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豫兮若冬涉川, 예혜약동섭천,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儼兮其若客, 엄혜기약객,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曠兮其若谷, 광혜기약곡,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탁이정지서청.
孰能安以動之徐生. 숙능안이동지서생.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부유불영, 고능폐이신성.
첫 줄의 선비 士자가 나옵니다. 뭐라고 해석을 하던지 엘리트 계층을 지칭하는 명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엘리트 계층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요? 폭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감지하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답을 내놓고,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요? 앞에서 보았듯 노자는 소수의 섣부른 판단과 선택을 경계하는 모습을 시종 견지합니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예로부터 더 나은 방안을 만들어 내려했던 선비들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면 통할 수 있는 (이에 걸맞는) 해결책을 찾아야했습니다.
深不可識. 심불가식.
그러나 어떤 경우 이제까지 경험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가늠하기 어려운 심오한 문제에 마주하게되기도 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경험을 하였으며, 좋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였더라도 그 지식의 한계는 있게 마련입니다. 운 좋게 자신이 알고 있는 문제를 마주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본인의 경험에 의존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이렇게 본인의 능력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마주하게되면,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거나 이미 나와있던 방식들을 담아내고, 적용하는 방식으로 방향 전환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해보게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큰 회사의 임원이라고 가정한다면, 모든 주어진 업무를 혼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업무의 양도 양이겠지만 임원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고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개의 경우 임원은 조직의 전문가들을 어떻게 효율적인 곳에 배치하여 업무가 원할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중요한 의사결정도 전문가 조직과의 토론과 협의의 결과에 준해 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夫唯不可識 즉, 혼자서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죠.
더더욱이나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생소한 문제에 봉착하겠된다면, 신중에 신중을 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다른 문제에 적용하는 방식을 적용해본다는 의미는 단순히 그 방식을 그냥 가져다 부족하던 말던 사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던지, 아니면 응용을 목적으로 채택해야되는 경우가 더 많을테니까요.
豫兮若冬涉川, 예혜약동섭천,
예측함에 있어 겨울날 강 위를 걷듯 선택에 조심하며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
일을 착수하고 움직임에 있어서는 모든 Risk 사항을 살피게 됩니다.
儼兮其若客, 엄혜기약객,
또한 삼가하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함은 마치 손님을 대함과 같이 합니다.
이 다음 문구들은 아래의 내용은 저에게는 마치 Brain Storming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
부드러운 모습은 마치 얼음이 녹아 풀어지듯 하라는 의미인데, 저에게는 조직의 일원으로 녹아들어가라는 의미로 읽혀졌습니다. 아무리 본인이 Leader의 입장이라도, Brain Storming 과정에서는 동등한 구성원의 하나로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다른 사람들이 염두에 두도록 행동한다면, 사람들은 눈치만 보게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자유로운 의사 개진은 이미 어려워지게 될테니까요.
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도탑기로는 나무 둥지와 같으며
曠兮其若谷, 광혜기약곡,
계곡과 같이 많은 것을 포용하고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
사회에서 꺼리는 터부까지도 모두 고려하여, 해결책의 방편으로 포함합니다.
孰能濁以靜之徐淸. 숙능탁이정지서청.
孰能安以動之徐生. 숙능안이동지서생.
앞에 나왔던 上善若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이 경우 다시 생각나게 됩니다. 물은 온갖 더러운 것들은 쓸어담아 그것을 한곳에 고이게도하고, 쓸려내려가게도 합니다. 한곳에 모아 천천히 분해하여 다른 생명체들의 영양분이 되게도 하고, 그러함으로서 생동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이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곳에 이미 있던 것들을,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회피하던 것까지도 포용하여 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뿐이죠.
여기서 첫번째 줄은 혼탁한 상태를 진정시켜 천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인데, 이를테면 유리잔에 흙탕물을 집어넣고 가만히 놔두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습니다. 흙탕물 내의 성분들이 밑으로 가라앉으면, 위에는 맑은 물이 나타나게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죠.
흙탕물은 Chaos 상황입니다. 모든 것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죠. 이 Chaos 상황을 진정시키는 과정을 거치면 그 흙탕물에 물이 얼마나 있고 뒤섞여 있던 물질들이 무엇이었는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질서 잡힌 상황이 되게되는거죠. (그러한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은 첫장에 名을 설명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입니다.)
이렇듯 질서를 부여하고 나서야 두번째 줄의 내용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안전하게 가동하여 (安以動), 살아움직이게 하는 거죠.
保此道者, 不欲盈. 보차도자, 불욕영.
이런 방식을 지키는 사람은 모든 것이 충족된 상황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상황이 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설령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결국 다른 문제를 맞이할 경우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夫唯不盈, 故能蔽而新成. 부유불영, 고능폐이신성.
완전무결한 상황을 바라지 않으므로, 기존 방식의 오류가 발견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고, 다시 새로운 방안을 고민하여 만들어낼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15장의 내용은 정리하자면 내가 리더라면, 나의 지식만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함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나의 완전무결하지 않음을 인정해라, 차라리 세상의 기존 방식과 다른 사람들의 지식을 구해 그로부터 답을 찾아라, 내가 보기에 섣부르고 지저분한 방식들도 결국 우리 삶의 한 실체임을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렇지만 신중하게 해결책을 고민하라는 말로 보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답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항상 명심해야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개선해야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