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2015. 10. 5. 13:52 from BoOk/nOvEl



스토너

저자
존 윌리엄스 지음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 2015-01-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 조용하고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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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말처럼 그냥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 최고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군요. 그 동안 읽었던 여러 소설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히는 명작입니다. 특히나 그림을 보는 듯 주인공의 심리가 투영된 지극히 세련되면서도 세밀한 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찬탄을 금할 수 없게 합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박사학위에 종신 교수직을 받은 스토너는 외부의 시각으로는 어찌 보면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받아들여질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를 실패자로 생각한다면 불행한 가족 관계와 승승장구하지 못한 주인공의 인생 때문일테구요.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지만 견뎌내기도 하고, 억울한 공격을 반박하기도 하지만 참고 삭히며, 잡지 못했거나 잡을 수 없는 기회에 집착하기보다 포기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기도 하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많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을 미워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됩니다.)  

 

스토너가 남루한 복장으로 고향집을 떠나 처음 둘러보던 캠퍼스의 풍광. 이디스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서성거리던 추운 겨울 눈 쌓인 집 앞. 졸린 듯한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문을 열던 캐서린의 모습. 좌절감에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연구실 앞 교정.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러한 모든 장면들이 생생할 정도로 되살아나 한참 동안 책의 여운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저자
로맹 가리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4-0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 마음산책 로맹 가리 소설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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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다소 기분이 않좋았습니다. 책 분량으로만 보면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정도지만 손도 잘 안가고 일주일이 넘게 걸려 책을 다 읽었습니다.

 

내용은 … 1970년대 쯤을 배경으로 하는데 주인공은 과거 레지스탕스였고, 한때는 잘 나가는 출판사 경영인이었지만 지금은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고, 나이가 59임에도 불구하고 25살 애인도 있는, (가족은 묵인?) 그 연세에도 성욕은 대단히 왕성하셔서 남자라면 최소 일주일에 서너번은 거사를 치루셔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는데, 나이가 나이이신지라 (당시에는 비아그라도 없고) 이제 발기부터 문제가 되시니 회사는 망해가지, 애인 앞에서 쪽 팔리지 뭐 이런 난국에 처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가 왜 불편할까요? 와이프와 장성한 아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돈 좀 있으시다고 애인하고 그거 할 생각만 하고있는게 한심해서? Owner가 되서 회사는 망해가는데 돈을 펑펑 쓰시는게 어이없어서? (애인에, 고급 호텔에, 재규어 같은 고급차에, 금시계 쯤은 잃어버려도 Cool하시고..) 그러면서도 딴에는 레지스탕스 출신이라고 애국자 코스프레하면서 철학적 고뇌를 하시는 듯한 모습이 맘에 안들어서?

 

사실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당시의 프랑스 상황을 투영하려 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에 미국 주도로 경제도 성장하고 강대국 대열에 포함되어 좋은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 한때는 식민지였던 중동과 아시아에 자원은 종속되고 경제적으로도 위협을 받는 것 같고, 경제력 측면에서도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에게도 치이는, 과거의 영화에 취해 노쇠해가는 듯한 프랑스를 말이죠. (뭐 결론적으로는 아직도 프랑스는 세계 강대국 중의 하나지만)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비극적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안부, 강제징용과 같은 일제의 악행은 잊혀지지 못할 치욕이고요. 그런데 과거 식민지를 경영했던 프랑스를 포함한 서양의 제국주의는 일제보다는 나았을까요? 그들은 왜 비난받지 않을까요? 뭐 이를테면 더 문명화된 식민지 운영이라도 해서 피식민국들이 감사라도 하는 수준이었나요? 

 

과거 미테랑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에 문화재 반납과 관련된 협상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조선 말기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인들이 강화도에 무단 침략하여 대거 문화재를 약탈해갔었는데 약탈 문화재에 대해 당연히 우리는 반납을 요청했었고 당시 검토 중이던 고속철에 자국의 TGV가 선정되길 원했던 프랑스가 문화재 반납을 당근으로 활용했던거죠. 결국은 반납이 아닌 장기 임대 형식으로 외규장각 도서는 돌아왔지만 당시 프랑스 내부에는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었을까요? 똘레랑스니 뭐니 고상한 척은 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 일부 사람들에게 한국은 아시아의 미개한 이등국가이고, 문화재니 뭐니 관리할 능력도, 자격도 없는 사람들로 비춰지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도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딸 나이 또래의 애인을 데리고 망해가는 회사에 대한 책임은 도외시하고 낭비를 일삼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런 모든 행동과 상황을 철학적인 고뇌로 치장하여 사실 자신은 애국자였고 가족을 위하는 구식 남자일 뿐이라고 자기 합리화에 몰두합니다. 책 곳곳에 묻어나는 외국인에 대한 숨기지 않는 혐오와 비하적 묘사는 더더욱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주인공의 해피엔딩이 더 기분 나빴습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열강들의 현재의 번영은 결국 과거 식민지 시절의 약탈에 뿌리를 박고있지않나요? 예술과 철학의 국가인양 고상한 척, 정의가 자신들의 소유인 것처럼 떠들어 선전하지만 TGV 팔려고 문화재를 흥정하는 모습이 사실 그들의 민낯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사람의 세상에서 죽다

저자
리루이 지음
출판사
시작 | 2010-03-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국 4대 설화 《백사전》을 소설로 다시 만나다중국 4대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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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이 마흔이 넘어 가면서 더 감성적이 된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들었습니다.

 

백사전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어느 정도는 전형적인 중국설화의 구조를 따릅니다. 3,000년 묵은 백사가 인간세상을 동경하여 수양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마지막 고비를 못넘어 요괴가 되고, 서생을 유혹하지만 고승인 제요인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는 이야기가 크게 중심이 되죠. 이러한 기존 백사전의 이야기에 이 작품은 분해아의 에피소드가 더해져 두 축을 이루다가 마지막으로 현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3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세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소수자에 대한 배척과 탄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거대한 세상은 영웅담이나 우화에서와 같이 선악만으로 평가받고, 보상받는 세상은 아니죠. 또한 선악, 정의라는 것도 (주류 세력에 의해) 변할 수도 있는, 절대적이지는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을 최근에도 종종 보지 않나요?

 

성경의 창세기로부터 뱀은 인류가 가장 혐오하는 동물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들이 이렇듯 극도로 혐오하는 백사 한마리가 인간 세상을 동경하여 3,000년이라는 긴 시간 수양을 통해 인간이 되려하였습니다. 신선의 세계인 반도원을 노닐던 청사 한마리도 삼족오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인간 세상을 동경하여 선계를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여 내려옵니다. 백소정은 도술을 부리던지 무시무시한 무력으로 인간 세상을 제압하여 군림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약을 만들어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되려하였었죠. 분해아도 과거에 급제한 수제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이들을 과연 세상은 잘 받아주었을까요? 능력마저 없는 소수자는 모멸적일 정도로 무시와 멸시를 받는 세상입니다. (향류낭이 분해아에게 너도 나를 싫어하냐고 말을 하는 장면에서 정말 눈물이 펑펑 솟았습니다.) 하지만 백소정도, 청아도, 분해아도 그리고 현대의 까지도 모든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혐오의 대상은 결국 혐오의 대상으로 남게됩니다.

 

동성연애자, 종교적 징병거부자,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는 소수민족 탄압.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이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환영의 도시(환상문학전집 7)

저자
어슐러 르 귄, 르 귄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05-06-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책은 "SF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는 르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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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모든 기억을 잃은 채로 어디인지 모를 황야에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모든 것들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길을 읽고 헤매던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노란색 눈의 이방인이 불길한 징조일지 몰라 두려워하지만 결국 아이를 대하듯 그를 가르치며 팔스라는 이름을 주어 거둬들입니다. 5년 반이란 세월이 지나 팔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지 답을 찾으러 황폐화된 대지를 마주하며 정복자들의 도시인 에스토치로 향합니다.

 

르귄의 헤인 시리즈 중의 하나인 “환영의 도시 (The moon is harsh mistress)”는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광대한 헤인 세계관에 포함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배경이 되는 먼 미래의 지구는 모든 문명이 파괴되었으며, 외계의 “싱”이라고 불리는 침략자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워낙에 심한 파괴를 받아서이기도 하지만 “싱”들이 일정 규모 이상의 문명 집단이 재건되는 것을 철저히 탄압하여 부족사회 정도의 낙후된 문명을 가진 군소 집단들로만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팔스는 이러한 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를 이겨내며 머나먼 미지의 도시, 에스토치를 향합니다.

 

“환영의 도시 (The moon is harsh mistress)”는 글쎄 뭐랄까요.. 어떻게 보면 전반부는 “늑대와 함께 춤을”에 “더 로드”와 같은 분위기를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완전히 이질적인 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세계에 동화하는 과정이라던지, 황폐화된 문명의 세계를 통과하는 험난한 여정의 로드무비 적인 설정이라던지 하는 점을 보면요.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화두는 팔스가 “싱”들의 도시, 에스토치에 도착한 후에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에스토치에서 팔스는 도시의 지배자들이 알려준 이야기에 갈등하게 됩니다.

 

동굴 속의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의 진실은 사실 왜곡된 오해였다고 누군가 알려준다하여도 그 또한 왜곡된 진실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선택의 기로에서 주어지고, 보여주는 것들이 실상은 판단을 흐리고 현혹하기 위한 환상이었다면요. 그들이 만든 Frame 너머의 가능성을 어떻게 통찰해낼 수 있을지, 그로 인해 얻어질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초기 철학 이후의 인류의 지속적인 화두 중의 하나였습니다. 라마렌이라는 본래 자아를 찾은 팔크는 이러한 딜레마에 처하게 됩니다.

 

결론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 지구를 떠나며 라마렌이 된 팔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파스와의 약속을 그는 돌이켜보았을까 궁금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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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니 오행이 사용된 것 같아 다소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점이 눈에 들어오다 보니 읽는 내내 그런 쪽으로 해석을 하게되더군요. 하루키의 이 신작은 다자키 쓰쿠루라는 주인공이 고교 시절 이후 절친이었던 5명의 모임에서 대학 입학 후 영문도 모르는 채 절교를 당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모임은 주인공을 포함한 남자 3명과 여자 2명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는 하루키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다소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지만 맡은 일에는 철두철미한 성격을 지닌 반면에 자기에게 닥친 사건은 타자화하는 듯한 성격을 가진, 극중 주인공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텅 빈 그릇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행에 연관되 생각하기 시작한 건 주인공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이름에 전부 특정 색의 한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였는데요 주인공의 남자 친구 2명은 각각 청색과 적색을 의미하는 아오, 아카를 포함하고 (아카마쓰 게이 赤松 /오우미 요시오 青海 ) 여자 친구는 흰색과 검정색을 뜻하는 시로, 구로라는 한자를 이름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시라네 유즈키 白根 柚木/구로노 에리 黒埜 ) 오방색으로 분류하면 청색과 적색은 양의 성격을 가지며 각각 동쪽과 남쪽을 상징합니다. 또한 를 뜻하기도 하고요. 백색과 흑색은 반면에 음의 성격을 가지며 서쪽과 북쪽을 상징합니다. 오행에서는 를 뜻하고요. 양의 성격을 가진 이름은 남성, 음의 성격을 가진 이름은 여성으로 분류가 되며 여기서 남는 것이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 오행으로는 인데요. 비록 쓰쿠루가 이름에 색을 의미하는 한자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행으로는 의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쿠루라는 이름이 한자로 인데 만물을 키워내고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고 앞의 사행을 품어내는 것은 결국 의 역할이니까요. 쓰쿠루가 모든 물류와 이동의 연결점인 기차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어느 정도 관련성을 가지게됩니다. (음양오행도에서 는 정중앙에 위치하여 나머지 사행을 연결하여 주는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나고야의 고교시절에 형성된 우정은 책 속의 묘사에 따르면 거의 완벽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주인공은 개성이 넘치는 네 친구들 가운데에서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무미건조한 위치라는 생각을 가지지만, 본인이 이런 그룹에 속하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어울리게 되고요.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면서 나머지 친구들은 고향인 나고야 근처의 학교로 진학하지만 주인공은 기차역과 관련된 전공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영문도 모르는 채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에게서 절교를 당하게 되고요.

 

소설은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한참이 지나 주인공이 36이 된 시점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한때 큰 충격을 받았던 주인공은 어떻게든 그 시절을 극복해냈고, 36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애인에게 과거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당했던 경험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애인의 충고에 따라 이미 십수년이 지난 그 사건에 대해 이유를 찾게되는 긴 순례의 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소설은 하루키의 다른 작품보다는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을 많은 점에서 연상하게 합니다. 다른 작품에서 보이던 이분법적인 세계관 구도가 없어졌고 (아니면 굉장히 완화되었고) 비록 애인 관계는 아니지만 시로가 혼돈 속에 죽는 점도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를 연상시킵니다. 책의 마지막에 애인인 기모토 사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를 찾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 열광했었던 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주인공이 미도리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쓰쿠루는 사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으로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돌이켜보면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진심을 표현 못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며 두고두고 후회할 점을 남기게 되죠. 그녀가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든 인생에 시련을 겪으면서도 소중한 것을 찾고 지키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Posted by Tony Kim :

남쪽으로 튀어!

2008. 8. 5. 15:33 from BoOk/nOvEl

 

남쪽으로 튀어! 세트
국내도서
저자 : 오쿠다 히데오(Hideo Okuda) / 양윤옥역
출판 : 은행나무 2006.07.15
상세보기

 

날씨도 덥고 뭔가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던 차에 '공중 그네'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인 '남쪽으로 튀어!'를 읽었습니다. 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공중 그네'를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이 작품도 충분히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남쪽으로 튀어!'는 우에하라 이치로의 아들 우에하라 지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소 황당, 성장 소설입니다. 뭐 책 소개를 읽어보면 대략 짐작이 되겠지만 '공중그네'에서 이라부라는 못말리는 능글맞은 의사가 있었다면 여기에는 '우에하라 이치로'라는 대략 난감 무한 폭주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평범하게 살고싶은 지로에게 있어서 누가 일본 국민한다고 했냐는 식으로 세금이나 국민연금 거부는 물론이고  아이들 등교 거부 (정확하게는 등교방해)까지 불사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아빠가 어떤 존재일지는 안봐도 상상이 됩니다. 분위기는 글쎄 뭐 아주 똑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소설은 크게 도쿄에서의 생활이 그려진 1권과 오키나와에서도 한참 떨어진 이리오모테 섬에서의 2권으로 나누어집니다. (이리오모테 섬. '아즈망가 대왕'이 생각나는 군요. ㅋㅋ)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어떻게 초등학생의 생활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감탄하게 됩니다. 사실 재미를 떠나서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로가 불량학생 가쓰에게 시달리며 친구들과 마치 세상의 마지막이라도 된 것 같이 고민하는 모습이라던지 생전 본 적이 없던 외할머니가 찾아오자  지로의 동생이 흥분하는 모습들을 보자면 정말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머리 속에 퐁당 들어갔다 나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생한 묘사에 감탄하게 됩니다.

사실 별 것도 아닐 수도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고, 나이 들고 돌아보면 웃을 수 있는 추억이야,라고 간단하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서 지금 아웅다웅하고 머리를 싸매는 고민들도 그럼 대단한 건가,라고 책을 읽다보니 자신에게 되뭇게됩니다.

'남쪽으로 튀어!'를 위시해서 다소 황당하고 엽기스러운 케릭터들이 일본 영화나 소설에 심심치않게 나오는 건 우리나라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빡빡한 일본 사회에서 소설에서나마 이런 주인공을 만들어내어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인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