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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18 노자도덕경 45장
  2. 2024.02.21 노자도덕경 44장 2
  3. 2024.01.09 노자도덕경 43장
  4. 2024.01.02 '23년 독서 목록
  5. 2023.12.04 노자도덕경 42장 2
  6. 2023.11.01 노자도덕경 41장
  7. 2023.09.21 노자도덕경 40장
  8. 2023.08.31 노자도덕경 39장
  9. 2023.06.19 노자도덕경 38장 1
  10. 2023.01.01 22년 독서 목록

노자도덕경 45장

2024. 3. 18. 13:48 from BoOk/pHiLoSoPhY

大成若缺 其用不弊

대성약결 기용불폐

大盈若沖 其用不窮

대영약충 기용불궁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躁勝寒 靜勝熱

조승한 정승열

淸靜爲天下正

청정위천하정

 

 

 

大成若缺 其用不弊

큰 성과물은 무언가 흠이 있어 보이지만, 그 쓰임에 나쁨이 없다.”

 

아래 이어지는 글들도 비슷한 의미로 보이는데, 이 문구는 조금 풀어서 아래와 같이 해석합니다.

 

“두루 사용될 제품이나 제도를 만들려면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그 제품이나 제도를 이용하는 User들에게 나름의 융통성을 부릴 수 있는 Room을 주여야 그 쓰임이 더 커지게 된다.”

 

Platform이라는 개념을 들어 이야기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PC의 윈도우나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 IOS는 그 자체만으로는 활용할 수 있는 용도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토대를 마련해주는 운영체계는 막강한 확장성을 발휘합니다. 다른 개발자들이 Platform에 기꺼히 참가하여 새로운 앱을 만들어내고, 또 그 앱을 유저들이 사용하며 점점 그 Platform의 활용도를 높이는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거죠.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모든 것을 내가 혼자 하겠다고 해서는 그 쓰임새가 지금보다는 훨씬 한정적일 겁니다.

 

이와 같이 무언가 정말 크게 쓰이려면, 그리고 큰 활용을 기대한다면, 나 혼자 또는 우리 회사나 조직 혼자서 모든 것을 완전무결하게 만들겠다는 생각부터 재고해야되지 않을까요? 얼핏 보기에는 빈틈으로 보이는 것들이지만 사람들이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참여하고 싶도록 유도하는 것을 만들어 낸다면 그 쓰임이 여러 사람의 참여에 의한 것이어서 오히려 폐단이 발생될 가능성을 줄여줄 수도 있지않을까요?

 

大盈若沖 其用不窮

크게 채움은 빈 것처럼 보이나 그 쓰임에 끝이 없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 내가 채워놓았다고 훌륭한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나는 그 아이디어들을 담을 그릇과 방향을 알려주고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그리고 노력들이 담겨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충만함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 한계가 없게된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월트디즈니의 Mission인데요, 아래와 같습니다.

 

The mission of The Walt Disney Company to entertain, inform and inspire people around the globe through the power of unparalleled storytelling, reflecting the iconic brands, creative minds and innovative technologies that make ours the world's premier entertainment company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미션은 비할데 없는 스토리텔링, 상징적인 브랜드의 반영, 창조적인 마인드와 혁신적 기술의 힘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정보 그리고 영감을 제공함으로서 우리를 세계 최우수 엔터테인 컴퍼니로 만드는 것이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붙였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읽다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듯합니다. 

반면에 넷플릭스의 Mission은 아래와 같이 간결합니다. 

 

Netflix, Inc's coporate mission is "To entertain the world." 

넥플릭스 주식회사의 미션은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무언가 더 좋은 것을 만들려는 욕심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좋은 말 많이 가져다 붙인다고 훌륭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맥락없는 설명의 과잉은 결국 아무 방향도 제시 못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큰 그림에서 바로 가려는 행위는 굽어보이기도 하고, 큰 그림에서 완성도를 높이려는 행위는 졸렬하게도 보이며, 큰 주제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주변이 어늘해보이지도 한다.”

 

甚愛 (심한 애착)는 결국 집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노자는 이러한 집착이 큰 비용으로 연결된다 이야기합니다. 위의 내용과 같이 다면적인 중간 점검활동이 없이 한편으로 치우친 활동은 결국은 대가를 치르게된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이렇던 실익없는 맹목적인 활동을 누적하게 된다면 중간에 방향을 전환하여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게된다 이야기합니다. 결국 조금 망할 것을 크게 망하게 된다는 거죠.  

 

躁勝寒 靜勝熱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며, 더위를 이기려면 움직임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그러면 위와 같이 해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경우에 다 맞는 해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Case by Case. 즉, 상황에 맞는 대처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추울 때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몸에 열을 내야합니다. 안그러면 얼어죽기 십상이죠. 반대로 더울 때는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됩니다. 땡볕 밑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다가는 왠만한 사람들은 더위 먹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큰 방향성은 제시를 하되, 너무 말단의 영역까지 숨 막히게 해야될 것과 하지말아야 할 것을 정하는 것은 피해야된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현장의 융통성이 더 중요하다는 거죠.

 

淸靜爲天下正

맑고 차분함이 천하를 바르게 한다.”

 

단, 이 모든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맑은 물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는 것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납득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군가 특정 대상이나 인물에게 유리한 방향이 아니라는 기준이라고 공감을 받을 수 있어야 된다 이야기합니다. 淸淨에서 이야기 하고자하는 바가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4장

2024. 2. 21. 13:51 from BoOk/pHiLoSoPhY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得與亡孰病

득여망숙병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시고심애필대비 다장필후망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현상을 정의하는 것과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 중 무엇을 더 가까이 해야겠는가? 실체를 파악하는 것과 이익을 확보하는 것 중 어떤 것에 비중을 더 두어야겠는가?”

 

44장에서 다루는 주요 화두는 名과 身, 그리고 貨 세 가지입니다.

 

名에 대해서는 도덕경 1장에서 다루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名可名 非常名) 名은 지금까지 규정되지 않았던 현상을 증명하는, 즉 정의하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면 F=m*a라는 물리법칙은 이때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힘의 크기를 수식으로 규정한 행위입니다. 즉 “名” 현상을 정의하는 행위라고 보면 되죠. 이러한 "名"의 행위는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고 있던 것을 알아내는 행위죠. 우리가 수소라는 존재를 알아냈을 때 세상에 없던 수소가 갑자기 나타난게 아니었던 것처럼요. 

 

그러면 身 즉 몸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저는 현상의 본질을 가르키는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부분의 名의 행위는 현상을 완벽하게 정의하지는 못합니다. 보는 관점이나 이야기하는 사람의 지향점 등에 따라 현실을 왜곡하여 규정하기도 하고, 가용한 자원의 한계로 인해 일부만을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현상을 규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의 활동 한계로 인해 이후 보완과 수정의 과정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앞에 언급하였으니 수소에 대해 이야기 해보죠. 이를테면 수소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 알아낸 사람들도 수소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있는가를 몰랐을 수 있습니다. 단지 수소의 특징은 이러고 저러고 하다는 정도에 그쳤을 수 있죠. 전자 한개와 양성자 한개로 구성된 수소의 구조를 알아낸 다음에도 그러면 그 양성자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두 개의 전자와 양성자가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하고 변화하는지 처음부터 알고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수소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처음에 수소라는 존재를 알아낸 것이 전부를 알지 못한다는 그 이유로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요? 

 

貨. 위의 이유로 비용에 대한 언급이 나오게 됩니다. 즉 이러한 규정을 하는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즉 한정된 자원을 감안해야되며 또한 어떤 행위가 과연 실익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수많은 세상의 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무엇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여 연구를 거듭하는 것일까요? 단기적이냐 중장기적이냐의 차이일 뿐 대부분은 사회에 이익이 될 법인 과제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이익이 단순히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더 편한 또는 안전한 환경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지 즉 공리에 기여하는지를 감안하는 것도 모두 이익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名與身孰親, 즉 이 문장은 단순히 둘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추진 중인 행위가 어디까지 진행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본질을 모두 규명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연구가 가장 Ideal 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자원과 시간의 제약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경우는 완벽한 본질의 규명은 어렵다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身與貨孰多,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활동에 대한 비용을 생각해야되고, 또한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실익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야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행위도 기대효과 없이 순수한 열정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행위를 왜 열을 내면서 하겠습니까?

 

得與亡孰病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것이 병이 될 것인가”

 

흔히들 과유불급 (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든 열심히 활동을 하다보면 무언가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쯤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은 전체적인 면을 생각해야됩니다. 흔히들 말하는 Total Cost 측면을 감안해야 되는거죠. 양쪽의 상충되는 가치에 대해 어느 쪽을 어 두텁게 하고 어느 쪽을 비울지는 한정된 자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그리고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됩니다. 그래서 더 얻는 것을 추진해야되는가, 아니면 이쯤에서 조금 손실을 보더라도 추진하던 것을 잠간 멈추는 것이 맞는가,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가를 돌이켜 보고, 이름을 얻기 위해 조직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익을 탐하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허상을 찾다가 명분도 이익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된다는 거죠.

 

是故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이런 이유로 집착에는 큰 비용이 뒤따르고, 쌓아두기만 해서는 추후 이것이 손실이 커질 수 있다.”

 

甚愛 (심한 애착)는 결국 집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노자는 이러한 집착이 큰 비용으로 연결된다 이야기합니다. 위의 내용과 같이 다면적인 중간 점검활동이 없이 한편으로 치우친 활동은 결국은 대가를 치르게된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이렇던 실익없는 맹목적인 활동을 누적하게 된다면 중간에 방향을 전환하여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게된다 이야기합니다. 결국 조금 망할 것을 크게 망하게 된다는 거죠.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어느 수준이 충분한지를 알면 욕됨이 없을 것이며, 어디서 멈춰야될지를 알면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다. 가히 오래갈 수 있다.”

 

다시 반복하는 이야기이지만 44장은 치우침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모든 것을 한번에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론도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활동 및 노력과 투자 그리고 연구의 과정 중 여러 순간마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괜찮은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된다는 이야기를 여기서는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3장

2024. 1. 9. 11:32 from BoOk/pHiLoSoPhY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

無有入無間

무유입무간

吾是以知無爲之有益

오시이지무위지유익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불언지교 무위지익 천하희급지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세상에서 가장 유연한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대상에 치달린다.”

 

첫 문장은 柔와 堅이라는 두 단어가 양끝에서 대치하는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柔라는 단어는 Flexibility, 즉 융통성을 이야기한다 볼 수 있으며, 堅이라는 단어는 견고하고 변하지 않으려는 기존 질서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이 융통성이 항상 견고한 기존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방도라는 이야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생각합니다. 馳騁, 말을 치달린다는 이 단어는 도전 혹은 시도를 해봐야된다는 뜻으로 읽혀집니다. 견고하게 자리잡힌 질서나 법칙이 모두들 이제 무언가 부족하다던가, 아니면 이제 효용성을 다해간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융통성을 최대한 발휘해 해결책을 찾아봐야된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無有入無間

“(견고한 질서에) 들이밀려는 시도가 없다면, (개선의) 틈새 또한 찾지 못할 것이다.”

 

실행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문구로 해석됩니다.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읍니까. 복권을 사야 당첨을 기대할 수 있다고요. 기존의 체계나 방식 등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다보면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吾是以知無爲之有益

나는 이러하여 무위가 유익하다는 것을 안다.”

 

여기에서 노자에서 이야기하는 무위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앞의 두 문구에서 노자는 柔 즉 Flexibility라는 도구로 堅 즉 견고한 것처럼 느껴지는 기존 질서를 계속해서 개선하려 시도해야된다. 하지않으면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즉, 노자의 무위는 단순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위는 오히려 Flexxibility를 확보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이라고 이해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무언가를 리더가 규정하고 방향성을 가이드 하기보다, 그리고 특정 대상만을 위하는 방식보다 정말로 전체적인 측면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열린 마음으로 구성원들과 소통하여 다양한 가능성을 찾기 위한 방법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자세야 말로 정말 유익하게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말하지 않는 가르침은 무위의 유익함이다. 천하에 여기까지 미침이 드물다.”

 

무위는 不言의 가르침, 즉 나만의 의사를 고집하지 않는 가운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교훈을 얻어내는 또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과 사항을 설파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자칫 구성원들의 입을 막아버리고, 활발한 소통을 차단하며, 아집과 독선으로 흐르게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더 나은 방향이 없을까, 내가 지금 추진하는 것은 어쩌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더 나은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성과만을 아니면 오히려 현상을 악화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야된다는 거죠.

 

이러한 접근은 사실 매우 많은 자원과 노력 그리고 시간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그래서 사람들은 선뜻 택하기 힘든 것임니다. 천하에 이 경지에 다다르는 사람이 드물게 되는거죠. 하지만 그래야 된다, 그리야 발전이 있게되고 개선을 이룰 수 있게된다고 노자는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23년 독서 목록

2024. 1. 2. 13:36 from BoOk

1. 기적의 뇌과학 (리사 제노바)

    - 뇌과학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후회없을 선택. 인간의 사고와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2.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 그나마 너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양자역학 

3. 2차 세계대전사 (존 키건)

    - 방대한 페이지 수 보다도 너무 개별 전쟁 묘사에 치우쳐 전체적인 흐름을 알기 어렵게 설명하고 있다.

4. 진령군 (배상열)

    - 싸구려 소설책

5. 작별인사 (김영하)

    - 다른 AI 소설과 차별점을 찾기 힘든 

6. 파친코 (이민진)

    - 시대의 야만과 폭력을 온 몸으로 겪어낸 여인의 이야기. 감동적이고 우아하다. 

7.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 그냥 없다고 하면 되지,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8. 베트남전쟁 (박태균)

    - 전쟁사라기 보다는 작가의 주관적 의견 비중이 높았던 작품.

      한국전쟁을 다루었던 작가의 전작에 대비해 몰입도가 낮다.

9.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제러미 블랙)

    - 어수선하다. 

10.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 흥미로울 수도 있는 소재이나 개인적으로는 흥미가 떨어지는 내용들...

11.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 짧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걸작.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12. 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푸시킨)

    - 글쎄... 별 감흥이 없다. 

13.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 (이무열)

    - 러시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14.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데이비드 이글먼)

15. 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 (마커스 초운)

16.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 너무 재미있음. 낄낄대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

17. 무엇이 우주를 삼키고 있는가 (폴 데이비스)

18. 러시아 혁명사 강의 (박노자)

    - 러시아 혁명사라기 보다는 유럽 좌파에 대한 박노자의 개인적 생각과 역사가 뒤죽박죽으로 나열된 책 

19. 신은 성서를 쓰지 않았다 (카럴 판스하이크, 카이 미헬)

    - 무신자라면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만한 책

20. 알기 쉽게 풀어 쓴 신곡, 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 이 책을 고른 건 실수다. 쉽게 풀어 쓴다며 들어낸 내용이 많아 감흥이 떨어진다. 

21. 검은꽃 (김영하)

    -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어찌 이리도 많은가.

22.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 (쇼팬하우어)

    - 아무리 100년 가까이 예전에 쓰여졌다지만, 인종주의 / 여성혐오 / 계급우월 / 쇼비니즘의 범벅

      나만 옳다는 독선적 시선도 만연. 강력하게 비추!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2장

2023. 12. 4. 16:16 from BoOk/pHiLoSoPhY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오 유고과불곡 이왕공이위칭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고물혹손치지익 혹익지이손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不得其死
인지소교 아역교지 강양자불득기사
吾將以爲敎父
오장이위교부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가 하나 생겨나면 이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만들어내고, 셋은 만물을 만들어 낸다.”
 
무언가 하나의 새로운 방안이나 방도를 만들어지면  이를 이용한 새로운 방안이나 방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거죠. 그것이 경제학이 되었건, 물리학이 되었건 아니면 교통 법규가 되었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시도가 더해지게 됩니다.
 
이 첫 문구는 무언가 하나의 Idea가 생성되면 기존의 생각들이 더해져 수만가지 Idea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이렇듯 만들어진 수많은 Idea들은 Negative한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혹은 Positive한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상충되는 수많은 방안들이 상호보완하여 새로운 방안을 이루게 된다.”
 
이 문구에서 정/반/합의 원리가 연상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Idea가 되었건, 법칙이 되었건 아니면 규율이 되었건,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기존 방식의 부족한 부분이 시간이 지나며 부각되기 때문이고, 이런 이유로 개선의 필요성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벤치마킹을 통해서건, 새로운 Idea를 찾건, 부족한 부분을 메우거나, 장점을 더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추진하게 되는거고요. 음과 양으로 설명되는 노자의 이 문구는 근대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사람들이 싫어하는 부분은 오직 고립되거나 모자라거나 좋지 않은 것들이다. 이러하여 왕과 상공들이 자신을 칭함에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
 
위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존의 방식에서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리더들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찾아야한다는 이야기이며, 이전 왕조시대의 지배층이 왜 “과인이…” 이라는 식으로 자신을 칭했는지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내가 부족한 사람임을 기본 전제로 하고 신하와 백성들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직언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입시다.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고로 모든 일은 혹은 손해가 이득이 되기도하고 이득을 보는 것이 손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중국의 많은 문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새옹지마의 고사도 그러하고 주역에서 기본적으로 깔고있는 사상도 현 상황이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되었지만 현재의 성공사례가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보는 경우도 종종 목격할 수 있고요.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不得其死
사람들이 가르침을 나누려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 또한 그를 가르치려 한다. 횡포한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위치를 희생하여 이러한 가르침을 얻지못한다.”
 
이 문구가 다소 해석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人之所敎라는 문구는 사람들이 가르치고자하는 바로 해석될 수 있는데, 앞의 내용과 연결성을 생각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바, 즉 앞의 이야기와 같이 正과 反이 대립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는, 즉 合을 도출하는 과정을 敎 즉 가르친다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협상과 합의의 과정이 중요할 것입니다. 나의 것만을 강요해서는 合을 이루기 힘들겠죠. 그래서 마지막의 强梁者 즉 횡포한 사람은 자신의 고집을 죽이는 과정을 통해 (其死) 새로운 것을 얻지 못한다 (不得) 라고 해석한 것이죠.
 
종종 횡포한 자는 좋게 죽지 못할 것이다, 라는 식의 저주의 문구로 해석하곤 하는데 다소 앞뒤 연결이 되지않는 듯하다는 생각입니다.
 
吾將以爲敎父
나는 (이를) 장차 가르침의 바탕으로 하려한다.”
 
敎父는 종교나 특정 학문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키는 의미로 많이 통용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父는 근원 즉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마중물이 되는 사항이나 상황으로 사용된 단어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敎父라는 단어는 가르침의 바탕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번 장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모든 현상이나 Process에는 만족스러운 점이 있는 반면에 부족한 면도 같이 내포하고 있으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부족한 점을 채우고, Plus가 되는 부분은 공유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을 지속해야된다, 독불장군처럼 나 혼자 옳다고 고집을 피워서는 아무런 것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하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1장

2023. 11. 1. 13:30 from BoOk/pHiLoSoPhY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상사문도 근이행지 중사문도 약존약망 하사문도 대소지

不笑不 足以爲道

불소불 족이위도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고건언유지 명도약매 진도약퇴 이도약뢰 상도약곡 태백약욕 광덕약부족

建德若偸 質眞若渝

건도약투 질진약투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대방무우 대기만성 대음휘성 대상무형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권력의 높은 자리를 차지한 선비는 제도와 질서를 열심히 따르며, 중간쯤 자리를 차지한 선비는 이를 존중하기도 하지만 때로 따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권력에서 제외된 선비들은 사회의 권위와 제도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기 마련이다.”

 

많은 경우 上士, 中士, 下士를 수양의 수준에 따라 구분한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수양이 높은 사람들은 도를 들으면 경건하게 따르지만 어중간하거나, 수양이 덜된 선비들의 경우는 도를 들어도 그냥 대충 따르거나, 심한 경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아냥 거리기만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거죠.

 

하지만 이래서는 뒤의 문구와 연결성도 떨어지고, 또한 士라는 계층의 명사를 사용했다는 것도 의미를 잘못 짚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士는 식자층 즉 엘리트 계층을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이를테면 그냥 테크노크라트일 뿐이죠. 위의 이야기와 같이 수양의 정도를 나눌 것이었다면 聖人이나 君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같은 엘리트 계층에서도 권력 중용되는 계층과 어느 정도 발을 담궈놓은 계층, 그리고 권력에서 소외되었거나 무관한 계층으로 나누기 위해 상/중/하라는 구분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듯 조직은 실무에 능한 담당자와 관리자들에 의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게됩니다. 또 이중 소위 Inner Circle에 포함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뉘기 마련이죠. 이 경우 리더는 자연스럽게 권력에 가까이 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지만 이들의 반응만 보아서는 자신이 내리는 지시가 정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조직에서 다소 혹은 많이 소외된 사람들의 경우 제도와 지시에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객관적 관점을 가지고 냉소적이거나 취사적으로 수용하려는 반면에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예스맨으로만 구성된다면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거죠.

 

현재의 굳건하게 자리잡힌 제도와 관습 그리고 권력은 완벽할 수 없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견고한 기득권층이 형성되면 이에 대한 개선이나 변경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不笑不 足以爲道

냉소적인 사람이 없지 않다면 새로운 도를 만들 여건임에 충분하다.”

 

기존 질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경우는 솔직히 없습니다. 그것이 국민연금이 되었건, 의료보험이 되었건, 선거제도가 되었건 승진제도가 되었건 어디에든 불만이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만으로 제도의 결함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개선을 생각해야됩니다.

 

不笑不 즉 “냉소적인 사람이 없지않다면” 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주변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리더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제가 곪아터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소리만 하는 내 주변 뿐만 아니라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두루 들어보고 혹 지금의 절차나 제도 또는 나의 지시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된다라는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故建言有之 明道若昧 進道若退 夷道若纇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이런 이유로 만들어진 말이 있으니, 보편화된 도는 보편적이 아닌 부분이 있으며, 진보적인 도는 퇴행적 부분이 있으며, 평등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도에도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으며, 높은 덕에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한쪽으로 정결함은 다른 면에서 보면 욕된 것이며, 넓게 배푸는 덕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明道若昧라는 말에서 明道는 이미 구성원 간에 공감대가 이루어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道를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밝은 빛 아래에서 사물을 보면 모두 그 형상에 대해 이견이 없는 것처럼 明道는 이미 밝게 드러난 도라는 의미죠. 하지만 이러한 道가 있다 할지라도 이는 昧 즉 어두움과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若昧는 직역하면 어두움과 같다라고 해석이 되지만, 저는 이러한 상식적인 절차와 제도 그리고 관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음 것일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 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Process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는 있죠. 그리고 그래야 하고요. 進道若退 즉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여 추진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퇴행적인 부분이 느껴지기도 할 수 있고, 夷道若纇 즉 공평무사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도 누군가에게는 지지자들만을 위한 치우친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거죠.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上德…. 太白…. 廣德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이야기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우리가 칭송하고 떠받드는 제도나 절차, 방식 등이 정말 완전무결할리는 없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된다는 점입니다. 정체되면 결국 썩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가장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방도는 Inner Circle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建德若偸 質眞若渝

 덕을 세움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과 같다. 참됨의 본질은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까요? 심하게 이야기하여 偸 즉 훔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집단들이, 다른 나라들이, 다른 회사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미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장조사를 하던지 여론조사를 하던지하여 알아내라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아이폰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세상에 없던 휴대전화가 나왔다면 다들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이미 휴대전화라는 플랫폼은 시장에 안착되어 있었고, 2G 방식의 통신기술은 3G로 DATA 송수신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MP3플레이어는 이미 시장에 통용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디지털 카메라는 거액을 주고 들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제각각으로 구매하여야하는 제품이 하나로 합쳐지면 좋겠다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을 때 애플이 디지털 카메라 회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MP3플레이어 회사의 기술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요. 누구도 컴퓨터 회사의 기술을 도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애플은 이미 시장에 있는 기술을 어떻게 더 사용하기 편하고 더 소비자들이 찾아오도록 조합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무언가가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계가 46억년 전 탄생할 때부터 지구는 태양을 돌고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지구를 돌던 것을 지구가 태양이 돌도록 바꾼게 아니라요. 단지 사람들이 그랬던 것을 모르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質眞若渝 지금 진리라고 믿는 것도 언젠가 더 나은 이론이나 제도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는, 그리고 끊임없이 개선해야된다는 그것이 바로 진리의 본질이라고 노자는 이야기 합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크게 뻗어나감은 그 끝이 없으며, 큰 그릇은 오랜 기간이 걸려 만들어지는 것이다. 큰 음악에는 특정한 소리가 드물며 큰 물체는 구체적 형상이 없다.”

 

이 문구는 개혁과 개선에는 끝이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결혼 했다고 끝이 아닌 것 처럼요 ^^)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드러나지 않고 아직 정의되지 않은 방안이나 방도라도 오로지 좋은 도를 목적으로 한다면 내게 없는 것을 차용하고 또 이룸이 좋다.”

 

이미 첫 몇장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無名이라함은 아직까지 필요가 없거나 미쳐 알려지지않아 규정되지 않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생각입니다. 道隱 즉 숨겨진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새로운 길을 내려면 지금의 것을 또는 나에게 알려진 것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참고하여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니까요.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0장

2023. 9. 21. 11:12 from BoOk/pHiLoSoPhY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反者道之動

현재의 방식에 대한 반발은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게 되는 동기가 된다.”

 

도덕경에서는 영원불멸한 Solution은 없으며, 모든 제도나 관습 그리고 대응방안은 계속 변화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기는 기존 System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되었을 때 이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현상은 많이 경험하곤 합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버스를 타려면 현금을 내고 타곤했습니다. 미리 잔돈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목적지를 이야기 하면 안내양이 잔돈을 거슬러주는 방식으로 요금을 냈죠. 그러던 것이 안내양을 없애면서, 운전석 옆에 커다란 통에 현금을 넣으면 잔돈이 기계에서 나오는 식으로 변하게 되죠. 그리고 정액에 대해 토큰을 미리 구매하게 하여 잔돈을 거슬러주는 불편함을 줄이는 방식으로 변하게되었습니다. 이후 전산망을 활용한 납부가 가능해지면서 아예 버스기사는 금액을 계산할 필요없이 지금과 같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통카드를 통해 요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후로는 버스와 지하철을 통합하여 납부할 수 있는 교통카드 체계가 갇추어졌고, 그 다음은 지역마다 달랐던 카드가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새로운 환경이 찾아오고, 기존의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려는 필요가 한데 묶여 새로운 해결책이 나오게되는거죠.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존의 것에 대한 반성과 반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모두는 불편한 것을 참을 수 없어하거든요.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에 열광합니다.

 

弱者道之用

부족하고 약한 부분은 도를 만듬에 쓸모가 된다.”

 

불편함을 주는 부분은 대개 취약한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야구팀 감독이라고 생각해보죠. 개선은 어떤 방식에 맞춰질까요? 이미 잘하고 있는 부분에 칼을 들이댈까요, 아니면 부족한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할까요? 다 괜찮은데 2루수가 에러도 많고 타율도 떨어진다고 하면 여기에 개선목표를 두려하지 않을까요? 뭐, 훈련을 2루수에 대해 강화한다던지, 새로운 후보를 2군에서 물색한다던지 아니면 타팀으로부터 Trade나 영입을 통해 보완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겁니다. 지금 잘 치고 잘 수비하는 외야수에 고민하기 보다는 말이죠.

 

이 문구는 다르게는 새로운 Solution을 고민할 때 그 구성원의 약자에 대해 우선 배려하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던 노자는 현재의 시스템을 계속 살피고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고민하고 더 나아지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천하 만물은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생성되지만, 새로운 것이 생겨남은 애초 필요한 것이 없다는 자각에서 생겨난다.”

 

앞장에서도 많이 이야기가 되었지만 도덕경에서는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뭐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거나, 있는데고 내가 몰랐던 것을 추가하거나 조립해내는 과정이라는 거죠. 지구는 항상 태양 주위를 돌았습니다. 갈릴레이가 돌도록 만든 것이 아니죠. 아인슈타인이 시공을 왜곡시킨게 아닙니다. 항상 그랬던 원리를 기존의 물리학 이론 등을 통해 알아낸 것이죠.

 

그렇지만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만들어낸 것은 기존 이론으로 설명이 되지않는 현상에 대해 Solution을 만들어내야될 필요에 의해 기인합니다. 기존 뉴톤 물리학으로는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無)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거라는 (有生) 말이죠.

 

즉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쯤 되겠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9장

2023. 8. 31. 14:51 from BoOk/pHiLoSoPhY

昔之得一者

석지득일자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령 신득일이령 곡득일이영 만물득일이생 후왕득일이위천하정

其致之一也

기치지일야

天無以淸 將恐裂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貞 將恐蹶

천무이청 장공열 지무이령 장공발 신무이령 장공헐 곡무이영 장공갈 말물무이생 장공멸

후왕무이정 장공궐

故貴以賤爲本高以下爲基 是以後王自謂孤寡不穀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고위이천위본고이하위기 시이후왕자위고과불곡 차비이천위본사 비호

故致數輿無輿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여무여 불욕록록여옥 락락여석

 

 

 

昔之得一者

과거로부터 무언가 하나를 얻게된다.”

 

우리 모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합니다. 외모적으로 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많건 적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치관이나 생활습관 그리고 특정 상황에 대한 대응력 등도 변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1학년의 나와 6학년때의 나는, 그리고 중학교 때의 나와 고등학교 때의 나는, 대학생 때의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의 나는, 같은 나이지만 동일한 나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보내며 그것이 사람 간의 관계에 의해서건, 공부를 통해서건, 여행을 통해서건 아니면 홀로 사색을 통해서건 하나씩 하나씩 경험과 지식이 쌓이게 되고, 이를 통해 과거보다는 지식이 늘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잘못된 사실에 집착할 수도 있고, 사고가 유연해지거나 아니면 편협해질 수도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확대할 수도 아니면 더 고립되어 버릴 수도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그냥 과거의 모습 그대로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통해 무언가 “하나”씩은 얻게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얻을 것을 어떻게 취사 선택하느냐에 따라 모두의 미래는 조금씩 변하게 됩니다.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其致之一也

하늘은 이렇듯 얻은 하나 하나가 모여 청명하게 되며, 땅은 안녕되고, 정신은 영험해졌으며, 계곡은 내려오는 모든 것을 보듬어 담고, 만물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며, 후왕은 천하를 바르게 만들려 하게된다. 이를 이루는 것은 (과거로부터 얻어낸) 개별의 하나 하나로부터 이다.”

 

노자는 모든 것은 이렇듯 과거의 하나, 하나가 누적되어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진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하늘이 저토록 맑고 푸른 것도, 땅이 탄탄하게 이루어져 발 밑이 불안치 않게 됨도, 정신이 만들어져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 영험함을 보이는 것도, 계곡이 위에서 흘러내린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것도, 만물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도, 그리고 제후와 군왕이 천하를 바르게 만들려 하는 그 수많은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도 모두 과거의 경험과 학습에서 얻어진 것들의 총합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비유들이 이 단락에서 나오지만 이를 테면 하늘의 경우 (노자가 물리학을 알고있었을리는 없지만) 하나 하나의 원자들이 모여 현재의 대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구가 처음으로 생성되었을 때는 현재와 같은 대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소행성과의 충돌과, 지구 생성 당시의 불안정성이 누그러지고, 원시생명체들의 생겨나 대사들을 통해 산소와 이산화탄소들을 내뿜으면서 현재의 대기가 생성되고, 결국 우리 지금 숨 쉴 수 있는 하늘이 만들어지게 된 겁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지구행성의 많은 원소들은 우주가 생성되고 난 후, 수많은 항성이 나고 죽으면서 만들어진 원자들이 우주를 떠돌다 결국 하나로 모여 지금의 토양을 이루게된 것입니다.

 

정신이라는 것도 단순한 원시 생명체의 본능적 대사행위에서 현재의 인류의 고도의 사고 체계로 발달된 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체의 경험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결과들이 누적되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군왕의 통치는 수많은 판단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 판단 하나에 수혜를 입을 수도 재앙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렇듯 중요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요? 결국 학습과 경험과 그리고 본인 기준에 신뢰할 수 있는 주변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天無以淸 將恐裂

 하늘이 그 맑음을 구성하는 것을 잃는다면, 장차 파열될 것을 두려워할 것이다.”

 

여기서 無라는 단어는 앞서서 언급된 하나하나의 축적된 구성 요소가 없어지는 상황을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대기가 어떤 영향에 의해서 모두 아니면 대부분이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면 지금과 같은 하늘일 수는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地無以寧 將恐發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 侯王無以貞 將恐蹶

땅이 그 안녕됨을 구성하는 것을 잃는다면 장차 폭발할 수 있음을 걱정해야 될 것이다, 정신이 그 구성되는 것을 잃어버린다면 장차 그 영험함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걱정해야될 것이다. 계곡을 구성하는 것이 없어지면 그 수용함이 고갈됨을 걱정해야될 것이고, 만물이 그 구성하는 것을 잃어 버린다면 생명을 다하여 소멸됨을 걱정해야될 것이다. 후왕이 그 통치의 근간을 잃어버리면 장차 몰락할 수 있음을 걱정해야될 것이다.”

 

앞의 天無以淸 將恐裂와 비슷한 의미이므로 반복적인 설명은 하지않으려 합니다. 노자가 하늘과 땅, 정신과 계곡, 만물 등의 비유를 한 것은 어쩌면 侯王無以貞 將恐蹶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떤 조직의 리더라면 자신의 위치는 조직 구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 망각하면 리더들은 구성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없는 조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없는 나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서 도움을 주고 받는 이익을 공유하는 사이입니다. 내가 남에게 명령을 내리고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에 당신이 적임자라는 공감대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구성원들이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 당신을 떠나거나 아니면 당신을 끌어내리려할 것입니다. 하나 하나가 모여있는 조직의 리더라는 역할을 가진 하나의 구성일 뿐이다. 내가 리더라고 내가 전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라는 것이 노자가 말하고자 한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

 

故貴以賤爲本高以下爲基

이러한 이유로 귀함은 천함을 그 근본으로 삼으며, 높은 것은 아래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보잘 것 없어보이는 하나들이 모여 우리 모두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면 얼핏 천해보이는 직업이나 사람들도 그 사회에 그리고 조직에 꼭 필요한 그리고 중요한 근간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아도 소득수준 구성은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억, 수십억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그리고 자산이 수십/수백억을 가진 사람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죠. 회사에서도 임원과 리더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나 이 모든 역경을 거쳐 내 혼자의 힘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 이 조직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모두에게 더 나은 것이 어떤 방향일지를 고민해야된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만족이 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한다 이야기 합니다.

 

 

是以後王自謂孤寡不穀

이러한 이유로 후왕은 자신을 작고, 부족하며, 착하지 않다 이야기 한다.”

 

後는 候의 오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 자신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전체 집단의 한 위치일 뿐이다. 겸손해야된다, 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此非以賤爲本邪 非乎

이것이 천한 것으로 근본을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邪는 감탄사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로 이야기 할 내용은 없습니다.

 

 

故致數輿無輿

고로 수레를 하나 하나 부품으로 나누면 더 이상 수레일 수 없게된다..”

 

우리 속담에도 “구슬도 꿰어야 서말”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레에서 어느 부품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나 혼자 잘났다고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면 수레의 손잡이가 아닌, 그냥 나무조각에 불과해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위치와 지위는 그냥 큰 집단의 기능적으로 필요해서 잠시 부여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옥과 같이 희귀한 것을 탐내지 말아라, 돌을 모아 구슬목걸이를 만들 일이다.”

 

인생이란 장기 레이스는 한순간의 대박으로 결정될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조금씩이라도 성과를 만들어 그것이 누적되어 그것으로 비롯한 탄탄한 업적이 되어야 하는 거죠. 모든 일에서 그리고 관계에서 한방의 대박을 노릴 것이 아니라, 돌과 같이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조합하여 그리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고민하여라.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지속해야한다, 라며 39장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8장

2023. 6. 19. 15:47 from BoOk/pHiLoSoPhY

上德不德 是以有德
상덕부덕 시이유덕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하덕부실덕 시이무덕
上德無爲而無以爲
상덕무위이무이위
下德爲之而有以爲
하덕위지이유이위
上仁爲之而有以爲
상인위지이유이위
上義爲之而有以爲
상의위지이유이위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
상례위지이막지응 즉양비이잉지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시이대장부처기후 불거기박 처기실 불거기화
故去彼取此
고거피취차 :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덕이 높으면 (사사로운) 덕은 행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덕일 수 있다.”
 
38장은 德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上德不德이라는 문구는 天地不仁으로 시작되었던 5장의 내용을 연상하게 합니다. 천지가 그 나름의 방식을 오랜 기간동안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특정 대상으로의 치우침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미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38장에서도 첫 문장은 “높은 덕은 덕이 없다.”라고 역설적인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덕이 없다는 이야기는 “특정 대상에 치우쳐 사사로운 덕을 배풀지는 않는다”는 의미라 생각됩니다.
 
이른바 덕을 베풀고, 덕을 봤다라고들 이야기하곤 합니다. 내가 덕을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자원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경우 한정된 자원을 나와 가까운 사람들 위주로 또는 그런 사람들 먼저 베푼다고 한다면, 이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습니까. 가까운 사람들만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정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될 수 있고, 또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어떻게 되는지를 고민해야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노자는 높은 덕은 부덕하다라는 말을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是以有德 그래야 덕이 유지될 수 있다, 덕이라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덕이 낮다는 것은 (특정 대상에게) 덕을 잃지않으려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덕이라 할 수 없다.”
 
반대로 낮은 德은 특정 대상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으려 연연하는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이런 편파성이 계속된다면 구성원 전체적으로는 Leader의 행위를 진정한 덕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단지 특정 대상에 특혜를 베푸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게되죠. 이런 행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사람들도 덕이라 받아들이지 못하게되는 즉 無德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권한이 주어지게되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이 우선 생각되기 마련이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부터 우선 챙기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하기만 이런 행위가 단기간 영향이 낮은 수준에 그친다면 몰라도, 구속력 있고 영향력이 높은 정책이나 방침으로 정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선택은 德이라 할 수 없게 됩니다. 무언가 자원을 배분할 때에는 그 수혜의 총량을 어떻게 하면 널리 그리고 최대화 시킬 수 있는가를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특정 대상에 치우치는 선택을 해서는 그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덕이 높은 것은 치우치지 않고, (그러려니 미리)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덕이 낮다는 것은 어디론가 치우치고, 독선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강요하는 것이다.”
 
“以爲”라는 문구는 “마음속으로 그러하다고 인정하거나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문구는 높은 덕을 이룬다는 것은 특정 대상에게 치우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에 그게 옳다라고 근거도 없이 선입견을 가져서도 않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은 그러한 결과물이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혹은 특정 방향에 치우친다던가, 아니면 미리 답을 정해놓고 시작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방향을 고려하여야 上德 즉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의미죠.
 
반면에 낮은 덕은 특정 대상만을 위하고, 혹은 무언가 하고자하는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일을 진행시키는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관습이라던가, 선례라던가 아니면 사심에서 비롯된 이유로 “이런 경우에는 이래야만 해!”라는 전제를 깔아놓으면, 下德 즉 그냥 그런 혹은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게된다는 거죠.
 
上仁爲之而有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仁이나 義라는 것은 그 수준이 높다고 한들, 낮은 덕과 같이 그 지양하는 바가 있으며,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下德爲之而有以爲이라는 문구에서 下德이라는 단어가 上仁과 上義라는 단어로 치환이 되어있습니다.
 
즉, 위에 말한 것을 참고하면 높은 仁이나 禮라는 것도 결국은 결국 무언가 의도한 바를, 특정한  대상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행위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로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유교의 핵심 Code인 仁義禮智信 중 첫 세가지를 언급한 것일 수도 있고, 유교를 Target으로 비판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명확한 것은 德이라는 가치보다도 仁은 아무리 높아도 그의 하위 개념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을까요? 생각하면 노자가 생각하는 방향과 유교의 지향점이 매우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유교는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되지만 세상에는 명확히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이 있고, 노력을 통해 모든 사람들은 그 기준에 도달하도록 해야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요, 순과 같은 성인이 지향점이 되는거고요.
 
무언가 지향점을 놓고, 임금이나 부모 등 기득권에 충성해야된다는 유교의 이론은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을 발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
예라는 것도 무언가 의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요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어께를 걷어올려 그를 부수고 깨뜨리려 한다.”
 
禮라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높은 비판을 노자는 가하고 있습니다. 고도화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예절 혹은 예식이라는 것도 결국은 이런 통치자의 혹은 권력자의 의도된 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이런 사상이나 정책에 따르지않는 무리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침략과 약탈을 일삼던 제국들은 상대를 야만이라는 표현으로 공격하며 침탈의 근거로 삼았던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교와 이단에 대한 공격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효종 사후 수많은 사화의 빌미가 된 것은 그 복제에 대한 각 정파의 해석과 비난이 근거를 이루었었습니다. 禮가 본래 내걸었던 타인을 공경하고 아끼는 적절한 표현 방식에서 벋어나 이방인을 배척하고 탄합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노자는 보았던 것 같습니다.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이런 이유로 도를 잃으면 덕을 찾게되고, 덕을 잃으면 인을 찾으며, 인을 잃게되면 의를 찾게되고, 의를 잃으면 예를 따지게 되는 것이다.”
 
道부터 禮에 이르게되는 관점을 보여주는 문구입니다. 道로 대표되는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게되면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배분하는 德이라는 방식에 의존하게되며, 이러한 德을 실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면 내가 존경을 받게라도 하여야하는 仁이라는 방식을 모색하게 되고, 그마저도 어려운 경우 우리끼리의 義理를 잃지않도록 사람들은 고민하고, 그 의리에도 기댈 수 없다면 예의범절을 강조하며 사람들을 강압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무릇 예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란 충과 믿음이 얄팍하니, 혼란의 시작이 된다.”
 
忠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위의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가르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忠이라는 글자는 마음을 나타내는 心자 위에 가운데를 나타내는 中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마음의 중심 또는 치우치지 않는 마음이라고 해석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中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기계적인 중간이나 중립을 의미하는 것이라기 보다 中은 Bull’s Eye 즉 핵심이 되는 가장 적합한 상황을 가르키는 단어라고 이해해야될 것 같습니다. 즉 忠은 가장 적합한 마음상태 또는 가장 올바른 선택을 가르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忠 그리고 미혹되지 않는 믿음 (信)을 남에게 주지 못하는 자들이 그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禮를 들이밀며 상대를 겁박한다면 시작부터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 합니다.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이들은) 나 홀로 앞을 내다본다 이야기하며 자신이 내세우는 방도를 미사여구로 꾸며대니, 우환의 시작이 된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좁은 경험과 지식에 기대어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본인만이 앞을 내다본다고 고집하면 밑에 사람들은 그 방도가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칭송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조직에는 소신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내가 다 아는데 말이야” 라는 식으로 전제를 깔아버리는 여기에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일은 결국 기대에 못 미치거나 엉망이 되기 십상이고요.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이런 이유로 대장부는 그 바탕이 두텁고 탄탄한 곳에 머물며, 근거와 정당성이 희박한 곳에는 머물지 않으려 한다. 또한,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려 하지 겉만 화려한 것에 치우치지 않는다.”
 
노자의 이야기는 화려한 예식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허례허식에 눈을 가리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흔히 정당성이 떨어지는 정권은 아무 실속이 없는 거대한 행사나 예복에 집착합니다. 전제국가의 독재자들을 그리고 그 추종자들을 보면 초라한 나라에 걸맞지않는 수많은 훈장과 금빛 메달로 군복을 장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대단해 보이기 보다는 대부분 촌스럽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대장부라면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되어야 실익이 극대화될 수 있고 일부가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두텁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된다 이야기 합니다.
 
故去彼取此
고로 표면을 덮고있는 것을 걷어내어 그 안의 실질적인 것을 취한다.”
 
禮라는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어 그리고 禮로서 공고화된 기존 질서를 벋어나서 무엇이 정말 더 나은 방향인가, 무엇이 더 혁신할 수 있는 한단계 더 나갈 수 있는 대안인지를 고민해야된다는 이야기로 노자는 38장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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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1. 13:13 fro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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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