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기득기모 이지기자 기지기자 복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새기태 패기문 종신부근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見小曰明 守柔曰強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견소왈명 수유왈강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시위습상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천하 만물은 모두 그 시작이 있으니, 이를 가리켜 천하 만물의 어미라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모든 것에는 시초가 있기 마련입니다. 몇 번 비유로 이야기를 했지만 숫자라는 개념이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공식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듯 말이죠. 때문에 여기서 시작이라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라는 의미보다는 시초 즉 근원이나 근본이 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이미 그 어미를 알고 있다면 그 자식을 알 수 있고, 그 자식을 알고 있다면 그 어미를 도탑게 지킬 수 있다. (이로서)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않게 된다.”
근본이 정립되면 그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역으로 이렇게 파생된 새로운 결과물을 통해서 그 모태를 한층 더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서 그런 것은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해 보죠. 기존의 제품을 조합하던지 해서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를테면 세탁기와 건조기를 합친다던지 하는 식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신제품에서 내가 기존 제품을 만들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Idea를 얻어서 기존 제품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거죠.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그 바탕을 지키고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아낸다면 종신토록 동요함이 없을 것이다.”
兌라는 단어는 주역에서의 兌卦 (태괘)를 가르킨 것으로 이해해야될 것 같습니다. 태괘는 ☱로 표현되며, 연못을 상징합니다. 앞장에서 계곡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왔었는데, 여기서 태괘 또한 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또한 앞 구절의 母라는 단어와도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 이해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앞 구절에서 母, 즉 어미라는 단어가 모태가 되는 무언가를 가르킨다면 이 모태는 훗날 파생되어 생성되는 모든 것으로 바탕이 된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태를 지킨다는 것은 어떠한 파생품을 만들어내더라도 기본이 되는 핵심 가치는 보존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바탕이 된다면 시류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된다는 거죠.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그 바탕을 열어놓고 일을 더한다면 종신토록 구함이 없을 것이다.”
위의 문구와 대치되는 설명입니다.
기본이 되는 가치에 대한 변경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런 위에 무언가를 더한다면 의미있는 성과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복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 내용은 결국 그것이 조직이 되었건, 제도가 되었건 아니면 제품이 되었건 정말 핵심이 되는 가치는 쉽게 바꿔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눈 앞의 성과에만 급급해서 다른 경쟁자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우리의 현실에 대한 고민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그냥 Copy만 하게된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도덕경에서는 이를 경계해야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見小曰明 守柔曰強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작은 것을 살핌을 밝힘이라 한다. 약한 것을 지킴을 강함이라 한다. 그 빛을 써서 돌아가 그를 밝히면 재앙이 몸에 남지않게 될 것이니 이런 과정을 학습을 지속하는 것이라 한다.”
앞에서 모태와 파생품 간의 선순환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문구를 읽어야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정체되는 것도 없습니다. 무언가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놓친 것이 없는지 살펴야하고, 그리고 새롭게 알아낸 것을 활용하여 그 전부터 우리의 약점이었던 것을 강하게 하려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用其光 復歸其明이라는 문구는 결국 모태와 파생품 간의 선순환적인 상호 보완 과정을 통해 어둠에 묻혀있던 약점을 다시 돌아가 강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가 잘 진행된다면 위험이 닥치지않을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결국 개선점을 지속적으로 찾고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習常 즉 항상 배우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죠. 대단한 성과물도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방안이 나와 시대와 동떨어진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고 배움을 지속해야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