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62장

2026. 3. 5. 11:13 from BoOk/pHiLoSoPhY

道者 萬物之奧

도자 만물지오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美言可以市尊 美行可以加人

미언가이시존 미행가이가인

人之不善 何棄之有

인지불선 하기지유

故立天子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고립천자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고지소이귀차도자하 불왈이구득 유죄이면사

故爲天下貴

고위천하귀

 

 

 

道者 萬物之奧

도는 만물에 담겨있다.”

 

지금까지 글을 보아도 노자도덕경은 교조적이라기 보다는 가치 중립적이며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옳았던 것이 내일이면 이미 효용성을 다했다고도 이야기하며, 큰 도는 그 대상을 가리지않고 모두에게 차등없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종종 나타냅니다.

 

그리고 62장에서는 도라는 것은 모두 것에 숨겨져있다고 이야기합니다. (奧는 ‘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것의 속에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의 내용에서 이어지겠지만 본인의 마음에 들거나 좋아하는 대상에게만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마치 보물 찾기할 때 내가 가기 쉬운 곳만 찾아다녀서는 안된다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새로운 수단, 방안을 발굴할 때 나의 정치적이라던지 선입견 등으로 대상을 국한해서는 안된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선한 사람에게는 값진 자산이 될 것이며, 선하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자신을 지키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이 문구는 당시의 봉건왕조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고 읽어야될 것 같습니다. 사실 선과 악의 기준은 명확한 듯하지만 어쩌면 승자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승자의 편은 어떻게든 선으로 표현되며 반대파는 악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 현재에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전제군주가 인재를 등용하여 활용함에 있어 자신과 같은 편이 내놓는 좋은 시책이나 방안이 포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목할 점은 두번째 문구입니다. 不善人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을 자신의 일파에 속하지 않은 그룹의 일원들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시책과 방안을 제안할 능력이 된다면 비록 Inner Circle에는 들지 못하더라도 그 몸을 보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문구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의 기준에서 작성되었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대파의 의견도 그 가치를 판단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우선합니다. 그냥 不善人이라는 이유로 귀 막고 눈 감아버리면 아무리 좋은 방안과 대안이 있어도 이것이 빛을 볼 수 없게되는거죠.

 

이 두번째 문구는 결국 善과 不善 (惡이 아니라) 이라는 기준으로 가치 발굴을 대상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美言可以市尊 美行可以加人

아름다운 말은 가이 뭇사람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아름다운 행실은 가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

 

여기서 아름다운 말과 아름다운 행동은 새로 확보된 결과물의 효용성을 가르킵니다. 善이 아닌 美라는 단어를 쓴 것을 주목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善은 바르냐 안바르냐를 이야기하지만, 美 즉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사람을 끌어모은다고 이야기합니다. 악한 것은 배척되어야 될지 몰라도 不善 즉 자신의 가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그 대상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번 장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합니다. 누가 내놓는게 뭐 중요하냐, 아주 나쁜놈이 아닌 이상 효용성이 있다면 그 가치를 활용해야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강조합니다.

 

人之不善 何棄之有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어찌 버림이 있겠는가.”

 

여기서 노자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노자는 惡이 아니라 不善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선과 악 사이의 Gray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Leader의 자세를 이야기 하려는 듯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명확히 악의 영역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배척하는 것이 맞지만, 우리가 종종 보듯 자신들만의 그룹을 지어 우리들만이 옳고 바르다며 독선에 빠지고 결국 소수의 그룹으로 쪼그라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문구로 보입니다.

 

도를 만들고 채택하고 발굴함에 있어서 그 판단 기준은 善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과 가치에 집중해야된다. 나의 도덕적이나 정치적 기준에 맞지않는다고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합니다.

 

故立天子 置三公 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이런 이유로 천자를 세우고 삼공을 임명함에 있어 벽을 보며 허리를 조아리고 네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끌고다니는 것과 같은 의전보다는 차분히 앉아 이런 도를 진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추가로 이야기 할 것은 없을 듯 합니다.

 

古之所以貴此道者何 不曰以求得 有罪以免邪

예로부터 어찌하여 이런 도를 귀하게 여겼겠는가. 말할 것 없이 원하는 바를 얻고 죄가 있다면 그 잘못된 점을 사하면 된다.”

 

거의 결론을 여기서 짓고있습니다. 사실 성공한 국가나 기업 그리고 집단의 경우는 그 문호를 열고 좋은 아이디어나 인재를 받아들임으로서 발전된 Idea를 만들어내고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순혈주의나 교조주의에 빠져서 주변을 배척하고 안으로 쪼그라들게되면 그 집단의 미래는 암울하다는거죠. 그리고 정 마음에 걸리면 시시비비를 가려 최대한 그 과오를 지적하되 덜어주어 능력있는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해야된다 이야기합니다.

 

故爲天下貴

"고로 천하가 귀해지도록 도모한다."

 

결국 리더의 역할은 (앞에서 이야기한 의전 같은 방식을 통해) 리더를 돋보이게 만드려는 것에 있지 않으며, 세상을 귀하게 즉 발전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한다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