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은 시바 료타로가 쓴 대하소설. 신문 연재소설인데 시바 료타로는 "료마가 간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작가다. 이 책은 달궁에서 3권 짜리로 묶어서 출판되었는데 낱 권으로 사지 않고 한 질로 샀다. 3권 묶음 박스로 되어있어 나름 괜찮다.
워낙에 유명한 초한지다. 초한지는 군에서 첨으로 읽어봤는데 사실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냥 저냥 음 뭐 이런 일도 있었구나 싶은 수준이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도 글 쓰는 사람에 따라 읽는 사람에게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이 책과 다른 초한지를 비교하여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초한쟁패는 워낙에 유명한 일화라 굳이 여기서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저자는 촌 구석의 건달 노릇이나 하던 유방이 어떻게 초나라 귀족 출신의 용장 항우를 멸하고 마침내 한나라를 세웠는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대하소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의 모습도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가슴에 벅차다.
“사람의 일생이란 문틈으로 백마가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짧다고 우리 마을의 한 부로가 늘 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죽는 것도 상쾌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멍한 표정을 띄며 자신을 바라보던 유방과 헤어지면서 남긴 기신의 이야기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이 위급한 순간에 닥쳐 내뱉는 말 한마디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케 한다.
결국 항우가 유방에게 무릎을 꿇은 것을 보노라면 항우가 모든 걸 혼자 다 하려해서는 안되었던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유능한 사람은 실무에서는 두각을 낼지는 몰라도 리더 역할을 꼭 잘한다고 할 수는 없기도 하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과 사람들을 이끌고 포용하는 건 전혀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재삼 되새기게 된다.
비록 번역물이지만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다. 3번 읽었는데 읽을수록 새롭고 읽을 때마다 손을 때기 힘들다. 어느 초한쟁패의 이야기보다 으뜸으로 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