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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20 노자도덕경 10장
  2. 2019.11.22 노자도덕경 9장
  3. 2019.10.31 노자도덕경 8장
  4. 2019.10.18 노자도덕경 7장
  5. 2019.06.14 노자도덕경 6장
  6. 2018.12.21 노자도덕경 5장
  7. 2018.12.07 노자도덕경 4장
  8. 2018.11.30 노자도덕경 3장 2
  9. 2018.11.22 노자도덕경 2장
  10. 2018.11.11 노자도덕경 1장

노자도덕경 10장

2020. 1. 20. 12:22 from BoOk/pHiLoSoPhY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專氣致柔  能嬰兒乎  전기치유 능영아호
滌除玄覽  能無疵乎  척계현람 능무자호

愛民治國  能無爲乎  애민치국 능무위호
天門開闔  能無雌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明白四達  能無知乎  명백사달 능무지호

生之畜之  生而不有  생지축지 생이불유
爲而不恃  長而不宰  위이불시 장이부재
是謂玄德  시위현덕

10장의 해석에 있어서는 논란이 분분합니다. 이는 다른 어느 장보다 더욱 은유적이며 함축적 표현이 많이 사용된 것이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위의 한자 원문 구성을 보면 마치 한시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논어"나 다른 경전과 차이가 있는 이런 문장 작성법도 아마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장은 또한 단지 문장 작성법 뿐 아니라 사용된 단어의 해석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10장의 마지막에 德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언급되었다는 점은 주목해야될 것 같습니다. (是謂玄德)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道가 Solution이며 善이 여러 Solution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라면, 德은 이렇게 선택된 道를 수행하는 바람직한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런 점을 감안하여 10장을 이해해보려 하였습니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載라는 글자는 "싣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營이라는 글자는 "경영하다, 추구하다"라는 동사로 해석될 수 있으며 다르게는 병영, 진영이라는 단어에 쓰일 때와 같이 "무리"라는 명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저는 무리라는 의미가 여기서는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장에서 설명하였듯 어떤 방안을 만들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는 그에 따른 영향을 받게될 집단의 합의 과정을 중시하는 내용이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해석하여 첫 문구는 "집단의 뜻을 하나로 모아 담아서 채택한 원칙에서 멀어지지 (離)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모두의 뜻을 모아 원칙을 정했으면 그 원칙에서 벋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말로 저는 해석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자신의 편의를 위해, 특정 세력과의 관계를 감안하여 원칙에서 벋어나는 일이 일상에는 허다합니다. 많은 문제가 이런 행동의 야기되므로 경계해야 된다는 문구가 아닐까 합니다.

專氣致柔  能嬰兒乎  전기치유 능영아호

2번째 문구는 과정의 단순화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여기서 "氣"를 앞 구절의 "魄"과 같은 의미로 본다면 구성원의 뜻을 하나로 모아 과제의 수행을 물 흐르듯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극히 매우 어렵지않게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그렇게 과제를 수행하려면 절차나 Process를 단순화하여 어린아이 (嬰兒)도 익힐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많은 기업들은 기업내 절차를 단순화하는 것에 주력합니다. 두사람이 할 일은 한사람이 하도록 하고, 숙련공이 맡아서 하던 업무를 비숙련공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죠. 

또한 이 단원은 모든 사람들의 중의를 모아 무언가를 수행한다면, 과정 상에 잡음이 없어 그 진척현황을 어린아이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않을까 합니다. 

 

한글 창제가 그 좋은 예가 아닐까 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소수의 엘리트 계층만이 익힐 수 있었던 문자를 단순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여, 정보의 독점 및 업무 추진의 밀실화 등에 따른 부작용를 피하자는 거죠.  

滌除玄覽  能無疵乎  척계현람 능무자호

여기서 "滌除"라는 단어는 씻어서 없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玄覽"이라는 단어는 사물의 진상을 꿰둙어 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요. 

모든 일은 수행함에 있어 절차상의 문제점이 없는지, 더 나은 방안은 없는지, 무언가 이상점이 발생되고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첫 세문장은 업무수행과정에서 1) 구성원의 중의를 모아 만든 원칙에서 벋어나지 않도록 해야하며 2) 그 과정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또는 원활한 수행을 위해 최대한 단순화하며 3) 수시로 문제가 없는지, 더 개선할 사항이 없는지 점검해야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愛民治國  能無爲乎  애민치국 능무위호

"無爲"에 대해서는 이미 앞장에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있어, 개인적 선입견이나 방향성을 미리 정해놓고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편향되지 않도록 통치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습니다.

天門開闔  能無雌乎  천문개합 능위자호

이 문구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뭐 여기서 그 많은 다른 의견들을 일일히 언급하는 것은 무리이며, 또한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서 언급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天門開闔"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이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절차, 정의를 수행한다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아니면 일을 추진함에 있어 큰 줄기를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雌"라는 단어가 사실 여러 논쟁의 단초가 되는데요. 앞장의 여러 여성성을 대표하는 단어 (母, 牝) 등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만들어내고, 생성해낸다는 의미죠.

저는 단순하게 의미를 해석하였습니다. 이미 구성원들 간에 합의를 통해서던 아니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든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 내용에 대해서는 굳이 Leader의 생각만으로 무리하게 새로운 절차를 만들어내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이미 추진되고 있는 일의 큰 줄기를 바꿔서는 안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요.

明白四達  能無知乎  명백사달 능무지호  

여기서 明白이라는 첫 두글자는 대학 1장의 시작은 "大學之道 在明明德"이라는 말을 연상시킵니다. (대학의 길은 상식적인 덕을 밝힌다는 것에 있다) 상식에 기초한 개선활동이 빈틈없이 모든 곳에 다다르도록 하며 (四達), 이런 활동에 개인의 설익은 지식을 개입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결국 뒤따르는 세 단원의 내용은 일을 수행함에 있어 Leader의 불필요한 개입을 최소화하라는 내용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편견을 개입하거나, 억지로 나의 주관 내세우거나, 설익은 절차를 만들어내거나, 좀 안다고 내 말이 맞다고 내세우지 말라는 의미로 말이죠.

사실 Leader는 자신의 판단 하에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아 무언가를 추진해내야하며, 그 결과에 대표적으로 책임을 받게되는 위치입니다. 책임이라는 압박에 구성원들의 의견이 정말 맞는지 의심하고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마땅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 새로운 더 나은 방안이라는 것이 Leader 개인의 주관에만 의존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질 뿐이죠. 내가 대표적으로 책임을 지더라도 결국 피해는 모두가 나누어받게 됩니다. 이 세문장은 결국 Leader들이 독단으로 흐르지말라는 경고를 한 것으로 저는 이해하였습니다.

生之畜之  生而不有  생지축지 생이불유
爲而不恃  長而不宰  위이불시 장이부재

Leader는 과정을 만들어내고 완성해가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성과는 모두의 것이지 자신의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구성원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 구성원들에 기대어 일을 하여서는 안되며, 내가 이끄는 단체를 성장시키는 것에 주력하되 나의 아랫 사람들로 여겨 군림하여 통치만 하려는, 지시만 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是謂玄德  시위현덕

그리고 이러한 것이 가장 근본이 되는 덕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정리하여 이야기하자면,


무언가 방향성을 정하여 일을 하기로 하였다면, 최초 방향 설정시 고려된 사항들이 과정중 무관심이나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누락되거나 건너뛰는 일이 없도록 하며, 과정은 가능한 단순화하며,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이 없는지 수시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법이나 관습과 같은 절차를 수행하고 또한 그 과정이 빈틈없이 전영역에 미치도록 함에 있어 Leader의 개인적인 편견이나 설익은 지식을 개입시키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되고, 기본적으로 Leader는 조직을 육성하고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소유물로 여겨 독단적으로 지시만 내리면 되는 위치는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일을 추진합에 있어 바람직한 태도인 덕이라고 말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9장

2019. 11. 22. 15:22 from BoOk/pHiLoSoPhY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이영지  불여기이
揣而銳之 不可長保  췌이예지  불가장보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이교  자유기구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8장이 좋은 방안을 수립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9장에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방안도 영구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이영지 불여기이    

揣而銳之 不可長保  췌이예지 불가장보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지키고 채우는 것은 그만 둠만 못하다. 끝단까지 세밀하게 만들어도 길게 보존치 못한다" 라고 이해 되었습니다. 이야기한 바와 같이 고생하여 어떤 방법을 만들어도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게으릅니다. 노력해서 어떤 방안을 만들어 내고, 특히나 그를 통해 성공사례가 만들어지면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것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냥 큰 틀은 바꾸지 않고 내용을 보충하거나 약간 부족한 부분만 보완하려고 하게되죠. 모호했던 항목을 더 자세히 규정하고 기법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도 개선하려 합니다. 그런데 노자는 그래봐야 길게 가지 못한다. 그만 두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이야기 합니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이교 자유기구

개인에 비유하자면 엄청난 성공을 거둬 집안에 돈이 넘쳐도 많은 경우 몇 세대를 거치치 못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에 자만하는 순간 주변의 원망하는 소리가 생기게 되고요.

성공 뒤의 재물과 같이, 지금 금과옥조로 알고있는 절차와 해결방안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과거의 성공에 연연해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집착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원성이 생겨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죠.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그러므로 이 문구는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라는 단순한 의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무언가를 이룩하거나 만들더라도 거기에 집착하고 정체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天之道, 곧 바탕이 되고 모든 것에 앞서는 기본 원칙라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8장

2019. 10. 31. 11:32 from BoOk/pHiLoSoPhY

上善若水 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 수선이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居善地 心善淵 거선지 심선연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夫唯不爭 故無尤
부유부쟁 고무우

7장까지의 내용이 道와 名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8장에는 새로이 善이라는 주제가 등장합니다.
善이라는 단어는 착하다는 뜻도 있고, 좋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道가 일을 행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면, 세상에는 좋은 道도 있을 것이며 나쁜 道도 있을 것입니다. 道라는 말 자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道는 그냥 방법일 뿐입니다.)

첫장에서 이야기 했다시피 절대적이고 영구불변한 道가 있지않다면, 사람들은 계속 더 낫거나 새로운 방안을 만들려할 것이고, 여러 방안 중 한가지 방안을 선택하여야 한다면 합리적 기준은 그중 어느 것이 더 낫냐는 점을 고려할 것입니다.

上善若水 상선약수

그래서 善이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最善이라는 단어도 아니고, 첫 문장은 上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우리의 경험에 한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가 지금 몰랐더라도 더 나은 선택지 또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방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最善은 그 말 그대로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뜻인데 시간이 지나 더 나은 방법이 나온다면, 그 순간 그 방법은 最善이 아니게 되는거죠.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선택지 중 나은 방법이라는 의미에서 上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Most가 아닌 More, Best가 아닌 Better) 그리고 노자는 上善은 물과 같다는 얘기를 합니다.

水善利萬物而不爭 수선이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물의 장점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그 이익을 다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7장의 天長地久와도 의미가 상통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장소에 있어 道에 다가선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식당을 한다고 합시다. 물론 장사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지만 모든 활동이 이윤 극대화에만 집중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가의 재료만 사용하고, 가격은 주변 시세보다 높게 책정하고 .... 다른 쪽에 대한 고민없이 이렇게 이익만 고려한다면 진짜 이익이 나게될지도 의문입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고민하여 좋은 메뉴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만족해할만한 가격대가 어느 수준인지 고민하고, 또 식당은 어떻게 하면 찾아오는 손님들이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 불편한 점이 무엇일지 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결론적으로 손님을 더 많이 찾아오게 하는 것 아닐까요? 이익은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고요.

더러운 것, 힘든 것, 어려운 것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거나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어느 특정 공정에서 불량이 계속 생기면, 그냥 원래 그런거야 하고 놓아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좋은(善) 방법은 아니겠죠. 편하게 쉬운 일만 하면서 근무시간 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오히려 귀찮고 주저하는 마음은 제쳐두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위해 우선 힘들고 어려운 점에 다가서야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居善地 心善淵 거선지 심선연

물의 자연적 특성을 관찰하면 하늘의 수증기가 비가 되어 땅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후 작은 개울과 개천을 거쳐 연못이나 강, 바다로 흘러들어가겠죠.

이 두 문구는 上善의 방안(道)을 물의 특성에 빗대어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뜬 구름같은 형태로 공중에 머무르는 수증기는 액체 형상의 물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그러나 일단 물이라는 형상을 가지게 되면 비가 되어 공중에서 땅으로 향합니다. 道는 하늘 (비현실적 관념 세계)에 있지않고 땅 (현실)에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내린 비는 결국 모이고 모여 큰 연못에 모이게 됩니다. 이 淵이라는 단어는 이미 4장에도 한번 나온바 있습니다. 비가 되어 내린 강물은 땅 위의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도 쓸어 연못으로 모아담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연못에는 생명체들의 터전이 형성되게 되죠.

이 두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좋은 방안은 (上善의 道) ① 뜬구름 잡는 비현실적 상황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② 모든 좋고 나쁜 것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한다. 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이 다섯 구절은 현실에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내는 다섯 가지 단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① 사람들과 같이 방안을 도출하되 어질고 너그러워야 한다
② 그러나 내가 의견을 제시할 때는 구체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③ 도출된 방안은 최대한 구성원의 합의를 이뤄 그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승복하고 따르도록 해야한다
④ 방안을 수립함에는 나에게 주어진 자원과 능력 등을 감안하여 현실적인 방안이 도출되도록 해야하며,
⑤ 최종적으로 일을 추진함에는 주변 환경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夫唯不爭 故無尤 부유부쟁 고무우

이 문장은 "夫"자를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사람들이 오직 다투지 않으니.... 라고 해석이 될 수도 있고, 두번째는 不와 의미는 같으나 발음이 같은 다른 문자를 일부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유일한 것을 고집하지 않고 다툼이 없도록한다"라고 해석하는 방법도 있죠. 저는 두번째 방법을 선택하겠습니다.

"물 흐르듯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의견만 맞다고 고집하지 않고, 순리대로 행하여 억지 다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수립된 방안을 수행하여 만들어지는 결과가 크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서로 탓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겠죠.

물론 세상을 살면서 논쟁거리를 무조건 회피하고, 좋은게 좋을거지 하는 건, 비겁하거나 기회주의자들이나 취하는 태도입니다. 마지막 문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 겁니다. "唯"자를 앞에 내세운 것은 나만, 내 의견만 옳다라는 입장을 고수하지 말자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독선은 하지말자는 의미죠.

唯一主意, 파시즘, 全體主義, 나치, 스탈린 독재, 모택동 문화혁명, 김일성 주체사상, 박정희 유신
상대성을 인정하지않고 나만이 옳다고 하는 주의 / 주장이 얼마나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① 너그럽게 상대방을 인정하고 논의하되 ② 다만 나의 의견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도록 나부터 준비를 하며 ③ 그래서 결론적으로 만들어진 방안이 구성원의 합의에 의한 것이 되어 사람들이 최대한 참여하는, 다스려지는 방향으로 만들어지도록 하고 ④ 이렇게 만들어진 방안은 나의, 우리의 능력과 가지고 있는 자원을 고려해야하며,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⑤ 결론적으로 일을 시작한다면 나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주변의 시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된다는 의미이겠죠.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방안을 수립함에 있어서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는다. 사람들이 찾거나 하기 싫은 곳에 흘러드니 도에 다가서게 된다. 물이 땅에 내려 많은 것들을 쓸어내려 연못으로 흘러가듯 무리함 없이 방안을 수립해야된다. 너그럽게 상대방을 인정하고 논의하되, 나의 의견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며, 그래서 결론적으로 만들어진 방안이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다스려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해야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방안이 과연 나의, 우리의 능력에, 가지고 있는 자원을 고려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고려하여 구체적 계획을 수립할 것이며, 일을 일단 시작한다면 모든 주변의 상황과 시세를 고려하여 진행해야 된다. 나만이 옳다 고집하지 않고, 다투지 않는다면 이러한 방안이 수행된 결과에 대해 사람들이 탓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7장

2019. 10. 18. 10:29 from BoOk/pHiLoSoPhY

天長地久  
천장지구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비이기무사야     고능성기사 

노자도덕경 7장은 언듯 3장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읽힘니다.
암튼 내용을 해석해보자면....

天長地久                                                 

천장지구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고대인들의 시각에서는 하늘과 땅은 모든 것을 담을 정도로 장대하며,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시간이라는 것에 얽매임이 없는 것처럼 
영구불변의 존재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노자는 천지가 저리 장구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비록 하늘과 땅이 많은 역할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구히 그 모습을 유지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뭐 앞에 장에서 많이 보듯이 다음은 사람들이 어떠해야된는가라는 내용이 나올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비이기무사야     고능성기사 

노자는 사람들도 (아니 Leader들은) 나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처리하기 보다, 개인적 이익이나 유불리를 생각하기 보다, 전체의 이익이나 당위성 등을 앞에 놓고 일을 진행해야하며, 이렇게 하여야 결론적으로 본인을 남들이 알아보고 인정하게 되며 이로 인해 자연적인 결과로 나의 명예와 이익도 성립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後其身과 外其身이라는 문구는 나의 이익을 후순위로 하고 나만의 생각이나 입장에서 벋어나라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풀어서 해석하자면,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야     고능성기사 

"천지는 길고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한다.
천지가 이렇듯 길고도 오랜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천지가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인도 또한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이익과 유불리를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만을 내세우지 말아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지가 세워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주관적인 입장만 내세우며, 사사로움만을 추구하지 않아야 
비로서 그 자신도 성장하게 된다."

 

 

 

# 뱀꼬리 : 마지막 두 문장은 이순신 장군의 그 유명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오, 요행히 살기를 바라는 자는 죽게될 것이다. - 必死則生, 幸生則死"를 연상케 하더군요. 저만의 생각이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6장

2019. 6. 14. 10:32 from BoOk/pHiLoSoPhY

谷神不死 是謂玄牝
곡신불사 시위현빈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綿綿若存 用之不勤

면면약존 용지불근

 

많은 노자도덕경 해설서를 보면, 6장 첫문구를 '계곡의 신은 죽지않는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장은 단 세줄에 불과하지만 谷神이나 玄牝과 같은 문구를 보며 이게 무슨 얘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곡의 신? 검은 암컷?)

 

谷神이 한 단어가 아니라, 谷과 神을 떨어뜨려서 해석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이 죽지않는 계곡이 ..." 로 해석해보는거죠. 

 

谷이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계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곡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산 속의 물이 흐르고 그늘이 진 가운데 수풀들이 우거진 장소 정도를 연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생명들이 모여있는, 그리고 모이는 장소죠. 

神은 유교에서 말하는 性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의 情神, 본성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玄牝에서 玄은 이미 1장에서 언급이 됩니다. 

 

此兩者同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동 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6장의 첫줄 바로 다음 두번째 줄에 門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1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또한 牝이라는 단어도 같은 맥락에서 1장의 母라는 단어와 뜻이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단지 여기서 母를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고 다른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다소 의미가 달라서 이던가 (1장의 내용이 "이름을 부여하여도 그 근원은 동일하다"는 것에서, 6장의 내용은 의미가 부여된 현상들이 그 자체의 본성이나 정신이 변경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사용) 또는 표현의 다양을 위해 같은 단어를 반복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합니다.

 

玄牝은 어떤 의미에서는 DATABASE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정의되어지지 않은 Raw Data 상태의 현상들이 모여있는 것. 정의되지 않았다고 하여 사라지지는 않는다. 미해석된 영역이어서 어둠(玄) 속에 남겨져 있지만, 결국 이로부터 하나 하나씩 현상을 해석하여 정의하면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생성된다는 의미로 파악하여 牝이라는 단어가 사용된거죠.  

 

위의 내용들은 감안하여 아래와 같이 첫줄을 해석하였습니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곡신불사 시위현빈

모든 정신들은 사라지지않고 축적되니 이로부터 모든 것이 생성된다. 이를 일컬어 玄牝이라고 한다.

 

그 다음줄의 내용은 현빈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졌으므로 이어서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玄牝으로 통하는 문은 천지의 근본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다음 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綿綿若存 用之不勤     면면약존 용지불근

 

이 줄의 내용은 단어에서 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함이 아닐까 합니다. 玄이라는 단어가 자칫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아직 상존하는 현상이 정의가 되어지지 않은 상태일 뿐이며 이에 대해 정의가 내려지면 대중들에게 사용함에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로 이해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모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합니다. 

 

"모든 현상들과 본질들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상존하며, 축적되니 이를 사람들이 해석하여 상대화하고 현상화한다. DATABASE 역활을 하는 玄牝으로 들어서는 문이 천지만물의 근본이 되니, 玄牝은 사실상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여 이를 활용함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듯하는 어려움이 없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5장

2018. 12. 21. 14:01 from BoOk/pHiLoSoPhY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天地之間 其猶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수궁 불여수중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여기까지 내용을 보면 노자에서 聖人이 논어의 그것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논어에서의 聖人이 초월적 위치의 哲人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노자에서의 聖人은 당시 이 글을 읽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독자층, 즉 자신의 철학을 구현시켜주기를 바라는 대상인 군주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될 것 같습니다.

 

위의 두 문구는 천지가 이러하므로 성인은 마땅히 이러해야한다는 댓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풀어 해석하였습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성인도 인자해서는 안된다.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여겨야한다."

 

현재의 민주공화정 시민들에게 이런 내용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풀강아지로 여긴다는 것은 백성을 하찮게 여기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상대에 대해 주관적인 감정이나 호오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생각해야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에서 仁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도자가 너그러워지려는 마음을 가지더라도 이는 어느 특정 대상이나 계층에 한정되기 십상이며, 이 경우 그 혜택에서 소외되는 집단이 생기게 되어 필연적으로 집단 내에 갈등을 유발할 여지를 만들게 됩니다.

 

노자는 하늘이 만물에 대해 풀강아지 대하듯 통치의 대상에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합니다. 하늘이 착한사람에게만 더 좋은 날씨를 주고, 나쁜 사람들만 골라 천재지변을 일으키지는 않으니까요.

 

무신론자라서가 아니라 구약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보살피지? 왜 유대인들처럼 이교도들 앞에 나타나서 내가 신이라고 얘기하고 소위 성경에서 얘기하는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는 거지?  왜 그때는 그렇게 부지런하게 사람들 앞에 출현하시다가 요즘에는 전혀 무심한 듯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는 거지 등등...

 

물론 노자에서 말하는 천지가 어떤 절대자를 뜻하는 것이라면, 무신론자인 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만들어내었어도 그 이후 불편부당하듯 지도자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말하자면 소위 리더는 밑의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서 내가 착해야지, 저사람들에게 잘보여야지 라는 생각을 앞세우게 되면 이로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떤 주관적인 편견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현실을 보며 가능한 편중됨이 없어야한다는 의미를 담은 두 문장으로 이해됩니다.

 

地之間 其猶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여기서 다시 천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해석을 아래와 같이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빈 공간은 마치 그 (풀무)와 같다. 빈틈이 있음에 굴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앞서 잘못한 점을 고쳐낸다"

 

앞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도덕경에서는 사전에 준비한 해법이 항상 완전무결할 수는 없으며, 지금 당장 확실하지 않다면 앞으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일단 시작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개선해나가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준비한 해법이 완전무결하지 않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수궁 불여수중 

 

여기 이 문구는 많은 경우 "말이 많으면 수가 궁해진다"는 식으로 해석들이 됩니다. 이것도 좋은 말이기는 한데 뭔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여기 多言數窮이라는 문구는 의견을 많이 나누고 (말을 많이 하고) 수를 궁리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나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경우라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지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단, 이 경우도 "不如守中" 즉 자신만의 중심은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주관을 지켜야된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풀어서 전체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성인도 인자해서는 안된다.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여겨야한다. 하늘과 땅 사이 빈 공간은 마치 그 (풀무)와 같다. 허점이 있음에 비굴해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노력하여 앞서 잘못한 점을 고쳐낸다. 의견을 많이 나누고 방도를 찾을 것이되,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4장

2018. 12. 7. 13:18 from BoOk/pHiLoSoPhY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 이용지, 혹부영

淵兮似萬物之宗.

연혜사만물지종

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湛兮似常存.

담혜사상존

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갈 수록 내용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도 모호하고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될지 어려웠는데, 특히 여기서 가장 이해가 안되었던 문구는 象帝之先이었습니다. (정말 무슨 말이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한줄한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道沖,而用之,或不盈.

도충, 이용지, 혹부영


여기서 沖字는 사전을 보면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화하다, 겸허하다, 담백하다, 비다, 공허하다 등등) 어떤 내용이 가장 적합할까 생각을 했었는데, 세번째 문장의 내용을 감안하면 겸허하다는 내용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독선적으로 고집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여도 그렇고요. 아무튼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일을 풀어가는 방식인 도를 집행할 때는 겸허해야된다.
 완전 무결하게 채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의 여지를 남겨둬야된다."

대상을 규정하고 문제를 파악한 다음에 솔루션을 내고 이에 따라 개선을 하거나 관리를 하는데, 내놓은 솔루션을 집행함에 있어서 가져야하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 사용되었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 철두철미하게 빈틈없이 함은 중요하죠. 하지만 다른 방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는 둬야된다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아래에도 계속 얘기는 이어집니다.

淵兮似萬物之宗.

연혜사만물지종


위의 문구를 풀면 "연못이로구나, 만물의 근원과 같다." 해석이 됩니다. 여기서 字가 뒤의 字와 댓구가 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연못은 많은 자연의 것들을 담고있고 온갓 수초와 벌레, 물고기 등 그에 의지하는 것들에 삶의 터전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투명하고 맑고 깨끗하지는 않죠. 때로는 물냄새도 나고, 진창이 있기도 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죠. 道라는 것도 이러하다는 점을 비유로 들어 연못의 이미지를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 선택한 道가 완전무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점진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유로 설명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아니면 하나의 방안만을 가지고 일을 행할 것이 아니라, 여하한 경우에 대비한 Plan B도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일 수도 있고요. 세상사는 기대하고 생각한 데로만 진행되지는 않는 법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挫其銳,解其紛,和其光,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좀 더 자세히 예를 들어서 앞에 내용을 보완하는 문구입니다. 


"도를 집행함에 있어 너무 예리한 면은 누그러뜨려야 어지럽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조절하여야 더러움을 하나로 모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湛兮似常存.

담혜사상존

吾不知誰之子,象帝之先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이 마지막 두 문구가 무슨 의미일지 고민이 되었는데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댓구를 이루는 구절로 이해하여 풀었습니다. 은 "맑을 "字 입니다.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연못이 만물을 담아 탁하다면, 이에 반하여 절대적인 선이나 기준이 있어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절대불변의 법칙을 가르키기 위해 사용한 비유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象帝는 뭐 다른 번역서에는 고대의 제왕부터 시작해서 하느님 등등으로 해석한 것들이 눈에 띄는데 그래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왠 갑자기 고대의 제왕이나 창조주가 여기서 나올까요? 저는 象은 만물이고, 帝는 나라를 가르키는 것으로 따로 떨어뜨려서 푸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이 생기고 사람들의 나라가 생기기 앞어서..."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상기의 내용들을 종합하여 두 문구를 아래와 같이 풀었습니다. 


"만물과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순수하고 영구불변한 도와 그를 행한 자를 나는 아는 바 없다."


전체를 모아 아래와 같이 4장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일을 풀어가는 도를 집행할 때는 겸허해야된다. 완전 무결하게 채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택의 여지를 고려해야된다. 도는 만물이 담겨있는 연못과 같아 깨끗하고 더러운 상황을 모두 감안해야한다. 도를 집행함에 있어 너무 예리한 면은 누그러뜨려야 어지럽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며,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조절하여야 더러움을 하나로 모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물과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순수하고 영구불변한 道와 그리 행했다는 자를 나는 아는 바 없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장

2018. 11. 30. 09:35 from BoOk/pHiLoSoPhY

不尙賢,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부위도
不見可欲,使民心不亂。                                     

부견가욕, 사민심부란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為無為,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도덕경 3장은 사실 해석하기에 따라서 우민정책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虛其心이나 弱其志 같은 문구는 (특히 弱其志) 대중들은 멍청하게 만들어 배나 불려주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맞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의미가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장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윗사람들이 가져야되는 자세를 우선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라 라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내용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죠.


不尙賢,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                         

불귀난득지화, 사민부위도
不見可欲,使民心不亂。                               

부견가욕, 사민심부란


이 세문장은 간단히 얘기하자면 기본에 충실할 것이지 과시를 위한 것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고고하며 난해한 성현의 말씀을 찾아 숭상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분쟁부터 없도록 할 것이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적질부터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하고 싶었던 것, 이룩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다니기에 앞서, 민심이 혼란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독단적으로 사람들의 뜻에 역행하여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여서 민심을 어지럽히지 말아라.)




是以聖人之治,虛其心,實其腹,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위의 내용이 앞에서 지도자가 삼가해야할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아니면 어떤 것을 배풀어야할지에 대해 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던 점을 감안하고 이 문장을 해석해야 할 듯 합니다. 


이러한 사유로 성인의 통치는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데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만을 관철시키려 하지 말고 근본적 체계를 튼튼히 하는데 있어야 한다


사실 위의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않습니다. 지도자가 어떤 철학이나 방향성이 없이 어떻게 집단을 강하게 만들 수 있겠냐는거죠. 하지만 앞장에서 대체적인 사회구성원의 합의가 이루어진 방향으로 일을 해야된다는 점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면, 이에 대해서는 이미 전제가 되어 반복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사회구성원의 생각과 동떨어진 리더 자신만의 마음이나 뜻을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常使民無知無欲,使夫智者不敢為也。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為無為, 則無不治。                                         

위무위, 즉무불치 


3장을 마무리하는 두 문장입니다. (뒤에 수시로 언급되는 無爲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내용 바로 해석하자면,


지도자는 사람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나 욕구를 미리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중간에 소위 무언가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감히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미리 독단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앞의 내용들을 보더라도 無爲는 단순히 마음을 비우고 세상 가는데로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런 해석들 때문에 노자를 읽다보면 무슨 허무의 철학을 읽는 듯한 상황이 종종 되고는 하죠.) 단지 억지부리지 말아라, 너가 생각하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라. 선입견 가지지 말고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중의를 모아서 합의 하에 무리가 없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전체 내용을 모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합니다. 


"고고하며 난해한 성현의 말씀을 찾아 숭상하기에 앞서, 사람들 간의 분쟁부터 없도록 할 것이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도적질부터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앞뒤 생각없이 바라던 것만을 찾아다녀 사람들 간의 논란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의 통치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보다 사람들의 살림을 풍족하게 하는데 있어야 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보다 사회의 근본적 체계를 튼튼히 하는 방향을 고민하여 이룩하는데 있다.

 지도자는 사람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지식이나 욕구를 미리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야 중간에 소위 무언가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일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할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함에 있어 미리 독단적인 자신만의 의도를 가지고 그를 강요하는 일이 없다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2장

2018. 11. 22. 17:21 from BoOk/pHiLoSoPhY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첫장에서 道와 名에 대해 우선 화두를 던지고 名에 대해 주로 이야기 하였다면, 두번째 장은 名을 부여하는 의미와 道에 대해 운을 때는 듯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첫 두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이 두 문장은 얼핏 보았을 때는 爲美와 爲善이라는 문구가 있어 꾸미고 위선을 행하는 것이 추하고 선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아래의 내용과도 흐름이 어색하고 첫장의 내용과도 갑자기 방향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죠. 오히려 이 두 문장은 사람들이 대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또는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추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만들거나 선하게 하려한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문구들이 전반적으로 대립되는 명제가 사실은 상호 보완적이라는 의미의 설명으로 연결되는 것도 그렇고 성인이 무언가를 행하고 이루어낸다는 말을 감안하여도 아무것도 하지말아라라는 설명은 좀 앞뒤가 않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에 장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첫단계 성격이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개념을 정하고 나면 상대되는 추하다는 개념도 성립될 것이고 착하다는 개념이 성립되면 반대되는 선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규정도 성립될 수 있습니다. 이후에 사람들이 개선의 대상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후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게되는 것이죠. 


풀어서 이 두 문구를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려한다

또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게 만들려 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글자는 "皆"자 입니다. 노자는 절대선이나 절대미, 이를테면 이데아적인 대상을 규정하고 사람들이 이를 추구해야된다는 당위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전반적으로 알려진 규정이나 관습에 따라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는 현상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추한 것이 있으면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꾸미려 하고, 모두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하게 고치려 한다는 거죠.


영구불변의 선이나 미의 기준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발전이 없습니다. 오늘 이 방향으로 개선을 하고 내일 다시 고민하여 다른 방식으로 추가 혹은 근본적인 개선을 꾀하는 것이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은 어떤 특정 엘리트 집단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회구성원의 전반적인 합의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습니다. 노자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우선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앞에 문장에 이어서 대립되는 대상들을 몇몇 열거하여 예를 들고 있습니다. 1장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有와 無가 서로 상생하는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고, 어려움과 쉬움이 상호 보완관계에서 성립되고, 길고 짧음이 있어 비교를 할 수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어 경사가 이루어지며, 음악과 목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전후가 있어 순서를 정해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길게 얘기할 내용은 저로서는 없네요.)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의 두 문장은 聖人 즉 본보기로 삼아야할 사람들이 어떻게 했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문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머무를 處'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되는지가 다소 어려움이 있는데요, 앞의 내용등을 감안하면 상식적인,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자리를 둔다, 선택한다 정도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이에 자기 주장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으며, 남들을 가르킴에 있어서도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교화한다."


다소 모순적일 수 있는 것은 절대적 기준으로 판단될 만한 聖人을 노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방법일 수도 있고, 또한 관습적으로 이러한 문구를 사용하였을 수도 있지만 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상대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노자에서 절대 기준의 대표적 이미지인 聖人을 사용한 점은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聖人이 절대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사람이라기 보다 대체적으로 道를 행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올바른 방향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두번째 문장은 앞에 聖人이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하면 너무 의미가 거창해져서 그보다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주고 의미를 만들어낸다라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만사에 있어서 누군가 최초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과정은 필요하니까요.  이를테면 다윈이 진화론을 알아내고,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알아내었더라도 그들이 무엇인가를 바라고 알아낸 대상을 소유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연하죠, 우주를 어떻게 소유합니다.) 


이에 두번째 문장은 아래와 같이 해석합니다.


"성인은 만물의 의미를 찾아내어도 무언가를 바라여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를 찾아주어도 이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夫唯弗居, 是以不去                   

부유불거, 시이불거


위의 두문장에서 이어서 계속 道를 행하는 기본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恃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어떤 자신만의 신념을 앞에 깔고 간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무언가 뒷일을 믿는다 (기대한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죠. 하지만 뒤의 내용들을 감안하면 이러한 해석은 먼가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어떤 일을 하고나서 그 과정을 너무 신뢰하지는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뒤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렇게 일단 첫 문장을 해석하면 뒤에는 다소 쉽게 해석되는 느낌입니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과정만이 옳다고 믿지 않으며, 힘들여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서 그 이룩한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성취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번의 성취에 만족하고 뒤에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는 일이죠. 기업의 예를 들면 더 이해가 쉬울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초대박 상품을 하나 만들어내게된다면 이후 아무 것도 안해도 그 제품이 천년 만년 그 회사를 먹여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혁신과 개선이 이루어져야되는 것이죠. 그런 과정이 있어야 이전의 성과가 의미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또한 한번 수립된 개선의 경험은 다음 또 그 후의 개선에 Reference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디 사라지는게 아니죠. 풀어서 생각하면 위의 두 문구는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하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려한다

또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선하지 않은 것을 선하게 만들려 한다. 

有와 無는 서로 상생하는 방식으로 공존하며, 어려움과 쉬움이 상호 보완관계에서 성립되고, 

길고 짧음이 있어 비교를 할 수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어 경사가 이루어지며, 

음악과 목소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전후가 있어 순서를 정해 진행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성인은 일을 함에 있어 상식적인 선택을 하지 이에 자기 주장을 억지로 고집하지 않으며, 

남들을 가르킴에 있어서도 장황한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교화한다.

만물의 의미를 찾아내어도 무언가를 바라여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치를 찾아내어 의미를 찾아주어도 이를 소유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그 과정만이 옳다고 믿지 않으며, 힘들여 무언가를 이루어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이룬바에 만족하여 머무르지 않으니, 이로서 그 이룩한 바가 없어지지 않는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1장

2018. 11. 11. 09:16 from BoOk/pHiLoSoPhY

道可道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고 상무욕이 관기묘

常有欲以觀其徼 상유욕이 관기교  

此兩者同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동 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만 시간 나는데로 틈틈히 노자도덕경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 부문 말도 안되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차피 개인적으로 정리하는 것이고,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도 내용이 제 각각이니 여기 글 하나 올린다고 큰 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노자도덕경은 우선 道와 名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道可道非常道 도가도비상도 

名可名非常名 명가명비상명

 

모르는 한자는 하나도 없는데 보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지 싶다. 


생각 해보자면 사람들은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대상을 규정하고 (Naming) 그 후 대응 방안을 만들어 낸다. (Solution이나 Rule) 노자도덕경은 그러한 대응방안()과 대상을 규정하는 행위 ()로부터 시작한다.

 

첫구절의 세문구 道可道는 이미 해결책이 나와있는 방안 정도로 해석하였다.

名可名 또한 이미 정의된 대상, 이름이 주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각 문구 뒤의 非常道와 非常名은 무슨 의미일까? 常자는 "항상 상"자이므로 常道와 常名은 변하지 않는 방안과 변하지 않는 정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위의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풀어서 첫 두줄만을 정리하자면

 

"이미 수립된 법칙이나 해결책이 있더라도 이것이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 될 수는 없으며, 어떠한 대상에 대해 내려진 정의도 영구 불변하지는 못한다."

 

인간들이 수립한 모든 법칙이나 규칙, 관습, 제도 등은 시간이 지나면 수정 / 보완되고, 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그리고 100년 200년이 지나면 변하지 않는 것이 드물다. 


이런 사례는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동안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지구가 광대한 우주의 한 행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나라는 수년 전까지 외도를 저지르면 법으로 간통죄를 처벌하였으나, 이제 그 법은 폐지되었다. 이름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불과 백년전에는 한양이나 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그보다 더 오랜 옛날에는 숱한 다른 지명으로 불리었을 것이다. 아직도 고고학자들은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논쟁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왕검성이 어디었는지에 대해서도 다른 이론들이 펼쳐지고 있다.


변하지 않는 법칙은 없으며, 주어진 이름 또한 영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無名天地之始 무명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만물지모

 

여기 두 줄을 단순히 직역하면 "無名은 천지의 시작이며, 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라는 정도로 해석이 될 수 있겠다. (어? 간단히 해석되네... 그런데 무슨 말이지?) 해석해놓고 보니 무슨 의미인지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단원은 名에 대해 한단계 더 설명을 자세히 하는 문장이라고 이해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천지가 시작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無名이었으나 (정의됨이 없었으나) 만물이 생겨남에 따라 有名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다)."


이를테면 뭐 김춘수의 "꽃"과 같은 문장이라고나 할까? 의미없던 무수한 세상의 모든 것들 중의 하나에 내가 이름을 지어주면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그런... 


다른 의미로 생각하자면 無名사람들이 정의 내리지 않은 사물이나 현상이므로 천지의 모든 대상을 말하는 것이며, 有明은 그중에서도 의미가 부여된 대상이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비유를 들자면 우리가 통계를 할 때 관심을 가지는 대상 전체가 모집단이라고 한다면 이 전체에 대해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그 중 일부는 표본집단으로 선출하여 이에 대한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짓고 방안을 수립하더라도 이는 전체 광대한 우주의 모든 현상 중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일부에 대해 차츰 그 영역을 넓히면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故常無欲以觀其妙 고상무욕이관기묘

常有欲以觀其徼   상유욕이관기교(요) 

 

이 구절의 앞의 세 단어는 항상 無欲이라고 해석될수도 있겠지만 常無를 欲한다면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욕구가 있냐 없냐로 문장이 넘어가는 것이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고 非常을 常無로 바꿔서 표현한 것이라는 쪽으로 이해하면 좀더 앞의 내용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欲이라는 글자도 바란다나 욕망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의미 전달이 다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하고자한다는 식의 의미로 해석했다. 


위의 내용이 모든 것이 영구불변하지 않고 계속 변한다는 점에 대해 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이를 전제로 모든일을 해나가려 한다면 ..."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밑의 문장은 "변치않고 영속하는 것을 찾는다면..."으로 대치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다음은 妙와 徼에 대해서 적절한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한데 상호 대치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해석도 필요했다. 妙라는 단어는 사실 그 사전적 의미가 다소 확실해서 이론의 여지가 달리 없을 것 같다. 묘책이나 묘약이라는 단어서 쓰이는 의미를 생각하면 잘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어렵게 찾아낸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의미가 됨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는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구하다, 순찰하다, 돌다"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는 "돈다"는 내용에 주목했다. 妙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궁극의 진리나 해결책이라면 徼는 밖으로는 들어나 있으나 계속적으로 움직이고 변모한다는 것이 아닐까?


위의 내용들은 정리하여 이 두줄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고 무언가를 해나가려 한다면 그 깊은 진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나, 종시 불변하는 영구불변의 것을 원하고자 한다면 결국 그런 것은 없으며 한 때의 진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此兩者同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동 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1장의 마지막 두 문구다. 여기서 兩者는 마지막 異名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無名과 有名이라고 유추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즉 有名과 無名은 다른 이름을 가졌으나 같은 근원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사실 이 다음 문구가 해석이 다소 난해하다.


우선 두번째 문구의 同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위에서 이야기한 근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異名을 가진 有와 無에 대해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모두' 또는 '같이'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모두'라는 의미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玄이라는 말도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다. 玄이라는 한자의 의미는 사실 간단하다. 천자문 제일 첫문장에 나온다. (天地玄黃) 검을 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다른 의미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딱히 어느 의미가 적합할지도 의문이다. 다른 의미로도 해석을 하려 했는데 대학 1장을 읽다보니 반대되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1장의 첫 구절은 "大學之道 在明明德"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明"자는 구성원들 간의 Consensus가 이루어진, 쉽게말하자면 뻔한 상식, 당위성을 가진 덕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玄"은 그 반대로 아직 의미가 정해지지 않은 또는 더 깊이 의미를 가지자면 미쳐 고려의 대상이 되지못한 대상을 가르키기 위해 사용된 형용사로 보았다. 


위의 내용들을 반영하여 두 문장을 해석하자면


"이 두가지 無名과 有名은 이름은 다르나 결국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니, 이 모두는 어두운 무지의 영역에서 비롯되어 玄이라 이른다. 어둡고도 어두우나 모든 근본적 이치가 이로부터 비롯된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Six Sigma의 기본 절차는 DMAIC다. Define / Measure / Analyze / Improve / Control 인데, 우선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문제를 규명하고 (Define) 이후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확인을 위해 측정 (Measure) 및 분석 (Analyze)를 하며 이후 이에 대한 개선 (Improve)와 개선 이후의 관리 (Control)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노자 첫장의 名은 결국 Define / Measure / Analyze 절차와 관련되며 뒤에 계속 언급될 道에 대한 이야기는 Improve 및 Control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위에 이야기한 내용들을 묶어서 아래와 같이 풀어본다.


"이미 수립된 법칙이나 해결책이 있더라도 종래 변하지 않는 영원한 법칙이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어떠한 대상에 대해 내려진 정의도 영구 불변하지는 못한다. 천지가 시작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정의됨이 없었으나, 만물이 생겨남에 따라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 나름 대상을 규정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고 무언가를 도모한다면 그 깊은 진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나, 종시 불변하는 영구불변의 것을 찾고자 한다면 결국 그런 것은 없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대상이어도 의미가 변해가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이 두가지 無名과 有名은 이름은 다르나 결국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니, 이는 드러나있지 않았던 어두운 무지와 미지의 상태이다. 어둡고도 어두우나 결국 모든 근본적 이치가 이로부터 비롯된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