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58장

2025. 9. 18. 16:51 from BoOk/pHiLoSoPhY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혜복지소기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질

人之迷 其日固久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 방이불할 렴이불귀 직이부사 광이불휘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어느 나라 정부에 문제가 많아 고민이 심해지더라도 그 백성들은 오히려 더 순박해질 수 있으나, 그 정부가 꼼꼼히 살피어도 그 백성들의 삶은 더 나빠질 수 있다.”

 

여기서 悶이라는 한자는 고민하다, 번민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悶悶이라고 두번 반복하여 이야기 함은 나라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야될 것 같습니다. 이렇듯 고민하는 이유는 우선 나라에 어려움이 닥쳐서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수립할지 선택의 문제가 걸려있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당면한 문제 때문이던 아니면 정책 방향 수립의 어려움 때문이건 고민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어찌할까하는 선택에 신중한 상황이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나라의 기본 구성이 되는 백성들은 오히려 더 淳淳 더 순박해지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유는 위기 앞에 결집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고민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수도 있겠죠.

 

이에 이어지는 다음 상황은 察察 즉 살피고 살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察이라는 한자는 따진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정부가 나라 안에 돌아가는 것을 매우 세밀하게 따지고 감시하려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察이라는 글이 앞의 悶 즉 고민한다는 이야기와 댓구를 이루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 자체에 대한 성찰은 없이 구성원들만 속된 말로 갈궈대는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이 경우 백성들은 缺 즉 이지러진다고 이야기합니다. 缺缺이니 매우 이지러졌다, 매우 삐뚤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요약하여 얘기하면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구성원들은 더 나아질 수 있는 자질이 고양될 수 있지만, 리더들이 관리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구성원들의 일탈이 갈 수록 심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화는 복이 있는 곳에 기대어있고, 복은 화근이 있는 곳에 깔려있으니 그 지극함을 누가 알겠는가.”

 

주역 어느 문구에 나올 듯한 문구입니다. 뭐 따로 추가할 내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모든 일에 절대적으로 옮은 것은 없다. 한 때 옳았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기이한 것이 되며, 한 때 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요사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앞의 문구에서 화와 복은 모든 상황에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내포되어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其無正이라는 첫 문구는 결국 어떤 상황도 끝없이 좋을 수 없고 또한 끝없이 나빠질 수도 없으며 항상 만능열쇠로 적용될 수 있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때의 정답도 오답이 될 수 있고, 한때 사람들이 선한 행위로 받아들이던 것도 언젠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復이라는 말은 이러한 순환이 반복된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된 듯 합니다. 돌고돈다는 거죠. (패션도 돌고 돌지않나요?)

 

여기까지의 내용은 노자 1장에서 내세웠던 ‘지금 통용되는 규정과 방식이 앞으로도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와 뜻을 같이 합니다. 하지만 1장에서의 내용이 끝없는 변화에 대한 자세를 요구한 것이라면 여기서는 극단에 이르지 말라는, 현재의 방식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는 오만으로 살피고 따지기만 하지말고 겸손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라는 결국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듯 합니다.

 

人之迷 其日固久

“사람이 미혹되면 그러한 날이 고착되어 오래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렇듯 고착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시작되게된다 경고하고 있습니다.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이런 이유로 성인은 방향을 정하지 편을 나누지 않으며, 청렴할 뿐이지 돈을 아껴 사람을 다치게하지는 않으며, 곧은 품성을 가지는 것을 오만한 것과 착각하지 않고, 빛이 나되 휘황찬란해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댓구를 이루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가요? 저는 ego 라는 생각이 됩니다. 내가 중심이 된 결정이나 행동은 타인의 반발을 부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의 배경에는 독선과 독단이 깔려있기 십상입니다. 여기 이야기된 댓구가 되는 두 문자들의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첫 문구의 悶이라는 글자가 Key Word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순간 가장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된다는 거죠. 고민한다고 항상 좋은 답이 나올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더 나은 것이 없을까 고민을 시작하는 것에서 모든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7장

2025. 8. 1. 12:21 from BoOk/pHiLoSoPhY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以此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오하이지기연재이차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민다이기 국가자혼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민다기교 기물자기 법령자장 도적다유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고성인운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용이민자박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以此

올바른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병사는 예측하지 못하도록 전술을 세워 다뤄야하듯 천하를 얻으려면 무사함으로서 해야한다. 내 어떻게 이래야 함을 알겠는가는 다음과 같다.”

 

이번 장의 해석은 첫 문구부터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해석이 ‘바르게 나라를 다스리고 기묘한 방식으로 병사를 사용하며 무로서 일을 해야 천하를 취한다’라는 식이었는데, 이어지는 문구에는 앞의 두 내용, 以正治國 以奇用兵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以無事를 따로 떼어서 해석하는 것도 事를 명사로 본다면 거기에 대한 구체적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 동사로 본다면 목적이 되는 명사가 나와야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以正治國 以奇用兵와 같이 ‘00으로 00을 한다’라는 표현의 완결성을 감안할 때 以無事와 取天下는 따로 나눠서 해석하기 보다는 以無事取天下라고 붙여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 以正治國 以奇用兵에 대한 내용이 뒤에 나오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앞의 두 문구는 그냥 당연한 이야기, 마땅히 그러해야 되는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뒤에 이어 이와 같이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하는가 즉 無事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합니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바른 방법을 통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또, 군대를 운용함에 적이 예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 전략을 수립해야됨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뒤 이어 천하를 얻으려는 방식 중의 우선되는 것은 無事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無事는 어떤 것을 이야기할까요?

 

우리는 평소 별일 없다는 의미로 無事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 '무사하십니까?' 사극에서 자주 사용하는 듯하군요.) 이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안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일 없이 안정되게 그날 그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요? 결국 以無事取天下라는 문구는 나라를 얻기 위해 가장 우선되는 방도는 안정인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안정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하며 이에 대한 대비와 활용을 가능하게 합니다. 불안정한 사회는 어떤 모습을 그릴까요?  그에 대해서는 다음 문구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民多利器 國家滋昏

천하에 (구체적인 근거없이) 꺼리고 기피하는 바가 많으면 백성들이 두루 가난해진다. 사람들이 이를 피해 모두 이문이 많이 남는 물건으로 몰리게 되면 국가의 혼란이 거듭되게 된다.”

 

막상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게되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거나 내세우는 방식의 하나로 무언가를 비이성적으로 금지하거나 못하게 하는 일이 왕왕 있습니다. 많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아직도 금서나 금지곡 또는 특정한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가까운 예입니다. 아니면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이러한 규제가 경제 분야에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뭐, 민생과 직결된 분야가 아니라면, 이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독제 정권은 Inner Circle의 이익만을 감안하여 정말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분야에 대해서도 손을 댑니다. 이렇게 되면 그 전까지 해당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졸지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즉 而民彌貧 백성들이 두루 가난해지게 되는거죠. 그러면 눌린 풍선은 다른 곳으로 몰리게됩니다. 사람들이 시장의 안정감을 신뢰하지 않는 순간, 단기적인 이익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환금성이 강한 분야에 치우치게 되는거죠. 나라의 자산이 두루 퍼지지않고 특정 분야로 몰린다면 그 나라의 건강도는 손상받기 십상입니다. 즉 國家滋昏 국가의 혼란이 거듭되게 되는거죠.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사람들의 기교가 많아지고 기이한 물건이 많이 일어날 것이니, 이에 따라 법령이 많아지며 새로 만들어져 도적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번 문구의 내용은 앞에서 시작된 문제점이 어떻게 악순환에 빠지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에게서 시작된 쓸모없는 규제가 결국은 국가의 자원이 타당한 곳에 투입되는 것을 막아서 국가의 기본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분야가 아닌 쪽으로 자원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이에 따라 문제가 발생되면 이를 규제하기위한 방도를 만들면서 또 그에 대한 문제가 발생되는 식으로 말이죠.

 

이에 대해서는 중남미의 사례를 들어도될 것 같습니다. 부패한 정권이 국가의 기반시설이나 이권을 소수의 Inner Circle에 독점되도록 한 결과, 많은 일반 민중들이 실업자가 되어 빈부차가 확대되게 되고, 이로 인해 돈이 되는 마약이나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게 되면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력을 동원하여 단속을 추진하고, 이에 대항하여 거대한 범죄 카르텔이 형성되게되어 더욱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빠지는 겁니다.

 

故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이러한 이유로 성인께서 이야기 하기를 내가 바라는 바가 없어야 백성들이 스스로 어우러지고, 내가 고요함을 선호해야 백성들이 스스로 바르게 되며, 내가 일을 일으키지않아야 백성들이 스스로 부유해지며, 내가 사적인 욕심을 거두어야 백성들이 스스로 순박해진다 한다.”

 

중언부언할 내용은 없을 것 같습니다. 즉 57장에서 노자는 권력자가 자신의 사적인 혹은 측근의 이익만에 눈이 어두워 나라 전체를 혼돈스럽게하는 일을 벌이지 않기를 경계하라 이야기하고, 이렇게되면 백성들이 스스로 노력하여 나라가 더욱 부강해질거라 이야기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6장

2025. 6. 2. 13:06 from BoOk/pHiLoSoPhY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忿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故爲天下貴

고위천하귀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혜로운 자는 말을 아끼지만, 말을 내세우는 자는 지혜롭지 않다.”

 

노자 56장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리더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바탕으로 숙의하여 당면한 사항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되지만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하지않고 내 얘기만 하다가 자신이 혼자 판단하여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도 보곤 합니다.

 

가끔은 그 방식이 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하여서는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최종 의사 결정권자라고 모든 측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현장의 문제점을 모두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 옳을리는 없지만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알아내고, 대안을 찾아내는 것은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56장의 첫 문구는 내 얘기만 떠들어서는 않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의견 주장을 자제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塞其兌 閉其門 挫其銳 解其忿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그 구멍을 메우고 그 문을 닫으며 그 예리한 바를 누그러뜨리고 그 분함을 풀며 그 빛과 조화를 이루고 그 티끌과는 동화하니 이를 玄同 즉 피아의 구별없이 속인과 하나됨이라 한다.”

 

이 행의 전반적인 내용은 마지막 문구 玄同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내용들은 말을 앞세우지말고 정말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서 행동하라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첫 문장부터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문제의 근원이 되는 부족한 구멍을 메우고, 넘치게 흐르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 그 출구를 걸어 잠그며,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부딛치는 부분은 완화시켜주고, 분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해결해주며, 잘 나가는 사람들과는 원만하게 잘 어울리되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과는 동화되라는 이야기로 보았습니다. 이 모든 행위들은 즉 구성원들과 하나가 되기위해 전체를 보고 살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전체를 보라는 이야기는 그리고 다음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疏 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 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이런 이유로 누군가와 친해짐이 지향점이 될 수 없으며 반대로 소원해지는 것도 목표가 될 수 없다. 단지 이득을 보는 것이 지향점이 될 수 없으며 반대로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귀해지는 것이 지향점이 되어서도 안되며 반대로 누군가의 지위를 낮추려는 것도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불가득은 금강경에도 나오는 용어로 구하려는 것이 허상이어서 얻을 수 없는 대상임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즉 위의 문구는 친해지고 소원해지며 이익을 얻고 해를 입히며 귀하게 되고 원한이 있던 누군가를 망하게 만들려는 일체의 행위가 허망함을 이야기하는 즉 달성할 수 없는 목표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목표는 일시적으로 달성된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으나, 결국 반대급부나 반작용이 일어나 뜻하는 바가 허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즉 전체적이나 전반적으로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목표를 삼아야지 어떤 한 대상이나 현상만을 바꾸려는 행위는 허사가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故爲天下貴

이러한 이유로 천하를 귀하게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천하, 즉 전체적이나 전반적으로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목표를 삼아야지 어떤 한 대상이나 현상만을 바꾸려는 행위는 허사가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이번 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