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71장

2026. 9. 29. 14:59 from BoOk/pHiLoSoPhY

知不知 尙矣

지부지 상의

不知知 病也

부지지 병야

夫唯病病 是以不病

부유병병 시이불병

聖人不病 以其病病

성인불병 이기병병

是以不病

시이불병

 

 

 

知不知 尙矣

不知知 病也

“사람들은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것을 높이 여긴다. 반면에 내가 알고있다 여기던 것이 실상 잘 몰랐던 것이라면 이는 병으로 대해야한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전에 몰랐던 것을 깨우치면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하지만 당연히 알고있어야 한다 생각되는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않죠. (고등학생이 구구단 잘한다고 즐거워할 부모는 없습니다.)

 

이미 숙달되었다고 생각되는 지식이나 기술은 다시 말하지만 본인도 관심을 크게 가지지 않습니다. (구구단을 까먹었는지 걱정하는 수학교수님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나중에 알고보니 실상은 제대로 알지못했거나 그냥 대충 넘어가서 어설프로 알고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이른바 숙달된 지식은 다른 발전의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숙달되어야 더 복잡한 고등수학을 할 수 있고, 기본 자세에 몸에 익어야 어떤 운동도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수영을 하려면 일단 호흡하는 법부터 알아야되는 것처럼요. 숙달된 선수는 몸에 익숙해진 호흡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겠죠.

 

하지만 더 이상 실력이 올라가는 것은 고사하고 몸이 망가진 후에 기초적인 호흡법이나 발치기 기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노자는 이를 사람이 병에 걸린 것에 비유를 하였습니다.

 

건강할 때 누가 밥 먹을 때마다 위에 부담이 갈지 생각하고 음식을 미리 고르겠습니까, 누가 걸을 때 발을 정확하게 땔지 생각하겠습니까. 아프지않을 때 사람들은 신체의 모든 부분을 그냥 항상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생활합니다. 하지만 병이 들면 상황이 달라지죠. 병원에도 찾아가고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했던 순간이 돌아오길 바려며 몸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알고있다 생각되던 것이 모르는 것이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어설프게 알아서이거나 알고있던 척했던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이론이나 현상이 발견되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지식은 그 지식만으로 머무르지않습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식이 발전하게됩니다. 그런데 기반이 흔들리면 그 위에 올라간 지식은 사상누각이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러한 현상을 병이라고 비유한 듯 합니다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오로지 병을 병으로 다룬다면 이는 병이 아닐 수 있게된다. 성인이 이런 병이 없는 것은 병을 병으로 대하여 병이 아니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개선의 시작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에 시작합니다.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만들게되죠.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보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에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암 걸렸다고 할까봐 무서워 건강검진 안받으면 조기에 고칠 수 있는 병을 키워서 갈 수 있습니다.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내가 어설프게 알거나, 알고보니 잘 몰랐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익히면 되니까요.

 

롱런하는 야구선수는 지속적으로 타격폼을 수정한다고 합니다. 잘 나갈 때의 폼이 나이가 들면서 아니면 투수들이 장단점을 간파하면서 더 이상 경쟁력을 잃게될 수 있습니다. 이때 그냥 예전의 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더라도 다시 기본부터 고민을 하는거죠. 

 

쪽 팔려할 것 없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를 이제라도 고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이니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 조언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70장

2026. 9. 15. 13:14 from BoOk/pHiLoSoPhY

吾言甚易知 甚易行

오언심이지 심이행

天下莫能知 莫能行

천하막능지 막능행

言有宗 事有君

언유종 사유군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知我者希 則我者貴

지아자희 칙아자귀

是以聖人被褐懷玉

시이성인피갈회옥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내가 하는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동에 옮기기도 매우 쉽다. 그런데 천하의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잘 이해도 못하고 잘 따르지도 못한다.”

 

회사에 가면 리더분들께서 지시를 내리곤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하직원이 가져온 결과물을 보고 낙담하며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야기했잖아,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왜 여긴 이렇게 만든거야. 제발 시키는데로 좀 만들라고. 내 얘기가 어려워?”

 

네 어렵습니다.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상사의 지시가 구체적이지도 않고, 뭔 말인지 중언부언하는 것도 같고, 잘 모르는 이야기를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하는 듯 설명도 구체적이지 않고 등등 이해가 잘 안되어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뭐 좀 물어볼라니 그것도 아직 몰라? 그런건 좀 알아서 하면 안되?,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엄두가 안납니다.

 

리더가 주의해야될 점은 내가 알고있으니 남들도 그렇겠지, 나의 마음을 우리 구성원들은 말 안해도 잘 알거야, 내가 좀 팁만 주면 자기 능력을 발휘해서 자료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되,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알고있는 건 남들도 당연히 알거야 → 남들이 알고 있는 것 나는 다 아나요?

나의 생각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거야 →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것도 자세히.

내가 좀 알려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만들어야지 → 리더가 신경 안쓰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빠져버린 리더의 조직을 보면 팔팔 뛰며 구성원을 질책하는 리더와 당최 멀 어쩌라는 건가하며 뒤에서 투덜거리는 구성원들을 보게됩니다. 나의 생각을 구성원들이 나의 주변사람들이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言有宗 事有君

“이야기에는 기준이 있어야하며, 일에는 다스림이 있어야한다.”

 

지시를 할 거면, 요구를 할 거면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중간중간에 계속 점검하십시오. 리더의 이야기는 모호하여서는 안되고, 더더욱이나 스무고개 맞추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최대한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명확하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야됩니다. 이런 과정은 대략 뭉게지말고 서로 이해하는 바가 같다고 확신이 들 때 마무리해야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 뿐 아니라 전체 과정을 관할하고 점검하는 역할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君 즉 리더는 그리고 리더의 행위는 일을 가능하게 함이 우선임을 명심해야됩니다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오로지 알지못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헤매고있다면 이건 많은 경우 나의 생각을 혹은 지시한 바를 잘 이해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상대의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리더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못해서 무리한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이해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전에 적절한 코칭이나 육성을 통해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어야됩니다.

 

知我者希 則我者貴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귀하다.”

 

몇 마디 안해도 나의 의도를 꾀뚫어 보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상호간의 신뢰관계가 쌓이고 쌓여서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를 따라주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얻기 힘들 테니 말 그대로 귀중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래로 봐야됩니다. 이렇게 얻기 힘들고 귀한 사람이 내 주변에 단지 조직에서 너 리더하라고 했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질거라 생각하면 오산도 대단한 오산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은 그냥 얻어지지 않습니다. 애인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지않을까요? 내가 맘에 드는 상대를 찾았다면 “야, 나 너 좋하해, 지금부터 너도 나 좋아해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나의 진심을 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하고 이런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간신히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是以聖人被褐懷玉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거친 옷을 입고 귀중한 보옥을 감추는 것이다.”

 

거친 옷을 입고 보옥을 감춘다는 말은 본인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는다는 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위계질서를 갖춘 조직에서 복식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일계사병이 장교의 복장을 입을 수는 없으며, 소위가 대장의 계급장을 옷에 달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거친 옷을 입고 귀중한 보옥을 감춘다는 것은 외적인 권위를 드러내거나 심지어는 그에 기대 군림하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러한 리더에게 굳이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 따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직위로 찍어 누르려 하지말아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라. 그래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69장

2026. 8. 27. 16:04 from BoOk/pHiLoSoPhY

用兵有言

용병유언

吾不敢爲主 而爲客 不敢進寸 而退尺

오불감위주 이위객 불감진촌 이퇴척

是謂行無行

시위행무행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화막대어경적 경적기상오보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고항병상가 애자승의

 

 

用兵有言

吾不敢爲主 而爲客 不敢進寸 而退尺

“병사를 씀에 이야기가 있으니, 무모하게 내 주관대로 도모하려하지 말고 객관적이 되려할 것이며, 무모하게 한 발짝 나아가려하지 말고 멀찍이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

 

앞 장에서 병법에 비유를 들어서인지 69장에서도 용병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은 敢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될 것 같습니다. ‘감히 / 무도하게’ 라는 뜻의 단어가 사용된 상황이라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말리거나 선택에 따른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을 가르킴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심대한 위험을 감수하고 독단적으로 나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일은 피해야된다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좀 객관적 입장이 되어봐야한다, 더 전문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의견을 묻던지 아니면 권한을 위임해서라도 상황을 냉철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한다 말합니다.

 

무모한 전진은 적들이 준비해놓은 덫에 걸려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불확실하거나 실패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전선을 뒤로 물려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是謂行無行

“이를 가려켜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지 않음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아까워서이던가 아니면 단순히 밑의 사람들에게 강하게 보이려는 등의 이유로 굳이 하지않아야 할 것을 고집을 부리며 밀어붙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굳이 그러지 말아야한다. 실패가 눈에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은 아니함만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열심히 하려고만 하지말고, 안해야되는 또는 안해도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찿아내서 쓸모없는 역량 낭비를 줄이는 것이야 말로 중요하다 이야기합니다.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

“분기하여 소매를 걷어올리지 말 것이며, 적을 깨부수려하지 말 것이며, 병장기를 잡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분기탱천해서 전쟁을 일으킨다고 한번에 상대가 없어지는 경우는 역사 상으로도 흔하지 않습니다. (뭐, 징기스칸 같은 예외도 있지만) 통상 전쟁이라는 행위는 오랜 시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야되기 마련이며, 기나긴 싸움을 치룬 끝에 상대가 괴멸하더라도 승자 또한 상처를 받기 십상입니다. 특정 상대와 대립하여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은 욱하는 상황이 트리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경고합니다.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적을 경시하는 것은 막대한 화가 될 것이니 적을 가벼이 대하면 나의 보화들을 무수히 잃게될 것이다.”

 

결국 상대와 대립하기 전에 자신과 상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냥 봐서 만만해보이는데 한번 건드려볼까, 하는 생각에 싸움을 걸었다가 박살이 나면 결국 나만 손해 아닐까요? 더더욱이나 나라 대 나라, 집단 대 집단의 경우 리더가 막연한 자신감에서 그리고 욱하는 마음에 상대와 대립한다면 조직 전체가 막대한 후과를 치를 수 있습니다.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이러한 이유로 병사에 맞서 서로의 힘을 모아야하는 상황이라면 슬퍼하는 쪽이 이기게된다.”

 

노자가 69장에서도 굳이 전쟁의 비유를 든 것은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의 가장 극대화된 경우가 전쟁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69장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노자는 집단 간의 갈등에서 무조건 얻어내기만 하는 쪽은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요.) 집단 간의 대립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적대시하고 대립하게 되면 그것이 개인 간의 주먹질이 되었던, 기업 간의 소송전이 되었건 적게든 많게든 쌍방에 손실이나 피해가 발생되기 마련입니다.

 

어차피 벌어질 싸움이라면 그리고 내부 역량을 총집결해야된다면 이러한 상황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피치못할 상황을 애통해하며 잃어버릴 것을 최소화하려는 쪽이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져 상대를 우습게보는 편보다 승산이 높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쳐들어오는 적은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나 기분 나쁘다고 또는 마음에 안든다고 상대와 대립하지 말아라, 더더욱이나 리더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불가피하게 분쟁이 일어난다면 상대와 나를 냉정하게 판단하여야 하며 상대를 우습게보고 준비없이 임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