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72장

2026. 10. 8. 10:49 from BoOk/pHiLoSoPhY

民不畏威 則大威至

민불외위 즉대위지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무압기소거 무염기소생

夫唯不厭 是以不厭

부유불엽 시이불염

是以聖人自知不自見

시이성인자지부자현

自愛不自貴

자애부자귀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民不畏威 則大威至

“백성들이 위압에 따른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어야 (나라가) 진정 큰 위엄에 도달할 수 있다.”

 

세계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중 국민들은 정부의 폭정에 덜덜 떨면서 지내는데 나라는 잘 나가는 경우가 있을까요? 뭐 일부 측면에서 (예를 들면 경제나 군사력 등) 앞서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살고싶다고 느끼는 그런 강대국이 되는 경우는 없지않나 싶습니다.

 

많은 경우 고압적 리더들은 (그리고 그런 리더를 선호하는 그 위의 리더들은) 소리 지르고 구성원들은 이에 대해 토를 달지못하는 상황을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고함 지르는 리더 밑에서 구성원들은 위험을 가능한 노출시키지 않으려 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않습니다. 그냥 내가 먼저 칼 맞을 상황만 모면하려 하죠. 발전은 고사하고 이런 조직은 빠르게 망가지기 마련입니다.

 

진정한 카리스마는 상호 존중에서 나옵니다. 위해를 당할까 두려워 구성원들이 그 리더에 굴종하는 것은 조폭의 질서일 뿐입니다.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지도자가 그 백성들의) 터전을 억누름지 않는다면, (백성들 또한) 살아가는 나라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게된다.”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의 주어가 생략되어있지만 문맥상 첫 문장의 압박을 가하는 주체는 리더 계층일 것이고 대상은 피지배 계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뒤 따르는 다음 문장의 주어는 피지배 계층이 되겠죠.

 

결국 리더가 구성원을 존중해야 구성원들도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게된다는 이야기라 볼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조직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발전시키려는 마음을 먹을 것 아닐까요? 누가 떠날 날만 기다리는 조직에 충성을 다하려고 하겠습니까?

 

夫唯不厭 是以不厭

“오로지 (지도자가 그 백성들을) 압박하려 하지않아야, (백성들 또한) 그 나라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먹지 않게된다.”

 

여기서 厭이라는 한자가 앞뒤로 한번씩 사용되는데 둘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첫 문장에는 누를 엽 (혹은 압)이라는 뜻이고, 뒷 문장은 싫어할 염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즉 누르지 않도록 하면 이로서 싫어하지않는다, 라고 직독직해할 수 있죠.

 

풀어서 생각하면 앞 단원의 문장과 대동소이한 내용일 듯합니다. 찍어누르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고 위해를 가하는 것을 타인들에게 보이며 본보기를 삼는 것이 정말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구성원들이 조직에 대해 염증을 가지도록 만들어서 좋을 것 하나 없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是以聖人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이 아는 것이 있더도 그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아끼지만 스스로를 귀하게 만들려하지 않는다.”

 

조금 더 威와 押이라는 말의 범위를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의 중에 나 좀 안다고 드러내고 떠들어대고 의전 같은 것에 치중하면서 VIP 대접받기를 원하는 리더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밑의 구성원들을 찍어누르고 위협하는 행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다 안다고 하는데 어떤 용감한 구성원이 그건 아니고라고 얘기하겠습니까? 의전이 마음에 안든다고 밑에 사람들을 족치는 리더에게 누가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故去彼取此

“그리하여 이것을 포기하고 저것을 얻게되는 것이다.”

 

결국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리더들은 항상 생각해야된다. '어라 이것들 나를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이거 조직의 쓴 맛을 좀 보여줘야겠다'라며, 리더 놀이하면 뭐 당장 나의 위치와 권력을 뿜뿜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래서는 조직문화는 엉망이 되고 결국 본인 위치도 흔들리게 되지않을까요?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아라,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성과를 만드는 조직이고 발전하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생각하라는 것이죠.

 

이것을 포기하고 저것을 얻는다,라고 표현한 듯 합니다. 즉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실질적으로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라는 그런 의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71장

2026. 9. 29. 14:59 from BoOk/pHiLoSoPhY

知不知 尙矣

지부지 상의

不知知 病也

부지지 병야

夫唯病病 是以不病

부유병병 시이불병

聖人不病 以其病病

성인불병 이기병병

是以不病

시이불병

 

 

 

知不知 尙矣

不知知 病也

“모르던 것을 알려는 노력은 높이 여겨야된다.

또한 알고있던 혹은 알고있다 여기던 것이 그잘 몰랐던 것이 되었다면 이는 병을 고치듯 대응해야한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전에 몰랐던 것을 깨우치면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하지만 당연히 알고있어야 한다 생각되는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않죠. (고등학생이 구구단 잘한다고 즐거워할 부모는 없습니다.)

 

이미 숙달되었다고 생각되는 지식이나 기술은 다시 말하지만 본인도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습니다. (구구단을 까먹었는지 걱정하는 수학교수님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나중에 알고보니 실상은 제대로 알지못했거나 그냥 대충 넘어가서 어설프로 알고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이른바 숙달된 지식은 다른 발전의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숙달되어야 더 복잡한 고등수학을 할 수 있고, 기본 자세에 몸에 익어야 어떤 운동도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수영을 하려면 일단 호흡하는 법부터 알아야되는 것처럼요. 숙달된 선수는 몸에 익숙해진 호흡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더 이상 실력이 올라가는 것은 고사하고 몸이 망가진 후에 기초적인 호흡법이나 발치기 기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노자는 이를 사람이 병에 걸린 것에 비유를 하였습니다.

 

건강할 때 누가 밥 먹을 때마다 위에 부담이 갈지 생각하고 음식을 미리 고르겠습니까, 누가 걸을 때 발을 정확하게 땔지 생각하겠습니까. 아프지않을 때 사람들은 신체의 모든 부분을 그냥 항상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생활합니다. 하지만 병이 들면 상황이 달라지죠. 병원에도 찾아가고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했던 순간이 돌아오길 바려며 몸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알고있다 생각되던 것이 모르는 것이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어설프게 알아서이거나 알고있던 척했던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이론이나 현상이 발견되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지식은 그 지식만으로 머무르지않습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이 발전하게됩니다. 그런데 기반이 흔들리면 그 위에 올라간 지식은 사상누각이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러한 현상을 병이라고 비유한 듯 합니다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오로지 병을 병으로 다루어야 이것은 병이 아닐 수 있게된다.

  성인에게 이러한 병이 없는 것은 병을 병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하다면 병이 아니다.”

 

모든 개선의 시작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에 시작합니다.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만들게되죠.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보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에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암 걸렸다고 할까봐 무서워 건강검진 안받으면 조기에 고칠 수 있는 병을 키워서 갈 수 있습니다.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내가 어설프게 알거나, 알고보니 잘 몰랐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익히면 되니까요.

 

롱런하는 야구선수는 지속적으로 타격폼을 수정한다고 합니다. 잘 나갈 때의 폼이 나이가 들면서 아니면 투수들이 장단점을 간파하면서 더 이상 경쟁력을 잃게될 수 있습니다. 이때 그냥 예전의 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기본부터 고민을 하는거죠. 

 

쪽 팔려할 것 없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를 이제라도 고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니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 조언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70장

2026. 9. 15. 13:14 from BoOk/pHiLoSoPhY

吾言甚易知 甚易行

오언심이지 심이행

天下莫能知 莫能行

천하막능지 막능행

言有宗 事有君

언유종 사유군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知我者希 則我者貴

지아자희 칙아자귀

是以聖人被褐懷玉

시이성인피갈회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내가 하는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동에 옮기기도 매우 쉽다. 그런데 천하의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잘 이해도 못하고 잘 따르지도 못한다.”

 

회사에 가면 리더분들께서 지시를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하직원이 가져온 결과물을 보고 낙담하며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야기했잖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왜 여긴 이렇게 만든거야. 제발 시키는데로 좀 만들라고. 내 얘기가 어려워?”

 

네 어렵습니다.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상사의 지시가 구체적이지도 않고, 뭔 말인지 중언부언하는 것도 같고, 잘 모르는 이야기를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하는 듯 설명도 구체적이지 않고 등등 이해가 잘 안되어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뭐 좀 물어볼라니 그것도 아직 몰라? 그런건 좀 알아서 하면 안되?,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엄두가 안납니다.

 

리더가 주의해야될 점은 내가 알고있으니 남들도 그렇겠지, 나의 마음을 우리 구성원들은 말 안해도 잘 알거야, 내가 좀 팁만 주면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되,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알고있는 건 남들도 당연히 알거야 → 남들이 알고 있는 것 나는 다 아나요?

나의 생각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거야 →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것도 자세히.

내가 좀 알려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만들어야지 → 리더가 신경 안쓰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빠져버린 리더의 조직을 보면 팔팔 뛰며 구성원을 질책하는 리더와 당최 멀 어쩌라는 건가하며 뒤에서 투덜거리는 구성원들을 보게됩니다. 나의 생각을 구성원들이 나의 주변사람들이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言有宗 事有君

“이야기에는 기준이 있어야하며, 일에는 다스림이 있어야한다.”

 

지시를 할 거면, 요구를 할 거면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중간중간에 계속 점검하십시오. 리더의 이야기는 모호하여서는 안되고, 더더욱이나 스무고개 맞추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최대한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확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야됩니다. 이런 과정은 대략 뭉게지말고 서로 이해하는 바가 같다고 확신이 들 때 마무리해야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 뿐 아니라 전체 과정을 관할하고 점검하는 역할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君 즉 리더는 그리고 리더의 행위는 일을 가능하게 함이 우선임을 명심해야됩니다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오로지 알지못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헤매고있다면 이건 많은 경우 나의 생각을 혹은 지시한 바를 잘 이해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상대의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리더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못해서 무리한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이해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에 적절한 코칭이나 육성을 통해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어야됩니다.

 

知我者希 則我者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귀하다.”

 

몇 마디 안해도 나의 의도를 꾀뚫어 보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상호간의 신뢰관계가 쌓이고 쌓여서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얻기 힘들 테니 말 그대로 귀중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래로 봐야됩니다. 이렇게 얻기 힘들고 귀한 사람이 내 주변에 단지 조직에서 너 리더하라고 했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질거라 생각하면 오산도 대단한 오산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은 그냥 얻어지지 않습니다. 애인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지않을까요? 내가 맘에 드는 상대를 찾았다면 “야, 나 너 좋하해, 지금부터 너도 나 좋아해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나의 진심을 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하고 이런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간신히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是以聖人被褐懷玉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거친 옷을 입고 귀중한 보옥을 감추는 것이다.”

 

거친 옷을 입고 보옥을 감춘다는 말은 본인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위계질서를 갖춘 조직에서 복식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일계사병이 장교의 복장을 입을 수는 없으며, 소위가 대장의 계급장을 옷에 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거친 옷을 입고 귀중한 보옥을 감춘다는 것은 외적인 권위를 드러내거나 심지어는 그에 기대 군림하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러한 리더에게 굳이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따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직위로 찍어 누르려 하지말아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라. 그래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