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14장

2020. 4. 17. 14:20 from BoOk/pHiLoSoPhY

視之不見 名曰夷    시지불견 명왈이

聽之不聞 名曰希    청지불문 명왈희

搏之不得 名曰微    박지부득 명왈미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차삼자 불가치힐 고혼이위일

其上不皦 其下不昧    기상불교 기하불매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승승불가명 복귀어무물

是謂無狀之狀 無象之象 是謂惚恍    시위무상지상 무상지상 시위홀황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영지불견기수 수지불견기후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집고지도 이어금지유

能知古始 是謂道紀    능지고시 시위도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문제와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현상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든 경우죠. 말 그대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그런 상황입니다. (夷, 希, 微라는 단어로 각 상황에 명칭을 다는 것은 뭐 크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 현상만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고민한다고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막연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현상을 관찰만 한다고 이해가 되지는 않을테니까요. (此三者 不可致詰) 노자는 이러한 상황을 일반적인 논리와 질서가 적용되지않은 혼돈 상황으로 묘사합니다. 뭐 위라서 밝고, 아래라서 어두운 것도 아니며 (其上不皦 其下不昧) 실타래가 꼬이듯 뒤엉켜 있어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거죠. 그야말로 無物, 물리적 분석이나 이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그 다음 문장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도 아니고, 형상도 이해가 안되어 그냥 흐릿하게 그러한 문제 또는 현상이 있다는 것만을 볼 수 있다는 거죠. (是謂無狀之狀 無象之象 是謂惚恍) 다가오는 것 같아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뒤따라 가도 그 뒤를 볼 수 없다고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하는 이야기도 결국은 문제의 실마리나 선후 관계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이런 전대미문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될까요? 노자는 기존의 해결책들을 우선 뒤져 당면한 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해보라고 합니다.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익히 알고 있는 예전 해결방식을 사용해서 시작하는 것이 (能知古始) 새로운 문제 해결책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是謂道紀)

 

사실 이 마지막 두문장의 내용은 다소 읽는 사람에 따라 맥빠지는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막막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예전에 이미 답 나와있을꺼야, 잘 찾아봐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고민도 안하고 쉽게 말하는 해결책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뭐 꼭 그럴까요?)

 

비유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수천년 전 어느 원시 부족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나섰다고 해봅시다. 뭐 이유야 여러가지를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기존 거주지가 황폐해져서일 수도 있고, 침략자를 피한 것일 수도 있고….. 암튼 익숙했던 보금자리를 그렇게 떠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나섰을 사람들에게 지나치거나 잠시라도 머물러야했던 야생의 공간은 그야말로 두려움과 공포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어디서 갑자기 맹수가 튀어나올지 모르겠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다 갑자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될 수도 있었겠죠.

 

아무튼 이동이 불가능하다던지, 더 이상 찾아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이들은 당시 도착한 장소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야했을 것 입니다. 막막하고 낮설기만한 이 혼돈의 장소에서 이 부족들이 해야될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전에 자신들이 살았던 마을을 재현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나무를 베어내고, 울타리를 만들고, 임시로라도 거처할 숙소를 만들고, 언젠가는 갖추어야할 시설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 하지만 환경이 달라져서 이전과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전에 필요없었던 난방에 대해 고민을 해야될 수도 있고, 습한 지대에 대한 보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은 유사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이미 적용했었던 해결책을 우선 적용해보고 거기에 맞지않는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고민해보는 것이 효율적인 접근법일 수 있습니다.

 

기수립된 방안 중 어느것이라도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紀)를 제공한다면, 그중 가장 나은 방법을 사용하여 우선 대응하고 모자란 부분에 대한 개선을 찾도록 하자는 것이 노자의 제안입니다.   

 

보려하여도 보이지않는 경우를 가르켜 까마득하다 한다 ()

들으려해도 들리지않는 경우를 가르켜 희미하다고 한다 ()

잡으로해도 쥐지못하는 경우를 가르켜 미세하다고 한다 ()

 

사람들은 이런 경우 상황을 세밀하게 이해하기 힘드니 구분이 어려운 혼돈상황이기 때문이다.

위가 밝은 것도 아래가 어두운 것도 아니다.

규정하기 힘들도록 꼬여있으며, 파악이 안되어 이해할 없다.

상태나 형상이 없는 듯하니 이런 상황에 사람들은 그저 당황스럽고 정신이 아득할 뿐이다.

맞이하여도 앞을 없고, 뒤따라도 뒷면을 없다.

 

경우 예전의 방안을 채택하여 지금의 문제를 다스려도록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옛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실마리가 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13장

2020. 3. 16. 15:54 from BoOk/pHiLoSoPhY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何謂寵辱若驚 하위총욕약경
寵爲下 총위하
得之若驚 失之若驚 득지약경 실지약경
是謂寵辱若驚 시위총욕약경
何謂貴大患若身 하위귀대환약신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及吾無身 吾有何患 급오무신 오유하환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윗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입니다. 심지어 윗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일을 수행하는 목적이 되어 모든 업무 수행의 기준이 윗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지 여부가 되기도 합니다. 인정받지 못할 만한 일은 기피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일만을 찾게 되는거죠.
 
노자는 寵辱若驚이라는 총애를 받는 것과 수모를 당하는 것이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는 말로 13장을 시작합니다. 총애와 질책는 모두 업무 결과에 대한 윗사람의 반응입니다. 놀란다(驚)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기대치 않은 일이 일어날 때 종종 놀라곤 합니다. 윗사람들로 받는 총애와 질책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된다는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이 “놀란다”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에 결과에 대한 상벌이 엄정한 결과 평가에 바탕하기도 하지만, 윗사람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당시 중요시하는 부분이나, 전체적 역학관계나 아니면 심지어 기분에 따라서) 결정되어 지기도 하니까요. 
 
결국 이 寵辱若驚이라는 말은 앞장의 五色, 五音, 五味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추진하고 일을 달성하려 한다면, 돌발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 윗사람의 총애 같은 것을 처음부터 기준으로 삼고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말이죠. 오히려 “貴大患若身” 큰 어려움을 내 몸과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합니다. 처음에도 한번 이야기 한 것 같은데 道가 어떤 문제점에 대한 Solution을 이야기한다면, 그 문제점을 명확히 규정하고 (Define), 분석하는 (Analyze) 과정이 Solution을 도출하는 과정에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문제점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기 마련이죠. 문제 해결이 주가 아니라 자신이 돋보이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경우 종종 이런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내 몸에 병이 난 것과 같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그럴수 있을까요?
 
13장에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몸이 있으니 아픈 것이고, 죽고 몸이 없으면 아플 일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공통체의 문제는 병과 같고, 그 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공통체도 사라진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입니다.
 
몸이 있으니, 병이 있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병이 생길 수도 있고, 가난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문제는 당연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을 찾아 개선을 하려고 하는게 더 이성적인 수순이지 병을,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어버리거나 미봉책으로 그 순간 칭찬만 받으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내 몸에 병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주의를 기울여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치료 방안을 찾으려 애씁니다. 몸 고치고 나서 사람들이 몸이 나아져서 다행이다, 너 몸관리 그때 잘했다는 칭찬 들으려고 하는게 아니죠.
본질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또한 그런 본질에 충실하여 내 몸 생각하듯이 한다면 나라를 맡길만 하기도 하고요. 문제는 터졌는데 칭찬 받을 일만 챙기는 것은 배 아픈데 남에게 아파 보이지 않으려고 열심히 화장만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빈번하게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곤합니다.
 
13장의 내용은 간단히 정리하자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칭찬 받자고 일하지 말아라. 마치 몸을 튼튼하게 하듯 당신이 몸 담고 있는 공통체의 생존을 위해 일한 다는 것을 명심해라. 몸에 병을 찾듯이 조직에 개선이 필요한 점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병을 치유하는 자세로 해결책을 찾아라. 칭찬 받을 일만 찾아다니다가, 정작 공동체가 경쟁력을 잃고 사라지는 우를 범하지말아라."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노자도덕경 13장입니다.
 
총애를 받거나 수모를 받거나 사람이 놀라긴 마찬가지다. 큰 우환은 자신의 몸과 같이 귀하게 여겨야한다. 어째서 총애와 수모를 받으면 사람들이 놀라긴 마찬가지라 말할까. 총애는 윗사람들이 밑에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다. 밑에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를 얻어도 놀라게 되며, 잃게 되어도 놀란다. 그리하여 총애와 수모를 받으면 놀라기는 마찬가지라 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큰 우환을 자신의 몸과 같이 귀이 하라는 것인가. 내게 큰 병이 있다는 것은 내 몸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즉 몸이 없으면 병도 있을리 없다. 내 몸과 같이 나라를 귀이 여기고 사랑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나라를 맡겨도 괜찮다하겠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12장

2020. 3. 10. 17:15 from BoOk/pHiLoSoPhY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五音令人耳聾  오음령인이롱  

五味令人口爽  오미령인구상 

馳騁田獵令人心發狂  치빙전렵령인심발광

難得之貨令人行妨  난득지화령인행방

是以聖人  시이성인

爲腹不爲目  위복불위목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12장의 내용은 일견 3장의 내용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약간 미묘한 차이도 보입니다. 3장의 내용이 기본도 안된 상태에서 높은 이상만을 쫓지 말라는 내용이라면, 12장의 내용은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내실을 망치지 말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五色令人目盲  오색령인목맹

五音令人耳聾  오음령인이롱  

五味令人口爽  오미령인구상 

 

이 첫 세구절의 五色, 五音, 五美는 본질을 가지는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겉을 치장하고 (五色), 온갖 효과음을 남발하며 (五音), 각종 조미료를 때려부으면 (五味) 빈약한 결과물의 본질을 가릴수 있다는 거죠.  

 

馳騁田獵令人心發狂  치빙전렵령인심발광

難得之貨令人行妨  난득지화령인행방

 

다음 두 문구도 그렇습니다. 말타고 사냥하는 것이 (馳騁田獵) 당시 귀족층들의 대표적 레저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일 안하고 놀고 즐기는 것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겁니다. (요즘으로 바꿔 말하면 낮에는 골프 치고, 밤에는 맥주 파티하는 격이죠.) 그렇지만 이것이 생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미치도록 좋아도 말이죠. (人心發狂)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노름이나 한탕주의에 마음이 쏠깃할 수도 있습니다. (難得之貨) 하지만 복권도 어쩌다 한번 사는 것이고, 카지노도 재미로 한번 할 수 있는 것이지 가진 돈을 모조리 쏟아부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인생 망치게 되죠. (人行妨)

 

是以聖人  시이성인

爲腹不爲目  위복불위목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결론적으로 노자는 Leader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 본질에 충실해야하며, 겉으로만 보기 좋은 것을 취하는 행동을 경계하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去彼) 정작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죠. (取此)

 

사족이지만 대학1장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일을 수행함에 있어 우선 순위를 알게되면, 도에 가까워진다는 얘기가 있죠. “知所先後, 即近道矣”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결국 선택의 연속입니다. 여러 방안 중 최선의 한가지를 선택하려면 결국 기본을 잊지말자, 이 일을 하는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상기해야된다는 것이 12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합니다.

 

다섯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하며, 다섯 소리는 사람의 귀를 멀게하고, 다섯가지 맛은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 말을 타고 달리며 사냥을 하면 사람의 마음이 격동되며, 손에 얻기 힘든 재물을 찾다보면 사람의 행동이 이상해지게 된다. 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배를 채우려하지 눈을 즐겁게 하려하지 않으며, 피상적인 것을 들어내어 그 안의 본질을 취하려 한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