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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017. 11. 24. 16:18 from BoOk/nOvEl
토지 1~20 세트
국내도서
저자 : 박경리
출판 : 마로니에북스 20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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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0권을 이럭저럭 완독했습니다. 5월부터 읽기 시작해서 11월에 마무리했으니 근 반년 가까이 걸려 책을 다 읽었습니다.

 

사실 이만한 분량의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사람들이 토지 읽기를 주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점에 가서 토지 전질을 보는 순간 그만 질려버리고 마는거죠. 토지가 5부가 마무리된 것이 94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작품 전부가 마무리된지 20년이 훨씬 지났는데 저도 읽을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습니다. 왠만한 장편소설이 약 10권 분량인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도 2배에 달하는 작품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분량도 그렇지만 굉장히 긴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한참을 읽다보면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헥갈리는 경우도 자주 생기더군요. 작품의 성격이 많이 틀리기는 하지만 나중에는 "홍루몽"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좀 들었었습니다. 책을 처음 읽을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별책으로 판매되는 인물사전은 꼭 사서 같이 보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암튼 그러저러한 사연이 있었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방대한 책을 사서 모셔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토지는 ebook으로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토지는... 사실 저한테는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의외로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습니다.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특히 1부와 2부는 굉장히 몰입이 되더군요. 전체적으로 이렇게 긴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추력은 1부와 2부에서 받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도 따로 언급하셨지만 3부와 4부를 작성하면서는 굉장히 힘이 들으셨던 것 같고 독자 입장에서도 (특히나 4부는) 그전만큼 잘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그전까지는 상황을 통해 의미를 담아냈는데 그걸 그대로 설명하듯 쏟아내는 느낌이랄까요. 가장 분량이 적은 4부가 가장 힘들게 읽혀졌습니다. 마치 공중에 쏘아진 새총 같다는 생각입니다. 새총을 벋어난 돌이 쏜살같이 1, 2부에서 날아가다가 3, 4부에서 힘겹게 정점을 찍고 빠른 속도를 회복하여 5부에서 마무리를 지는 듯한.

 

토지는 초반에 선명한 선악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고귀한 신분의 아름다운 여인이 비열하고 탐욕스런 악당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만 절치부심하여 마침내 복수한다는 이야기. 절대 악당 조준구는 반성도, 후회도, 고뇌도 없으며 처자식조차 외면하는 이기적인 존재. 사실 이런 갈등 구조가 토지에는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월선과 임이네, 보연과 홍이, 우개동과 오씨 집안 등등.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이런 악인들은 대부분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되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면 토지는 사실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내용에서 크게 벋어나지 않는다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일부 인물의 평면적인 묘사도 다소 아쉽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습니다. 임이네 같은 인물은 사실 초반 수다스럽고 다소 경망스러워보이기는 하더라도 생동감있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남편의 사망과 집안의 몰락에 의해서라지만 인물 내부의 갈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 180도로 탐욕스럽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오카다 지로라는 인물이 인실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당시의 사회상이나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였는 분위기를 감안한 묘사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인실과의 관계에 대해 면전에 독설을 날리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쇼비니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모습들도 자주 나오는데 일본은 문화라고 할만한 것도 없는 야만스러운 인종이라는 식의 표현은 반일/항일과 혐일을 혼돈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물론 일본강점기 때 그들이 우리에게 한 행위들은 치가 떨리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식의 혐오는 결국 당시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고요.

 
하지만 그러저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듯 촘촘하고 완벽하게 묶어 풀어나가는 점은 토지의 대단한 장점 중에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은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래 1부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토지의 한 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포수는 꾸러미를 모로 세워 창살 사이로 넣으려 했다.
"강포수, 손."
"머라꼬."
강포수는 흠씬 놀라며 물러섰다.
"손."
귀녀는 여전히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어 놓고 있었다. 강포수는 겁을 내어 떨면서 조그마한 귀녀의 손을 잡아본다. 조그마한 손, 손아귀 속에서 바스러질 것 같은 손이다.
"마, 마, 많이 여빘고나."
"강포수의 손은 쇠가죽 겉소."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였다.
"이, 이거 배고플 긴데."
다시 꾸러미를 디밀려 하는데 이번에는 귀녀 쪽에서 강포수의 손을 거머잡았다.
"강포수, 내 잘못했소."
"알았이믄 됐다."
"내 그간 행패를 부리고 한 거는 후회스럽아서 그, 그랬소. 포전 쪼고 당신하고 살 것을, 강포수 아, 아낙이 되어 자식 낳고 살 것을, 으으흐흐......"
밖에 나온 강포수는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짐승같이 울었다. 하늘에는 별이 깜박이고 있었다.

 

 

마지막 권을 덮으면서 순간 조금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토지는 주인공 서희가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 때부터 50대가 되는 반백년에 가까운 굉장히 긴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그 많은 사람들의 그 많은 인연과 고통과 이야기들을 같이 하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지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