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에 해당되는 글 127건

  1. 2022.01.03 21년 독서 List
  2. 2021.11.30 노자도덕경 28장
  3. 2021.10.13 노자도덕경 27장
  4. 2021.07.29 노자도덕경 26장
  5. 2021.07.19 노자도덕경 25장
  6. 2021.06.21 노자도덕경 24장
  7. 2021.06.04 노자도덕경 23장 2
  8. 2021.03.17 노자도덕경 21장
  9. 2021.01.13 노자도덕경 20장
  10. 2020.12.31 20년 독서 리스트

21년 독서 List

2022. 1. 3. 23:09 from BoOk

1. 프랑스혁명사 4 (주명철)
2. 프랑스혁명사 5 (주명철)
3.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마르셀 프루스트)
6.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7. 항우와 유방 1 (시바 료타로 - 재독)
8.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9.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10. 모든 순간의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11. 한국전쟁 (박태균 - 재독)
12.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이야기 (리처드 파인만)
13.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 (제레미 다이아몬드)
14. 유럽의 첫번째 태양, 스페인 (서의석, 호세 안토니오 팔마)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8장

2021. 11. 30. 16:01 from BoOk/pHiLoSoPhY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28장은 첫 세 구절 谿와 式 그리고 谷자가 Key Word로 보입니다. 이 세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선 명확히 해야 앞부분에서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孀兒.

 

첫 문장을 그냥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그 수컷을 알고, 그 암컷을 지키면 천하의 개울이 만들어진다. 천하의 개울을 만들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게되며 어린아이에게 돌아간다.”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수컷과 암컷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번식을 위해 짝을 맺습니다. 무언가 새 생명이 만들어지려면, 우선 암수가 만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죠. 이런 자연현상을 비유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자원을 조합하거나 결합할 때, 암수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암나사, 숫나사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雌 즉 암컷이라는 의미의 문자는 무언가를 생성해내는 바탕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雄, 즉 수컷이라는 문자는 생산을 촉진해내는 상대를 말하는 것이고요. 28장의 첫 문장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산 기반을 공고히 하고, 그 바탕 아래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알맞은 상대방을 짝지워줌으로서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천하의 흐름이라 이야기 합니다. 세상은 정체되어 있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죠. 

 

기왕에 생물체라는 표현을 했으니 그쪽에서 예를 찾아보도록 하죠. 사람들은 기후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으며, 맛도 향상된 종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경우 그냥 백지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품종과 각 측면에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여러 기존의 종을 교배하는 과정을 거쳐 개선된 품종을 개발해냅니다.

 

또는 옷을 고르는 것도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옷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옷을 사는 것도 방법이 되겠지만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현재 가용한 자원을 서로 결합해보는 시도들을 노자는 의도하던 안하던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거죠.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는 것도, 사람들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도,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느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속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또 다르게는 우리가 익숙한 개념인 正 反 合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雌 雄 두 글자도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무언가 서로 대립되는 두개의 상황이 절충점을 찾아 合을 이루고, 또 그 合이 새로운 正이 되어 또 다른 合을 만드는 Cycle을 이어가는 개념으로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노자는 谿 (개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물이 방향성을 가지고 흐르듯, 이것은 중단될 수 없는 모든 사물과 자연의 흐름이라고 비유한 것이죠. 이렇게 완성된 새로운 무언가가 환경에 적합한 것이라면 세상에 살아남는 것이고, 만일 적합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뒤쳐져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爲天下谿, 常德不離라는 말은 결국 새로 만들어진, 그리고 살아남은 대상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은 보편적인 방식 즉 常德이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물은 또 다음의 과정에 원재료로 사용되게 된다 이야기 하죠. (復歸於孀兒) * 孀兒 (영아)는 원재료를 표현한 단어로 보입니다. 

 

정리하자면 28장의 첫 문구는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Trend를 가지고 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대상이나 제도, Solution 등은 또 다음 차원의 개선을 위한 원재료로 사용되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무언가 더 나은 것으로 채택되어야 살아남게되며, 그마저도 다음 과정의 재료로 사용되게되니 세상은 현재의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물줄기와 같이 나아간다거죠.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두번째 문구의 흑과 백은 앞에서도 용어만 다르게 쓰였지 많이 비유된 내용이어서 이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이슈가 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를 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白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상태를 나타낸거고요. 문제에 대해 딱히 해결책이 없을 때 암담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는 하는데 이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르게는 밝혀지지 않은 영역을 黑이라고 표현하고 이에 대한 정의가 완료되어 대상이 규정되고 밝혀진 상황을 白이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크게 보면 위의 내용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러한 미지의 영역은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할 역량이 부족했다던지, 아니면 굳이 대상을 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미지의 영역은 계속 상존하고 있죠.

 

즉 “知其白, 守其黑” 이라는 말은 이러한 미지의 영역 중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화하는 과정을 守其黑 “그 어두운 부분을 지킨다”라고 표현하고, 이후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知其白 “그 밝은 방향을 알아낸다”라고 표현한 듯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爲天下式 즉 천하를 이루는 방식이라 한거죠.

 

앞 줄에서 기존의 소재가 서로 지속적으로 결합하는 특성을 가지는 것이 천하의 흐름이라면, 그 흐름은 무언가 몰랐던, 아니면 캄캄한 미지의 영역에 있던 것을 규정하고 해결책을 찾아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 그 흐름의 방식이라는 이야기겠죠.

 

이러한 천하를 이루는 방식은 常德不忒 즉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성 (常德)과 어긋나지 않게 형성되며, 또한 復歸於無極 즉, 끝이 없이 (無極) 반복된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서두에 谿와 式 그리고 谷이 키워드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谿가 무언가가 새로이 만들어질 때 큰 흐름이라고 해석하고, 式은 그러한 것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면 마지막 谷은 지향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谷 즉 계곡은 위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모이는 지점이며, 이후 더 큰 흐름으로 합류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谷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그냥 단어 자체의 뜻만으로도 榮은 성공에 따른 영화로움을, 辱은 실폐에 따른 부끄러운 상황을 뜻하고 있습니다. 위의 문장은 “앞서 있어던 실폐를 반면교사로 삼아 좀 더 나아지는 방향을 모색한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세상이 굴러가는 방향이라는 이라는 의미죠.

 

지금까지의 내용을 이런 의미에서 간단히 정리하면 세상은 기존의 것들이 끊임없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흐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 결합은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결국 지향점은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 좋아지는 방향으로 모아진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그리고 이러한 것을 통해 개선된 점이 계곡에 모이게 되면, 그 덕이 비로서 두터워져서 樸 즉 통나무와 같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소재가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마지막 문구는 이렇게 형성된 원소재, 이를테면 통나무를 가공하면 (散) 사람들이 조금씩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니, 성인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운영한다 이야기 합니다. (散이라는 단어는 해체한다는 뜻을 가지지만, 여기서는 한사람이 모든 것을 운영할 수 없은니 권한을 분산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官長 즉 하급 관리는 만들어진 개선안을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현실화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그릇이라는 의미이죠. 그리고 그릇은 방편일 뿐이지, 큰 방향이 (大制) 쪼게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不割) 이야기 합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의도적으로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던, 아니면 다른 곳에서 활용되던 방안을 적용하는 것이던 이를 활용하는 것은 또는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혼자서 다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위임하여 운영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권한을 분산한다고 지향하는 방향성이 홰손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7장

2021. 10. 13. 15:15 from BoOk/pHiLoSoPhY

善行無轍迹
선행무철적
善言無瑕謫
선언무하적
善數不用籌策
선수불용주책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선폐무관건이불가개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선결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시이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
常善救物 故無棄物
상선구물 고무기물
是謂襲明
시위습명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不善人者 善人之資
불선인자 선인지자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是謂要妙
시위요묘
 
 
27장의 첫 한두 구절에 대해 많은 경우 '성인은 좋은 행동이나 말을 너무나 완벽하게 하여, 남들은 그런 좋은 영향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한다'는 식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하지만 남들 모르게 좋은 말을 하고, 행동을 취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의문이고, 또한 뒤에 이어지는 성인은 사람과 사물을 잘 얻는다는 말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풀어보았습니다.
 
善行無轍迹
“사람들이 더 나은 실행 방안을 만들어 낸다면, 그 결과를 시시콜콜 추궁하지 않아야 한다.”
 
轍迹(철적)은 수레바퀴 자국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런 뜻을 가진 단어이다보니 많은 경우 “선행은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라는 식의 해석이 많습니다. 저는 轍迹을 수레가 지나가면서 만들어진 흔적, 즉 불가피한 흠결로 해석하였습니다. 수레가 지나가는데 바퀴자국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수레가 지나가야 되는 이유와 그로 얻어질 이익은 외면하고 바퀴자국이 왜 남았냐고 질책해서는 안되죠. 뒤의 문구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善言無瑕謫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하면, 이에 대한 옥의 티를 찾으려하지 말아라.”
 
瑕謫 (하적)이라는 단어는 옥의 티를 가르킵니다. 이 문구도 많은 경우 “좋은 말씀에는 옥의 티도 찾을 수 없다”라는 해석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앞의 노자의 이야기들을 보았을 때, 완전무결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된다는 이야기는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아보입니다.
 
앞선 문구와 같이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하면 뭔가 흠결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더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善數不用籌策
“사람들이 더 나은 수를 만들어내면, 굳이 주판을 튕기고 점을 쳐서 이를 확인하려 하지도 말아라.”
 
세번째 문구도 같은 내용이 이어지며, 여기서 어떤 것을 말하려는지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많은 경우 “셈을 잘하는 사람은 계산기가 필요없다.”라는 식의 해석을 하던데, 數는 숫자를 세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어떤 문제에 대한 셈 즉 Solution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籌策 (주책)은 단어 그 자체로는 사실 “이익과 손해를 따져 만들어낸 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 그 자체만을 가지고 앞의 數를 연관하여 뜻을 풀려면 좀 어렵지만, 籌는 주판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고, 策은 점을 치는 대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籌策은 구성원이 만들어 올린 방안에 대해 굳이 계산기를 튕기면서 숫자가 틀린게 없나 확인하고, 또 점을 쳐서라도 불길하다고 핑계거리를 만들려는 리더의 모습을 묘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첫 세문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좋은 방안에 대해 리더랍시고 조그만 실수나 결함을 흠 잡아 배척하거나 질책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조직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어떤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이야기나 실적에 대해 좋은 점이나 살려낼 점을 찾기보다, 실수나 잘못된 점을 찾는 것에 치중하고 그걸 부각하거나 질책하는 것으로 본인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조직이 건강해질리 만무합니다.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막게되고, 결국 리더의 독단에 흐르기 십상입니다. 노자는 이런 과정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善閉無關楗而不可開
“상황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 중 빗장을 걸어 잠궈 다시 열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없다.” 
 
閉 즉 무언가를 닫는다는 말은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단계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닫음이 關楗 (관건) 즉 물 샐틈없이 걸어잠궜는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완전무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 당시의 최선의 방안이 있을 뿐입니다. 자원이 더 확보되고, 다른 사람들의 대응방안 등을 벤치마킹하고, 구성원들 간의 고민과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안을 찾으려는 개선활동은 지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완전무결한 마무리 같은 것은 없다.'라는 표현을 이와 같이 한 것으로 보입니다.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좋은 결합 방법이라는 것도 다시는 풀 수 없게 노끈 묶듯 하는 것이 아니다.”
 
앞의 문구와 상황만 상이할 뿐 비슷한 의미의 내용이라고 판단됩니다. 방법을 고민하여 일을 좋게 마무리하였더라도 나중에 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두 조직을 하나로 필요에 따라 합병하였더라도 상황이 바뀌면 다시 나눌 수도 있습니다. 100% 만족할 수 있는 마무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 한정된 자원이나 상대방과의 협상과정을 통해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하기 마련이며, 만일 이 과정에서 미비한 상황이 있다면 다음 경우에 이를 보완하면 되는 겁니다. “조금의 빈틈도 없는거야? 정말 이게 가장 좋은 마무리 방안이야?”라고 점검은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만 매몰되지 말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이런 이유로 성인은 사람을 잘 얻으며 버림이 없다, 또한 사물을 잘 얻으며 버리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노자는 일관되게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있지도 않고, 그런 것을 만들거나 찾으려 하지말라고 합니다. 나와 같이 하는 주변의 사람들도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와 뜻이 맞는 사람도 있고, 성격이 비슷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거나 뒤에서 험담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Leader라면 나의 취향이나 기준에만 맞는 사람들과만 같이 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풍부한 Database로 활용할 생각을 해야된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物이라고 쓰여진 자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당장은 필요없어 보이는 것이더라도, 아니면 하찮아보이는 자원도 적소에 사용되면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다음 기회에 필요할지 모를 일입니다.
 
是謂襲明
“이를 습명이라 한다.”
 
襲明(습명)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생각해보면 襲(습)이라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하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기습이라는 말에도 이 글자는 사용되는데 이 경우 襲明(습명)이라는 단어는 “기습적으로 밝아진다”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요. 뭐 이를테면 갑작스럽게 깨닫게 된다는 정도의 의미로 말이죠. 하지만 앞의 내용을 보면 이런 해석은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襲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엄습하다, 겹치다, 입다 (죽은 이에게 수의를 입힌다고 하는 염습한다라고 할 때 이 습자를 사용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襲明이라는 단어는 갑작스럽게 닥치다라는 의미와 더불어 겹쳐진다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제안하는 좋은 행동이나 이야기를 적용하고, 더 나은 의견이 있으면 기존의 방식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는 말을 밝음(明)을 겹친다 (襲)라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이죠. 앞장에도 빈번하게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한번에 무언가를 이루려기보다, 가진 자원과 환경을 감안하여 그중 최선의 개선책을 적용하고 이런 방식을 지속하여야 하며, 이러다 보면 어느덧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비하여 확연히 앞서는, 도드라져 보이는 절차와 Know-How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明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 앞이 어두웠던 상태에서 빛을 비춰주는 듯한 Solution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어두움은 불빛 하나만으로는 완전히 밝아질 수는 없습니다. 최초 등을 하나 키고 이어서 요소요소에 불을 키다보면 그 어두웠던 미지의 영역의 전모가 드러나게되는 거죠. 등을 하나씩 추가하는 행위를 “밝음을 겹친다”는 의미로 襲明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생각됩니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이런 이유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 되며,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산이 된다.”
 
여기서 善을 착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이야기의 의미가 다소 잘못 전달될 것 같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자산이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善은 앞의 문구와 마찬가지로 더 나은 방안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善人은 문제나 이슈에 대해 지금보다는 나은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석되며, 不善人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해결책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그런 방안에 없는 사람에 대해 자신의 Know-How를 전수할 수 있는, 가르킴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또한 이런 방안이 없는 사람들의 무리는 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善人之資 라고 설명된 것으로 보입니다.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자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지혜로운 자도 크게 갈피를 못잡게 된다.”
 
이 말은 Leader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리더 자신이 좀 자신이 똑똑하다고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즉 참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또한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를 회피하거나 개선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그 조직은 그리고 그 리더 자신도 발전이 없이 당면한 문제에 휩쓸려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거죠.
 
是謂要妙
“이를 가르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다 한다.”
要妙 (요묘)라는 말은 사전에 이미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다”라는 의미로 뜻이 풀어져 있습니다. 위의 모든 이야기들이 실제 적용되기는 매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해야되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조언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또한 많은 제안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안인지 누가 정말 좋은 해법을 가진 사람이며 누가 숨은 의도를 가지고 현상을 왜곡하는지 판단해야되는 상황이 있게 때문일 것입니다.
 
이 많은 방안 중 어느 것을 취할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이 그 리더나 집단, 구성원들이 지게되는 것이므로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이런 측면에서 노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묘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6장

2021. 7. 29. 15:27 from BoOk/pHiLoSoPhY

重爲輕根 靜爲躁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시이성인종일행 불리치중

雖有榮觀 燕處超然

수유우관 연처초연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輕則失本 躁則失君

경즉실본 조즉실군

 

 

26장의 내용은 이슈를 대하는 리더의 자세가 어떠해야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을 저는 아래와 같이 풀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가볍게 (輕) 대하여도 리더는 신중하게 (重) 살펴야하니 이래야 조직에 근본이 (根) 선다. 또한 조급하게 (躁) 사람들이 문제를 처리하려 하여도 냉정함을 (靜) 잃지 않아야 다스림이 (君) 이루어질 수 있다.”

 

뭐 길게 설명할 내용은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를 접근하고 대응하는 측면에 있어, 신중함과 냉정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 나오는 두번째 문장에서 "輜"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될지 잠시 고민하였습니다. "輜"은 사전에 보면 수레 또는 바퀴살 끝이라고 나옵니다. 수레라고 하면 좀 이야기를 풀기가 어렵겠지만, 바퀴살이라고 해석한다면 11장에 나온 내용과 연관되어 설명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11장에서도 설명하였지만 노자는 지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 이야기하였으며, 그 비유로 비어있는 방과 중간이 살로 연결된 바퀴를 예로 들었었습니다.

 

이렇다면 두번째 문장은 아래와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인은 종일 무언가를 행함에 있어, 그 바퀴살을 두터이 하려는 원칙을 벋어나지 않았다.”

 

바퀴살을 두터이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요? 수레바퀴의 살들이 부실하여 수레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 가지 못해 바퀴살이 부서져 주져앉고 말 것입니다. 이를테면 리더는 구성원들이 활동함에 문제가 없도록 절차과 제도를 견고히 해야지, 않그러면 (허점이 보이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죠.

 

이어지는 문장에는 "화려한 유혹이 있더라도 이러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雖有榮觀 燕處超然) 그리고 그러해야되는 당연성을 강조하며, "여러 사람을 대변하는 군주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일신상의 일을 대하는 것과 같이 천하의 일을 가볍게 다룰 수 있겠냐" 이야기 합니다.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직접적으로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하여 개인의 사사로운 명예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책무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첫번째 문장의 내용을 활용하여 신중함과 냉정함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섣불리 문제를 가벼히 다루다보면 그 근본을 잃을 수 있으며, 조급하게 임시변통을 남발하다보면 임금의 자리를 잃을 수 있다.” (輕則失本 躁則失君)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5장

2021. 7. 19. 13:42 from BoOk/pHiLoSoPhY

有物混成, 先天地生.
유물혼성, 선천지생.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적혜요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부지기명,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고도대, 천대, 지대, 왕역대,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25장의 내용은 천체 물리학을 생각나게 합니다. 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우주가 수십억년 전 빅뱅에 의해 생성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빅뱅 이후 우주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으며, 동시에 중력과 핵력의 영향으로 한편으로는 원자들이 한곳에 모이는 현상이 발생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별을 생성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양은 지금도 매초마다 10억 x 10억개의 수소가 핵융합을 통해 헬륨을 생성하고 손실된 중력만큼 에너지가 열과 빛의 형태로 발산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 이야기를 하자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분자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원자는 전자와 양성자 그리고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원자들은 중력과 핵력의 영향으로 이러한 핵융합이 중첩적으로 이루어져서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배운 원소주기율표를 참조)

첫 두 문구는 이러한 과정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先天地生 즉 우주가 나타나기에 앞서부터 有物 무언가 물질이 만들어짐은 混成 복수의 물질이 섞임으로서 이루어 진다는 거죠. 노자가 양자물리학을 알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무튼 우주를 이루는 모든 물질로 이런 원리를 통해 형성된다면 무언가 새로운 법칙과 해결책을 내는 것도 이런 기본 원리에서 벋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혼자서 무언가 하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 “寂兮寥兮, 獨立不改 적막하고 쓸쓸할 따름이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周行而不殆 같이 가야 위태롭지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이러한 원리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까죠.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노자는 앞서 이야기 한 것이 천하를 생성한 원리임은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 무언가 기존에 정해진 규정된 이름은 없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리학 관점에서 지금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명칭이 나와있습니다.)

이어 노자는 字之曰道 하지만 아직 명칭이 없으니 그냥 道(원리)라고 하자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强爲之名曰大 이 원리는 억지로 설명하자면 커지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 또한 앞서 이야기한 천체물리학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다시 말하지만 우주는 지금 이 순간도 팽창하고 있습니다.)

다음 문구로 넘어가지 전에 사람도 그렇고 상품도 그렇고 나고 소멸하지까지 아래의 패턴을 대부분 따르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그리고 대부분의 생명은) 태어나면 일단 폭발적으로 성장을 하게됩니다. 사람이 통상 80~90까지 산다고 봤을 때 성장은 20대가 되기 이전에 대부분 완성됩니다. 상품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전자제품의 예를 들자면 출시 직후 몇 개월이 상품의 성패를 가늠합니다. 이 기간에 전체 Life Cycle의 상당 부분의 물량이 판매되게 되는거죠. 이후 사람도 그렇고 상품도 그렇고 성숙기에 접어듭니다. 성장은 완만하게 낮아지고 사람의 경우 기본 체격에 근육이 더해지거나 지식이 채워지게 되죠. 상품의 경우라면 출시 이후 발견된 문제점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지고, 성립된 시장을 견고히 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죠. 사람이라면 노화의 길을 거쳐 사망하게 되고, 상품의 경우라면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단종의 길을 것게 됩니다.

이해를 위해 생명체와 상품의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생성 – 성장 – 성숙 – 쇠퇴 Cycle은 국가, 종교, 철학, 유행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라는 세 문구는 표현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무언가 커진다는 것은 밖으로 나아가려는 즉 확장하려는 성향을 가진다는 것이고 (逝) 확장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한계상황에 다다르게 되며 (遠) 이 상황에 다다르면 쇠퇴하거나 반작용이 일어나게 된다는 (反) 이야기를 합니다.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우선 처음에 이야기하였듯 우주의 기본적인 성향은 확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故道大), 하늘과 땅 또한 그 영향을 확장하려하는 성향이 있다 (天大, 地大)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왕 또한 확장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王亦大) 이야기 하고 다시 한번 사람사는 세상도 천지만물과 다르지 않음을, 그중의 하나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여기서 王이라는 대상으로 논의를 한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작성된 글 임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중간단계의 이야기가 길어져서 처음에 시작하는 내용을 다시 상기해야될 것 같습니다. 천지에 앞서 우주의 논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면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하거나 혼합하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양자물리학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더라도 이야기는 일견 단순합니다. 기존에 있던 것들만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獨立不改) 이건 인간사회에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닙니다. 우주가 그리고 하늘과 땅이 이렇게 생성되었다고 노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사람은 땅에 매여 그 법칙에 순응하고 (人法地), 또한 땅은 하늘 아래 있어 그 풍요함과 황량해짐이 하늘의 법직에 의존하게되고 (地法天), 하늘 또한 우주의 원리를 어긋나지 못한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天法道) 그리고 그 우주의 원리는 자연스러움을 따른다고 이야기 합니다. (道法自然).

여기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결국 아래의 내용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道 → 大 → 逝 → 遠 → 反

즉 우주의 모든 Solution이나 법칙, 원리 혹은 절차는 수립되어 이를 집행하게되면 점점 견고해지고 모양을 갖춰가게되며 이후 영향을 확대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유효성을 다하게되어 현실과 괴리된 낙후한 모습을 가지게되며, 이후 새로운 것에 그 자리를 넘기고 돌아가게 된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죠.

35장의 내용은 결국 같이 해라 혹은 기존의 솔루션으로부터 융합하거나 조합하여 새로운 개선책을 만들어내라,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수명을 다하게되어 또 다른 혁신을 이루어야함을 명심하라는 내용으로 해석되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4장

2021. 6. 21. 15:20 from BoOk/pHiLoSoPhY

企者不立 跨者不行

기자불립 과자불행

自見者不明

자견자불명

自是者不彰

자시자불창

自伐者無功

자벌자무공

自矜者不長

자긍자불장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기재도야 왈여식췌행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물혹오지 고유도자불처

 

24장의 첫 두 문구는 많은 경우 "발돋움을 하고 있으면 (오래) 서있지 못하며, 보폭을 넓게 걷는 사람은 (오래) 걷지 못한다"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이견은 없습니다. 이 두 문구는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단상 위의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려고 까지발을 하고 서있거나, 아니면 마라톤 시작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 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는 오래 가지 못하죠.

 

다음 문구들은 나 혼자 나서는 행동이 얼마나 부질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自見者不明 나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은 실상 명철하지 못하며, 自是者不彰 혼자 옳다고 하는 사람은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며, 自伐者無功 혼자 전장에서 싸우려는 사람은 공을 이루지 못하고, 自矜者不長 스스로를 잘낫다 여기는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을 합니다. 요약하자면 34장에서 노자는 너 혼자 살겠다고 그리고 너 혼자 돋보이겠다고 하는 행동들은 결국 별볼일 없게 될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其在道也 曰餘食贅行라는 그 다음 말로 이 모든 행위가 결론적으로 대단찮은 것에 불과하다 말하는데, 풀어 이야기하자면 “이런 류의 (基在) 방안 (道)은 먹다 남은 요리 (餘食)와 같아 별 쓸모없는 행위라 (贅行) 한다” 이야기 합니다. 이를 테면 근본적 해결 방안을 내기 위한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 그냥 겉치장이나 말단의 내용에 그치게 된다는 이야기죠. 物或惡之 그런 사람이나 행동 (物)들은 타인들에게는 통상 의혹의 대상이 대거나 (惑) 아니면 아예 미움을 받게 되므로 (惡), 방안을 만들어내려는 자는 (有道者) 이러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합니다. (不處)

 

조금 더 추가해서 말하자면 기본에 충실하라는 의미도 될 것 같습니다. 제품이 아무리 예쁘면 뭐하겠습니까? 기본적으로 기능이 안되면 소비자에게 외면받게 되는거죠. 알맹이 없이 겉모습만 번드르한 경우 사람들의 이목을 잠간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외면당하게 됩니다.   

 

다소 반대 입장에서 저만의 사족을 달자면 위의 내용은 당시 군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큰 그림을 생각해야되는 사람이 국가 백년지대계는 생각하지 않고 나만 인기영합하려고 해서는 큰일 난다는 그런 의미라는 점이죠. 평범한 일반인에게 이런 이론이 적합한지는 의문입니다. 내가 말하지 않고, 튀지 않으려 가만 있으면 누가 나의 능력을 알아서 써주겠습니까? CF에서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정말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그냥 사족으로 이야기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3장

2021. 6. 4. 14:06 from BoOk/pHiLoSoPhY

希言自然
희언자연
故飄風不終朝
고표풍불종조
驟雨不終日
취우부종일
孰爲此者 天地
숙위차자 천지
天地不能久
전지상불능구
而況於人乎
이황어인호
故從事於道者
고종사어도자
道者同於道
도자동어도
德者同於德
덕자동어덕
失者同於失
실자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信不足焉 有不信焉
신부족언 유불인언
 
33장의 내용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일을 도모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처음부터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希言自然이라는 문구는 이런저런 해석들이 있으나, 저는 “말을 아낌이 자연스럽다”로 해석하였습니다. 때로 리더가 말을 아끼면 (간섭이 없으면) 일은 저절로 돌아간다던지 하는 해석이 있던데,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내버려두면 많은 경우 갈팡질팡하게 되거나 내팽겨져 아무 진전이 없는 경우가 발생되게 되죠. 따라서 希言自然이라는 이야기는 독단을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두를 꺼낸 것이지, 아무 관여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 뒤의 두 문구는 리더가 아무리 잘나더라도 혼자 일을 독려할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故飄風不終朝  표풍도 아침 내내 불지는 못하며, 驟雨不終日 소나기도 하루 종일 내릴 수 없다. 孰爲此者 天地 이렇게 하는게 누구인가? 거룩한 하늘과 땅이다. 天地不能久 이 대단한 하늘과 땅도 길게 못하는 것을 而況於人乎 사람이 어쩌 하겠는가? 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회오리 바람과 소나기를 비유로 들었다는 점입니다. 바람에도 여러 바람이 있으며, 비가 오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회오리와 소나기는 그중 어쩌면 극단적인 경우를 가르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치 리더가 구성원들을 몰아붙이는 것과 같은 상황을 비유한 것 처럼요. 그리고 노자는 이런 다그침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 것 같습니다. (뭐 태풍은 오래 불긴 합니다.) 希言에서의 言은 아래사람을 닥달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런 상황을 적게해야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앞에서도 많이 이야기하였으나, 노자는 리더 혼자의 독단에 치우치지 말 것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들 천지에 비할 것이며, 천지도 못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죠. (천지의 비유를 뒤에 들 것을 염두에 두고 첫 문장에 自然이라는 단어를 사용된 듯도 합니다.)
 
그럼 리더는 대안으로 어떤 자세를 가져야될까요?
 
故從事於道者 즉, 道者에 따라 일을 도모하라고 합니다. 그럼 道者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道者同於道, 즉 같은 道를 가진 사람들 혹은 같은 道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道者라 한다고 설명합니다. 앞에 말한 바와 같이 道는 방안이나 Solution이라고 한다면, 德은 가치관이 투영된, 즉 선택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이 장에서 새로이 나오는 失이라는 단어는 德에 대치되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덜어내야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저는 해석하였습니다.
 
즉, 뒤의 두 문구 중 德者同於德는 어떤 가치가 더 나은 것인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가르키며, 失者同於失은 덜어내야할 것이 어떤 것인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집단을 만들어 공통적으로 적용될 제도를 만들고, 프로세스를 개선하며, 일을 추진하는 것은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통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최고경영자로부터 현장 노동자까지 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토론과 회의 그리고 조사를 통해 회사의 주요 추진과제를 선정하며 그 목표를 다하기 위해 매진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수립된 방향으로 일을 하면 회사나 구성원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렇게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어야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수립된 방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며,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추진하는 방향성을 기쁘게 받아들으며, 同於失者 失亦樂得之 혹여 희생하거나 줄여야되는 부분도 이견없이 추진하게 됩니다. 뜻을 달리하는 경우, 아무리 강압적으로 행동을 강요한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에 대비해 일의 효율은 떨어지게 되며, 성과 또한 낮게 될 것입니다.
 
信不足焉 有不信焉 대치되는 이 마지막 문구는 언뜻 말장난처럼 느껴지지만,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구성원 간에 리더와 실행 인원들 간에 신뢰가 부족하면, 앞으로 해야되는 일들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일게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면 더 이상 이들은 같은 목적을 가진 집단이 아니게 됩니다. 같은 철학과 목적과 지향점을 가지지 않고되는 거죠.
 
33장에서 노자는 첫머리에 말을 아끼라 조언합니다. 나만 떠드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거죠. 대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찾던지 아니면 사람들과 협의를 통해 같은 뜻을 가지도록 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일이 무릇 이루어질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1장

2021. 3. 17. 18:14 from BoOk/pHiLoSoPhY

孔德之容, 惟道是從.
공덕지용, 유도시종
道之爲物, 惟恍惟惚.
도지위물, 유황유홀
惚兮恍兮, 其中有象,
홀혜황혜, 기중유상
恍兮惚兮, 其中有物.
활혜홀혜, 기중유물
窈兮冥兮, 其中有精,
요혜명혜, 기중유정
其中甚眞, 其中有信.
기중심진, 기중유신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자고급금, 기명부거, 이열중보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오아이지중보지위재, 이차
 
 
21장의 첫 글자는 孔입니다. 孔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로 쓰여진 걸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구멍이라는 뜻으로 가장 먼저 정의되어 있습니다. 다른 뜻도 몇몇 있는데 크다던가, 헛되다, 통한다 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孔이라는 단어를 11장의 無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孔德之容이라는 첫 네 글자는 “비어있음의 덕은 받아들임 (수용함) 에 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 네 글자로 더욱 비움의 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惟道是從 “오로지 도는 이를 따른다”라는 것이죠. 첫 단원은 결국 비움의 미덕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는 것이며, 왠만한 Solution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道는 다시 이야기 하지만 길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사람들이 많이 밟고 지나가는 곳에 형성되죠.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大道無門이라는 말은 큰길에는 일종의 검열 역할을 하는 Gateway 즉 門이 없다는 의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나의 의지를 투영하려고 고집하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수용할 수 있는 빈공간 또는 Play Ground를 만들어주면 그 다음 자연이 해결책과 새로운 Idea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道之爲物, 즉 구체화된 뭔가를 (物) 만들어내는 (爲) 길(道)이 되는 것이죠. 
 
다음 세문장에 恍과 惚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쓰여집니다. 황홀하다라고 해석될 수 도 있는 이 두 글자는 이 경우 앞서 14장의 夷, 希, 微라는 단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저는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그런 상황이 다르게 표현되었다고 말이죠.
 
전체적인 현상만으로 방안을 수립하려 하는 상황는 막연하고 막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차분이 수용하다보면 대상을 명확화할 수 있고 (象), 모호했던 것이 구체화되고 (物), 일을 추진하는 동력을 형성하게 되며 (精), 깊이 진실된 마음들을 모을 수 있고 (眞), 구성원들의 믿음도 확보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信)
 
이 모든 절차의 기본은 孔, 즉 나의 Bias가 반영되지 않은, 그것을 비운 수용하는 자세에 있다고 본 것이죠.
 
마지막 두 문구는 수용하는 자세가 오래토록 검증된 道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로 보았습니다.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즉,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은 (不去) 정의 (名)라는 것은 덧붙여 설명하자면 오래살아남은 절차나 제도, 문화는 일반 대중들의 (衆甫) 교열 (閱), 즉 집단지성의 검증을 거친 대상들이라는 것이죠.
 
오래 살아남은 이름이나 방식, 습관, 문화는 결국 한 위대한 위인의 갑작스런 발견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그 구성원들의 반복된 정정을 거친 것이 대부분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라는 마지막 말은 이를 강조해 표현한 것으로 “내가 어찌 사람들의 상태를 알겠는가, 이로써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즉 그 대중의 문화나 습관은 그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문화나 관습을 보면 그 구성원들이 거쳐온 역사와 환경, 그리고 역량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로 해석하였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0장

2021. 1. 13. 13:42 from BoOk/pHiLoSoPhY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하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형태뢰, 여춘등대. 아독박혜기미조,
如嬰兒之未孩,
儽儽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여상아지미해. 내래혜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飂兮似無所止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요혜사무소지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且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도덕경 20장은 絶學無憂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배움을 끊으면 근심할 바가 없다라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또는 공부 해봐야 근심거리만 되므로 그냥 속 편하게 살도록 배움을 멈추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노자의 철학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絶學無憂라는 말은 배움이 없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되며, 눈 앞에 재앙이 다가오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될 것 같습니다.

 

뒤의 문장을 보면 이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보입니다. (唯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공손히 대답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보이며, 阿라는 단어는 “친근하게 부르는 말”로 이해해야될 것 같습니다.) 唯之與阿, 相去幾何라는 말은 공손하게 또는 친근하게 상대방에게 이야기 하는 것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는가, 즉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이런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배우지 못한거죠.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사용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 수록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가르칠 것이고, 결국 이 배움을 바탕으로 어른들에게는 존대를 하게 됩니다. 배우지 못한 아이 때는 주변 사람들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더라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사람이 아무에게나 반말을 남발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요? 이 문장의 더 가까운 뜻은 어느 경우에 또는 어느 대상에게 공손해야 되며, 어느 사람이나 경우에 상대방에 친밀하게 대하여도 되는지 그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라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결국 배움이 중요한 거죠. 배움이 부족하면 경계에 대한 구분도 합리적이지 못할 수 있고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善之與惡, 相去何若라는 말도 선과 악이 때로는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 경계를 가늠할 능력이 없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악에 발을 담그게 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人之所畏, 不可不畏라는 글에서 之라는 단어는 有로도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에게 두려워할 대상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뜻으로 직역되는데, 이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 심각성을 인지 못하면 아무리 큰 재앙이 코 앞에 닥쳐도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는 문구입니다.

 

다음 문장은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荒兮其未央哉, 거칠고 어두운 재앙이 아직 우리 가운데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닥치지 않은 상황에서는)

衆人熙熙 사람들은 희희낙낙합니다.

如亨太牢 그냥 고기 굽고,

如春登臺 봄날 전망대에 올라 즐기 듯 말이죠.

我獨泊兮其未兆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예견하는 나는 (노자는) 홀로 아직 닥치지 않은 이 징조를 초조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어지는 如嬰兒之未孩라는 말은 아직 어린아이도 못된 간난아기로 해석하였습니다. 뒤이은 儽儽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는 "돌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게으르고 게으르니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뜻은 향하는 바가 없다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목적이 없다라는 뜻으로도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겠고요. 바라는 바와 지향하는 바가 없이 지내게 되면 결국 그 나태함의 대가가 후에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그 시간에서의 안락함에 위기를 깨닫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이 두 문구는 마치 굴원의 ‘어부사’를 생각나게 하는 문구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입으로 닥쳐오는 위기를 무시하면, 이를 알고 있는 나는 홀로 버려져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게된다는 말로 해석하였습니다.

 

나머지 문구는 노자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번에 문장별로 해석하려 합니다.

 

沌沌兮, 나는 앞날이 캄캄하게 느껴지는데

俗人昭昭, 사람들은 모두 총명한 것처럼 굴며 나를 대하고

我獨昏昏, 나는 어찌 이 위기를 헤쳐나갈지 혼란스러운데

俗人察察, 사람들은 통찰력이 있는 것처럼 상황을 대수롭치 않게 여기며,

我獨悶悶, 나는 이러한 상황이 답답하기만 한데

澹兮其若海, 飂兮似無所止, 衆人皆有以, 사람들은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이를 보아 바다와 같이 담담하고 바람소리와 같이 거칠 것이 없게 보인다.

而我獨頑且鄙, 오직 나만이 고집불통이어서 쓰일 곳 없이 되었으니,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이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귀히 여겨서다.

 

거의 대부분 우리 속담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에서 마지막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는 말은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위기에 대해 내가 근심하는 것은 결국 나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안위와도 연결이 되어서, 그리고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모를 대표적으로 표연하여 타인의 안위가 이 위기로 인해 영향을 받지않을가 하는 것이 자신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들기위한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짧게 마무리하자면 20장의 이야기는 배움이 필요치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배움의 가치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위기에 대한 인식 능력은 결국 배움에서 비롯되며, 걱정없이 되는데로 살다보면 나 뿐만 아니라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게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 하는 것이 20장에서 노자가 말하고자 한 바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Posted by Tony Kim :

20년 독서 리스트

2020. 12. 31. 22:07 from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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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장/구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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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위밍레슨
6. 제1차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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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죽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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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프랑스 혁명사 1권 - 대서사의 시작
17. 프랑스 혁명사 2권 - 1789
18. 1차세계대전사
19. 프랑스 혁명사 3권 - 진정한 혁명의 시작
20. 이기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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