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41장

2023. 11. 1. 13:30 from BoOk/pHiLoSoPhY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대소지

不笑不 足以爲道

불소불 족이위도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도약곡 태백약욕 광덕약부족

建德若偸 質眞若渝

건도약투 질진약투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휘성 대상무형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권력의 높은 자리를 차지한 선비는 제도와 질서를 열심히 따르며, 중간쯤 자리를 차지한 선비는 이를 존중하기도 하지만 때로 따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에서 제외된 선비들은 사회의 권위와 제도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기 마련이다.”

 

많은 경우 上士, 中士, 下士를 수양의 수준에 따라 구분한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수양이 높은 사람들은 도를 들으면 경건하게 따르지만 어중간하거나, 수양이 덜된 선비들의 경우는 도를 들어도 그냥 대충 따르거나, 심한 경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 거리기만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거죠.

 

하지만 이래서는 뒤의 문구와 연결성도 떨어지고, 또한 士라는 계층의 명사를 사용했다는 것도 의미를 잘못 짚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士는 식자층 즉 엘리트 계층을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이를테면 그냥 테크노크라트일 뿐이죠. 위의 이야기와 같이 수양의 정도를 나눌 것이었다면 聖人이나 君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엘리트 계층에서도 권력 중용되는 계층과 어느 정도 발을 담궈놓은 계층, 그리고 권력에서 소외되었거나 무관한 계층으로 나누기 위해 상/중/하라는 구분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듯 조직은 실무에 능한 담당자와 관리자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또 이중 소위 Inner Circle에 포함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기 마련이죠. 이 경우 리더는 자연스럽게 권력에 가까이 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지만 이들의 반응만 보아서는 자신이 내리는 지시가 정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조직에서 다소 혹은 많이 소외된 사람들의 경우 제도와 지시에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객관적 관점을 가지고 냉소적이거나 취사적으로 수용하려는 반면에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예스맨으로만 구성된다면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거죠.

 

현재의 굳건하게 자리잡힌 제도와 관습 그리고 권력은 완벽할 수 없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견고한 기득권층이 형성되면 이에 대한 개선이나 변경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不笑不 足以爲道

냉소적인 사람이 없지 않다면 새로운 도를 만들 여건임에 충분하다.”

 

기존 질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경우는 솔직히 없습니다. 그것이 국민연금이 되었건, 의료보험이 되었건, 선거제도가 되었건 승진제도가 되었건 어디에든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만으로 제도의 결함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개선을 생각해야됩니다.

 

不笑不 즉 “냉소적인 사람이 없지않다면” 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주변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더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제가 곪아터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소리만 하는 내 주변 뿐만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혹 지금의 절차나 제도 또는 나의 지시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된다라는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말이 있으니, 보편화된 도는 보편적이 아닌 부분이 있으며, 진보적인 도는 퇴행적 부분이 있으며, 평등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도에도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으며, 높은 덕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정결함은 다른 면에서 보면 욕된 것이며, 넓게 배푸는 덕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明道若昧라는 말에서 明道는 이미 구성원 간에 공감대가 이루어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道를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밝은 빛 아래에서 사물을 보면 모두 그 형상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처럼 明道는 이미 밝게 드러난 도라는 의미죠. 하지만 이러한 道가 있다 할지라도 이는 昧 즉 어두움과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若昧는 직역하면 어두움과 같다라고 해석이 되지만, 저는 이러한 상식적인 절차와 제도 그리고 관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음 것일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 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Process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는 있죠. 그리고 그래야 하고요. 進道若退 즉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여 추진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퇴행적인 부분이 느껴지기도 할 수 있고, 夷道若纇 즉 공평무사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도 누군가에게는 지지자들만을 위한 치우친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거죠.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上德…. 太白…. 廣德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이야기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우리가 칭송하고 떠받드는 제도나 절차, 방식 등이 정말 완전무결할리는 없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된다는 점입니다. 정체되면 결국 썩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가장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방도는 Inner Circle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建德若偸 質眞若渝

 덕을 세움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다. 참됨의 본질은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까요? 심하게 이야기하여 偸 즉 훔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집단들이, 다른 나라들이, 다른 회사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장조사를 하던지 여론조사를 하던지하여 알아내라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아이폰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 없던 휴대전화가 나왔다면 다들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이미 휴대전화라는 플랫폼은 시장에 안착되어 있었고, 2G 방식의 통신기술은 3G로 DATA 송수신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MP3플레이어는 이미 시장에 통용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디지털 카메라는 거액을 주고 들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제각각으로 구매하여야하는 제품이 하나로 합쳐지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을 때 애플이 디지털 카메라 회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MP3플레이어 회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요. 누구도 컴퓨터 회사의 기술을 도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은 이미 시장에 있는 기술을 어떻게 더 사용하기 편하고 더 소비자들이 찾아오도록 조합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무언가가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계가 46억년 전 탄생할 때부터 지구는 태양을 돌고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지구를 돌던 것을 지구가 태양이 돌도록 바꾼게 아니라요. 단지 사람들이 그랬던 것을 모르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質眞若渝 지금 진리라고 믿는 것도 언젠가 더 나은 이론이나 제도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는, 그리고 끊임없이 개선해야된다는 그것이 바로 진리의 본질이라고 노자는 이야기 합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크게 뻗어나감은 그 끝이 없으며, 큰 그릇은 오랜 기간이 걸려 만들어지는 것이다. 큰 음악에는 특정한 소리가 드물며 큰 물체는 구체적 형상이 없다.”

 

이 문구는 개혁과 개선에는 끝이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결혼 했다고 끝이 아닌 것 처럼요 ^^)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드러나지 않고 아직 정의되지 않은 방안이나 방도라도 오로지 좋은 도를 목적으로 한다면 내게 없는 것을 차용하고 또 이룸이 좋다.”

 

이미 첫 몇장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無名이라함은 아직까지 필요가 없거나 미쳐 알려지지않아 규정되지 않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생각입니다. 道隱 즉 숨겨진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새로운 길을 내려면 지금의 것을 또는 나에게 알려진 것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참고하여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니까요.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0장

2023. 9. 21. 11:12 from BoOk/pHiLoSoPhY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反者道之動

현재의 방식에 대한 반발은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게 되는 동기가 된다.”

 

도덕경에서는 영원불멸한 Solution은 없으며, 모든 제도나 관습 그리고 대응방안은 계속 변화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기는 기존 System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되었을 때 이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현상은 많이 경험하곤 합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버스를 타려면 현금을 내고 타곤했습니다. 미리 잔돈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목적지를 이야기 하면 안내양이 잔돈을 거슬러주는 방식으로 요금을 냈죠. 그러던 것이 안내양을 없애면서, 운전석 옆에 커다란 통에 현금을 넣으면 잔돈이 기계에서 나오는 식으로 변하게 되죠. 그리고 정액에 대해 토큰을 미리 구매하게 하여 잔돈을 거슬러주는 불편함을 줄이는 방식으로 변하게되었습니다. 이후 전산망을 활용한 납부가 가능해지면서 아예 버스기사는 금액을 계산할 필요없이 지금과 같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통카드를 통해 요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후로는 버스와 지하철을 통합하여 납부할 수 있는 교통카드 체계가 갇추어졌고, 그 다음은 지역마다 달랐던 카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새로운 환경이 찾아오고, 기존의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려는 필요가 한데 묶여 새로운 해결책이 나오게되는거죠.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존의 것에 대한 반성과 반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모두는 불편한 것을 참을 수 없어하거든요.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에 열광합니다.

 

弱者道之用

부족하고 약한 부분은 도를 만듬에 쓸모가 된다.”

 

불편함을 주는 부분은 대개 취약한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야구팀 감독이라고 생각해보죠. 개선은 어떤 방식에 맞춰질까요?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에 칼을 들이댈까요, 아니면 부족한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할까요? 다 괜찮은데 2루수가 에러도 많고 타율도 떨어진다고 하면 여기에 개선목표를 두려하지 않을까요? 뭐, 훈련을 2루수에 대해 강화한다던지, 새로운 후보를 2군에서 물색한다던지 아니면 타팀으로부터 Trade나 영입을 통해 보완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겁니다. 지금 잘 치고 잘 수비하는 외야수에 고민하기 보다는 말이죠.

 

이 문구는 다르게는 새로운 Solution을 고민할 때 그 구성원의 약자에 대해 우선 배려하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던 노자는 현재의 시스템을 계속 살피고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고민하고 더 나아지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천하 만물은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생성되지만, 새로운 것이 생겨남은 애초 필요한 것이 없다는 자각에서 생겨난다.”

 

앞장에서도 많이 이야기가 되었지만 도덕경에서는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뭐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거나, 있는데고 내가 몰랐던 것을 추가하거나 조립해내는 과정이라는 거죠. 지구는 항상 태양 주위를 돌았습니다. 갈릴레이가 돌도록 만든 것이 아니죠. 아인슈타인이 시공을 왜곡시킨게 아닙니다. 항상 그랬던 원리를 기존의 물리학 이론 등을 통해 알아낸 것이죠.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낸 것은 기존 이론으로 설명이 되지않는 현상에 대해 Solution을 만들어내야될 필요에 의해 기인합니다. 기존 뉴톤 물리학으로는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無)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거라는 (有生) 말이죠.

 

즉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쯤 되겠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9장

2023. 8. 31. 14:51 from BoOk/pHiLoSoPhY

昔之得一者

석지득일자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령 신득일이령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一也

기치지일야

天無以淸 將恐裂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貞 將恐蹶

천무이청 장공열 지무이령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곡무이영 장공갈 말물무이생 장공멸

후왕무이정 장공궐

故貴以賤爲本高以下爲基 是以後王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고위이천위본고이하위기 시이후왕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故致數輿無輿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여무여 불욕록록여옥 락락여석

 

 

 

昔之得一者

과거로부터 무언가 하나를 얻게된다.”

 

우리 모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합니다. 외모적으로 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많건 적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치관이나 생활습관 그리고 특정 상황에 대한 대응력 등도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1학년의 나와 6학년때의 나는, 그리고 중학교 때의 나와 고등학교 때의 나는, 대학생 때의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의 나는, 같은 나이지만 동일한 나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보내며 그것이 사람 간의 관계에 의해서건, 공부를 통해서건, 여행을 통해서건 아니면 홀로 사색을 통해서건 하나씩 하나씩 경험과 지식이 쌓이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보다는 지식이 늘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잘못된 사실에 집착할 수도 있고, 사고가 유연해지거나 아니면 편협해질 수도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확대할 수도 아니면 더 고립되어 버릴 수도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그냥 과거의 모습 그대로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통해 무언가 “하나”씩은 얻게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얻을 것을 어떻게 취사 선택하느냐에 따라 모두의 미래는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一也

하늘은 이렇듯 얻은 하나 하나가 모여 청명하게 되며, 땅은 안녕되고, 정신은 영험해졌으며, 계곡은 내려오는 모든 것을 보듬어 담고, 만물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며, 후왕은 천하를 바르게 만들려 하게된다. 이를 이루는 것은 (과거로부터 얻어낸) 개별의 하나 하나로부터 이다.”

 

노자는 모든 것은 이렇듯 과거의 하나, 하나가 누적되어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진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하늘이 저토록 맑고 푸른 것도, 땅이 탄탄하게 이루어져 발 밑이 불안치 않게 됨도, 정신이 만들어져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 영험함을 보이는 것도, 계곡이 위에서 흘러내린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것도, 만물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리고 제후와 군왕이 천하를 바르게 만들려 하는 그 수많은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도 모두 과거의 경험과 학습에서 얻어진 것들의 총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비유들이 이 단락에서 나오지만 이를 테면 하늘의 경우 (노자가 물리학을 알고있었을리는 없지만) 하나 하나의 원자들이 모여 현재의 대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구가 처음으로 생성되었을 때는 현재와 같은 대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소행성과의 충돌과, 지구 생성 당시의 불안정성이 누그러지고, 원시생명체들의 생겨나 대사들을 통해 산소와 이산화탄소들을 내뿜으면서 현재의 대기가 생성되고, 결국 우리 지금 숨 쉴 수 있는 하늘이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지구행성의 많은 원소들은 우주가 생성되고 난 후, 수많은 항성이 나고 죽으면서 만들어진 원자들이 우주를 떠돌다 결국 하나로 모여 지금의 토양을 이루게된 것입니다.

 

정신이라는 것도 단순한 원시 생명체의 본능적 대사행위에서 현재의 인류의 고도의 사고 체계로 발달된 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체의 경험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결과들이 누적되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군왕의 통치는 수많은 판단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 판단 하나에 수혜를 입을 수도 재앙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렇듯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요? 결국 학습과 경험과 그리고 본인 기준에 신뢰할 수 있는 주변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天無以淸 將恐裂

 하늘이 그 맑음을 구성하는 것을 잃는다면, 장차 파열될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여기서 無라는 단어는 앞서서 언급된 하나하나의 축적된 구성 요소가 없어지는 상황을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대기가 어떤 영향에 의해서 모두 아니면 대부분이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면 지금과 같은 하늘일 수는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貞 將恐蹶

땅이 그 안녕됨을 구성하는 것을 잃는다면 장차 폭발할 수 있음을 걱정해야 될 것이다, 정신이 그 구성되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장차 그 영험함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걱정해야될 것이다. 계곡을 구성하는 것이 없어지면 그 수용함이 고갈됨을 걱정해야될 것이고, 만물이 그 구성하는 것을 잃어 버린다면 생명을 다하여 소멸됨을 걱정해야될 것이다. 후왕이 그 통치의 근간을 잃어버리면 장차 몰락할 수 있음을 걱정해야될 것이다.”

 

앞의 天無以淸 將恐裂와 비슷한 의미이므로 반복적인 설명은 하지않으려 합니다. 노자가 하늘과 땅, 정신과 계곡, 만물 등의 비유를 한 것은 어쩌면 侯王無以貞 將恐蹶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떤 조직의 리더라면 자신의 위치는 조직 구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 망각하면 리더들은 구성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없는 조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없는 나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서 도움을 주고 받는 이익을 공유하는 사이입니다. 내가 남에게 명령을 내리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당신이 적임자라는 공감대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구성원들이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 당신을 떠나거나 아니면 당신을 끌어내리려할 것입니다. 하나 하나가 모여있는 조직의 리더라는 역할을 가진 하나의 구성일 뿐이다. 내가 리더라고 내가 전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 노자가 말하고자 한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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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貴以賤爲本高以下爲基

이러한 이유로 귀함은 천함을 그 근본으로 삼으며, 높은 것은 아래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보잘 것 없어보이는 하나들이 모여 우리 모두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면 얼핏 천해보이는 직업이나 사람들도 그 사회에 그리고 조직에 꼭 필요한 그리고 중요한 근간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아도 소득수준 구성은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억, 수십억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고 자산이 수십/수백억을 가진 사람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죠. 회사에서도 임원과 리더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나 이 모든 역경을 거쳐 내 혼자의 힘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 이 조직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모두에게 더 나은 것이 어떤 방향일지를 고민해야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만족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이야기 합니다.

 

 

是以後王自謂孤寡不穀

이러한 이유로 후왕은 자신을 작고, 부족하며, 착하지 않다 이야기 한다.”

 

後는 候의 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 자신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전체 집단의 한 위치일 뿐이다. 겸손해야된다, 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이것이 천한 것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邪는 감탄사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이야기 할 내용은 없습니다.

 

 

故致數輿無輿

고로 수레를 하나 하나 부품으로 나누면 더 이상 수레일 수 없게된다..”

 

우리 속담에도 “구슬도 꿰어야 서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레에서 어느 부품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나 혼자 잘났다고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면 수레의 손잡이가 아닌, 그냥 나무조각에 불과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위치와 지위는 그냥 큰 집단의 기능적으로 필요해서 잠시 부여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옥과 같이 희귀한 것을 탐내지 말아라, 돌을 모아 구슬목걸이를 만들 일이다.”

 

인생이란 장기 레이스는 한순간의 대박으로 결정될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조금씩이라도 성과를 만들어 그것이 누적되어 그것으로 비롯한 탄탄한 업적이 되어야 하는 거죠. 모든 일에서 그리고 관계에서 한방의 대박을 노릴 것이 아니라, 돌과 같이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조합하여 그리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고민하여라.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지속해야한다, 라며 39장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