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앞장에 본 바와 같이 虛라는 말은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빈 공간을 말하기 보다, 최소한의 약속된 Rule이 적용된 활동 무대라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靜이라는 말은 이러한 무대를 제공한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무대가 크면 클수록 (虛極) 더 많은 의견과 생각이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대를 제공한 사람은 가능한 (절대가 아니고) 그 무대를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한다면 (靜篤), 그 무대에서 만물이 다시 말하면 다양한 성과가 조화를 이루며 나란히 얻어질 것이라는 말이죠.
조금 더 부언하자면 저는 靜이란 말이 그냥 방치하고 입을 다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섭은 최소화하되, 필요한 경우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한다는 의미를 복합적으로 담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흙탕물을 빈(虛) 유리병에 넣은 후 흔들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靜) 시간이 지나 부유물은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로 뜨게됩니다. 아무튼 그 유리병에 물을 담고, 흙탕물이 안정화되도록 인내를 발휘하는 것은 노력이 수반되는 행위입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아니죠.)
이러한 노력 끝에 그 혼돈스럽던 상황이 정리되고 무언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얻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새로이 정립하게 되는 다른 문제해결의 바탕(근본)이 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고민하여 더하기나 빼기, 나누기와 곱하기 같은 수학공식을 만들어낸다면 이런 이론이 더 발전된 수학 이론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게된다는거죠. 이러한 과정을 도덕경에서는 復이라는 단어로 압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선순환과 같은 의미로요. 눈으로 보이는 현상은 혼란스럽고 다양하지만 (夫物芸芸),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가 잡히고 또 다른 질서 수립을 위한 바탕이 되게된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첫번째 문구는 이미 이야기한 내용의 반복이 될 것 같습니다. (歸根曰靜)
그런데 다음 두 문구가 다소 재미있습니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靜이라한다, 이를 일컬어 復命이라하며, 復命을 常이라 한다”
復命의 사전적 의미는 업무를 마치고 그 위의 사람에게 보고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常에 대해서는 이리 첫장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물론 노자의 첫장에서 常이라는 것은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구불변한 진리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므로 이번 내용에서의 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기존의 것을 대치하던 아니면 새롭게 수립된 기준이나 법칙, 이론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혼돈된 상황을 정리하여 (靜), 이를 정리하여 구성원이나 리더의 합의를 이루는 단계를 거치면 (復命) 이후 이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죠. (常)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체득화하여 알게되는 것을 (知) 깨우쳤다고 말합니다. (明) 이미 수립된 아니면 알려진 기본적 내용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일을 망치게 된다고 노자는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이번 단원은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사람들(公)에게, 그리고 王에게, 그리고 천하에 받아들여지면 (容) 이것이 새로운 질서인 道가 되는 것이고, 새로운 질서가 안정적이고 오래토록 유지된다면 종신토록 (아마 제후를 가르키는 듯한데) 나라에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도 보고, 조금 다르게 해석하자면 常을 알게된다는 것은 곧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고, 이러한 질서가 공공에서 영구한 질서로 더욱 발전하게 되면 그 이론 자체가 그 단계에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는 첫번째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