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5장

2018. 12. 21. 14:01 from BoOk/pHiLoSoPhY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天地之間 其猶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수궁 불여수중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노자에서 聖人이 논어의 그것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어에서의 聖人이 초월적 위치의 哲人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노자에서의 聖人은 당시 이 글을 읽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독자층, 즉 자신의 철학을 구현시켜주기를 바라는 대상인 군주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될 것 같습니다.

 

위의 두 문구는 천지가 이러하므로 성인은 마땅히 이러해야한다는 댓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풀어 해석하였습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성인도 인자해서는 안된다.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여겨야한다."

 

현재의 민주공화정 시민들에게 이런 내용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풀강아지로 여긴다는 것은 백성을 하찮게 여기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상대에 대해 주관적인 감정이나 호오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생각해야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서 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도자가 너그러워지려는 마음을 가지더라도 이는 어느 특정 대상이나 계층에 한정되기 십상이며, 이 경우 그 혜택에서 소외되는 집단이 생기게 되어 필연적으로 집단 내에 갈등을 유발할 여지를 만들게 됩니다.

 

노자는 하늘이 만물에 대해 풀강아지 대하듯 통치의 대상에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이 착한사람에게만 더 좋은 날씨를 주고, 나쁜 사람들만 골라 천재지변을 일으키지는 않으니까요.

 

무신론자라서가 아니라 구약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보살피지? 왜 유대인들처럼 이교도들 앞에 나타나서 내가 신이라고 얘기하고 소위 성경에서 얘기하는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는 거지?  왜 그때는 그렇게 부지런하게 사람들 앞에 출현하시다가 요즘에는 전혀 무심한 듯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는 거지 등등...

 

물론 노자에서 말하는 천지가 어떤 절대자를 뜻하는 것이라면, 무신론자인 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만들어내었어도 그 이후 불편부당하듯 지도자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말하자면 소위 리더는 밑의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서 내가 착해야지, 저사람들에게 잘보여야지 라는 생각을 앞세우게 되면 이로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떤 주관적인 편견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현실을 보며 가능한 편중됨이 없어야한다는 의미를 담은 두 문장으로 이해됩니다.

 

地之間 其猶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여기서 다시 천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해석을 아래와 같이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빈 공간은 마치 그 (풀무)와 같다. 빈틈이 있음에 굴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앞서 잘못한 점을 고쳐낸다"

 

앞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도덕경에서는 사전에 준비한 해법이 항상 완전무결할 수는 없으며, 지금 당장 확실하지 않다면 앞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일단 시작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개선해나가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준비한 해법이 완전무결하지 않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수궁 불여수중 

 

여기 이 문구는 많은 경우 "말이 많으면 수가 궁해진다"는 식으로 해석들이 됩니다. 이것도 좋은 말이기는 한데 뭔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여기 多言數窮이라는 문구는 의견을 많이 나누고 (말을 많이 하고) 수를 궁리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경우라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지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단, 이 경우도 "不如守中" 즉 자신만의 중심은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주관을 지켜야된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풀어서 전체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성인도 인자해서는 안된다.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여겨야한다. 하늘과 땅 사이 빈 공간은 마치 그 (풀무)와 같다. 허점이 있음에 비굴해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앞서 잘못한 점을 고쳐낸다. 의견을 많이 나누고 방도를 찾을 것이되,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장

2018. 12. 7. 13:18 from BoOk/pHiLoSoPhY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 이용지, 혹부영

淵兮似萬物之宗.

연혜사만물지종

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湛兮似常存.

담혜사상존

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갈 수록 내용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도 모호하고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될지 어려웠는데, 특히 여기서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문구는 象帝之先이었습니다. (정말 무슨 말이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한줄한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 이용지, 혹부영


여기서 沖字는 사전을 보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화하다, 겸허하다, 담백하다, 비다, 공허하다 등등) 어떤 내용이 가장 적합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세번째 문장의 내용을 감안하면 겸허하다는 내용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독선적으로 고집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여도 그렇고요. 아무튼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일을 풀어가는 방식인 도를 집행할 때는 겸허해야된다.
 완전 무결하게 채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둬야된다."

대상을 규정하고 문제를 파악한 다음에 솔루션을 내고 이에 따라 개선을 하거나 관리를 하는데, 내놓은 솔루션을 집행함에 있어서 가져야하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 사용되었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 철두철미하게 빈틈없이 함은 중요하죠. 하지만 다른 방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는 둬야된다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아래에도 계속 얘기는 이어집니다.

淵兮似萬物之宗.

연혜사만물지종


위의 문구를 풀면 "연못이로구나, 만물의 근원과 같다." 해석이 됩니다. 여기서 字가 뒤의 字와 댓구가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연못은 많은 자연의 것들을 담고있고 온갓 수초와 벌레, 물고기 등 그에 의지하는 것들에 삶의 터전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투명하고 맑고 깨끗하지는 않죠. 때로는 물냄새도 나고, 진창이 있기도 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죠. 道라는 것도 이러하다는 점을 비유로 들어 연못의 이미지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 선택한 道가 완전무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점진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아니면 하나의 방안만을 가지고 일을 행할 것이 아니라, 여하한 경우에 대비한 Plan B도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고요. 세상사는 기대하고 생각한 데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법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좀 더 자세히 예를 들어서 앞에 내용을 보완하는 문구입니다. 


"도를 집행함에 있어 너무 예리한 면은 누그러뜨려야 어지럽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조절하여야 더러움을 하나로 모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湛兮似常存.

담혜사상존

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이 마지막 두 문구가 무슨 의미일지 고민이 되었는데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댓구를 이루는 구절로 이해하여 풀었습니다. 은 "맑을 "字 입니다.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연못이 만물을 담아 탁하다면, 이에 반하여 절대적인 선이나 기준이 있어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절대불변의 법칙을 가르키기 위해 사용한 비유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象帝는 뭐 다른 번역서에는 고대의 제왕부터 시작해서 하느님 등등으로 해석한 것들이 눈에 띄는데 그래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왠 갑자기 고대의 제왕이나 창조주가 여기서 나올까요? 저는 象은 만물이고, 帝는 나라를 가르키는 것으로 따로 떨어뜨려서 푸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이 생기고 사람들의 나라가 생기기 앞어서..."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상기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두 문구를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만물과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순수하고 영구불변한 도와 그를 행한 자를 나는 아는 바 없다."


전체를 모아 아래와 같이 4장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일을 풀어가는 도를 집행할 때는 겸허해야된다. 완전 무결하게 채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의 여지를 고려해야된다. 도는 만물이 담겨있는 연못과 같아 깨끗하고 더러운 상황을 모두 감안해야한다. 도를 집행함에 있어 너무 예리한 면은 누그러뜨려야 어지럽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조절하여야 더러움을 하나로 모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물과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순수하고 영구불변한 道와 그리 행했다는 자를 나는 아는 바 없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장

2018. 11. 30. 09:35 from BoOk/pHiLoSoPhY

不尙賢,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부위도
不見可欲,使民心不亂。                                     

부견가욕, 사민심부란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為無為,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도덕경 3장은 사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우민정책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虛其心이나 弱其志 같은 문구는 (특히 弱其志) 대중들은 멍청하게 만들어 배나 불려주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맞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의미가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장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윗사람들이 가져야되는 자세를 우선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라 라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내용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죠.


不尙賢,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부위도
不見可欲,使民心不亂。                               

부견가욕, 사민심부란


이 세문장은 간단히 얘기하자면 기본에 충실할 것이지 과시를 위한 것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고고하며 난해한 성현의 말씀을 찾아 숭상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분쟁부터 없도록 할 것이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적질부터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하고 싶었던 것, 이룩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다니기에 앞서, 민심이 혼란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독단적으로 사람들의 뜻에 역행하여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여서 민심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위의 내용이 앞에서 지도자가 삼가해야할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아니면 어떤 것을 배풀어야할지에 대해 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던 점을 감안하고 이 문장을 해석해야 할 듯 합니다. 


이러한 사유로 성인의 통치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데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만을 관철시키려 하지 말고 근본적 체계를 튼튼히 하는데 있어야 한다


사실 위의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않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철학이나 방향성이 없이 어떻게 집단을 강하게 만들 수 있겠냐는거죠. 하지만 앞장에서 대체적인 사회구성원의 합의가 이루어진 방향으로 일을 해야된다는 점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면,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제가 되어 반복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사회구성원의 생각과 동떨어진 리더 자신만의 마음이나 뜻을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為無為,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3장을 마무리하는 두 문장입니다. (뒤에 수시로 언급되는 無爲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내용 바로 해석하자면,


지도자는 사람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나 욕구를 미리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중간에 소위 무언가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감히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미리 독단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앞의 내용들을 보더라도 無爲는 단순히 마음을 비우고 세상 가는데로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런 해석들 때문에 노자를 읽다보면 무슨 허무의 철학을 읽는 듯한 상황이 종종 되고는 하죠.) 단지 억지부리지 말아라, 너가 생각하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라. 선입견 가지지 말고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중의를 모아서 합의 하에 무리가 없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전체 내용을 모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합니다. 


"고고하며 난해한 성현의 말씀을 찾아 숭상하기에 앞서, 사람들 간의 분쟁부터 없도록 할 것이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적질부터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앞뒤 생각없이 바라던 것만을 찾아다녀 사람들 간의 논란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의 통치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데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보다 사회의 근본적 체계를 튼튼히 하는 방향을 고민하여 이룩하는데 있다.

 지도자는 사람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나 욕구를 미리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중간에 소위 무언가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미리 독단적인 자신만의 의도를 가지고 그를 강요하는 일이 없다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