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지리산 둘레길 Guide

2022. 4. 12. 13:00 from TrIp

매년 2박3일이나 1박2일로 지리산 둘레길을 찾은게 5년이 되었다. 전체 21개 코스 중 네 코스만 안가봤으니, 이제 한두번만 더 가면 거의 전 코스를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섯번 방문 중에 첫 세번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7월 마지막주나 8월 첫째주에 방문했었고, 작년과 금년의 경우는 회사 창립기념일을 이용해 봄에 갔다왔다. (개인적으로는 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여러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둘레길을 찾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휴가를 따로 내기 어려운 점이 여름 방문의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여기서는 여름 둘레길을 방문했었을 때 느꼈던 몇몇 가지들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분들이 많겠지만 나름 몇 번 방문하면서 생긴 노하우를 공유한다고나 할까.)



① 팔토시와 챙 넓은 모자는 필수, 바지도 긴 바지를 착용할 것. 썬크림 / 썬스틱과 썬글라스도 필요

지리산 둘레길은 많은 경우 산길로 이어지지만 중간중간 그늘 하나 없는 마을길을 돌기도 한다. 이 경우 날씨 좋은 봄이나 가을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여름이라면 작렬하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또한 산 속이라도 포장된 임도를 따라 걷는 경우, 햇빛에 긴 시간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가끔 둘레길을 그늘진 산으로만 도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반팔, 반바지에 모자도 안쓰고 오시는 분들이 있다. 평생 밖에서 햇빛에 단련된 업종에 종사하신 분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특히나 사무실 근무가 대부분인 직장인들은 강한 햇빛으로 인한 화상을 온몸에 입기 십상이다. 이런 고통쯤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분들이라면, 뭐 그래 정신력을 높이 산다. 하지만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그나마 가볍게 고생으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화상이 심해지면 몸이 상할 수도 있다.

왠만하면 가릴 수 있는 부분은 팔토시, 모자, 긴바지로 최대한 가리고, 썬글라스도 해가 지기 전까지는 꼭 쓰며, 노출된 부위는 수시로 썬크림이나 썬스틱을 발라주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사용하기 편해 썬크림 보다는 썬스틱을 선호한다.)

② 물은 넉넉히, 수통도 몇 개는 가지고 다닐 것. 비상식량으로 비스킷을 추천

제주도 올레길이나 강원도 해파랑길을 다녀오신 분들이 지리산 둘레길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왠만한 것은 지나가며 현지에서 사면 된다는 마음으로 오는 걸 보곤한다.

아니다! 아주! 많이! 매우! 다르다.

내가 올레길이나 해파랑길을 다 돌지는 않았지만, 거기는 그래도 중간중간 식당이나 상점들을 하루에 몇번은 거치게 된다. 하지만, 둘레길은 코스 중간에 정말!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개장터 등 몇 군데 예외가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도 인월에서 출발한 첫 방문시 점심은 중간에 식당이 나오면 사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걷다가 정말 2시까지 생으로 굶으면서 걸었었다. (산 속에 식당이 있을리 없지 않는가?) 더워서 땀은 비 오듯 흐르지, 길은 험하지, 배는 고프지... 멘붕님이 나를 꼭 끌어안는 것을 느꼈었다.

중간에 힘들게 마을을 만나더라도 식당은 커녕 슈퍼 하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심에 허기가 질 것에 대비해 비상식량은 꼭 챙길 것을 권한다.

하지만 여름의 경우, 찌는 듯한 날씨에 왠만한 음식들은 상하기 쉬워 어떤 음식을 챙길지도 사실 고민이 된다. 많이들 산행시 견과류와 초코렛으로 만든 에너지바를 준비하는데, 여름에는 피하는게 좋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봉지 안에서 죽처럼 되버릴 가능성이 높다.)

뭐 나는 비위가 좋아서 끈적끈적하게 녹은 에너지바 쯤 손으로 퍼먹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셔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경우 포장지를 뜯을 엄두도 못 내게된다. 잘 상하지 않고, 여름에 휴대하기도 좋은 대안을 찾는다면 비스킷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이제를 선호한다. 몇 개만 먹어도 허기가 가신다.)

물론 퍽퍽한 비스킷을 더운 길 위에서 우걱우걱 씹어먹는 것은 과히 내키지않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운이 좋아 중간에 식당을 만날 자신이 없다면, 이 경우 맛은 사치이다. 한끼 때우는 목적에 충실한 것을 찾는다면 비스킷 만한 것은 없다.


그나마 식사는 하루 세번이고 아침, 저녁은 숙소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점심만 위의 방법으로 대비하면 된다. 하지만 물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여름 지리산 둘레길은 더위와의 전쟁이다. 땀을 흘리는 이상으로 물은 수시로 보충해줘야 한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 한 것처럼 가게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도중에 물이 떨어진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마을이라도 지나가면 양해를 구하고 수돗물이라도 보충할 수 있지만, 산 속에서 개울도 없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한다. (실례로 3년전 산 속에서 물 3통이 거의 다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 있었다. 점점 탈진 증세가 와서 열걸음 걷고 앉아 쉬었다가 다시 열걸음 걷는 식으로 이동했던 기억이 있다.)

배낭이 무거워지더라도 물은 최소 3통 정도 충분히 준비하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중간에 민가를 만나거나 마을 공용 수도 등을 만난다면, 물은 1순위로 보충해라. (그냥 기회가 있으면 새로 채워라.)

나는 살아 생전 수돗물을 그냥 마신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방법은 두가지다. 배낭 가득 생수를 미리 채우거나 아니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차마 쓰러지는 것은 옵션에서 빼겠다.)


배 고픈 것은 어떻게던 참아지지만, 탈수는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놀러갔다가 119에 실려오지 않도록 해야되지 않겠는가.


③ 아무리 피곤해도 장기 코스라면 빨래는 꼭

경험해보신 분들은 공감을 하겠지만 여름 둘레길은 하루 걷고나면 몸에 걸친 거의 모든 옷들이 땀으로 범벅이 되게된다. (거의 소금이 보인다.) 1박2일 정도의 단기여행에 갈아입을 옷을 넉넉히 가져왔다면 모르겠지만, 2일 이상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세탁은 필수다.

숙소에 따라 친절하게 먼저 물어보고 세탁기를 돌려주시는 사장님들도 계시지만, 샤워할 때 쓰라며 빨래비누만 주는 경우도 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끈적거리고, 쉰 내 나는 옷을 몇일씩 입어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면 당신의 무던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피곤해도 어찌되었던 세탁은 하고 쉴 것을 권한다.

더운 여름 산속의 숙소에 빨래를 널면 대부분 다음날 출발할 때 쯤이면 뽀송뽀송하게 건조가 다 된다. 혹여 빨래가 마르지 않을까 걱정은 안해도 된다.

④ 출발은 가능한 빨리

지리산 둘레길은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힘이 드는 코스다. 하루를 통으로 걷는다면 보통 산 2~3개는 넘는다 생각하면 된다. 특히나 여름은 여기에 더위까지 더해져 더 힘들다. 숙소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저녁 먹으면서 막걸리나 맥주까지 반주로 더하면 10시도 안되 기절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혼자라면)

아침이면 온 몸이 쑤시고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다. 이쯤에서 그냥 접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뭐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계속 걸을 생각이라면 가능한 아침은 빨리 먹고 새벽같이 출발할 것을 권한다.

가능한 선선한 시간에 걷는 것이 나은 측면도 있지만, 산 속에서는 하루가 더 짧을 수 있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빠른 시간에 출발하면 그만큼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아침에 조금 서두르면 중간에 쉬는 시간이 더 여유있을 수도 있다. 도착지와 숙소가 이미 정해져 있더라도 최대한 더운 시간을 피하는 장점도 있다. 아무튼 가능한 일찍 출발할 것을 권한다.

야간산행이 취미라는 분들이라면 위의 내용은 해당이 안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상 지리산 둘레길은 하루 내내 걸어도 도중에 1~2팀을 만나기 어려웠고, 여름에는 더더욱이나 사람이 없다. 담력이 상당히 좋아 왠만한 것은 무섭지 않은 강심장의 소유자라면 모를까, 해가 진 아무도 없는 산 속은 다소 호러체험이 될 수 있다.


⑤ 여름 뿐 아닌 고려 사항

몇번 언급한 바와 같이 지리산 둘레길은 그냥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넘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언젠가 산 속에서 만난 분이 기억 난다. 나무에 몸을 기대고 숨을 헐떡거리며 “젠장, 둘레길이라더니…”라며 속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건 그냥 마을 둘레를 쉬엄쉬엄 도는 코스가 아니다. 그 둘레라는 말은 지리산 둘레에 있는 산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걷는다면 산을 보통 2~3개는 넘는다. 이쯤되면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등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야 된다.

다리 힘이 넘치는 분들이 아니라면 스틱은 필수로 챙기시길 권한다. 어느 구간은 매우 가파픈 경사가 몇 시간씩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스틱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매우 크다. 등산스틱은 체중을 적절히 분산 시키는 효과가 있어 무엇보다도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배낭에 들어가기 쉬운 삼단 스틱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발에 익은 편한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을 권한다. 길이 안든 혹은 발에 맞지도않는 새 등산화를 신는 것은 비단 둘레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기 산행의 경우에도 별로 권할만한 선택은 못된다. 참고로 나도 첫 둘레길 방문시 새 등산화가 맞지않아 발가락 주변이 퉁퉁 붇는 고생을 했었다. (등산화만 아니었다면 몇일 더 있었을지 모른다.) 기존에 익숙했던 등산화가 없다면 중간중간 신발끈을 조정하면서라도 발에 통증 등 무리가 가지않도록 해야하며, 꼭 발톱은 사전에 정리할 것을 권한다. (발톱이 빠져서 피가 철철 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나.)

또한 스마트폰에 대부분 기본으로 장착이 되어있겠지만,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 등 지도 어플은 필히 깔아놓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걷다가 조금이라도 애매하다 싶으면 당장 맵을 켜라. 그리고 내가 맞는 방향으로 이동 중인지 확인해라. 물론 중간에 맵에 표시된 길이 사유지 등의 사유로 막혀서 경로가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왠만하면 거의 일치한다.

주의를 소홀이 하거나 그냥 감으로 방향을 잡았다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헉헉거리면서 한참을 올라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몇 번 길을 잘못 들었었는데, 더운날 힘들게 오른 길이 전혀 반대 방향임을 알게되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지리산 둘레길에는 중간중간 ‘벅수’라고 부르는 표지목이 있지만, 정작 애매한 갈림길에는 표지가 없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엉뚱한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지만 올레길보다 많은 측면에서 환경이 열악함을 각오해야 한다.)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라면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어차피 여기 걷기 위해 온 것이니 좀 더 걸었다 생각하자라며 허허 웃어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찌는 듯한 여름 둘레길이라면 그런 성인은 찾기 어렵다. 애매하다 싶으면 지도는 꼭 확인하라.

그리고 이건 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경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만 이동해야한다. 왠지 마을길은 편할 것 같고 저쯤에서 지름길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믿고 감으로 이동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몇 년전 친구들과 한번 동행했을 때 이런 경험을 했었다. 그 녀석들이 우겨서 마을 둑길로 한시간을 걷었는데, 코스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작렬하는 햇살에 열사병까지 나를 부르는 것을 간신히 벗어났던 기억이 있다.)

⑥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여름이 아니어도 지리산 둘레길은 여타 제주 올레길이나 동해안 해파랑길보다 더 험하고, 편의시설도 많이 부족하다. 공중화장실은 하루 종일 가도 한번 만날까 말까하며, 카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식당도 찾기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그만 가게라도 하나 만나면 다행이다.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목도 빈 곳이 많아 불편하다. 여기에 여름에는 벌레도 많다. 벌레 때문에 어디 한군데 자리를 잡고 사진조차 찍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사실 작년부터 봄에 둘레길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벌레 때문이다.)


하지만 둘레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경험이다. 한참을 헉헉거리며 오르다 돌아봤을 때 겹겹히 둘러쳐진 지리산 경치에 넋을 놓기도 하고, 중간중간 지나는 시골마을 길에 마음이 따스해지곤 한다. 구름과 달이 없는 날이라면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민박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숙박이 가능하다. 또한 식사도 훌륭하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등구재, 동강, 원부춘 민박에서의 아침과 저녁식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1년에 한번씩 짧게나마 방문하는 둘레길에서 많은 기운을 받고 일상을 또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다. 얼마 안남은 코스들도 소중한 마음으로 찾으려 한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