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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8.11.11 노자도덕경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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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5.12.21 '15년 독서 목록 1
  9. 2015.12.04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0. 2015.11.22 첫사랑

노자도덕경 4장

2018. 12. 7. 13:18 from BoOk/pHiLoSoPhY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 이용지, 혹부영

淵兮似萬物之宗.

연혜사만물지종

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湛兮似常存.

담혜사상존

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갈 수록 내용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도 모호하고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될지 어려웠는데, 특히 여기서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문구는 象帝之先이었습니다. (정말 무슨 말이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한줄한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 이용지, 혹부영


여기서 沖字는 사전을 보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화하다, 겸허하다, 담백하다, 비다, 공허하다 등등) 어떤 내용이 가장 적합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세번째 문장의 내용을 감안하면 겸허하다는 내용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독선적으로 고집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여도 그렇고요. 아무튼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일을 풀어가는 방식인 도를 집행할 때는 겸허해야된다.
 완전 무결하게 채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둬야된다."

대상을 규정하고 문제를 파악한 다음에 솔루션을 내고 이에 따라 개선을 하거나 관리를 하는데, 내놓은 솔루션을 집행함에 있어서 가져야하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 사용되었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 철두철미하게 빈틈없이 함은 중요하죠. 하지만 다른 방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는 둬야된다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아래에도 계속 얘기는 이어집니다.

淵兮似萬物之宗.

연혜사만물지종


위의 문구를 풀면 "연못이로구나, 만물의 근원과 같다." 해석이 됩니다. 여기서 字가 뒤의 字와 댓구가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연못은 많은 자연의 것들을 담고있고 온갓 수초와 벌레, 물고기 등 그에 의지하는 것들에 삶의 터전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투명하고 맑고 깨끗하지는 않죠. 때로는 물냄새도 나고, 진창이 있기도 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죠. 道라는 것도 이러하다는 점을 비유로 들어 연못의 이미지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 선택한 道가 완전무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점진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아니면 하나의 방안만을 가지고 일을 행할 것이 아니라, 여하한 경우에 대비한 Plan B도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고요. 세상사는 기대하고 생각한 데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법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좀 더 자세히 예를 들어서 앞에 내용을 보완하는 문구입니다. 


"도를 집행함에 있어 너무 예리한 면은 누그러뜨려야 어지럽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조절하여야 더러움을 하나로 모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湛兮似常存.

담혜사상존

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이 마지막 두 문구가 무슨 의미일지 고민이 되었는데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댓구를 이루는 구절로 이해하여 풀었습니다. 은 "맑을 "字 입니다.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연못이 만물을 담아 탁하다면, 이에 반하여 절대적인 선이나 기준이 있어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절대불변의 법칙을 가르키기 위해 사용한 비유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象帝는 뭐 다른 번역서에는 고대의 제왕부터 시작해서 하느님 등등으로 해석한 것들이 눈에 띄는데 그래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왠 갑자기 고대의 제왕이나 창조주가 여기서 나올까요? 저는 象은 만물이고, 帝는 나라를 가르키는 것으로 따로 떨어뜨려서 푸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이 생기고 사람들의 나라가 생기기 앞어서..."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상기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두 문구를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만물과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순수하고 영구불변한 도와 그를 행한 자를 나는 아는 바 없다."


전체를 모아 아래와 같이 4장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일을 풀어가는 도를 집행할 때는 겸허해야된다. 완전 무결하게 채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의 여지를 고려해야된다. 도는 만물이 담겨있는 연못과 같아 깨끗하고 더러운 상황을 모두 감안해야한다. 도를 집행함에 있어 너무 예리한 면은 누그러뜨려야 어지럽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조절하여야 더러움을 하나로 모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물과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순수하고 영구불변한 道와 그리 행했다는 자를 나는 아는 바 없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장

2018. 11. 30. 09:35 from BoOk/pHiLoSoPhY

不尙賢,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부위도
不見可欲,使民心不亂。                                     

부견가욕, 사민심부란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為無為,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도덕경 3장은 사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우민정책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虛其心이나 弱其志 같은 문구는 (특히 弱其志) 대중들은 멍청하게 만들어 배나 불려주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맞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의미가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장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윗사람들이 가져야되는 자세를 우선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라 라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내용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죠.


不尙賢,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부위도
不見可欲,使民心不亂。                               

부견가욕, 사민심부란


이 세문장은 간단히 얘기하자면 기본에 충실할 것이지 과시를 위한 것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고고하며 난해한 성현의 말씀을 찾아 숭상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분쟁부터 없도록 할 것이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적질부터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하고 싶었던 것, 이룩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다니기에 앞서, 민심이 혼란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독단적으로 사람들의 뜻에 역행하여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여서 민심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위의 내용이 앞에서 지도자가 삼가해야할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아니면 어떤 것을 배풀어야할지에 대해 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던 점을 감안하고 이 문장을 해석해야 할 듯 합니다. 


이러한 사유로 성인의 통치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데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만을 관철시키려 하지 말고 근본적 체계를 튼튼히 하는데 있어야 한다


사실 위의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않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철학이나 방향성이 없이 어떻게 집단을 강하게 만들 수 있겠냐는거죠. 하지만 앞장에서 대체적인 사회구성원의 합의가 이루어진 방향으로 일을 해야된다는 점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면,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제가 되어 반복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사회구성원의 생각과 동떨어진 리더 자신만의 마음이나 뜻을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為無為,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3장을 마무리하는 두 문장입니다. (뒤에 수시로 언급되는 無爲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내용 바로 해석하자면,


지도자는 사람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나 욕구를 미리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중간에 소위 무언가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감히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미리 독단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앞의 내용들을 보더라도 無爲는 단순히 마음을 비우고 세상 가는데로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런 해석들 때문에 노자를 읽다보면 무슨 허무의 철학을 읽는 듯한 상황이 종종 되고는 하죠.) 단지 억지부리지 말아라, 너가 생각하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라. 선입견 가지지 말고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중의를 모아서 합의 하에 무리가 없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전체 내용을 모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합니다. 


"고고하며 난해한 성현의 말씀을 찾아 숭상하기에 앞서, 사람들 간의 분쟁부터 없도록 할 것이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적질부터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앞뒤 생각없이 바라던 것만을 찾아다녀 사람들 간의 논란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의 통치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데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보다 사회의 근본적 체계를 튼튼히 하는 방향을 고민하여 이룩하는데 있다.

 지도자는 사람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나 욕구를 미리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중간에 소위 무언가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미리 독단적인 자신만의 의도를 가지고 그를 강요하는 일이 없다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장

2018. 11. 22. 17:21 from BoOk/pHiLoSoPhY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첫장에서 道와 名에 대해 우선 화두를 던지고 名에 대해 주로 이야기 하였다면, 두번째 장은 名을 부여하는 의미와 道에 대해 운을 때는 듯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첫 두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이 두 문장은 얼핏 보았을 때는 爲美와 爲善이라는 문구가 있어 꾸미고 위선을 행하는 것이 추하고 선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아래의 내용과도 흐름이 어색하고 첫장의 내용과도 갑자기 방향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죠. 오히려 이 두 문장은 사람들이 대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또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추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만들거나 선하게 하려한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문구들이 전반적으로 대립되는 명제가 사실은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미의 설명으로 연결되는 것도 그렇고 성인이 무언가를 행하고 이루어낸다는 말을 감안하여도 아무것도 하지말아라라는 설명은 좀 앞뒤가 않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에 장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첫단계 성격이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개념을 정하고 나면 상대되는 추하다는 개념도 성립될 것이고 착하다는 개념이 성립되면 반대되는 선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규정도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사람들이 개선의 대상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후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게되는 것이죠. 


풀어서 이 두 문구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려한다

또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게 만들려 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글자는 "皆"자 입니다. 노자는 절대선이나 절대미, 이를테면 이데아적인 대상을 규정하고 사람들이 이를 추구해야된다는 당위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전반적으로 알려진 규정이나 관습에 따라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는 현상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추한 것이 있으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꾸미려 하고, 모두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하게 고치려 한다는 거죠.


영구불변의 선이나 미의 기준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발전이 없습니다. 오늘 이 방향으로 개선을 하고 내일 다시 고민하여 다른 방식으로 추가 혹은 근본적인 개선을 꾀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은 어떤 특정 엘리트 집단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회구성원의 전반적인 합의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습니다. 노자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우선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앞에 문장에 이어서 대립되는 대상들을 몇몇 열거하여 예를 들고 있습니다. 1장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有와 無가 서로 상생하는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고, 어려움과 쉬움이 상호 보완관계에서 성립되고, 길고 짧음이 있어 비교를 할 수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어 경사가 이루어지며, 음악과 목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전후가 있어 순서를 정해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길게 얘기할 내용은 저로서는 없네요.)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의 두 문장은 聖人 즉 본보기로 삼아야할 사람들이 어떻게 했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문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머무를 處'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되는지가 다소 어려움이 있는데요, 앞의 내용등을 감안하면 상식적인,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자리를 둔다, 선택한다 정도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이에 자기 주장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으며, 남들을 가르킴에 있어서도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교화한다."


다소 모순적일 수 있는 것은 절대적 기준으로 판단될 만한 聖人을 노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방법일 수도 있고, 또한 관습적으로 이러한 문구를 사용하였을 수도 있지만 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상대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노자에서 절대 기준의 대표적 이미지인 聖人을 사용한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聖人이 절대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대체적으로 道를 행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올바른 방향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두번째 문장은 앞에 聖人이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하면 너무 의미가 거창해져서 그보다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주고 의미를 만들어낸다라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만사에 있어서 누군가 최초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은 필요하니까요.  이를테면 다윈이 진화론을 알아내고,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알아내었더라도 그들이 무엇인가를 바라고 알아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연하죠, 우주를 어떻게 소유합니다.) 


이에 두번째 문장은 아래와 같이 해석합니다.


"성인은 만물의 의미를 찾아내어도 무언가를 바라여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를 찾아주어도 이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위의 두문장에서 이어서 계속 道를 행하는 기본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恃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어떤 자신만의 신념을 앞에 깔고 간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무언가 뒷일을 믿는다 (기대한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죠. 하지만 뒤의 내용들을 감안하면 이러한 해석은 먼가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어떤 일을 하고나서 그 과정을 너무 신뢰하지는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뒤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일단 첫 문장을 해석하면 뒤에는 다소 쉽게 해석되는 느낌입니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과정만이 옳다고 믿지 않으며, 힘들여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서 그 이룩한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성취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번의 성취에 만족하고 뒤에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는 일이죠. 기업의 예를 들면 더 이해가 쉬울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초대박 상품을 하나 만들어내게된다면 이후 아무 것도 안해도 그 제품이 천년 만년 그 회사를 먹여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혁신과 개선이 이루어져야되는 것이죠. 그런 과정이 있어야 이전의 성과가 의미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또한 한번 수립된 개선의 경험은 다음 또 그 후의 개선에 Reference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디 사라지는게 아니죠. 풀어서 생각하면 위의 두 문구는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려한다

또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게 만들려 한다. 

有와 無는 서로 상생하는 방식으로 공존하며, 어려움과 쉬움이 상호 보완관계에서 성립되고, 

길고 짧음이 있어 비교를 할 수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어 경사가 이루어지며, 

음악과 목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전후가 있어 순서를 정해 진행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이에 자기 주장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으며, 

남들을 가르킴에 있어서도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교화한다.

만물의 의미를 찾아내어도 무언가를 바라여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를 찾아주어도 이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과정만이 옳다고 믿지 않으며, 힘들여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이룬바에 만족하여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서 그 이룩한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1장

2018. 11. 11. 09:16 from BoOk/pHiLoSoPhY

道可道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고 상무욕이 관기묘

常有欲以觀其徼 상유욕이 관기교  

此兩者同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동 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만 시간 나는데로 틈틈히 노자도덕경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 부문 말도 안되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차피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것이고,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도 내용이 제 각각이니 여기 글 하나 올린다고 큰 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노자도덕경은 우선 道와 名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道可道非常道 도가도비상도 

名可名非常名 명가명비상명

 

모르는 한자는 하나도 없는데 보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지 싶다. 


생각 해보자면 사람들은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대상을 규정하고 (Naming) 그 후 대응 방안을 만들어 낸다. (Solution이나 Rule) 노자도덕경은 그러한 대응방안()과 대상을 규정하는 행위 ()로부터 시작한다.

 

첫구절의 세문구 道可道는 이미 해결책이 나와있는 방안 정도로 해석하였다.

名可名 또한 이미 정의된 대상, 이름이 주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각 문구 뒤의 非常道와 非常名은 무슨 의미일까? 常자는 "항상 상"자이므로 常道와 常名은 변하지 않는 방안과 변하지 않는 정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위의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풀어서 첫 두줄만을 정리하자면

 

"이미 수립된 법칙이나 해결책이 있더라도 이것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 될 수는 없으며, 어떠한 대상에 대해 내려진 정의도 영구 불변하지는 못한다."

 

인간들이 수립한 모든 법칙이나 규칙, 관습, 제도 등은 시간이 지나면 수정 / 보완되고, 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그리고 100년 200년이 지나면 변하지 않는 것이 드물다. 


이런 사례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동안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지구가 광대한 우주의 한 행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나라는 수년 전까지 외도를 저지르면 법으로 간통죄를 처벌하였으나, 이제 그 법은 폐지되었다. 이름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불과 백년전에는 한양이나 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그보다 더 오랜 옛날에는 숱한 다른 지명으로 불리었을 것이다. 아직도 고고학자들은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논쟁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왕검성이 어디었는지에 대해서도 다른 이론들이 펼쳐지고 있다.


변하지 않는 법칙은 없으며, 주어진 이름 또한 영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여기 두 줄을 단순히 직역하면 "無名은 천지의 시작이며, 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라는 정도로 해석이 될 수 있겠다. (어? 간단히 해석되네... 그런데 무슨 말이지?) 해석해놓고 보니 무슨 의미인지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단원은 名에 대해 한단계 더 설명을 자세히 하는 문장이라고 이해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천지가 시작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無名이었으나 (정의됨이 없었으나) 만물이 생겨남에 따라 有名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다)."


이를테면 뭐 김춘수의 "꽃"과 같은 문장이라고나 할까? 의미없던 무수한 세상의 모든 것들 중의 하나에 내가 이름을 지어주면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런... 


다른 의미로 생각하자면 無名사람들이 정의 내리지 않은 사물이나 현상이므로 천지의 모든 대상을 말하는 것이며, 有明은 그중에서도 의미가 부여된 대상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가 통계를 할 때 관심을 가지는 대상 전체가 모집단이라고 한다면 이 전체에 대해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그 중 일부는 표본집단으로 선출하여 이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짓고 방안을 수립하더라도 이는 전체 광대한 우주의 모든 현상 중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일부에 대해 차츰 그 영역을 넓히면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常有欲以觀其徼   상유욕이관기교(요) 

 

이 구절의 앞의 세 단어는 항상 無欲이라고 해석될수도 있겠지만 常無를 欲한다면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욕구가 있냐 없냐로 문장이 넘어가는 것이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고 非常을 常無로 바꿔서 표현한 것이라는 쪽으로 이해하면 좀더 앞의 내용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欲이라는 글자도 바란다나 욕망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의미 전달이 다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하고자한다는 식의 의미로 해석했다. 


위의 내용이 모든 것이 영구불변하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점에 대해 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이를 전제로 모든일을 해나가려 한다면 ..."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밑의 문장은 "변치않고 영속하는 것을 찾는다면..."으로 대치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다음은 妙와 徼에 대해서 적절한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한데 상호 대치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해석도 필요했다. 妙라는 단어는 사실 그 사전적 의미가 다소 확실해서 이론의 여지가 달리 없을 것 같다. 묘책이나 묘약이라는 단어서 쓰이는 의미를 생각하면 잘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어렵게 찾아낸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의미가 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는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구하다, 순찰하다, 돌다"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는 "돈다"는 내용에 주목했다. 妙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궁극의 진리나 해결책이라면 徼는 밖으로는 들어나 있으나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변모한다는 것이 아닐까?


위의 내용들은 정리하여 이 두줄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고 무언가를 해나가려 한다면 그 깊은 진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나, 종시 불변하는 영구불변의 것을 원하고자 한다면 결국 그런 것은 없으며 한 때의 진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此兩者同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동 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1장의 마지막 두 문구다. 여기서 兩者는 마지막 異名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無名과 有名이라고 유추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즉 有名과 無名은 다른 이름을 가졌으나 같은 근원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사실 이 다음 문구가 해석이 다소 난해하다.


우선 두번째 문구의 同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위에서 이야기한 근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異名을 가진 有와 無에 대해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모두' 또는 '같이'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모두'라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玄이라는 말도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다. 玄이라는 한자의 의미는 사실 간단하다. 천자문 제일 첫문장에 나온다. (天地玄黃) 검을 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다른 의미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딱히 어느 의미가 적합할지도 의문이다. 다른 의미로도 해석을 하려 했는데 대학 1장을 읽다보니 반대되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1장의 첫 구절은 "大學之道 在明明德"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明"자는 구성원들 간의 Consensus가 이루어진, 쉽게말하자면 뻔한 상식, 당위성을 가진 덕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玄"은 그 반대로 아직 의미가 정해지지 않은 또는 더 깊이 의미를 가지자면 미쳐 고려의 대상이 되지못한 대상을 가르키기 위해 사용된 형용사로 보았다. 


위의 내용들을 반영하여 두 문장을 해석하자면


"이 두가지 無名과 有名은 이름은 다르나 결국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니, 이 모두는 어두운 무지의 영역에서 비롯되어 玄이라 이른다. 어둡고도 어두우나 모든 근본적 이치가 이로부터 비롯된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Six Sigma의 기본 절차는 DMAIC다. Define / Measure / Analyze / Improve / Control 인데, 우선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문제를 규명하고 (Define) 이후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확인을 위해 측정 (Measure) 및 분석 (Analyze)를 하며 이후 이에 대한 개선 (Improve)와 개선 이후의 관리 (Control)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노자 첫장의 名은 결국 Define / Measure / Analyze 절차와 관련되며 뒤에 계속 언급될 道에 대한 이야기는 Improve 및 Control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위에 이야기한 내용들을 묶어서 아래와 같이 풀어본다.


"이미 수립된 법칙이나 해결책이 있더라도 종래 변하지 않는 영원한 법칙이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어떠한 대상에 대해 내려진 정의도 영구 불변하지는 못한다. 천지가 시작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정의됨이 없었으나, 만물이 생겨남에 따라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 나름 대상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고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그 깊은 진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나, 종시 불변하는 영구불변의 것을 찾고자 한다면 결국 그런 것은 없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대상이어도 의미가 변해가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이 두가지 無名과 有名은 이름은 다르나 결국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니, 이는 드러나있지 않았던 어두운 무지와 미지의 상태이다. 어둡고도 어두우나 결국 모든 근본적 이치가 이로부터 비롯된다."


Posted by Tony Kim :

소년이 온다

2018. 8. 31. 09:54 from BoOk/nOvEl

"소년이 온다"는 80년 광주, 도청 함락 직전의 동호라는 중학생 소년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전체 6장 단락 각각에 동호와 그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있으며, 마지막 단락에서는 최근의 시점에서 동호의 이야기를 다시 다루고 있습니다.
 
'80년 광주는 이제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한국전쟁이 40년 전의 이야기였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광주는 그만큼이나 이제 까마득한 이야기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났더라도 대한민국 군대가 비무장 자국민들에게 우발적이면서도 1회성이 아닌,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실탄을 사용하여 무력진압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진압군은 시위와 무관하게 길을 다니는 사람들을 살상했습니다.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고생, 길거리에 가족을 기다리던 임산부, 골목길을 걸어가던 고교생, 시위대를 바라보던 노인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쿠데타의 딸을 대통령으로 세웠었고, 역사는 몇십년을 다시 후퇴할 뻔 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까요? 지금도 곡학아세로 다시 시간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잘못한 것을 진영의 논리에 묻혀 무조건 지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국민들을 속이고 내빼기 바빴던 인간을 국부라느니, 건국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을 보고 있자면 그 사람들에 대한 분노에 앞서 앞으로 저 말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혹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광주의 학살자도, 일제의 주구들도, 온갖 부정부폐의 원흉들도 제대로 단죄 받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어버리면 과거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무엇이 이익인가에 앞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였으면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17년 독서 목록

2018. 1. 2. 12:45 from BoOk

‘17년도 끝나고 작년에 읽었던 책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세븐킹덤의 기사 (조지 R.R. 마틴)

- 마틴옹은 얼불노부터 빨리 마무리 하셨으면

2. 공터에서 (김훈)

- 국제시장의 또 다른 시각

3. 얼음과 불의 노래 1권 (조지 R.R. 마틴)

- 개정판으로 새로워진 얼불노

4.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아르놀트 하우저)

- 사회의 발전과 예술의 변화가 불가분이라는 당연한 주제를 흥미롭게 펼쳐놓다

5. 토지 전 20권 (박경리)

- 최고의 장편소설. 다른 말이 필요없다.

6.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 생각과는 다른 결말. 복잡한 로직과 영혼은 굳이 다르게 봐야하는가.

Posted by Tony Kim :

토지

2017. 11. 24. 16:18 from BoOk/nOvEl
토지 1~20 세트
국내도서
저자 : 박경리
출판 : 마로니에북스 20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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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20권을 이럭저럭 완독했습니다. 5월부터 읽기 시작해서 11월에 마무리했으니 근 반년 가까이 걸려 책을 다 읽었습니다.

 

사실 이만한 분량의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사람들이 토지 읽기를 주저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점에 가서 토지 전질을 보는 순간 그만 질려버리고 마는거죠. 토지가 5부가 마무리된 것이 94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미 작품 전부가 마무리된지 20년이 훨씬 지났는데 저도 읽을 생각을 하지않고 있었습니다. 왠만한 장편소설이 약 10권 분량인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도 2배에 달하는 작품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분량도 그렇지만 굉장히 긴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서 한참을 읽다보면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헥갈리는 경우도 자주 생기더군요. 작품의 성격이 많이 틀리기는 하지만 나중에는 "홍루몽"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도 좀 들었었습니다. 책을 처음 읽을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별책으로 판매되는 인물사전은 꼭 사서 같이 보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암튼 그러저러한 사연이 있었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방대한 책을 사서 모셔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토지는 ebook으로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토지는... 사실 저한테는 막상 읽기 시작하니 의외로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습니다.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특히 1부와 2부는 굉장히 몰입이 되더군요. 전체적으로 이렇게 긴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추력은 1부와 2부에서 받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도 따로 언급하셨지만 3부와 4부를 작성하면서는 굉장히 힘이 들으셨던 것 같고 독자 입장에서도 (특히나 4부는) 그전만큼 잘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그전까지는 상황을 통해 의미를 담아냈는데 그걸 그대로 설명하듯 쏟아내는 느낌이랄까요. 가장 분량이 적은 4부가 가장 힘들게 읽혀졌습니다. 마치 공중에 쏘아진 새총 같다는 생각입니다. 새총을 벋어난 돌이 쏜살같이 1, 2부에서 날아가다가 3, 4부에서 힘겹게 정점을 찍고 빠른 속도를 회복하여 5부에서 마무리를 지는 듯한.

 

토지는 초반에 선명한 선악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고귀한 신분의 아름다운 여인이 비열하고 탐욕스런 악당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만 절치부심하여 마침내 복수한다는 이야기. 절대 악당 조준구는 반성도, 후회도, 고뇌도 없으며 처자식조차 외면하는 이기적인 존재. 사실 이런 갈등 구조가 토지에는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월선과 임이네, 보연과 홍이, 우개동과 오씨 집안 등등.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이런 악인들은 대부분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되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면 토지는 사실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내용에서 크게 벋어나지 않는다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일부 인물의 평면적인 묘사도 다소 아쉽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습니다. 임이네 같은 인물은 사실 초반 수다스럽고 다소 경망스러워보이기는 하더라도 생동감있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남편의 사망과 집안의 몰락에 의해서라지만 인물 내부의 갈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 180도로 탐욕스럽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부분도 그렇습니다. 오카다 지로라는 인물이 인실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당시의 사회상이나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였는 분위기를 감안한 묘사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인실과의 관계에 대해 면전에 독설을 날리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쇼비니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모습들도 자주 나오는데 일본은 문화라고 할만한 것도 없는 야만스러운 인종이라는 식의 표현은 반일/항일과 혐일을 혼돈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물론 일본강점기 때 그들이 우리에게 한 행위들은 치가 떨리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식의 혐오는 결국 당시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고요.

 
하지만 그러저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듯 촘촘하고 완벽하게 묶어 풀어나가는 점은 토지의 대단한 장점 중에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은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래 1부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토지의 한 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포수는 꾸러미를 모로 세워 창살 사이로 넣으려 했다.
"강포수, 손."
"머라꼬."
강포수는 흠씬 놀라며 물러섰다.
"손."
귀녀는 여전히 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어 놓고 있었다. 강포수는 겁을 내어 떨면서 조그마한 귀녀의 손을 잡아본다. 조그마한 손, 손아귀 속에서 바스러질 것 같은 손이다.
"마, 마, 많이 여빘고나."
"강포수의 손은 쇠가죽 겉소."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였다.
"이, 이거 배고플 긴데."
다시 꾸러미를 디밀려 하는데 이번에는 귀녀 쪽에서 강포수의 손을 거머잡았다.
"강포수, 내 잘못했소."
"알았이믄 됐다."
"내 그간 행패를 부리고 한 거는 후회스럽아서 그, 그랬소. 포전 쪼고 당신하고 살 것을, 강포수 아, 아낙이 되어 자식 낳고 살 것을, 으으흐흐......"
밖에 나온 강포수는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짐승같이 울었다. 하늘에는 별이 깜박이고 있었다.

 

 

마지막 권을 덮으면서 순간 조금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토지는 주인공 서희가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 때부터 50대가 되는 반백년에 가까운 굉장히 긴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그 많은 사람들의 그 많은 인연과 고통과 이야기들을 같이 하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지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Posted by Tony Kim :

'15년 독서 목록

2015. 12. 21. 10:23 from BoOk

아직 ‘15년이 한 열흘 정도 남았지만 이쯤에서 금년에 읽었던 책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비잔티움 연대기 2, 3 (하드커버, 존 줄리어스 노리치)

-       서로마를 이은 제국의 천년의 갈등과 영화

2.     파운데이션의 서막. 파운데이션을 향하여 (아이작 아시모프)

-       명작은 아니어도 거대한 아시모프 세계관의 일단락

3.     강철도시 (아이작 아시모프)

-       잘못된 번역이 작품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보여주는 일례

4.     환영의 도시 (어슐러 르 귄)

-       SF가 단순히 아이들이나 읽는 우주전쟁만을 다루는 장르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권하고 싶은

5.     사람의 세상에서 죽다 (리루이)

-       집단 폭력의 무서움. 백사전의 아름다운 부활.

6.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로맹 가리)

-       불편했던 위선자의 해피엔딩

7.     Howl’s Moving Castle (다이애나 윈 존스)

-       환상적이고 재치 넘치는 사랑 이야기

8.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르 귄)

-       소문만 못했던 시리즈의 시작

9.     악몽 (조이스 캐롤 오츠)

-       한참이 지나서도 생각나는 첫 단편

10.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도미히코)

-       만화적인 상상력이 어우러진 경쾌한 사랑 이야기

11.   용재총화 (성현)

-       조선시대의 사람 이야기

12.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코타로)

-       왁자지껄. 휴가처럼 읽을 수 있는 코메디 한편.

13.   한국인은 미쳤다 (에리크 쉬르데주)

-       다른 문화를 이해 못한 것은 양쪽 모두

14.   고대에서 봉건제 사회로의 이행 (페리 앤더슨)

-       중세로의 전개에 경제적 불가피성

15.   수이전 (미상)

-       잃어버린 기록의 파편

16.   가면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       지루한 스토리. 심심한 반전.

17.   엘시드의 노래 (미상)

-       스페인 마초의 영웅담.

18.   스토너 (존 윌리엄스)

-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감동적인 인생이 담겨져 있다.

19.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권 (플루타르코스)

-       만만치 않은 고전의 무게

20.   알리스 (유디트 헤르만)

-       상실의 소중함. 섬세한 우울함.

21.   첫사랑 (투르게네프)

-       고전에 감춰진 압도적인 사랑의 감정

22.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순수한 영혼에 전쟁이라는 야만성이 남기는 깊은 상흔

 

Posted by Tony Kim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국내도서
저자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 / 박은정역
출판 : 문학동네 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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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작품은 세계2차대전 당시 참전했던 200명 가량의 당시 소비에트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크리스탈 나흐츠와 비슷한 구도를 가졌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20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지만 어쩌면 문학작품으로서는 그저 그런 정도의 책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참전자들의 에피소드 외의 작가의 Comment는 어쩔 때는 지루하기도, 어울리지 않게 비장하게도 아니면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사실 2차대전 발발 이전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관계였습니다. (조약을 맺을 당시 서방의 프랑스와 영국은 멘붕에 빠졌었죠.) 그러던 독일이 1941 6월에 전격적으로 소련 침공에 나섭니다. 지금도 이때 독일 침공의 배경이나 적절성 여부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아무튼 침공 초기만 놓고 보면 독일의 승승장구였습니다. 1930년대 소비에트 내부에 발생된 숙청에 의해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의견 등 참패의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아무튼 소비에트의 주력군은 전쟁 초기 거의 괴멸 상태에 빠지게 되고 삽시간에 레닌그라드까지 밀리게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참전하여 전선으로 달려갑니다. 최전방의 고사포 부대, 저격수, 전투기 조정사로부터 세탁병, 의무병, 통신교환수 등 다양한 부문의 참전자들의 증언이 책 전체에 걸쳐 소개됩니다.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책의 사연들을 읽다 보니 불과 열여섯, 열여덟에 불과한 아이들이 전쟁의 참화에 휩쓸리는 사실 하나로도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습니다. 누구는 원피스 차림으로 또 누구는 가진 돈을 털어 사탕을 한꾸러미 사들고 전선으로 향했습니다.

 

이 작품의 주목할 만한 점은 소수자인 여성의 입장에서 참전 경험을 풀어놨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때로는 여성의 감성을 다루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성이라고 남성보다 더 연약하다던지 감성적이라던지 하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성 중에도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있고 안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있고 멍청한 사람도 있을 거고요.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습니다. 비중이 좀 더 많냐 적냐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건 남성이라고 다를 바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뛰어든 군에서 여성은 결국 소수자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참전용사들이 받은 싸늘한 냉대는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공산주위를 위해 꽃 같은 청춘을 바쳤다. 전쟁에 돌아오고 나는 더 이상 보통 여자가 될 수 없었다. 지금도 붉은 색은 꽃조차도 바로 쳐다보지 못하게 된 나에게 조국은, 가족은, 이웃은 전쟁터의 남자들에 둘러싸여 몸을 굴린 추잡한 여자로 모함하고 포로로 잡혔으면서 왜 죽지않고 살아남았냐며 배신자의 낙인을 찍었다며 울분을 토합니다. 비난 받을 사람이 누구냐? 전쟁이 터지면 막강한 소비에트의 전사들의 칼에 적들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인민을 기만한 그들이, 파시스트의 탱크부대에 대항하라고 기마대를 보낸 그들이 조국을 배신한 사람들이 아니냐고.

 

영화로도, 소설로도 아니면 음악이나 미술로도 전쟁을 다룬 작품들은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국가 대 국가라는 전쟁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희생되는 이름 없는 전사들에게 결국 전쟁은 야만적인 폭력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 작품은 다시 일깨워줍니다.

Posted by Tony Kim :

첫사랑

2015. 11. 22. 21:18 from BoOk/nOvEl

 

첫사랑
국내도서
저자 :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 김학수역
출판 : 문예출판사 200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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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스토리로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짧은 중편 소설입니다. 오히려 어떤 면으로는 다소 막장 같은 요소도 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약 150쪽에 담겨진 이 짧은 사랑 이야기는 지금 봐서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고전적인 어투나 시대적 배경을 걷어내고 순수하게 16살 (우리나이로는 18살 정도 되는) 소년의 감성에만 주목한다면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소설의 줄거리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워낙에 분량이 적다는 것도 그렇지만 스토리가 이 소설의 전부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소년이 여인에게 느끼는 설래임과 망설임, 좌절감, 질투심, 사랑의 날카로운 고통과 기쁨을 작가는 작품 전체에 걸쳐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하여, 이미 오래 전에 경험하여 이제는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휘몰아치듯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인공을 포함해 지나이다와 그녀 주위의 남자들은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의 감정을 다스리려 하였습니다. 도망치려고도 하고, 쫓아내기도 하고, 갈구하기도 하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손에 쥐려고도 하였죠.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의 이유는 결국 지나이다의 다음 말이 가장 잘 설명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 정말 사랑하지 않으려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군요."

 

첫사랑의 아픔이 있던 사람이라면 조금은 시간이 지나 모든 감정들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을 즈음에 읽어보아도 괜찮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이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이 40이 넘어 그때를 회상하는 식으로 되어있기도 하니까요.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