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근대 일본사에 대해 설명된 내용을 보면 메이지 유신에 대해 대강 간단 명료하게 설명이 되어있다. 뭐 예를 들자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봉건 영주 국가에서 근대 국가로 탈바꿈했다.' 라는 식이다. 비슷한 시기의 조선은 대원군이나 어린 고종이 쇄국정치를 유지하면서 왕권 강화에 몸부림치면서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떻게 일본은 그나마 중앙집권도 아닌, 도쿠가와 막부 아래 영주들이 영지를 운영하는 봉건 사회의 국가체제에서 단숨에 근대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것만 읽고서는 알 수가 없었다.
시바 료타로의 책은 두 번째로 읽는다. 첫 번째는 '항우와 유방'이었고 '료마가 간다'가 두 번째로 읽는 책이다. [창해]에서 10권짜리 책으로 나와 있는데 일본에서 나온 문고판은 5권으로 발행된 것을 10권으로 나눠서 출판하고 있는 것 같다. 10권이나 되는 책을 읽는 것도 사실 만만한 일은 아니라서 꽤 오래 시간을 두고 읽게 되었다. 근 석 달은 읽은 것 같다. 중간에 영식이 할머님이 돌아가셔서 찾아갔었을 때 조금 빨리 도착해서 동기들도 모두 오지 않았고 할 일도 없고 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GS25에서 코엘류의 책을 한 권 사서 처음 부분만 조금 읽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료마가 간다' 나머지를 읽을까 어쩔까 하다가 내친 김이라고 코엘류의 책은 나중으로 미루고 '료마가 간다'를 마무리 하였다.
사카모토 료마의 청년기부터 마지막으로 미마와리구미에게 암살 당하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호쿠신잇토류 검술을 수련하기 위해 고향인 도사를 떠나 에도로 유학길에 오른 막부 말기 혼돈기의 한 청년이 사람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하던 방면으로 방향을 잡고 끝까지 자신이 정한 이상에 따라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막부 말기의 일본은 마치 전국시대의 중국과도 같아 교토에 실권 없이 명분만이 남은 덴노가 있다면 교토의 토쿠가와 막부가 실권을 가지고 전국의 영주들을 지배하는 봉건체제를 임란 이후 300년 가까이 유지해 오고 있었다. 문제는 조선도 중국도 일본도 더 이상은 이러한 고요한 상황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중국은 이미 구미열강에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고 조선도 그리고 토쿠가와 막부도 오랑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 그것으로 중국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을 두려워 쇄국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조선의 경우는 한참 후의 일본 운요호 사건으로 개국이 이루어지지만 일본의 경우는 훨씬 전에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시위로 기 한번 못 펴고 개국을 하게 되면서 내부적으로 300년간 덮여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게 된다.
메이지 유신은 조슈/사츠마/도사 3개의 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이끌어내게 되는데 이들 3한은 (도사한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르지만)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설 때 반대편에 서있었던 반 도쿠가와 적인 성향이 역사적으로도 강한 지역이었고 내심으로는 이제 현재의 막부는 힘이 다했고 표면적으로는 존왕양이를 외치지만 자신들의 한을 중심으로 현 막부 체제를 대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 사이의 얼마 만큼이 사실에 부합하고 또한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대로라면 어릴 적에는 서당 선생까지도 글 가르치는 것을 포기할 정도의 둔재였었던 그가 지사들간의 교류를 통해서 근대 일본의 미래상을 세우고 그렇게 만들기까지의 구체적인 방안과 과정에까지 참여하여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소설 만으로라면 료마로 인해 유신이 가능했고 료마로 인해 유신 이후의 체제의 가닥이 정해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라면 자신의 소속과 위치에 시선이 묶여서 그곳으로부터 판단을 하게 되고 나와 나의 소속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비교적 료마는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듯 전체 일본이라는 기준에서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했다는 점은 어쩌면 저런 사람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게도 된다.
소설 자체는 료타로의 책들이 그러하듯이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항우와 유방'에서와 같이 일본인 특유의 과장된 비장미가 넘쳐나지만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료마 자신은 이러한 비장함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사무라이의 명예에 그의 친구 한페이도 그러했고 많은 유신 지사들이 도망가느니 비장하게 죽겠다면서 어쩌면 기존의 권위와 관습에 벗어나지 못했는데 료마는 소환을 명하는 한의 관리를 비웃으며 소환장에 코를 풀어버리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했고 할복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막부 말의 격변기에 미천한 일개 한의 하급무사 출신으로 유신의 기초를 이루고 대정봉환을 이끌어 낸 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료마가 활약하다 대정봉환이라는 큰 전환점을 이끌어내고 소임을 다해서였는지 료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암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사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사회로 접어들었다지만 조슈와 사츠마를 중심으로 한 군벌에 의해 정권은 장악되고 결국은 파시즘과 제국주의의 광풍에 휩싸여있다 세계 2차대전에 휩싸여서 패전국으로 몰락하고 만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그리고 한 개인이 역사의 큰 흐름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없다지만 료마가 죽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은 어쩌면 흥미 있는 소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