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28장은 첫 세 구절 谿와 式 그리고 谷자가 Key Word로 보입니다. 이 세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선 명확히 해야 앞부분에서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첫 문장을 그냥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그 수컷을 알고, 그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개울이 만들어진다. 천하의 개울을 만들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게되며 어린아이에게 돌아간다.”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수컷과 암컷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번식을 위해 짝을 맺습니다. 무언가 새 생명이 만들어지려면, 우선 암수가 만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죠. 이런 자연현상을 비유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자원을 조합하거나 결합할 때, 암수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암나사, 숫나사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雌 즉 암컷이라는 의미의 문자는 무언가를 생성해내는 바탕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雄, 즉 수컷이라는 문자는 생산을 촉진해내는 상대를 말하는 것이고요. 28장의 첫 문장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산 기반을 공고히 하고, 그 바탕 아래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알맞은 상대방을 짝지워줌으로서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천하의 흐름이라 이야기 합니다. 세상은 정체되어 있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죠.
기왕에 생물체라는 표현을 했으니 그쪽에서 예를 찾아보도록 하죠. 사람들은 기후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으며, 맛도 향상된 종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경우 그냥 백지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품종과 각 측면에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여러 기존의 종을 교배하는 과정을 거쳐 개선된 품종을 개발해냅니다.
또는 옷을 고르는 것도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옷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옷을 사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현재 가용한 자원을 서로 결합해보는 시도들을 노자는 의도하던 안하던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거죠.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는 것도, 사람들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도,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느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속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또 다르게는 우리가 익숙한 개념인 正 反 合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雌 雄 두 글자도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무언가 서로 대립되는 두개의 상황이 절충점을 찾아 合을 이루고, 또 그 合이 새로운 正이 되어 또 다른 合을 만드는 Cycle을 이어가는 개념으로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노자는 谿 (개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물이 방향성을 가지고 흐르듯, 이것은 중단될 수 없는 모든 사물과 자연의 흐름이라고 비유한 것이죠. 이렇게 완성된 새로운 무언가가 환경에 적합한 것이라면 세상에 살아남는 것이고, 만일 적합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뒤쳐져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爲天下谿, 常德不離라는 말은 결국 새로 만들어진, 그리고 살아남은 대상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은 보편적인 방식 즉 常德이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물은 또 다음의 과정에 원재료로 사용되게 된다 이야기 하죠. (復歸於孀兒) * 孀兒 (영아)는 원재료를 표현한 단어로 보입니다.
정리하자면 28장의 첫 문구는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Trend를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대상이나 제도, Solution 등은 또 다음 차원의 개선을 위한 원재료로 사용되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무언가 더 나은 것으로 채택되어야 살아남게되며, 그마저도 다음 과정의 재료로 사용되게되니 세상은 현재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물줄기와 같이 나아간다거죠.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두번째 문구의 흑과 백은 앞에서도 용어만 다르게 쓰였지 많이 비유된 내용이어서 이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이슈가 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를 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白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상태를 나타낸거고요. 문제에 대해 딱히 해결책이 없을 때 암담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는 하는데 이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르게는 밝혀지지 않은 영역을 黑이라고 표현하고 이에 대한 정의가 완료되어 대상이 규정되고 밝혀진 상황을 白이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크게 보면 위의 내용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러한 미지의 영역은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할 역량이 부족했다던지, 아니면 굳이 대상을 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미지의 영역은 계속 상존하고 있죠.
즉 “知其白, 守其黑” 이라는 말은 이러한 미지의 영역 중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화하는 과정을 守其黑 “그 어두운 부분을 지킨다”라고 표현하고, 이후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知其白 “그 밝은 방향을 알아낸다”라고 표현한 듯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爲天下式 즉 천하를 이루는 방식이라 한거죠.
앞 줄에서 기존의 소재가 서로 지속적으로 결합하는 특성을 가지는 것이 천하의 흐름이라면, 그 흐름은 무언가 몰랐던, 아니면 캄캄한 미지의 영역에 있던 것을 규정하고 해결책을 찾아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 그 흐름의 방식이라는 이야기겠죠.
이러한 천하를 이루는 방식은 常德不忒 즉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성 (常德)과 어긋나지 않게 형성되며, 또한 復歸於無極 즉, 끝이 없이 (無極) 반복된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서두에 谿와 式 그리고 谷이 키워드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谿가 무언가가 새로이 만들어질 때 큰 흐름이라고 해석하고, 式은 그러한 것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면 마지막 谷은 지향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谷 즉 계곡은 위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모이는 지점이며, 이후 더 큰 흐름으로 합류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谷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그냥 단어 자체의 뜻만으로도 榮은 성공에 따른 영화로움을, 辱은 실폐에 따른 부끄러운 상황을 뜻하고 있습니다. 위의 문장은 “앞서 있어던 실폐를 반면교사로 삼아 좀 더 나아지는 방향을 모색한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세상이 굴러가는 방향이라는 이라는 의미죠.
지금까지의 내용을 이런 의미에서 간단히 정리하면 세상은 기존의 것들이 끊임없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 결합은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결국 지향점은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 좋아지는 방향으로 모아진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그리고 이러한 것을 통해 개선된 점이 계곡에 모이게 되면, 그 덕이 비로서 두터워져서 樸 즉 통나무와 같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소재가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마지막 문구는 이렇게 형성된 원소재, 이를테면 통나무를 가공하면 (散) 사람들이 조금씩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니, 성인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운영한다 이야기 합니다. (散이라는 단어는 해체한다는 뜻을 가지지만, 여기서는 한사람이 모든 것을 운영할 수 없은니 권한을 분산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官長 즉 하급 관리는 만들어진 개선안을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현실화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그릇이라는 의미이죠. 그리고 그릇은 방편일 뿐이지, 큰 방향이 (大制) 쪼게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不割) 이야기 합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의도적으로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던, 아니면 다른 곳에서 활용되던 방안을 적용하는 것이던 이를 활용하는 것은 또는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혼자서 다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위임하여 운영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권한을 분산한다고 지향하는 방향성이 홰손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