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27장

2021. 10. 13. 15:15 from BoOk/pHiLoSoPhY

善行無轍迹
선행무철적
善言無瑕謫
선언무하적
善數不用籌策
선수불용주책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선폐무관건이불가개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선결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시이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
常善救物 故無棄物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시위습명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不善人者 善人之資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是謂要妙
시위요묘
 
 
27장의 첫 한두 구절에 대해 많은 경우 '성인은 좋은 행동이나 말을 너무나 완벽하게 하여, 남들은 그런 좋은 영향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한다'는 식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하지만 남들 모르게 좋은 말을 하고, 행동을 취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고, 또한 뒤에 이어지는 성인은 사람과 사물을 잘 얻는다는 말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풀어보았습니다.
 
善行無轍迹
“사람들이 더 나은 실행 방안을 만들어 낸다면, 그 결과를 시시콜콜 추궁하지 않아야 한다.”
 
轍迹(철적)은 수레바퀴 자국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이다보니 많은 경우 “선행은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라는 식의 해석이 많습니다. 저는 轍迹을 수레가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흔적, 즉 불가피한 흠결로 해석하였습니다. 수레가 지나가는데 바퀴자국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수레가 지나가야 되는 이유와 그로 얻어질 이익은 외면하고 바퀴자국이 왜 남았냐고 질책해서는 안되죠. 뒤의 문구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善言無瑕謫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하면, 이에 대한 옥의 티를 찾으려하지 말아라.”
 
瑕謫 (하적)이라는 단어는 옥의 티를 가르킵니다. 이 문구도 많은 경우 “좋은 말씀에는 옥의 티도 찾을 수 없다”라는 해석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앞의 노자의 이야기들을 보았을 때, 완전무결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이야기는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아보입니다.
 
앞선 문구와 같이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하면 뭔가 흠결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더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善數不用籌策
“사람들이 더 나은 수를 만들어내면, 굳이 주판을 튕기고 점을 쳐서 이를 확인하려 하지도 말아라.”
 
세번째 문구도 같은 내용이 이어지며, 여기서 어떤 것을 말하려는지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많은 경우 “셈을 잘하는 사람은 계산기가 필요없다.”라는 식의 해석을 하던데, 數는 숫자를 세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어떤 문제에 대한 셈 즉 Solution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籌策 (주책)은 단어 그 자체로는 사실 “이익과 손해를 따져 만들어낸 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 그 자체만을 가지고 앞의 數를 연관하여 뜻을 풀려면 좀 어렵지만, 籌는 주판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 策은 점을 치는 대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籌策은 구성원이 만들어 올린 방안에 대해 굳이 계산기를 튕기면서 숫자가 틀린게 없나 확인하고, 또 점을 쳐서라도 불길하다고 핑계거리를 만들려는 리더의 모습을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첫 세문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좋은 방안에 대해 리더랍시고 조그만 실수나 결함을 흠 잡아 배척하거나 질책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어떤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이야기나 실적에 대해 좋은 점이나 살려낼 점을 찾기보다, 실수나 잘못된 점을 찾는 것에 치중하고 그걸 부각하거나 질책하는 것으로 본인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조직이 건강해질리 만무합니다.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막게되고, 결국 리더의 독단에 흐르기 십상입니다. 노자는 이런 과정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상황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 중 빗장을 걸어 잠궈 다시 열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없다.” 
 
閉 즉 무언가를 닫는다는 말은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단계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닫음이 關楗 (관건) 즉 물 샐틈없이 걸어잠궜는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완전무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 당시의 최선의 방안이 있을 뿐입니다. 자원이 더 확보되고, 다른 사람들의 대응방안 등을 벤치마킹하고, 구성원들 간의 고민과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안을 찾으려는 개선활동은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완전무결한 마무리 같은 것은 없다.'라는 표현을 이와 같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좋은 결합 방법이라는 것도 다시는 풀 수 없게 노끈 묶듯 하는 것이 아니다.”
 
앞의 문구와 상황만 상이할 뿐 비슷한 의미의 내용이라고 판단됩니다. 방법을 고민하여 일을 좋게 마무리하였더라도 나중에 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두 조직을 하나로 필요에 따라 합병하였더라도 상황이 바뀌면 다시 나눌 수도 있습니다. 100% 만족할 수 있는 마무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 한정된 자원이나 상대방과의 협상과정을 통해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며, 만일 이 과정에서 미비한 상황이 있다면 다음 경우에 이를 보완하면 되는 겁니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거야? 정말 이게 가장 좋은 마무리 방안이야?”라고 점검은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이런 이유로 성인은 사람을 잘 얻으며 버림이 없다, 또한 사물을 잘 얻으며 버리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노자는 일관되게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있지도 않고, 그런 것을 만들거나 찾으려 하지말라고 합니다. 나와 같이 하는 주변의 사람들도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도 있고, 성격이 비슷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거나 뒤에서 험담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Leader라면 나의 취향이나 기준에만 맞는 사람들과만 같이 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풍부한 Database로 활용할 생각을 해야된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物이라고 쓰여진 자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없어 보이는 것이더라도, 아니면 하찮아보이는 자원도 적소에 사용되면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다음 기회에 필요할지 모를 일입니다.
 
是謂襲明
“이를 습명이라 한다.”
 
襲明(습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생각해보면 襲(습)이라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기습이라는 말에도 이 글자는 사용되는데 이 경우 襲明(습명)이라는 단어는 “기습적으로 밝아진다”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요. 뭐 이를테면 갑작스럽게 깨닫게 된다는 정도의 의미로 말이죠. 하지만 앞의 내용을 보면 이런 해석은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襲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엄습하다, 겹치다, 입다 (죽은 이에게 수의를 입힌다고 하는 염습한다라고 할 때 이 습자를 사용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襲明이라는 단어는 갑작스럽게 닥치다라는 의미와 더불어 겹쳐진다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제안하는 좋은 행동이나 이야기를 적용하고, 더 나은 의견이 있으면 기존의 방식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말을 밝음(明)을 겹친다 (襲)라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이죠. 앞장에도 빈번하게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한번에 무언가를 이루려기보다, 가진 자원과 환경을 감안하여 그중 최선의 개선책을 적용하고 이런 방식을 지속하여야 하며, 이러다 보면 어느덧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비하여 확연히 앞서는, 도드라져 보이는 절차와 Know-How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明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앞이 어두웠던 상태에서 빛을 비춰주는 듯한 Solution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어두움은 불빛 하나만으로는 완전히 밝아질 수는 없습니다. 최초 등을 하나 키고 이어서 요소요소에 불을 키다보면 그 어두웠던 미지의 영역의 전모가 드러나게되는 거죠. 등을 하나씩 추가하는 행위를 “밝음을 겹친다”는 의미로 襲明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생각됩니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이런 이유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 되며,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산이 된다.”
 
여기서 善을 착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이야기의 의미가 다소 잘못 전달될 것 같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자산이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善은 앞의 문구와 마찬가지로 더 나은 방안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善人은 문제나 이슈에 대해 지금보다는 나은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되며, 不善人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해결책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그런 방안에 없는 사람에 대해 자신의 Know-How를 전수할 수 있는, 가르킴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이런 방안이 없는 사람들의 무리는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善人之資 라고 설명된 것으로 보입니다.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자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지혜로운 자도 크게 갈피를 못잡게 된다.”
 
이 말은 Leader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리더 자신이 좀 자신이 똑똑하다고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즉 참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또한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를 회피하거나 개선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그 조직은 그리고 그 리더 자신도 발전이 없이 당면한 문제에 휩쓸려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거죠.
 
是謂要妙
“이를 가르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다 한다.”
要妙 (요묘)라는 말은 사전에 이미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다”라는 의미로 뜻이 풀어져 있습니다. 위의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 적용되기는 매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조언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또한 많은 제안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안인지 누가 정말 좋은 해법을 가진 사람이며 누가 숨은 의도를 가지고 현상을 왜곡하는지 판단해야되는 상황이 있게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많은 방안 중 어느 것을 취할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이 그 리더나 집단, 구성원들이 지게되는 것이므로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이런 측면에서 노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