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소위 운동권 학생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당시 북한 관련 얘기들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의견이 갈리기는 했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분의 김정일 세습 체제의 불가피성에 대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분 말인 즉은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것은 김일성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김정일이 북에서 가장 우수한 인물로 검증이 되어서라는 논리였는데요, 그 얘기를 듣고 그냥 벙 쪘었습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어디 있냐며 어처구니 없어했는데, 무슨 플라톤의 이데아적 인물 같은 것이 실제로 현현한 것도 아니고, 북한의 모든 사람들보다 어떤 능력이나 인격에 우선하고 우위에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에 어의없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경우는 그냥 초월적 인간이니까 神 정도 되는 거죠.)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북한은 어찌보면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입니다. (국명부터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그냥 전체주의 독재국가일 뿐이죠. 그리고 최근에는 왕조국가의 면모까지 완비하시는 듯하니 그냥 왕조전제국가라고 하는게 가장 걸맞지 않을까 합니다.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공부를 안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막스가 지하에서 현재의 북한이 공산국가라는 소리를 들으면 엄청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북한에도 일부 제정신 박힌 사람들은 회의적이겠지만 북한 정권은 (예전의 운동권 그분이 그러했듯이) 백두혈동의 유일무이함과 완전무결함 등을 들어 현 체제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미제가 주도하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강조하며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때까지 위대한 수령과 당 아래 결집하여 단결된 하나의 생각과 자세로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한다는 그런 파시즘적 이론을 주구장창 반복하여 체제를 유지하려는 그런 독재국가에 불과합니다.
세상에 절대선이 있다는 사고는 고대 그리스 때에나 어울리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도, 현상도, 사건도, 문제도, 모두 처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고요.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하여 논점은 친일미화와 독재찬양이 우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주제이긴 하지만 이건 어쩌면 本이 아니라 末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아니면 本과 末의 중간쯤?) 제 생각에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만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수정권만이 소위 말하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렇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가치인 다양성을 거부하고 정부 주도로 하나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사고로나 (아니면 종교국가) 어울리는 것입니다. 국가가 올바른 역사관을 심기 위해 단일화된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더 나가면 소위 그 올바르다는 미명하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국민 여론을 만들기 위해 모든 방송국을 없애고 국영방송국만 남겨야겠다고 하는 논리와 무엇이 다를까요? 북괴의 침략과 경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총화단결의 자세로 바른 생각만을 해야될 국민들에게 예술활동도 악형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정부가 우선 심의해서 걸러내야 하겠다는 발상과 무엇이 다를까요?
국정교과서에 공영방송, 언론은 사전 검열에 영화와 노래도 사전 심의를 거쳐 선별된 목소리와 의견만이 배포되던 사회. 어떻게 많이 듣던 언젠가 경험했던 사회였지 않나요?
그 시대에는 그 체제가 맞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그 체제가 맞다고 생각하나요? 조그만 구멍가게는 사장님 혼자서 이끌어도 됩니다. 중소기업에는 몇몇 기능들이 통폐합되서 운영하는 것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요.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을 그렇게 운영하면 어떻게 될까요? 경영이 어렵다고, 좀 안된다고 기업 초창기의 체제로 돌아가자고 하면 그 회사는 망할 일만 남지않았을까요?
우리의 퇴행이 이대로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입맛이 씁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