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29장

2022. 1. 10. 22:26 from BoOk/pHiLoSoPhY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天下神器 不可爲也

천하신기 불가위야

爲者敗之 執者失之

위자패지 집자실지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挫或隳

고물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좌혹휴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

 

29장은 그 내용의 중심을 取 즉 내 소유로 하려고 한다는 것에 두어야할 것 같습니다. 얼핏 爲 즉 어떻게 만들으려는 의도에 중점을 둘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전체적이 해석 뿐 아니라, 다음장으로의 내용 연결도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將欲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不得已

“천하를 위한다며 그를 취하려 한다면,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끝날 것으로 본다.”.

 

첫 문장은 다르게는 “장차 천하를 위하여 그를 변화시키려 한다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爲之의 뜻을 저는 “그를 (즉 천하를) 위한다는 마음으로…”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여기서 取天下라는 문구는 바로 해석하면 천하를 취한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천하를 취한다는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하면 권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取라는 단어에는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도 같이 포함되어 있고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든 조직의 Leader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리더가 되어 무언가 성과를 이루고 그를 통해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되면 변화를 통한 개선을 추진하죠.

 

하지만 치밀한 현실 분석과 판단 없이, 단순히 선의만으로 무언가를 추진하여 실패하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볼 수 있습니다. (吾見其不得已) 단순히 선의만을 가지고 무언가를 추진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첫줄은 해석하였습니다.

 

天下神器 不可爲也

"천하라는 신묘한 그릇은 개인이 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위의 해석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그리고 강조하기 위한 문구로 이해됩니다. 선의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爲者敗之 執者失之

"선의로만 일을 추진하면 실패할 것이다, 또한 잡았던 권력조차 잃을 것이다."

 

선의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리더의 자리에서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선의로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선의만으로는 안된다는 표현을 단순히 위와 같이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래서는 거의 실패하고 권력조차 잃게된다는 거고요.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挫或隳

"원래 모든 만물은 자신이 주도하다가도 다른 것을 따르기도 하고, 흐느끼다가도 휘파람을 불며 즐거워하기도 하며, 강하다가도 약해지며, 굴종하는 듯하다가도 반발하여 상대방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등 변화무쌍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세계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사물을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가지 특성만을 가진 현상은 좀처럼 없습니다. 이를테면 대기환경을 위해 노후차량의 운행을 제한한다고 생각해보도록 하죠. (이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의는 다른 측면에서 손해보는 집단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노후차량을 보유한 그리고 여기에 생계에 대부분을 의지하는 영세상인들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이러한 집단에 대한 충분한 대책도 같이 고려되어서 일이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야 본래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겠고요. 그냥 환경을 위하는 것이니 희생을 감수하라고만 한다면 반발과 비판으로 제대로 일이 진행될 수도 없고, 오히려 앞으로 이러한 좋은 취지의 정책이 다시 추진되기 어렵게 만드는 악영향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천하의 사람들은 무언가 변화가 있으면 그전의 태도를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흔히 저 사람은 아니면 저 집단은 내편이라는 또는 우리를 지지한다는 착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단지 지금 당신이 그 사람에게는, 그 집단의 방향이 그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지금 따르기도하고, 지지하기도 하고, 강하게 지지하기도 하고 순간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지,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손해가 된다 생각되면 입장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런 사물의 본질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이런 이유로 성인은 극단으로 치우치는 현상이나, 오만함 그리고 일을 크게 벌리는 것을 피한다."

 

마지막 문구는 결국 무언가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 과정이 점진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합니다. 한방에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유혹이 그리고 자신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런 성급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자신에게 혼자 독주하지 말자, 나 혼자 옳다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지 말자, 일 크게 벌리지 말자, 이렇게 돌아보고 돌아보며 경계해야된다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측면을 모두 살피고 그에 대해 예측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대응방안을 만들려면, 그리고 한정된 나에게 주어진 자원들을 생각하면 줏어담지도 못할 정도로 일을 벌려서는 안되겠죠. 독선에 빠지거나, 사람들을 무시하는 오만함에 사로잡히면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을테고요.

 

결국 29장은 나만의 선의를 내세워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독선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그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