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그건 그렇고.
은랑도 나도 늦게까지 일을 하는터라 사실 애들은 아직 어리고 또 우리때하고는 틀려서 이래저래 하는 것들이 많은지라 숙제는 항상 생기는데 옆에서 봐준다고 해야 밤 늦게 집에 와서야 가능하니 집에 와서 매일 보는 건 12시가 다되도록 애를 잡는 은랑과 피곤한 눈의 경민이.
은랑께서는 그간 이 모든 원흉의 주범은 TV라고 보고 전원도 뽑아보고 안테나 선도 뽑아봤지만 집에 돌아와 발견하는 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TV를 시청하시는 경민군의 모습이었다.
"엄마, 이게 빠져있어서 여기다 꽂으니까 TV가 잘나온다~~ㅋㅋ"
그런 은랑에게 이 모든 고민거리를 단방에 날려버릴 묘책이 생겼으니 새로 산 최첨단 LCD TV에는 채널 잠금 기능이 있었던 거시였다!
뿌듯한 마음으로 모든 채널을 잠궈버리고 비밀번호 설정하고 오늘은 뭐 지가 날고 기어도 별수 없겠지,라고 맘 푹 놓고 일에서 돌아오신 홍여사께서는 문을 열자마자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는데.
"아니! 너 어떻게 TV를 보고있는거야!~~"
그렇다. 경민군은 아주 편한 자세로 쇼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놀라서 어쩔줄 몰라하는 엄니에게 다가와 경민군 친절하게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엄마. 비밀번호 7777만 계속 누르면 되는데~~"
뭐 비밀번호 까먹으면 back door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어떻게 그걸 알아냈단 말인가. 우리 아들은 걍 해커가 천직이란 말인가? 집에 돌아와 놀라워하는 내 앞에 은랑은 모든 것을 채념한 표정으로 맥주를 들이키며 한마디 하신다.
"비밀번호는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