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70장

2026. 9. 15. 13:14 from BoOk/pHiLoSoPhY

吾言甚易知 甚易行

오언심이지 심이행

天下莫能知 莫能行

천하막능지 막능행

言有宗 事有君

언유종 사유군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知我者希 則我者貴

지아자희 칙아자귀

是以聖人被褐懷玉

시이성인피갈회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내가 하는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동에 옮기기도 매우 쉽다. 그런데 천하의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잘 이해도 못하고 잘 따르지도 못한다.”

 

회사에 가면 리더분들께서 지시를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하직원이 가져온 결과물을 보고 낙담하며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야기했잖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왜 여긴 이렇게 만든거야. 제발 시키는데로 좀 만들라고. 내 얘기가 어려워?”

 

네 어렵습니다.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상사의 지시가 구체적이지도 않고, 뭔 말인지 중언부언하는 것도 같고, 잘 모르는 이야기를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하는 듯 설명도 구체적이지 않고 등등 이해가 잘 안되어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뭐 좀 물어볼라니 그것도 아직 몰라? 그런건 좀 알아서 하면 안되?,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엄두가 안납니다.

 

리더가 주의해야될 점은 내가 알고있으니 남들도 그렇겠지, 나의 마음을 우리 구성원들은 말 안해도 잘 알거야, 내가 좀 팁만 주면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되,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알고있는 건 남들도 당연히 알거야 → 남들이 알고 있는 것 나는 다 아나요?

나의 생각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거야 →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것도 자세히.

내가 좀 알려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만들어야지 → 리더가 신경 안쓰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빠져버린 리더의 조직을 보면 팔팔 뛰며 구성원을 질책하는 리더와 당최 멀 어쩌라는 건가하며 뒤에서 투덜거리는 구성원들을 보게됩니다. 나의 생각을 구성원들이 나의 주변사람들이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言有宗 事有君

이야기에는 기준이 있어야하며, 일에는 다스림이 있어야한다.”

 

지시를 할 거면, 요구를 할 거면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중간중간에 계속 점검하십시오. 리더의 이야기는 모호하여서는 안되고, 더더욱이나 스무고개 맞추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최대한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확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야됩니다. 이런 과정은 대략 뭉게지말고 서로 이해하는 바가 같다고 확신이 들 때 마무리해야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 뿐 아니라 전체 과정을 관할하고 점검하는 역할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君 즉 리더는 그리고 리더의 행위는 일을 가능하게 함이 우선임을 명심해야됩니다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오로지 알지못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헤매고있다면 이건 많은 경우 나의 생각을 혹은 지시한 바를 잘 이해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상대의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리더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못해서 무리한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이해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에 적절한 코칭이나 육성을 통해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어야됩니다.

 

知我者希 則我者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귀하다.”

 

몇 마디 안해도 나의 의도를 꾀뚫어 보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상호간의 신뢰관계가 쌓이고 쌓여서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얻기 힘들 테니 말 그대로 귀중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래로 봐야됩니다. 이렇게 얻기 힘들고 귀한 사람이 내 주변에 단지 조직에서 너 리더하라고 했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질거라 생각하면 오산도 대단한 오산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은 그냥 얻어지지 않습니다. 애인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지않을까요? 내가 맘에 드는 상대를 찾았다면 “야, 나 너 좋하해, 지금부터 너도 나 좋아해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나의 진심을 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하고 이런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간신히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是以聖人被褐懷玉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거친 옷을 입고 귀중한 보옥을 감추는 것이다.”

 

거친 옷을 입고 보옥을 감춘다는 말은 본인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위계질서를 갖춘 조직에서 복식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일계사병이 장교의 복장을 입을 수는 없으며, 소위가 대장의 계급장을 옷에 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거친 옷을 입고 귀중한 보옥을 감춘다는 것은 외적인 권위를 드러내거나 심지어는 그에 기대 군림하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러한 리더에게 굳이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따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직위로 찍어 누르려 하지말아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라. 그래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69장

2026. 8. 27. 16:04 from BoOk/pHiLoSoPhY

用兵有言

용병유언

吾不敢爲主 而爲客 不敢進寸 而退尺

오불감위주 이위객 불감진촌 이퇴척

是謂行無行

시위행무행

攘無臂 無敵 執無兵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화막대어경적 경적기상오보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고항병상가 애자승의

 

 

用兵有言

吾不敢爲主 而爲客 不敢進寸 而退尺

병사를 씀에 이야기가 있으니, 무모하게 내 주관대로 도모하려하지 말고 객관적이 되려할 것이며, 무모하게 한 발짝 나아가려하지 말고 멀찍이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

 

앞 장에서 병법에 비유를 들어서인지 69장에서도 용병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은 敢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될 것 같습니다. ‘감히 / 무도하게’ 라는 뜻의 단어가 사용된 상황이라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말리거나 선택에 따른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을 가르킴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심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독단적으로 나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일은 피해야된다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좀 객관적 입장이 되어봐야한다, 더 전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의견을 묻던지 아니면 권한을 위임해서라도 상황을 냉철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한다 말합니다.

 

무모한 전진은 적들이 준비해놓은 덫에 걸려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불확실하거나 실패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전선을 뒤로 물려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是謂行無行

이를 가려켜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지 않음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아까워서이던가 아니면 단순히 밑의 사람들에게 강하게 보이려는 등의 이유로 굳이 하지않아야 할 것을 고집을 부리며 밀어붙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굳이 그러지 말아야한다. 실패가 눈에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은 아니함만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열심히 하려고만 하지말고, 안해야되는 또는 안해도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찿아내서 쓸모없는 역량 낭비를 줄이는 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이야기합니다.

 

攘無臂 無敵 執無兵

분기하여 소매를 걷어올리지 말 것이며, 적을 깨부수려하지 말 것이며, 병장기를 잡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분기탱천해서 전쟁을 일으킨다고 한번에 상대가 없어지는 경우는 역사 상으로도 흔하지 않습니다. (뭐, 징기스칸 같은 예외도 있지만) 통상 전쟁이라는 행위는 오랜 시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야되기 마련이며, 기나긴 싸움을 치룬 끝에 상대가 괴멸하더라도 승자 또한 상처를 받기 십상입니다. 특정 상대와 대립하여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은 욱하는 상황이 트리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경고합니다.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적을 경시하는 것은 막대한 화가 될 것이니 적을 가벼이 대하면 나의 보화들을 무수히 잃게될 것이다.”

 

결국 상대와 대립하기 전에 자신과 상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냥 봐서 만만해보이는데 한번 건드려볼까, 하는 생각에 싸움을 걸었다가 박살이 나면 결국 나만 손해 아닐까요? 더더욱이나 나라 대 나라, 집단 대 집단의 경우 리더가 막연한 자신감에서 그리고 욱하는 마음에 상대와 대립한다면 조직 전체가 막대한 후과를 치를 수 있습니다.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이러한 이유로 병사에 맞서 서로의 힘을 모아야하는 상황이라면 슬퍼하는 쪽이 이기게된다.”

 

노자가 69장에서도 굳이 전쟁의 비유를 든 것은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의 가장 극대화된 경우가 전쟁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69장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노자는 집단 간의 갈등에서 무조건 얻어내기만 하는 쪽은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요.) 집단 간의 대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적대시하고 대립하게 되면 그것이 개인 간의 주먹질이 되었던, 기업 간의 소송전이 되었건 적게든 많게든 쌍방에 손실이나 피해가 발생되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벌어질 싸움이라면 그리고 내부 역량을 총집결해야된다면 이러한 상황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피치못할 상황을 애통해하며 잃어버릴 것을 최소화하려는 쪽이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져 상대를 우습게보는 편보다 승산이 높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쳐들어오는 적은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나 기분 나쁘다고 또는 마음에 안든다고 상대와 대립하지 말아라, 더더욱이나 리더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불가피하게 분쟁이 일어난다면 상대와 나를 냉정하게 판단하여야 하며 상대를 우습게보고 준비없이 임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68장

2026. 8. 7. 09:41 from BoOk/pHiLoSoPhY

善爲士者 不武 善戰者 不怒 善勝敵者 不與

선위사자 불무 선전자 불노 선승적자 불여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선용인자위지하 시위부쟁지덕 시위용인지력

是謂配天古之極

시위배천고지극

 

 

善爲士者 不武 善戰者 不怒 善勝敵者 不與

“선함을 추구하는 사대부는 무력을 행하지 않으며, 전쟁에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자는 분노하지 않는다. 적과의 승부에 좋은 결말을 바라는 장수는 (상대가 원하거나 도발하는데로) 따라가지 않는다.”

 

갑자기 무력과 전쟁 그리고 적에 대한 승부 이야기가 첫 구절부터 나옵니다. 그런데 첫 줄의 세가지 내용이 모두 참으라는 이야기로 일관합니다.

 

첫 문장은 좋은 일 하려는 선비라면 무턱대고 나 힘 좀 쓴다고 상대방을 두들겨 패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두번째 문장에서도 좀 더 확대해서 나라와 나라간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열 받아서 흥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리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세번째 문장에서도 정말 불구대천의 적일지라도 정말 좋게 이기고 싶다면 시비를 걸어도 아예 거기에 응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종종 노자도덕경 68장을 병서의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병서 치고는 참아라 싸우지 말아라 라는 식이니 그렇게 보는 것도 애매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막판에 다와서 병서가 된다니 좀…)

 

물론 손자병법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기는 합니다. 전쟁은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대사이니 함부로 저질러서는 안되며 특히나 적국을 침범하는 것은 병참 측면에서 본진과의 거리가 멀어져 불리하니 가급적 싸우지않고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것은 풀어야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위의 내용도 그런 손자병법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노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고수들은 왠만하면 참고 잘 싸우지 않는다 예를 드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태권도 정말 고수들이 길에 가다가 맘에 안든다고 사람 두들겨패지는 않는 것 같은 뭐 그런 얘기 말이죠.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사람을 잘 다루는 자는 자신을 낮추니 이를 가르켜 다투지않는 덕이라 하며 사람을 다루는 힘이라 한다.”

 

그리고 두번째 문장에서는 이야기를 바꿔서 사람을 다루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결국 첫 문장은 두번째 문장을 이야기 하기 위한 밑밥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두번째 문장이 노자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던 핵심인거죠.

 

우리는 살면서 숱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냅니다. 뭐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도 될 수 있고 아니면 사업적으로 일정 기간동안 만나거나 직장에서 동료로서 관계를 맺고 지내기도 합니다. 또한 그 관계도 나와 수평적인 관계도 있겠지만 체계상 아니면 암묵적으로 나의 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수도 있고, 나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해야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한은 많게든 적게든 끊임없이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게되는 것이죠.

 

노자는 이러한 대인관계를 잠재적으로 갈등 요소를 품고있다고 해석한 듯 합니다. 살다보면 이야기 안통하는 상대를 보면 욕을 한바탕 해주거나 뒤통수를 한대 갈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툭툭 건드리며 비아냥 거리는 상대국가를 보면 당장 처들어가서 쑥대밭을 만들고 싶은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이래서 당장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조금만 멀리 보면 더 엉망이 되는 경우를 왕왕 보곤 합니다. 좀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래봐야 득 될게 없다는 것을 알게되죠.

 

첫 문장과 두번째 문장을 종합하면  ‘겸손해라,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흥분하거나 다투지말아라, 이게 사람을 다루는 가장 기본이 되는 힘이다. 앞에서도 좀 언급했지만 무술의 고수들이 아무대서나 주먹질하는 거 봤냐? 그리고 피치못하게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거기서 정말 잘 이기려면 흥분하지말고 냉정하게 상활을 보며 결정을 내리는 편이 전쟁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정말 불구대천 원수로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아예 상종하지 말아라. 좋은 관계도 있지만 맘에 안드는 사람과 싸우지않는 것도 사람을 대하는 역량이다. 그냥 차분하게 자신을 낮추고 관계에 임해야 한다’. 가 아닐까 합니다.

 

是謂配天古之極

이것이 하늘의 오래된 지극한 이치에 부합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결국 사람을 대하는 그리고 관계를 맺음에 있어 갈등을 다루는 방법은 위의 내용에서 크게 변할 것이 없으며 뭐 소위 만고의 법칙이니 명심해라 라며 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