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55장

2025. 4. 29. 09:32 from BoOk/pHiLoSoPhY

合德之厚 此於赤子

합덕치후 차어적자

虺蛇不 猛獸不據 攫鳥不搏

봉채훼사불석 매수불거 확조불박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䘒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 和之至也

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최작 정지지야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

지화왈상 지상왈명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

 

 

合德之厚 此於赤子

덕을 더하여 도탑게 하는 것을 어린아이에 대자면”

 

노자 55장의 내용은 기존의 검증된 방식들을 새로운 방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활용해야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 문구인 合德之厚 즉 덕을 더하여 두텁게 한다는 이야기가 위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노자는 赤子 즉 어린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가에 대한 것으로 비유를 듭니다

 

虺蛇不 猛獸不據 攫鳥不搏

“(어린아이는) 벌, 전갈, 살무사, 뱀에 쏘인적 없고, 맹수의 발톱에 다친 적이 없으며, 먹이를 노리는 새에게 잡힌 적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이제 갓난 아이는 인생의 모든 위험과 풍파를 걲은 바가 없습니다. 위에 비유로 든 무시무시한 경험도 다른 누군가는 했겠지만 아이가 경험하지는 않았겠죠. 여기서 이런 비유를 든 것은 꼭 직접 경험을 해야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벌에게 쏘인 적이 없는 사람도 벌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건 본능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알려줘서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단순하게 예를 든 것이지만,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는 스스로 터득한 것보다는 학습에 의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약을 안하는 것은 마약 중독에 당하고 나서 얼마나 마약 중독이 위험한 것인지를 스스로 경험해서가 아닙니다. 요리의 레시피도 혼자서 이 재료, 저 재료를 Trial & Error로 비율을 조정해서 얻어진 것이라기 보다, 이미 검증된 것을 활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䘒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 和之至也

“(아이의) 뼈와 근육은 유약하나 단단히 쥘 수 있게되며, 암수가 어떻게 교미하는지을 모르나 그 생식기로 (후세를) 만들어내니 그 결과가 더욱 또렷해진다. 종일을 부르짖어도 목이 잠기지않으니 조화를 이룸이 지극하다.”

 

즉 개인으로서의 역량은 미약하더라도 세상에 이미 축적된 지식들과 Know-How가 더해져 나의 역량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이 (赤子)의 비유는 혼자서는 보잘 것 없는 우리 모두를 비유로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이 사회에 축적된 지식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한계를 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 세번째 문장에서 이야기합니다.

 

세번째 문장에서 주목해야될 단어 두가지는 精과 和라는 단어가 아닐가 합니다.

 

精은 정밀하다는 단어에서 쓰이는 의미와 같이 더 세밀해지고 더 명료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뭉툭하고 모호했던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진다는, 더 개선된다는 의리로 보입니다.  그리고 和는 조화를 이룬다는 내용일테고요.

 

精이라는 단어 앞의 내용 중 단단히 쥔다 (握固) 및 생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䘒作)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이미 세상에 나와있는 재료들 중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판단하여 잡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 더 나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 전의 과정이나 절차에 대비하여 더욱 정밀하고도 개선되게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뒤에 이어지는 종일을 주장을 하여도 목이 잠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기존의 통용되던 상식이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것으로 나아지게 되면 논란이 적어지게 된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和之至也 즉 조화를 이룸이 더 나아지게된다는 거죠.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아는 것을 常 즉 오래 통용되는 것이라 이르며, 이렇듯 오래 통용되는 방법을 아는 것을 明 즉 깨달음이라 행위라 한다. 생명을 더하는 것을 상서롭다하며, 마음이 기운을 다스림을 강함이라 한다.”

 

知和曰常 라는 문구는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만들려면 조화를 이룰 방법을 알아야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和 즉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한거죠.  뭐, 길게 이야기 할 문구는 아닌 듯합니다. 앞의 문장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느낌입니다. 결국 앞의 시작에서 이야기한 1 덕을 더하는 행위는 2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서 진행되어야 하며 3 이러해야 종일을 소리질러도 그 기운이 다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방식이 만들어지게 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지속 가능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明 즉 깨달음이라하며, 이는 생명을 북돋으니 상서롭다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하여 주변의 기세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다스리는 행위를 강함이라 이야기 합니다. (心使氣曰強)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모든 사물은 성장하면 늙어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것을 길이 아니라 한다. 길이 아니면 빨리 그쳐야한다.”

 

마무리하는 마지막 문구입니다. 여기서 노자는 위의 그 모든 수고로운 행위가 왜 이루어져야 되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제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됩니다. 기존의 방식에 연연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不道 즉 길이 아니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기존의 질서나 방식에 연연하기 보다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기존의 방식과 체계들을 참고하여 모아서 담아내고 (合德之厚)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때로는 제어하고 때로는 수용하여 (心使氣) 조화 이룬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서 (和) 또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常) 세상을 더 좋고 (精) 밝게 (明) 만들 것이라고 이 장에서는 이야기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4장

2025. 4. 3. 13:31 from BoOk/pHiLoSoPhY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건선자불발 건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신 기덕내진 수지어가 기덕내여 수지어향 기덕내장 수지어국 기덕내풍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오하이지천하연재 이차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잘 만들어 진 것은 (무리에서) 뽑혀나가지 않으며, 좋은 것을 포용하게되면 (무리에서) 떨어져나가지 않으니,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

 

노자 54장은 덕을 세워야하는 이유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의 마지막에 자손의 제사가 끊이지 않게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생존의 문제라는거죠. 반대로 이야기하면 더 나은 방안을 만들지 못하면 도퇴되어 사라진다는 경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덕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냐? 여기에 대해 덕의 두가지 특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善建 즉 제대로 만들고, 善抱 좋은 것들은 포용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두 문장에서 어떻게 잘 만들 것이며 (善建) 어떻게 잘 포용할 것인가 (善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이를 몸에 수양하면 그 덕이 비로서 진실해질 것이며, 집으로 확대하여 수양하면 그 덕이 비로서 여유로움을 주며, 마을로 범위를 넓히면 그 덕이 비로서 성장하며, 나라로 적용 범위가 넓혀지게되면 그 덕이 비로서 풍요로워지며, 천하에 넓게 수양하면 그 덕이 비로서 보편적일 수 있게 된다.”

 

두번째 문장은 어떻게 하면 善建 즉 제대로 만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其德은 이제 막 만들어진 개선방안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떠한 Solution이 진실로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실천하고 시험하다보면 (修) 우선 알게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어느 정도 내가 확신을 갖게된 이후 그 범위를 자신의 집에서부터 점점 넓혀서 적용하여 그 내용을 보완하게 되면 그 방안이 혹은 결과물이 살아남을 수도 사멸할 수도 있게된다는거죠.

 

또한 이 문구에서는 방안이 확장되는 단계적으로 진실되었다가 (眞), 여유로워지고 (餘), 성장하며 (長), 그 내용이 풍부해지고 (豐) 보편타당한 것이 (普) 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표현이 안되어있지만 이러한 과정은 우선 기안자인 내가 새로운 결과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眞) 그 이후 집에서부터 천하에 까지 그 적용 범위와 참여자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견과 Feed Back을 통해 내용이 성숙해지고 더욱 완결성을 갖출 수 있게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요리사가 새로운 음식 메뉴를 개발했다고 생각해보죠. 처음에는 직접 맛을 보면서 수많은 변화를 시험하고 확신이 들었을 때 가족에게도 음식을 먹여보고 이를 통해 받아진 가족들의 반응이나 평을 기반으로 내용을 보완하여 시장에 내놓게되며, 그리고도 끊임없는 보완이 이어지게 됩니다. 소비자들의 Complain이 있을 수도 있고, 다 좋은데 이런 것도 어떻냐는 제안이 올 수도 있고요. 또 실제 판매 단계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생겨서 이에 대해 개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상보다 손님이 많이 찾는군. 손으로 직접 반죽을 해서는 수요을 감당 못하겠는걸 등등...) 이러면서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고 맛은 더 좋아지며 많은 사람들이 찾게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거죠. 

 

결국 우선 나도 최선을 다하지만 외부의 이해 관계자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내용은 다소 상이하지만 위의 문구는  大學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가지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내용이 기본 단위로부터의 수양을 강조한 것이라면 여기에서의 내용은 어떠한 덕이 수용되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다른 점으로 보입니다.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이러한 이유로 몸으로서 몸을 살피며, 가문으로 가문을 살피며, 마을로서 마을을 살피며, 나라로서 나라를 살피며, 천하로서 천하를 살펴야 한다.”

 

세번째 문장은 善抱 즉 좋은 것을 포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결국 더 나은 것을 어떻게 벤치마킹해서 또는 찾아내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가 관건이 된다는 게 노자의 생각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身에서 天下로 확대되지만 결국 첫 문장 以身觀身 하라 이야기합니다.

 

이 문장은 두가지 중의적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몸으로서 몸을 살피라는 것은 1) 남의 몸을 잘 관찰하여 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라는 것일 수도 있고 2) 몸으로서 몸을 봐라, 즉 자기 객관화가 이루어져야한다, 라고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抱 즉 포용의 의미라면 대상이 있어야하니 위의 두가지 의미 중 첫번째 내용이 더 적합할 듯은 하나 두번째 의미로 중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타인의 비교 우위 항목에 대해서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니까요. 14세기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의 좌우명은 “It is as it is.”였다고 합니다. 보고싶은 것만 봐서는 안된다, 상황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있는 그래도 봐야한다는 의미죠. 더 나은 방향으로 가서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타인의 장점을 살펴서 자기에게도 적용할지를 고민하여야 하며, 그 과정은 냉철한 자기 객관화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서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내가 천하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아는 것이다.”

 

뭐, 길게 이야기 할 문구는 아닌 듯합니다. 정리하여 이야기하면, 좋은 방향으로 나가감은 생존의 문제이며, 이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성이 있어야하고, 자신의 약점 및 강점에 대한 객관적 성찰과 상대방의 장점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54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3장

2025. 3. 4. 15:26 from BoOk/pHiLoSoPhY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大道甚夷 而民好徑

대도심리 이민호경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내게 약간의 지식이 있어 나를 부리려 한다면, 큰 도를 수행하고 어딘가에 배푸는 것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使我介然有知라는 첫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되나 좀 고민을 했었는데요, 대부분의 책에서는 使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使我라는 문구는 ‘나라에서 나를 부린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介然有知, 즉 조금 지식이 있어서 그것이 이유가 되어 나라에서 나에게 벼슬을 주어 무언가를 해보라고 한다는 의미인거죠. 벼슬이 주어진다는 것은 권력이 생긴다는 의미이고, 무언가에 대해 의사 결정할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行於大道하되 唯施是畏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큰 도를 행하되 나의 의사결정과 판단으로 수혜를 받는 그 결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도록 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大道甚夷 而民好徑

큰 도는 매우 평평하나,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이미 앞에서 수차에 걸쳐서 道란 방도라는 의미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大道 즉 큰 도는 많은 대상에게 수혜가 갈 수 있는 해결책을 이야기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도는 그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수월하고 더 편한 방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니 자기만 알고있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유혹과 회유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보다는 인맥을 이용하거나, 교묘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의 방향을 바꾸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조정은 매우 깨끗하나 전답은 황폐해져 있다면, 창고는 텅텅 비어있는데 화려한 복식과 허리에 칼을 차고있다면, 사람들에게 먹이고 마시게 배품은 싫어나 재화를 풍족하게 가지고 있다면, 이를 일컬어 도적질을 자랑함이라 하니, 이는 도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하는 徑 즉 지름길은 나만 잘되면 그만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기 십상입니다. 조그마한 권한을 가져도 사람들은 본인과 본인 주변의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기 십상입니다. 나라가 황폐해져도 우리집만 으리으리하고 본인만 명품을 휘감으면 그것이 나의 능력이고 내가 당연이 누려야할 것들이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도덕경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盜夸 즉 도적질을 자랑하는 행위라고 비난합니다. 쓰임이 있어 권한을 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이유로 그 이익이 어디로 돌아갈지를 두려워해야된다고 첫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