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50장

2024. 6. 26. 14:20 from BoOk/pHiLoSoPhY

出生入死

출생입사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動之死地亦十有三

생지종십유삼 사지종십유삼 인지생동지사지역십유삼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蓋聞 善攝生者

개문 선섭생자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시무소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夫何故 以其無死地

부하고 이기무사지

 

 

 

出生入死

밖으로 나옴은 태어남과 같고, 안으로 들어감은 죽음과 같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어쩌면 생명이 나고 죽음과 비슷한 여정을 거칩니다. 나라도, 제도도, 기업도, 문화도 생겨나 발전하고 전성기를 누리다 어느덧 쇠퇴하여 소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노자도 비슷한 비유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 명확하게 쓰여있지는 않지만 나고 들어가는 대상이 여기서는 道라고 생각됩니다.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動之死地亦十有三

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열 중 셋이며, 죽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열 중 셋이다. 살고자하였으나 죽는 땅으로 가는 것도 열 중 셋이다.”

 

앞에서와 같이 모든 것들은 새로 세상에 나타나면 길던 짧던 소멸의 과정에 접어들겠지만 얼마나 빨리 사라지냐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라면회사에서 신제품을 한 해에도 고민하여 여러 개를 만들어내지만 이중 시중에서 의미있는 매출을 올리는 제품은 그 중 일부에 그칠 것입니다. 회사에서나 나라에서 뭔가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새로 도입하는 제도나 절차도 몇 가지는 효용성이 입증되어 정착되겠지만 사람들에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고요. 노자는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이를 테면 道가) 방향을 잘 잡아서 10에 3은 살아남지만, 반대로 10에 3은 애당초 방향이 잘못되어 빨리 사라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30%는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죽어 사라진다 이야기합니다.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이는 어째서인가? 그 시작부터 살아남는 방안이 두텁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여러 다른 결말의 원인은 처음부터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는지가 중요하다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성에는 성공의 요인이 더 확실히 그리고 두텁게 고려되었기 때문이라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道의 완결성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대로된 방향성을 가지고 여러 경우의 수를 미리 따져서 실패의 요인을 최소화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둬야된다는 거죠. 앞에서 이야기한 라면의 이야기를 한다면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서 시중의 제품들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점을 아쉽게 생각하는지 어떤 새로운 제품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적정한 가격에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조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한 제품만이 그나마 성공의 가능성을 볼 수 있지만, 이도저도 아닌 그냥 기존 제품의 Copy나 즉흥적인 요소만을 남을 따라서 만든다면 얼마 안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蓋聞 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대개 건강하게 잘 생을 유지하는 사람은 땅으로 가도 사나운 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에 들어가도 적군에게 당하지 않는다 들었다. 뿔소가 그 뿔을 휘두르거나 호랑이가 그 발톱을 할퀼 바를 없애고, 적군 또한 그 칼을 사용할 바를 (미리) 없애기 때문이다.”

 

陸行不遇兕虎이라는 문장은 무언가 섭생에 신묘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 곳이나 가도 맹수를 만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이야기이죠. 산으로 간다면 맹수에 대비하도록 미리 사람을 여럿모아 맹수가 접근 자체를 못하도록 준비하거나 그도 안되면 안전한 길로 가는 식으로요.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무하는 총칼이 나만을 피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쟁 자체가 안일어나도록 조치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철저한 훈련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을 몸이 익혀야할 것입니다. 상대가 그 폭력을 휘두를 여지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夫何故 以其無死地

어째서인가? 이것이 없다는 건 즉 죽을 곳에 처했다는 의미를 뜻하기 때문이다.”

 

말은 길었지만 결국 준비가 없다면 (以其無)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死地) 무언가를 새로 만든다면, 아니면 새로 시작을 도모한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Case별 Simulation을 통해 실패의 여지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 그것이 전제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노자는 50장에서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9장

2024. 5. 31. 14:24 from BoOk/pHiLoSoPhY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聖人在天下 歙焉 爲天下渾心焉
성인재천하 흡흡언 위천하혼심언
百姓皆注其耳目焉 聖人皆孩之
백성개주기이목언 성인개해지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자신만의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백성들의 마음을 지향하는 바로 삼는다.”
 
여기서 성인이라고 불리는 대상은 어느 사회나 집단에서 Rule을 수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르킨다 볼 수 있겠습니다. 도덕경이 쓰였던 고대사회에서는 군주를 가르켰을 가능성이 높죠. 요새 환경에서는 꼭 어마무시하게 높고 고고한 사람을 가르킨다 생각하지 말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직의 리더 정도로 간주하면 어떨까 합니다.
 
아무튼 이런 성인은 상심 (常心) 즉 변하지 않는 마음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좀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어떤 의사결정이나 절차를 수립할 때 “어건 안되!”라던가 “이건 원래 이렇게 해야되!”라는 전제를 깔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리고 앞에서도 누차에 걸쳐서 강조되는 사항인데 나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고 백성심 (百姓心) 즉 구성원의 마음을 의사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이런 방식의 일처리는 이제는 다양하고도 많은 경우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어떤 신제품을 만들어낸다면 그냥 머리 좋은 몇 명들 둘러앉아서, 아니면 사장님이 고민해서 “그래 이렇게 만들자.” 하지는 잘 않습니다. 경쟁사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이 기존 상품에 가지고 있는 불만과 개선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심지어는 고객들도 파악하지 잘 못하는 숨어있는 Needs까지 파악하려고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죠.
 
이 모든 노력은 결국 ‘以百姓心爲心’ 즉 정책이나 개발의 수혜자 즉 소비자가 될 수도 있고, 조직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과 욕구를 충족시켜야 되기 때문이죠.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높은 위치에 있어도 나 혼자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착한이에게 나는 선을 배풀며, 착하지 않은 이에게도 나는 역시 선을 배푼다. 덕이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善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善이라는 단어는 우선 착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다 좋아진다,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죠. 이를태면 선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시죠. 선물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는 물품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할까요? 본인이 그전부터 가지고 싶었거나,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가지게되면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받았을 때 아닐까요?
 
이미 앞에서 道는 가치평가가 배제된 모든 절차와 방안을 가르킨다고 이야기했고, 德은 이 모든 가능한 절차와 방안 중에서 현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혜를 주며, 가치를 향상시키는 방향이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德은 善이다라고 여기서 그리고 노자는 강조합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더 나아지도록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덕은 대상을 갈라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나의 주관적 가치관이나 편견이 반영되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不善者가 惡人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였으면 합니다.)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나를) 믿는 이에게 나는 신뢰를 주지만, 믿지 않는 이에게도 나는 역시 신뢰를 준다. 덕이란 (예측 가능하여 안정된) 믿음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의 문장에서 德이 무언가를 개선시키는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德의 신뢰성의 중요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대상에 구분없이 신뢰할 수 있어야 그것이 德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선거제도가 나온다던지, 새로운 신상품이 개발된다던지, 새로운 금융제도가 나오는데 어느 특정 집단이나 사람에게만 유리하고 다른 대상에게는 일관되지 못하게 이렇게도 적용이 되었다가 저렇게도 변한다면 그걸 좋은 제도이며 제품이라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하는 방향성을 가져야되는 것에 더불어 누구나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신뢰성이 동반되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聖人在天下 歙歙焉 爲天下渾心焉
성인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녹아들기 위해 천하에 머물며 (사람들과) 같이 호흡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라고 경청하라는 의미의 문장으로 해석합니다. 爲天下渾心이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心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르킨다면 이 문장은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在天下 즉 현장 곳곳을 직접 가서 보고 머물러야 하며 歙歙焉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호흡해서 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歙이라는 생소한 글자가 나오는데 저는 ‘들이쉴 흡’이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百姓皆注其耳目焉 聖人皆孩之
백성들이 모두 그 귀와 눈을 주목하니, 성인은 이 모두를 아이들을 대하듯 덕을 미치게 해야한다.”
 
사실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리더가 그 구성원들을 애 취급한다는 이야기가 좋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글이 쓰여진 시대상도 감안을 해야겠지만, 이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리더의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사람들 각각에게는 생사와 연관이 될 정도로 중요하고 절박한 내용일 수 있다는 점을 우선 자각해야된다. 그리고 이점을 명심하고 누구에게 치우침 없이, 우리가 아이들에게는 모두 잘해주고 싶고 좋은 말만 해주고 싶듯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미칠 수 있도록 절차를 수립하고 일을 진행해야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자한 것으로 해석하였으면 합니다.
 
마무리 하자면 노자는 무언가를 도모할 때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방향성을 가져야되고, 또 모두가 신뢰할만한 것이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에는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여 그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8장

2024. 5. 20. 14:19 from BoOk/pHiLoSoPhY

爲學日益 爲道日損

위학일익 위도일손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무위이무불위 취천하상이무사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爲學日益 爲道日損  

배움의 목적은 하루하루 지식을 더하는 것에 있고, 도의 목적은 하루하루 이를 덜어냄에 있다.”

 

이미 앞에서 누차 이야기한 바와 같이 道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이 요리이면 도는 레시피가 될 것이고, 공학이면 물리법칙이 될 것이며, 통치라면 법이 될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회사에서 어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여러 절차가 있다고 합시다. 그전부터 해왔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지금 당장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그냥 기존의 승인 절차와 거쳐야되는 검증 과정을 무비판적으로 수행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필요한 절차와 과정인가를 고민하다보면 제도를 만드는 당시와는 다르게 현재 시점에서는 정말 불필요한 항목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노자는 개선이란 덜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냥 단발성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꾸준히 매일매일 추구하여야되는 행위라고 강조합니다.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더 이상 (개선)할 바가 없을 때까지 덜어내고 덜어내야 한다.”

 

다들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만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앞에서 노자가 이야기한 내용과도 조금 어긋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저는 그냥 그렇게 지독하게 개선을 추구해야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여 표현한 정도로 이해하려 합니다.

 

無爲而無不爲 取天下常以無事

바라는 바가 없음은 바라지 않는 바가 없는 것과 같다, 천하를 취함은 더 이상 (개선)할 것이 없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無爲而無不爲라는 문구는 無爲라는 용어가 더 이상 개선할 바가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이라면 그것은 無不爲 즉 안하는 것이 없는 상태로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소위 無爲가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다 해본 다음에 더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죠.

 

取天下라는 상태가 단순히 천하를 손에 넣었다가 아니라 최상의 상태, 즉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상황이라고 한다는 이것은 常以無事 항시 무언가 더 할 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는 것이죠.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그와 더불어 해야될 일이 있다면 천하를 취했다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야기하는 取天下라는 용어는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천하제일의 상황 또는 수준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계속 개선해야된다, 당신이 봐서 무언거 더 해야될 것이 있다고 냉정하게 판단되면 당신은 아직 그 분야에서 최고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자도덕경은 그냥 넋 놓고 아무 것도 하지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철학책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개선하고 또 개선해라, 덜어낼 수 있는 불필요한 절차나 규정이 없는지 항상 살펴라, 지금 무언가 이루었다고 그게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말아라, 라는 이야기를 반복하여 지극히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직시를 강조하는 책이라고 새삼 느끼게 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