),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豐) 보편타당한 것이 (普) 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표현이 안되어있지만 이러한 과정은 우선 기안자인 내가 새로운 결과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眞) 그 이후 집에서부터 천하에 까지 그 적용 범위와 참여자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과 Feed Back을 통해 내용이 성숙해지고 더욱 완결성을 갖출 수 있게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요리사가 새로운 음식 메뉴를 개발했다고 생각해보죠. 처음에는 직접 맛을 보면서 수많은 변화를 시험하고 확신이 들었을 때 가족에게도 음식을 먹여보고 이를 통해 받아진 가족들의 반응이나 평을 기반으로 내용을 보완하여 시장에 내놓게되며, 그리고도 끊임없는 보완이 이어지게 됩니다. 소비자들의 Complain이 있을 수도 있고, 다 좋은데 이런 것도 어떻냐는 제안이 올 수도 있고요. 또 실제 판매 단계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생겨서 이에 대해 개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찾는군. 손으로 직접 반죽을 해서는 수요을 감당 못하겠는걸 등등...) 이러면서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고 맛은 더 좋아지며 많은 사람들이 찾게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거죠. 

 

결국 우선 나도 최선을 다하지만 외부의 이해 관계자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내용은 다소 상이하지만 위의 문구는  大學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가지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내용이 기본 단위로부터의 수양을 강조한 것이라면 여기에서의 내용은 어떠한 덕이 수용되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다른 점으로 보입니다.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이러한 이유로 몸으로서 몸을 살피며, 가문으로 가문을 살피며, 마을로서 마을을 살피며, 나라로서 나라를 살피며, 천하로서 천하를 살펴야 한다.”

 

세번째 문장은 善抱 즉 좋은 것을 포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결국 더 나은 것을 어떻게 벤치마킹해서 또는 찾아내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가 관건이 된다는 게 노자의 생각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身에서 天下로 확대되지만 결국 첫 문장 以身觀身 하라 이야기합니다.

 

이 문장은 두가지 중의적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몸으로서 몸을 살피라는 것은 1) 남의 몸을 잘 관찰하여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라는 것일 수도 있고 2) 몸으로서 몸을 봐라, 즉 자기 객관화가 이루어져야한다, 라고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抱 즉 포용의 의미라면 대상이 있어야하니 위의 두가지 의미 중 첫번째 내용이 더 적합할 듯은 하나 두번째 의미로 중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타인의 비교 우위 항목에 대해서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니까요. 14세기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의 좌우명은 “It is as it is.”였다고 합니다. 보고싶은 것만 봐서는 안된다, 상황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있는 그래도 봐야한다는 의미죠. 더 나은 방향으로 가서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타인의 장점을 살펴서 자기에게도 적용할지를 고민하여야 하며, 그 과정은 냉철한 자기 객관화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서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내가 천하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아는 것이다.”

 

뭐, 길게 이야기 할 문구는 아닌 듯합니다. 정리하여 이야기하면, 좋은 방향으로 나가감은 생존의 문제이며, 이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이 있어야하고, 자신의 약점 및 강점에 대한 객관적 성찰과 상대방의 장점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54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3장

2025. 3. 4. 15:26 from BoOk/pHiLoSoPhY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大道甚夷 而民好徑

대도심리 이민호경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내게 약간의 지식이 있어 나를 부리려 한다면, 큰 도를 수행하고 어딘가에 배푸는 것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使我介然有知라는 첫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되나 좀 고민을 했었는데요, 대부분의 책에서는 使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使我라는 문구는 ‘나라에서 나를 부린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介然有知, 즉 조금 지식이 있어서 그것이 이유가 되어 나라에서 나에게 벼슬을 주어 무언가를 해보라고 한다는 의미인거죠. 벼슬이 주어진다는 것은 권력이 생긴다는 의미이고, 무언가에 대해 의사 결정할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行於大道하되 唯施是畏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큰 도를 행하되 나의 의사결정과 판단으로 수혜를 받는 그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도록 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大道甚夷 而民好徑

큰 도는 매우 평평하나,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이미 앞에서 수차에 걸쳐서 道란 방도라는 의미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大道 즉 큰 도는 많은 대상에게 수혜가 갈 수 있는 해결책을 이야기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도는 그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수월하고 더 편한 방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니 자기만 알고있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유혹과 회유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보다는 인맥을 이용하거나, 교묘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의 방향을 바꾸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조정은 매우 깨끗하나 전답은 황폐해져 있다면, 창고는 텅텅 비어있는데 화려한 복식과 허리에 칼을 차고있다면, 사람들에게 먹이고 마시게 배품은 싫어나 재화를 풍족하게 가지고 있다면, 이를 일컬어 도적질을 자랑함이라 하니, 이는 도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하는 徑 즉 지름길은 나만 잘되면 그만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기 십상입니다. 조그마한 권한을 가져도 사람들은 본인과 본인 주변의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기 십상입니다. 나라가 황폐해져도 우리집만 으리으리하고 본인만 명품을 휘감으면 그것이 나의 능력이고 내가 당연이 누려야할 것들이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도덕경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盜夸 즉 도적질을 자랑하는 행위라고 비난합니다. 쓰임이 있어 권한을 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이유로 그 이익이 어디로 돌아갈지를 두려워해야된다고 첫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