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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14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저자
로맹 가리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4-0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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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다소 기분이 않좋았습니다. 책 분량으로만 보면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정도지만 손도 잘 안가고 일주일이 넘게 걸려 책을 다 읽었습니다.

 

내용은 … 1970년대 쯤을 배경으로 하는데 주인공은 과거 레지스탕스였고, 한때는 잘 나가는 출판사 경영인이었지만 지금은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고, 나이가 59임에도 불구하고 25살 애인도 있는, (가족은 묵인?) 그 연세에도 성욕은 대단히 왕성하셔서 남자라면 최소 일주일에 서너번은 거사를 치루셔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는데, 나이가 나이이신지라 (당시에는 비아그라도 없고) 이제 발기부터 문제가 되시니 회사는 망해가지, 애인 앞에서 쪽 팔리지 뭐 이런 난국에 처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가 왜 불편할까요? 와이프와 장성한 아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돈 좀 있으시다고 애인하고 그거 할 생각만 하고있는게 한심해서? Owner가 되서 회사는 망해가는데 돈을 펑펑 쓰시는게 어이없어서? (애인에, 고급 호텔에, 재규어 같은 고급차에, 금시계 쯤은 잃어버려도 Cool하시고..) 그러면서도 딴에는 레지스탕스 출신이라고 애국자 코스프레하면서 철학적 고뇌를 하시는 듯한 모습이 맘에 안들어서?

 

사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당시의 프랑스 상황을 투영하려 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에 미국 주도로 경제도 성장하고 강대국 대열에 포함되어 좋은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 한때는 식민지였던 중동과 아시아에 자원은 종속되고 경제적으로도 위협을 받는 것 같고, 경제력 측면에서도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에게도 치이는, 과거의 영화에 취해 노쇠해가는 듯한 프랑스를 말이죠. (뭐 결론적으로는 아직도 프랑스는 세계 강대국 중의 하나지만)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비극적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안부, 강제징용과 같은 일제의 악행은 잊혀지지 못할 치욕이고요. 그런데 과거 식민지를 경영했던 프랑스를 포함한 서양의 제국주의는 일제보다는 나았을까요? 그들은 왜 비난받지 않을까요? 뭐 이를테면 더 문명화된 식민지 운영이라도 해서 피식민국들이 감사라도 하는 수준이었나요? 

 

과거 미테랑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에 문화재 반납과 관련된 협상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조선 말기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인들이 강화도에 무단 침략하여 대거 문화재를 약탈해갔었는데 약탈 문화재에 대해 당연히 우리는 반납을 요청했었고 당시 검토 중이던 고속철에 자국의 TGV가 선정되길 원했던 프랑스가 문화재 반납을 당근으로 활용했던거죠. 결국은 반납이 아닌 장기 임대 형식으로 외규장각 도서는 돌아왔지만 당시 프랑스 내부에는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었을까요? 똘레랑스니 뭐니 고상한 척은 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 일부 사람들에게 한국은 아시아의 미개한 이등국가이고, 문화재니 뭐니 관리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사람들로 비춰지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도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딸 나이 또래의 애인을 데리고 망해가는 회사에 대한 책임은 도외시하고 낭비를 일삼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런 모든 행동과 상황을 철학적인 고뇌로 치장하여 사실 자신은 애국자였고 가족을 위하는 구식 남자일 뿐이라고 자기 합리화에 몰두합니다. 책 곳곳에 묻어나는 외국인에 대한 숨기지 않는 혐오와 비하적 묘사는 더더욱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주인공의 해피엔딩이 더 기분 나빴습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열강들의 현재의 번영은 결국 과거 식민지 시절의 약탈에 뿌리를 박고있지않나요? 예술과 철학의 국가인양 고상한 척, 정의가 자신들의 소유인 것처럼 떠들어 선전하지만 TGV 팔려고 문화재를 흥정하는 모습이 사실 그들의 민낯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