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어디인지 모를 황야에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모든 것들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길을 읽고 헤매던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노란색 눈의 이방인이 불길한 징조일지 몰라 두려워하지만 결국 아이를 대하듯 그를 가르치며 팔스라는 이름을 주어 거둬들입니다. 5년 반이란 세월이 지나 팔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지 답을 찾으러 황폐화된 대지를 마주하며 정복자들의 도시인 에스토치로 향합니다.
르귄의 헤인 시리즈 중의 하나인 “환영의 도시 (The moon is harsh mistress)”는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광대한 헤인 세계관에 포함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배경이 되는 먼 미래의 지구는 모든 문명이 파괴되었으며, 외계의 “싱”이라고 불리는 침략자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워낙에 심한 파괴를 받아서이기도 하지만 “싱”들이 일정 규모 이상의 문명 집단이 재건되는 것을 철저히 탄압하여 부족사회 정도의 낙후된 문명을 가진 군소 집단들로만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팔스는 이러한 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를 이겨내며 머나먼 미지의 도시, 에스토치를 향합니다.
“환영의 도시 (The moon is harsh mistress)”는 글쎄 뭐랄까요.. 어떻게 보면 전반부는 “늑대와 함께 춤을”에 “더 로드”와 같은 분위기를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완전히 이질적인 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세계에 동화하는 과정이라던지, 황폐화된 문명의 세계를 통과하는 험난한 여정의 로드무비 적인 설정이라던지 하는 점을 보면요.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화두는 팔스가 “싱”들의 도시, 에스토치에 도착한 후에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에스토치에서 팔스는 도시의 지배자들이 알려준 이야기에 갈등하게 됩니다.
동굴 속의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의 진실은 사실 왜곡된 오해였다고 누군가 알려준다하여도 그 또한 왜곡된 진실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선택의 기로에서 주어지고, 보여주는 것들이 실상은 판단을 흐리고 현혹하기 위한 환상이었다면요. 그들이 만든 Frame 너머의 가능성을 어떻게 통찰해낼 수 있을지, 그로 인해 얻어질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초기 철학 이후의 인류의 지속적인 화두 중의 하나였습니다. 라마렌이라는 본래 자아를 찾은 팔크는 이러한 딜레마에 처하게 됩니다.
결론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 지구를 떠나며 라마렌이 된 팔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파스와의 약속을 그는 돌이켜보았을까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