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51장

2024. 10. 16. 16:38 from BoOk/pHiLoSoPhY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시이만물막부존도이귀덕

道之尊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지존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도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是謂元德

시위원덕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도를 통해 무언가 만들어진다면 덕을 통해 이것이 길러지게 된다, 주위의 자원을 활용하여 형태를 갖추게 되면 기세를 얻어 성장하게 된다.”

 

앞 장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면 “생성-성장-안정-소멸”의 생애 4단계를 거치게됩니다.

 

51장의 첫 문장도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道와 德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자면 새로운 法을 만들어내려 한다면 기존의 입법 절차 즉 道에 의해서 만들어지게됩니다. (道生之) 그러면 단순이 입법절차만을 따르면 좋은 법을 만들 수 있을까요? 여기서 德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마주하고 있는 문제나 이슈를 해결하고 구성원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이 주어지는 방안을 고민하는 德이 바탕이 될 때 좋은 법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德畜之) 이러한 법은 가용한 자원이나 환경을 최대한 참고하고 활용하여 그 구체적 형상이 완성되게 되고 (物形之)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야 비로서 널리 쓰일 수 있게 됩니다.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이러한 이유로 만물은 도가 있지 않거나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지 못하게 되며, 도를 존중하며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무릇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상식적이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莫不 (아니하지 못한다) 라는 문구는 뒤에 이어지는 存道 및 貴德 두 문구에 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즉 存道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貴德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도와 덕이 만물의 존재하고 생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새로운 방안의 근본이 되는 도와 덕이라는 두 요소를 자연스럽게 존중하며 귀하게 여기게 된다 이야기합니다.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고로 (앞서) 도를 통해 무언가 만들어진다면 덕을 통해 이것이 길러지게 된다 이야기한 것이다. 키우고 기르며, 안정되게도 독이 되게도 하며, 기르기도 하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

 

道와 德의 역할은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길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여러 선택을 하게된다는 거죠. 키우고 기르는 대상이 있는 반면에 어떤 대상은 머무르거나 아예 없애버리기도 하는 것이고요. 어떤 것은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은 덮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만들되 소유하지 않으며, 위하되 기대지 않고, 키워주되 다스리려하지 않아야한다. 이를 가르켜 기본이 되는 덕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하는 德의 방향성은 어떠해야 할까요? 노자는 여기서 크게 3가지 방향성을 가져야한다 이야기합니다.

 

生而不有, 즉 리더가 본인의 소유물로 하기 위해 만들어내서는 안된다, 공공의 복리를 위한 목적을 지향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경우 일정 성과를 거둔 리더들이 무언가 성과를 만들어내면 그 결과물이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소유하고 나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경계해야되지 않을까요? 결국 리더라할지라도 그 위치에서 단지 그 역할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리고 爲而不恃 구성원을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야지 구성원에 기대어서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기댄다는 이야기는 다향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그냥 사람들 하자는데로 (그것도 소수의 주변 사람들)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맹목적으로 어떤 지향점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어보입니다. 아니면 만들어지 결과물에 나의 이익을 결부시켜 여기에 기생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요. 어떠한 경우가 되었건 전체 큰 그림에서 성과를 또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목적을 둬야지, 다른 의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마지막으로 長而不宰 즉 성장시키되 다스리려하여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간단히 말하여 내가 키워줬으니 내가 하라는데로 해, 해서는 안된다는거죠. 生而不有라는 첫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는 나의 역할을 하였을 뿐 이를 통해 나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도구로 악용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가 바탕이 되는 덕이어야한다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0장

2024. 6. 26. 14:20 from BoOk/pHiLoSoPhY

出生入死

출생입사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動之死地亦十有三

생지종십유삼 사지종십유삼 인지생동지사지역십유삼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부하고 이기생생지후

蓋聞 善攝生者

개문 선섭생자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시무소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夫何故 以其無死地

부하고 이기무사지

 

 

 

出生入死

밖으로 나옴은 태어남과 같고, 안으로 들어감은 죽음과 같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어쩌면 생명이 나고 죽음과 비슷한 여정을 거칩니다. 나라도, 제도도, 기업도, 문화도 생겨나 발전하고 전성기를 누리다 어느덧 쇠퇴하여 소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노자도 비슷한 비유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 명확하게 쓰여있지는 않지만 나고 들어가는 대상이 여기서는 道라고 생각됩니다.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動之死地亦十有三

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열 중 셋이며, 죽는 방향으로 가는 것도 열 중 셋이다. 살고자하였으나 죽는 땅으로 가는 것도 열 중 셋이다.”

 

앞에서와 같이 모든 것들은 새로 세상에 나타나면 길던 짧던 소멸의 과정에 접어들겠지만 얼마나 빨리 사라지냐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라면회사에서 신제품을 한 해에도 고민하여 여러 개를 만들어내지만 이중 시중에서 의미있는 매출을 올리는 제품은 그 중 일부에 그칠 것입니다. 회사에서나 나라에서 뭔가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새로 도입하는 제도나 절차도 몇 가지는 효용성이 입증되어 정착되겠지만 사람들에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고요. 노자는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이를 테면 道가) 방향을 잘 잡아서 10에 3은 살아남지만, 반대로 10에 3은 애당초 방향이 잘못되어 빨리 사라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30%는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죽어 사라진다 이야기합니다.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이는 어째서인가? 그 시작부터 살아남는 방안이 두텁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여러 다른 결말의 원인은 처음부터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는지가 중요하다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성에는 성공의 요인이 더 확실히 그리고 두텁게 고려되었기 때문이라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道의 완결성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대로된 방향성을 가지고 여러 경우의 수를 미리 따져서 실패의 요인을 최소화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둬야된다는 거죠. 앞에서 이야기한 라면의 이야기를 한다면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서 시중의 제품들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점을 아쉽게 생각하는지 어떤 새로운 제품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적정한 가격에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조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한 제품만이 그나마 성공의 가능성을 볼 수 있지만, 이도저도 아닌 그냥 기존 제품의 Copy나 즉흥적인 요소만을 남을 따라서 만든다면 얼마 안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蓋聞 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대개 건강하게 잘 생을 유지하는 사람은 땅으로 가도 사나운 뿔소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에 들어가도 적군에게 당하지 않는다 들었다. 뿔소가 그 뿔을 휘두르거나 호랑이가 그 발톱을 할퀼 바를 없애고, 적군 또한 그 칼을 사용할 바를 (미리) 없애기 때문이다.”

 

陸行不遇兕虎이라는 문장은 무언가 섭생에 신묘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 곳이나 가도 맹수를 만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이야기이죠. 산으로 간다면 맹수에 대비하도록 미리 사람을 여럿모아 맹수가 접근 자체를 못하도록 준비하거나 그도 안되면 안전한 길로 가는 식으로요.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무하는 총칼이 나만을 피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쟁 자체가 안일어나도록 조치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철저한 훈련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을 몸이 익혀야할 것입니다. 상대가 그 폭력을 휘두를 여지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夫何故 以其無死地

어째서인가? 이것이 없다는 건 즉 죽을 곳에 처했다는 의미를 뜻하기 때문이다.”

 

말은 길었지만 결국 준비가 없다면 (以其無)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死地) 무언가를 새로 만든다면, 아니면 새로 시작을 도모한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Case별 Simulation을 통해 실패의 여지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 그것이 전제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노자는 50장에서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9장

2024. 5. 31. 14:24 from BoOk/pHiLoSoPhY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덕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덕신
聖人在天下 歙焉 爲天下渾心焉
성인재천하 흡흡언 위천하혼심언
百姓皆注其耳目焉 聖人皆孩之
백성개주기이목언 성인개해지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은 자신만의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는다, 백성들의 마음을 지향하는 바로 삼는다.”
 
여기서 성인이라고 불리는 대상은 어느 사회나 집단에서 Rule을 수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르킨다 볼 수 있겠습니다. 도덕경이 쓰였던 고대사회에서는 군주를 가르켰을 가능성이 높죠. 요새 환경에서는 꼭 어마무시하게 높고 고고한 사람을 가르킨다 생각하지 말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직의 리더 정도로 간주하면 어떨까 합니다.
 
아무튼 이런 성인은 상심 (常心) 즉 변하지 않는 마음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좀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어떤 의사결정이나 절차를 수립할 때 “어건 안되!”라던가 “이건 원래 이렇게 해야되!”라는 전제를 깔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리고 앞에서도 누차에 걸쳐서 강조되는 사항인데 나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고 백성심 (百姓心) 즉 구성원의 마음을 의사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이런 방식의 일처리는 이제는 다양하고도 많은 경우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어떤 신제품을 만들어낸다면 그냥 머리 좋은 몇 명들 둘러앉아서, 아니면 사장님이 고민해서 “그래 이렇게 만들자.” 하지는 잘 않습니다. 경쟁사는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이 기존 상품에 가지고 있는 불만과 개선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심지어는 고객들도 파악하지 잘 못하는 숨어있는 Needs까지 파악하려고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죠.
 
이 모든 노력은 결국 ‘以百姓心爲心’ 즉 정책이나 개발의 수혜자 즉 소비자가 될 수도 있고, 조직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각과 욕구를 충족시켜야 되기 때문이죠.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높은 위치에 있어도 나 혼자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착한이에게 나는 선을 배풀며, 착하지 않은 이에게도 나는 역시 선을 배푼다. 덕이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善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善이라는 단어는 우선 착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다 좋아진다,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죠. 이를태면 선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보시죠. 선물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는 물품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할까요? 본인이 그전부터 가지고 싶었거나,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가지게되면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받았을 때 아닐까요?
 
이미 앞에서 道는 가치평가가 배제된 모든 절차와 방안을 가르킨다고 이야기했고, 德은 이 모든 가능한 절차와 방안 중에서 현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혜를 주며, 가치를 향상시키는 방향이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德은 善이다라고 여기서 그리고 노자는 강조합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더 나아지도록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덕은 대상을 갈라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나의 주관적 가치관이나 편견이 반영되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不善者가 惡人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였으면 합니다.)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나를) 믿는 이에게 나는 신뢰를 주지만, 믿지 않는 이에게도 나는 역시 신뢰를 준다. 덕이란 (예측 가능하여 안정된) 믿음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의 문장에서 德이 무언가를 개선시키는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德의 신뢰성의 중요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대상에 구분없이 신뢰할 수 있어야 그것이 德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선거제도가 나온다던지, 새로운 신상품이 개발된다던지, 새로운 금융제도가 나오는데 어느 특정 집단이나 사람에게만 유리하고 다른 대상에게는 일관되지 못하게 이렇게도 적용이 되었다가 저렇게도 변한다면 그걸 좋은 제도이며 제품이라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하는 방향성을 가져야되는 것에 더불어 누구나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는 신뢰성이 동반되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聖人在天下 歙歙焉 爲天下渾心焉
성인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녹아들기 위해 천하에 머물며 (사람들과) 같이 호흡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라고 경청하라는 의미의 문장으로 해석합니다. 爲天下渾心이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心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르킨다면 이 문장은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在天下 즉 현장 곳곳을 직접 가서 보고 머물러야 하며 歙歙焉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호흡해서 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歙이라는 생소한 글자가 나오는데 저는 ‘들이쉴 흡’이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百姓皆注其耳目焉 聖人皆孩之
백성들이 모두 그 귀와 눈을 주목하니, 성인은 이 모두를 아이들을 대하듯 덕을 미치게 해야한다.”
 
사실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리더가 그 구성원들을 애 취급한다는 이야기가 좋게 받아들여지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글이 쓰여진 시대상도 감안을 해야겠지만, 이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리더의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사람들 각각에게는 생사와 연관이 될 정도로 중요하고 절박한 내용일 수 있다는 점을 우선 자각해야된다. 그리고 이점을 명심하고 누구에게 치우침 없이, 우리가 아이들에게는 모두 잘해주고 싶고 좋은 말만 해주고 싶듯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미칠 수 있도록 절차를 수립하고 일을 진행해야된다,라는 이야기를 하고자한 것으로 해석하였으면 합니다.
 
마무리 하자면 노자는 무언가를 도모할 때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방향성을 가져야되고, 또 모두가 신뢰할만한 것이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에는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여 그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