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2018. 1. 11. 13:54 from MeDiTaTiOn/pOeM

밤이면 나는 머리 속 상자를 열어 그녀를 찾아 나선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거쳐
눈이 채 녹지않은 계단을 올라
그녀를 만나러 걸음을 서두른다

 

지나는 길에 그가 나를 막았다

잠시 시간을 달라며 소매를 잡아끈다
(나는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않다)
그가 이끄는 데로 따라가지만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기억한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수선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며 그는 나를 원망한다
고개를 숙이며 왜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않냐며 울먹인다
술잔이 채워져가고 나는 그의 넋두리가 어서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기다리다 지쳐 골목으로 나와 서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예측했을 수도 있다

 

나는 어느정도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그의 불행과 그녀의 원망과 나의 유유부단함은
나의 무책임과 무지와 무관심에 의한 것인가

불운과 아쉬움은 예견된 것처럼 다가와 나를 좌절시키려한다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라며 나를 다독인다

나는 뜻 밖의 호의에 감동해 그를 의지하게 된다.
그는 차라도 한잔 하자며 나를 일으킨다

 

지나온 길이 눈에 뒤덮였다
버스 정류장에는 막차가 하얀 김을 내뿜으며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을 바라본다
그녀를 볼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고 눈 속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생각한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