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독서 목록

2024. 1. 2. 13:36 from BoOk

1. 기적의 뇌과학 (리사 제노바)

    - 뇌과학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후회없을 선택. 인간의 사고와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2.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 그나마 너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양자역학 

3. 2차 세계대전사 (존 키건)

    - 방대한 페이지 수 보다도 너무 개별 전쟁 묘사에 치우쳐 전체적인 흐름을 알기 어렵게 설명하고 있다.

4. 진령군 (배상열)

    - 싸구려 소설책

5. 작별인사 (김영하)

    - 다른 AI 소설과 차별점을 찾기 힘든 

6. 파친코 (이민진)

    - 시대의 야만과 폭력을 온 몸으로 겪어낸 여인의 이야기. 감동적이고 우아하다. 

7.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 그냥 없다고 하면 되지,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8. 베트남전쟁 (박태균)

    - 전쟁사라기 보다는 작가의 주관적 의견 비중이 높았던 작품.

      한국전쟁을 다루었던 작가의 전작에 대비해 몰입도가 낮다.

9.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제러미 블랙)

    - 어수선하다. 

10.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 흥미로울 수도 있는 소재이나 개인적으로는 흥미가 떨어지는 내용들...

11.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 짧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걸작.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12. 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푸시킨)

    - 글쎄... 별 감흥이 없다. 

13.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 (이무열)

    - 러시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14.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데이비드 이글먼)

15. 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 (마커스 초운)

16.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 너무 재미있음. 낄낄대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

17.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폴 데이비스)

18. 러시아 혁명사 강의 (박노자)

    - 러시아 혁명사라기 보다는 유럽 좌파에 대한 박노자의 개인적 생각과 역사가 뒤죽박죽으로 나열된 책 

19. 신은 성서를 쓰지 않았다 (카럴 판스하이크, 카이 미헬)

    - 무신자라면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만한 책

20. 알기 쉽게 풀어 쓴 신곡, 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 이 책을 고른 건 실수다. 쉽게 풀어 쓴다며 들어낸 내용이 많아 감흥이 떨어진다. 

21. 검은꽃 (김영하)

    -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어찌 이리도 많은가.

22.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쇼팬하우어)

    - 아무리 100년 가까이 예전에 쓰여졌다지만, 인종주의 / 여성혐오 / 계급우월 / 쇼비니즘의 범벅

      나만 옳다는 독선적 시선도 만연. 강력하게 비추!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2장

2023. 12. 4. 16:16 from BoOk/pHiLoSoPhY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오 유고과불곡 이왕공이위칭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고물혹손치지익 혹익지이손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不得其死
인지소교 아역교지 강양자불득기사
吾將以爲敎父
오장이위교부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가 하나 생겨나면 이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만들어내고, 셋은 만물을 만들어 낸다.”
 
무언가 하나의 새로운 방안이나 방도를 만들어지면  이를 이용한 새로운 방안이나 방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거죠. 그것이 경제학이 되었건, 물리학이 되었건 아니면 교통 법규가 되었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시도가 더해지게 됩니다.
 
이 첫 문구는 무언가 하나의 Idea가 생성되면 기존의 생각들이 더해져 수만가지 Idea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이렇듯 만들어진 수많은 Idea들은 Negative한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혹은 Positive한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상충되는 수많은 방안들이 상호보완하여 새로운 방안을 이루게 된다.”
 
이 문구에서 정/반/합의 원리가 연상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Idea가 되었건, 법칙이 되었건 아니면 규율이 되었건,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존 방식의 부족한 부분이 시간이 지나며 부각되기 때문이고, 이런 이유로 개선의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벤치마킹을 통해서건, 새로운 Idea를 찾건, 부족한 부분을 메우거나, 장점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추진하게 되는거고요. 음과 양으로 설명되는 노자의 이 문구는 근대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사람들이 싫어하는 부분은 오직 고립되거나 모자라거나 좋지 않은 것들이다. 이러하여 왕과 상공들이 자신을 칭함에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
 
위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존의 방식에서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리더들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찾아야한다는 이야기이며, 이전 왕조시대의 지배층이 왜 “과인이…” 이라는 식으로 자신을 칭했는지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기본 전제로 하고 신하와 백성들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직언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입시다.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고로 모든 일은 혹은 손해가 이득이 되기도하고 이득을 보는 것이 손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중국의 많은 문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새옹지마의 고사도 그러하고 주역에서 기본적으로 깔고있는 사상도 현 상황이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되었지만 현재의 성공사례가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보는 경우도 종종 목격할 수 있고요.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不得其死
사람들이 가르침을 나누려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 또한 그를 가르치려 한다. 횡포한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위치를 희생하여 이러한 가르침을 얻지못한다.”
 
이 문구가 다소 해석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人之所敎라는 문구는 사람들이 가르치고자하는 바로 해석될 수 있는데, 앞의 내용과 연결성을 생각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바, 즉 앞의 이야기와 같이 正과 反이 대립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는, 즉 合을 도출하는 과정을 敎 즉 가르친다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협상과 합의의 과정이 중요할 것입니다. 나의 것만을 강요해서는 合을 이루기 힘들겠죠. 그래서 마지막의 强梁者 즉 횡포한 사람은 자신의 고집을 죽이는 과정을 통해 (其死) 새로운 것을 얻지 못한다 (不得) 라고 해석한 것이죠.
 
종종 횡포한 자는 좋게 죽지 못할 것이다, 라는 식의 저주의 문구로 해석하곤 하는데 다소 앞뒤 연결이 되지않는 듯하다는 생각입니다.
 
吾將以爲敎父
나는 (이를) 장차 가르침의 바탕으로 하려한다.”
 
敎父는 종교나 특정 학문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의미로 많이 통용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父는 근원 즉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마중물이 되는 사항이나 상황으로 사용된 단어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敎父라는 단어는 가르침의 바탕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번 장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모든 현상이나 Process에는 만족스러운 점이 있는 반면에 부족한 면도 같이 내포하고 있으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부족한 점을 채우고, Plus가 되는 부분은 공유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을 지속해야된다, 독불장군처럼 나 혼자 옳다고 고집을 피워서는 아무런 것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1장

2023. 11. 1. 13:30 from BoOk/pHiLoSoPhY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대소지

不笑不 足以爲道

불소불 족이위도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도약곡 태백약욕 광덕약부족

建德若偸 質眞若渝

건도약투 질진약투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휘성 대상무형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권력의 높은 자리를 차지한 선비는 제도와 질서를 열심히 따르며, 중간쯤 자리를 차지한 선비는 이를 존중하기도 하지만 때로 따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에서 제외된 선비들은 사회의 권위와 제도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기 마련이다.”

 

많은 경우 上士, 中士, 下士를 수양의 수준에 따라 구분한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수양이 높은 사람들은 도를 들으면 경건하게 따르지만 어중간하거나, 수양이 덜된 선비들의 경우는 도를 들어도 그냥 대충 따르거나, 심한 경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 거리기만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거죠.

 

하지만 이래서는 뒤의 문구와 연결성도 떨어지고, 또한 士라는 계층의 명사를 사용했다는 것도 의미를 잘못 짚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士는 식자층 즉 엘리트 계층을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이를테면 그냥 테크노크라트일 뿐이죠. 위의 이야기와 같이 수양의 정도를 나눌 것이었다면 聖人이나 君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엘리트 계층에서도 권력 중용되는 계층과 어느 정도 발을 담궈놓은 계층, 그리고 권력에서 소외되었거나 무관한 계층으로 나누기 위해 상/중/하라는 구분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듯 조직은 실무에 능한 담당자와 관리자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또 이중 소위 Inner Circle에 포함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기 마련이죠. 이 경우 리더는 자연스럽게 권력에 가까이 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지만 이들의 반응만 보아서는 자신이 내리는 지시가 정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조직에서 다소 혹은 많이 소외된 사람들의 경우 제도와 지시에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객관적 관점을 가지고 냉소적이거나 취사적으로 수용하려는 반면에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예스맨으로만 구성된다면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거죠.

 

현재의 굳건하게 자리잡힌 제도와 관습 그리고 권력은 완벽할 수 없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견고한 기득권층이 형성되면 이에 대한 개선이나 변경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不笑不 足以爲道

냉소적인 사람이 없지 않다면 새로운 도를 만들 여건임에 충분하다.”

 

기존 질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경우는 솔직히 없습니다. 그것이 국민연금이 되었건, 의료보험이 되었건, 선거제도가 되었건 승진제도가 되었건 어디에든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만으로 제도의 결함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개선을 생각해야됩니다.

 

不笑不 즉 “냉소적인 사람이 없지않다면” 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주변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더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제가 곪아터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소리만 하는 내 주변 뿐만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혹 지금의 절차나 제도 또는 나의 지시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된다라는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말이 있으니, 보편화된 도는 보편적이 아닌 부분이 있으며, 진보적인 도는 퇴행적 부분이 있으며, 평등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도에도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으며, 높은 덕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정결함은 다른 면에서 보면 욕된 것이며, 넓게 배푸는 덕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明道若昧라는 말에서 明道는 이미 구성원 간에 공감대가 이루어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道를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밝은 빛 아래에서 사물을 보면 모두 그 형상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처럼 明道는 이미 밝게 드러난 도라는 의미죠. 하지만 이러한 道가 있다 할지라도 이는 昧 즉 어두움과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若昧는 직역하면 어두움과 같다라고 해석이 되지만, 저는 이러한 상식적인 절차와 제도 그리고 관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음 것일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 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Process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는 있죠. 그리고 그래야 하고요. 進道若退 즉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여 추진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퇴행적인 부분이 느껴지기도 할 수 있고, 夷道若纇 즉 공평무사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도 누군가에게는 지지자들만을 위한 치우친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거죠.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上德…. 太白…. 廣德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이야기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우리가 칭송하고 떠받드는 제도나 절차, 방식 등이 정말 완전무결할리는 없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된다는 점입니다. 정체되면 결국 썩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가장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방도는 Inner Circle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建德若偸 質眞若渝

 덕을 세움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다. 참됨의 본질은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까요? 심하게 이야기하여 偸 즉 훔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집단들이, 다른 나라들이, 다른 회사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장조사를 하던지 여론조사를 하던지하여 알아내라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아이폰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 없던 휴대전화가 나왔다면 다들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이미 휴대전화라는 플랫폼은 시장에 안착되어 있었고, 2G 방식의 통신기술은 3G로 DATA 송수신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MP3플레이어는 이미 시장에 통용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디지털 카메라는 거액을 주고 들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제각각으로 구매하여야하는 제품이 하나로 합쳐지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을 때 애플이 디지털 카메라 회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MP3플레이어 회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요. 누구도 컴퓨터 회사의 기술을 도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은 이미 시장에 있는 기술을 어떻게 더 사용하기 편하고 더 소비자들이 찾아오도록 조합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무언가가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계가 46억년 전 탄생할 때부터 지구는 태양을 돌고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지구를 돌던 것을 지구가 태양이 돌도록 바꾼게 아니라요. 단지 사람들이 그랬던 것을 모르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質眞若渝 지금 진리라고 믿는 것도 언젠가 더 나은 이론이나 제도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는, 그리고 끊임없이 개선해야된다는 그것이 바로 진리의 본질이라고 노자는 이야기 합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크게 뻗어나감은 그 끝이 없으며, 큰 그릇은 오랜 기간이 걸려 만들어지는 것이다. 큰 음악에는 특정한 소리가 드물며 큰 물체는 구체적 형상이 없다.”

 

이 문구는 개혁과 개선에는 끝이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결혼 했다고 끝이 아닌 것 처럼요 ^^)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드러나지 않고 아직 정의되지 않은 방안이나 방도라도 오로지 좋은 도를 목적으로 한다면 내게 없는 것을 차용하고 또 이룸이 좋다.”

 

이미 첫 몇장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無名이라함은 아직까지 필요가 없거나 미쳐 알려지지않아 규정되지 않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생각입니다. 道隱 즉 숨겨진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새로운 길을 내려면 지금의 것을 또는 나에게 알려진 것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참고하여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니까요.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