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16장

2020. 10. 15. 10:38 from BoOk/pHiLoSoPhY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앞장에 본 바와 같이 虛라는 말은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빈 공간을 말하기 보다, 최소한의 약속된 Rule이 적용된 활동 무대라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靜이라는 말은 이러한 무대를 제공한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무대가 크면 클수록 (虛極) 더 많은 의견과 생각이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대를 제공한 사람은 가능한 (절대가 아니고) 그 무대를 흔들리지 않도록 관리한다면 (靜篤), 그 무대에서 만물이 다시 말하면 다양한 성과가 조화를 이루며 나란히 얻어질 것이라는 말이죠.

 

조금 더 부언하자면 저는 靜이란 말이 그냥 방치하고 입을 다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간섭은 최소화하되, 필요한 경우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한다는 의미를 복합적으로 담고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흙탕물을 빈(虛) 유리병에 넣은 후 흔들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靜) 시간이 지나 부유물은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로 뜨게됩니다. 아무튼 그 유리병에 물을 담고, 흙탕물이 안정화되도록 인내를 발휘하는 것은 노력이 수반되는 행위입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아니죠.)

 

이러한 노력 끝에 그 혼돈스럽던 상황이 정리되고 무언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얻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새로이 정립하게 되는 다른 문제해결의 바탕(근본)이 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고민하여 더하기나 빼기, 나누기와 곱하기 같은 수학공식을 만들어낸다면 이런 이론이 더 발전된 수학 이론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게된다는거죠. 이러한 과정을 도덕경에서는 復이라는 단어로 압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선순환과 같은 의미로요. 눈으로 보이는 현상은 혼란스럽고 다양하지만 (夫物芸芸),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가 잡히고 또 다른 질서 수립을 위한 바탕이 되게된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첫번째 문구는 이미 이야기한 내용의 반복이 될 것 같습니다. (歸根曰靜)

그런데 다음 두 문구가 다소 재미있습니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靜이라한다, 이를 일컬어 復命이라하며, 復命을 常이라 한다”

 

復命의 사전적 의미는 업무를 마치고 그 위의 사람에게 보고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常에 대해서는 이리 첫장에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물론 노자의 첫장에서 常이라는 것은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구불변한 진리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러므로 이번 내용에서의 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기존의 것을 대치하던 아니면 새롭게 수립된 기준이나 법칙, 이론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혼돈된 상황을 정리하여 (靜), 이를 정리하여 구성원이나 리더의 합의를 이루는 단계를 거치면 (復命) 이후 이것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죠. (常)

 

그리고 이러한 기준을 체득화하여 알게되는 것을 (知) 깨우쳤다고 말합니다. (明) 이미 수립된 아니면 알려진 기본적 내용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일을 망치게 된다고 노자는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이번 단원은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운 지식이 사람들(公)에게, 그리고 王에게, 그리고 천하에 받아들여지면 (容) 이것이 새로운 질서인 道가 되는 것이고, 새로운 질서가 안정적이고 오래토록 유지된다면 종신토록 (아마 제후를 가르키는 듯한데) 나라에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도 보고, 조금 다르게 해석하자면 常을 알게된다는 것은 곧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고, 이러한 질서가 공공에서 영구한 질서로 더욱 발전하게 되면 그 이론 자체가 그 단계에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는 첫번째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3.

2020. 9. 16. 13:05 from MeDiTaTiOn/pOeM

문득 니 생각이 나곤 해

동네길을 걷다가...
버스 창 밖을 쳐다보던 중에...

불현듯 니 생각이 날 때가 있어

너는 이제

사라진 장소가 되었고
연주가 끝난 음악과도 같은데

나는 이제

너를 생각해도 더 이상
슬프지도 아쉽지도 기쁘지도 힘들지도 않게 되었는데

그냥 말로 하긴 좀 어려운
그런 기분이 들기는 해

니 생각이 날 때 너의 모습이 그냥
웃고 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15장

2020. 5. 2. 11:52 from BoOk/pHiLoSoPhY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豫兮若冬涉川, 예혜약동섭천,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儼兮其若客, 엄혜기약객,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曠兮其若谷, 광혜기약곡,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탁이정지서청.

孰能安以動之徐生. 숙능안이동지서생.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부유불영, 고능폐이신성.

 

첫 줄의 선비 士자가 나옵니다. 뭐라고 해석을 하던지 엘리트 계층을 지칭하는 명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엘리트 계층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요? 폭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감지하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답을 내놓고,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요? 앞에서 보았듯 노자는 소수의 섣부른 판단과 선택을 경계하는 모습을 시종 견지합니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예로부터 더 나은 방안을 만들어 내려했던 선비들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면 통할 수 있는 (이에 걸맞는) 해결책을 찾아야했습니다.

 

深不可識. 심불가식.

 

그러나 어떤 경우 이제까지 경험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가늠하기 어려운 심오한 문제에 마주하게되기도 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경험을 하였으며, 좋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였더라도 그 지식의 한계는 있게 마련입니다. 운 좋게 자신이 알고 있는 문제를 마주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본인의 경험에 의존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이렇게 본인의 능력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마주하게되면,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거나 이미 나와있던 방식들을 담아내고, 적용하는 방식으로 방향 전환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해보게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큰 회사의 임원이라고 가정한다면, 모든 주어진 업무를 혼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업무의 양도 양이겠지만 임원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고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개의 경우 임원은 조직의 전문가들을 어떻게 효율적인 곳에 배치하여 업무가 원할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중요한 의사결정도 전문가 조직과의 토론과 협의의 결과에 준해 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夫唯不可識 즉, 혼자서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죠.

 

 

더더욱이나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생소한 문제에 봉착하겠된다면, 신중에 신중을 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다른 문제에 적용하는 방식을 적용해본다는 의미는 단순히 그 방식을 그냥 가져다 부족하던 말던 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던지, 아니면 응용을 목적으로 채택해야되는 경우가 더 많을테니까요. 

 

豫兮若冬涉川, 예혜약동섭천,

 

예측함에 있어 겨울날 강 위를 걷듯 선택에 조심하며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

 

일을 착수하고 움직임에 있어서는 모든 Risk 사항을 살피게 됩니다.

 

儼兮其若客, 엄혜기약객,

 

또한 삼가하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함은 마치 손님을 대함과 같이 합니다.

 

이 다음 문구들은 아래의 내용은 저에게는 마치 Brain Storming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

 

부드러운 모습은 마치 얼음이 녹아 풀어지듯 하라는 의미인데, 저에게는 조직의 일원으로 녹아들어가라는 의미로 읽혀졌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Leader의 입장이라도, Brain Storming 과정에서는 동등한 구성원의 하나로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다른 사람들이 염두에 두도록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눈치만 보게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자유로운 의사 개진은 이미 어려워지게 될테니까요.  

 

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도탑기로는 나무 둥지와 같으며

 

曠兮其若谷, 광혜기약곡,

 

계곡과 같이 많은 것을 포용하고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

 

사회에서 꺼리는 터부까지도 모두 고려하여, 해결책의 방편으로 포함합니다.

 

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탁이정지서청.

孰能安以動之徐生. 숙능안이동지서생.

 

앞에 나왔던 上善若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이 경우 다시 생각나게 됩니다. 물은 온갖 더러운 것들은 쓸어담아 그것을 한곳에 고이게도하고, 쓸려내려가게도 합니다. 한곳에 모아 천천히 분해하여 다른 생명체들의 영양분이 되게도 하고, 그러함으로서 생동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이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곳에 이미 있던 것들을,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회피하던 것까지도 포용하여 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이죠.

 

여기서 첫번째 줄은 혼탁한 상태를 진정시켜 천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인데, 이를테면 유리잔에 흙탕물을 집어넣고 가만히 놔두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흙탕물 내의 성분들이 밑으로 가라앉으면, 위에는 맑은 물이 나타나게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흙탕물은 Chaos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죠. 이 Chaos 상황을 진정시키는 과정을 거치면 그 흙탕물에 물이 얼마나 있고 뒤섞여 있던 물질들이 무엇이었는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질서 잡힌 상황이 되게되는거죠. (그러한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은 첫장에 名을 설명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입니다.)

 

이렇듯 질서를 부여하고 나서야 두번째 줄의 내용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안전하게 가동하여 (安以動), 살아움직이게 하는 거죠. 

 

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이런 방식을 지키는 사람은 모든 것이 충족된 상황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상황이 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설령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결국 다른 문제를 맞이할 경우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부유불영, 고능폐이신성.

 

완전무결한 상황을 바라지 않으므로, 기존 방식의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고, 다시 새로운 방안을 고민하여 만들어낼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15장의 내용은 정리하자면 내가 리더라면, 나의 지식만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함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나의 완전무결하지 않음을 인정해라, 차라리 세상의 기존 방식과 다른 사람들의 지식을 구해 그로부터 답을 찾아라, 내가 보기에 섣부르고 지저분한 방식들도 결국 우리 삶의 한 실체임을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렇지만 신중하게 해결책을 고민하라는 말로 보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답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항상 명심해야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개선해야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듯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