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36장

2022. 4. 18. 16:36 from BoOk/pHiLoSoPhY

將欲翕之 必姑張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將欲弱之 必姑强之

장욕약지 필고강지

將欲去之 必姑與之

장욕거지 필고여지

將欲奪之 必姑予之

장욕탈지 필고여지

是謂微明 柔弱勝强

시위미명 유약승강

魚不脫於淵

어불탈어연

國利器 不可以示人

국이기 불가이시인

 

將欲翕之 必姑張之

하나로 무언가를 모으려 한다면, 잠시 그 대상들을 벌려놓아 운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덕경 36장은 해석에 있어 다소 논란이 되는 장입니다. 첫 문장의 내용과 비슷한 구조의 내용이 네번째 문장까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의 내용을 권모술수와 관련된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첫 문장의 경우 翕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합한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이를 축소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경쟁자나 아랫사람 중 경계해야될 대상을 몰락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잠간이라도 권한을 더 주라는 식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 선상에서 약하게 하려면 잠간 강하게 만들어봐라, 제거하려는 대상이라면 잠간은 같이 해라, 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속으로는 검은 마음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 모습의 냉혹한 리더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읽혀집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36장에서 앞뒤 맥락없이 경쟁자를 몰락시키는 노하우를 말하는 것은 다소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뒤에 이어서 고기는 연못을 못벋어난다는 얘기와도 연결되는 사항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요.

 

오히려 이번 장의 내용은 검증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철저한 검증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변화에 대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하였습니다.

 

첫 문장의 내용 중 “將欲翕之”라는 말은 기존의 방법이나 정책을 무언가 다른 것과 통합을 하는 변화를 추진하려할 때,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을 때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必姑張之라는 이야기는 이런 시도에 앞서 잠시만이라도 정반대의 방향으로, 즉 확대해서 운영해보자는거죠. 그렇게 하면 이러한 대상 Process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이를 통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가 가늠할 수 있게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지방정부에서 대중교통 전용차선 운영을 검토한다고 생각해보죠. 이 경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주말만 아니면, 주중만 운영하는 것을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기간을 정하고 한달 정도 전면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고 뭐가 보완되어야 할 내용인지, 그리고 좋은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하면 더 나을지를 확인하기 나을 수 있습니다.

 

비유가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같이 전면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아니면 이제 폐기를 검토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과연 이런 결정이 맞는지 잠간이라도 나의 의도와 반대방향으로의 검증차원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 뒤의 문구들도 거의 같은 의미 입니다.

 

將欲弱之 必姑强之

장차 약화시키고져 하는 사항이 있다면, 잠시라도 강화시켜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

將欲去之 必姑與之

장차 제거해야될 항목이 있다면, 잠시라도 같이 하여 정말 제거해야될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將欲奪之 必姑予之

장차 그 권한을 빼앗아야할 대상이 있다면, 일단 권한을 주어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

 

상기 네 문구의 내용은 거의 모두 현재 있는 것들을 축소하거나, 제거하는 등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강화시키는 것도 힘든 과정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무언가를 축소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큰 조직일수록 각 조직의, 그리고 담당자에게 주어진 업무가 있고 또한 그에 따르는 권한과 책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다보면 어떠한 업무 Process에 대해서는 기존 조직에서 운영하는 것 보다 새로운, 아니면 다른 조직에서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고민의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동의 과정없이 리더의 판단만으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조직의 반발은 둘째 치고 독선에 의한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특정 권한이나 업무 과정을 약화시키고 들어내고 다른곳으로 옮기기에 앞서 정말 이런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확인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대상이 되는 항목에 대해 강제로라도 증폭시켜서 아니면 집중 검증하여 정말 그 결정이 옳았는지, 파악해야된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是謂微明 柔弱勝强

이를 미명, 즉 잠간 동안의 시간을 두어 명확화하는 과정이라 한다. 강제로 무언가를 변경시키는 것보다 비록 약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微明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희미하게 밝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微라는 단어가 매우 작은 상황이나 순간을 의미한다고 보고, 明이라는 단어가 그 대상의 장단점과 이슈 및 리스크를 명확히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微明이라는 단어는 어떤 대상을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파악됩니다.

 

柔弱勝强이라는 문구는 柔弱함이 强함을 이긴다라고 해석되는데, 거꾸로 해석하면 어떤 변화를 모색할 때 너무 강압적으로 추진하기 보다 비록 약하더라도 유연한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더 성공확율이 높다라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당장 시간이 더 걸릴터이고 무조건 ‘내말이 맞아’라고 주장하는 것 보다는 약하게 비춰질 수 있으나, 결국 더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거죠.

 

경험적으로도 새로운 책임자들이 자리에 올라 기존의 절차를 용도폐기 시키고 새로운 방법을 강압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종종 보고 합니다. 하기만 이럴 때 대부분 그 분께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절차도 같이 운명을 다하곤 하죠. 그리고 그 분께서 자리에 있을 때에도 그냥 하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거죠.

 

왜일까요?

 

魚不脫於淵

물고기는 연못을 빠져나올 수 없다.”

 

물고기 보고 살고 있던 연못을 빠져나오라고 하면, 그 물고기는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 연못은 이미 먹이가 다 고갈되어가거나, 오염이 임박했거나 하더라도 그 연못 안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던 물고기는 그 필요성을 좀처럼 절감하기 힘들 겁니다. 내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실상 그 절차에 익숙한 사람은 변화의 필요에 대해 실증을 하기 전까지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힘듭니다. (특히 권한이 축소되어나 없어지는 경우라면 더욱 심할 겁니다.)

 

숲 속에 있으면 숲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비유와도 비슷한 경우죠. 권한 조정의 대상이 되는 상대는 대부분 기존 절차나 Process, 또는 생활에 익숙해져있어 더 나은 방식으로의 변경에 대해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 힘들기 쉬우며, 심한 경우는 반감과 두려움을 가지기 십상입니다. 

 

國利器 不可以示人

나라에 도움이 되는 도구는 사람들에게 지시만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도움이 되는 변화라고, 또는 새로운 절차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냥 단순히 지시만 한다고 이루어지고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에 따른 이익을, 효과를 그리고 향상에 대한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고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기존의 것을 과감히 떠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자 36장은 안주하려는 조직을 어떻게 변모시켜야되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철저한 검증과 공감을 통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