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는 대학에서 만난 사이다. 나는 1년 대학입학에 실패하여 재수를 했던터라, 한살 차이인 그와는 같은 학년으로 입학했었다. 잘 기억은 나지않지만 그는 나와는 다른 과였었는데, 졸업한 고등학교가 같았던지라 당시에는 매우 활발했던 고등학교 동문 모임에서 서로를 알게되었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나는 동문 사람들에게 푹 빠져있었다. 같이 조인트로 동문 모임을 했던 여고 출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것도 있었지만, 남고 출신 선배들이나 후배들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우리는 주중에는 거의 매일 만났었고, 주말이나 방학에도 노량진이나 상도동에서 틈틈히 만나곤 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특히 우리과 출신 선배들과 사이가 좋았어서 선배들이 많이 모여있던 서클도 가입했었고, 나중에는 대학원을 우리과 전공으로 옮겼었는데 그 연구실에 선배들이 몇몇 있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는 고등학교 1년 선배였던 우리 기와도 친하게 지냈고 졸업한 후에도 모임이 있으면 찾아와 어울리곤 했다. 누가누구를 예전에 좋아했었다는 둥의 실없는 소리를 해대며 분위기를 재미나게 하기도 했었다. 우리 기 친구들도 그런 그를 꺼리지않고 좋아했었으며 종종 모임이 있으면 일부러 연락해 초대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동기들과는 그렇게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었다. 사실 그 깃수 후배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만나지는 않았던 것도 있었으니 전적으로 그에게 이유가 있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 오히려 본인과는 다섯 기수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더 잘 어울렸었다.
그는 학교에서 석사 뿐 아니라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공부에 재미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석사 학위를 마칠 즈음해서 IMF가 터진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박사 학위를 받고도 막상 아주 괜찮은 곳에 취직할 만한 상황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학위 취득후 강사도 했었던 것 같고, 작은 회사에도 몇몇 다니다가 나중에는 사업을 시작했고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사업이 커나가는 듯 보였었다. 졸업후 모임에서나 내가 가산동에서 근무할 때 따로 찾아오기도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기업 상대로 어려운 점들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일이 잘 되어가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문제는 작년 초쯤 생겼던 것 같다. 대기업에 설비를 납품했었는데, 하역 중에 제품에 손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애초 잘못된 제품을 납품한 것도 아니고, 이건 운송회사나 하역작업자의 책임인데 대기업 담당자는 제품이 정상 상태가 아니라며 대금 지급을 막아버렸던 것 같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작은 규모의 회사에 이건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얼마 안지나 나에게도 전화가 와서 여윳돈이 있으면 좀 빌려줄 수 없겠냐는 이야기를 했었다. 완곡하게 내가 충분한 도움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월급에 기대어사는 처지에 융통할 수 있는 금액도 몇백에 그칠 것이고 그마저도 사실 주저되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도 몇번을 더 그와는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어려움을 내비치지않고 밝은 모습이어서 나는 어렵게라도 일이 수습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흘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고, 몇번의 수소문 끝에 그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이 그렇다보니 마지막 가는 길도 가족들끼리 치른 듯 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알던 사이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니 마음이 아팠다.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도 가슴에 걸렸다. 같이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놔누면서도 뭐라 해야될지 모를 지경이었다.
후배라지만 한살 차이이니 친구나 다름없었다. 오랜 추억이 그의 얼굴과 겹치니 더욱 애통할 따름이다.
그의 명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