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케 이야기

2014. 7. 7. 19:11 from BoOk/hIsToRy

겐지모노가타리를 언젠가 읽어보려다 그 방대한 부피에 기함하여 포기하였는데, 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두 권으로 번역된 헤이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씀. 이 정도는 괜찮다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헤이케 이야기에서 헤이케는 平氏 家門이라는 의미의 平家인데 말 그대로 일본 헤이안 시대 때 권력을 잡았던 다이라 일가의 성쇠를 다룬 소설. 작품 자체가 승려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던 작품인지라 작가 미상인 고전인데 (마치 니벨룽겐의 이야기 같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절대권력을 유지하던 다이라 일가가 리더 기요모리와 나름 합리적이었던 이인자 시게모리의 사망을 기점으로 겐지 일파의 저항에 점차 세력을 잃어가다 단노우라 해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몰락하게 되고 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단노우라 해전의 내용은 전에 코스모스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어서 아, 그 이야기가 이 시대적 배경을 가진 내용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단노우라 해전은 일본 역사에서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 다이라와 겐지 가문, 두 세력이 맞서는 가운데 다이라 가문이 수도에서 퇴각하면서 삼종신기와 함께 가운데 안토쿠 천황을 수도를 떠나 피난지로 데리고 가게되고 이후 천황이 없는 수도를 장악하던 겐지 일파 또한 정통성 확보를 위해 새로운 천황을 옹립하게 되면서 두 명의 천황이 각 진영 별로 세워지는 전대 미문의 상황이 발생되었다는 점인데. 결국 단노우라 해전에서의 패배로 안토쿠 천황이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게 되면서 겐지 일파가 정국을 장악하게 된다.

 

헤이케 이야기는 기요모리의 전횡과 폭정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가지만 세력을 잃고 탄압 받는 측은 어느 편이라도 시종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작품의 기조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권선징악 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사실 이러한 고전은 내용에 앞서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문체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닐까? 아래 안토쿠 천황의 마지막을 다룬 장면과 같이.

 

 

주상은 올해 겨우 여덟 살이 되셨으나 그 연세 또래보다 한층 점잖으시어 용모 미려함이 주위조차 환하게 비추더라. 머리채는 검게 늘어져 허리까지 출렁이는구나. 망연자실 어찌할 줄 모르는 기색으로 "아마님,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시오" 하고 여쭈시는지라 어리신 왕을 마주보며 눈물을 억누르고 말씀하시기를 "왕께서는 아직 알지 못 하시오이까. 전생에 십선 계율을 지키신 공덕이 있어 금세에 만승천자로 태어나셨으나 악연이 원인으로 이미 그 운도 다하셨나 이다. 우선 동쪽을 향하시어 이세 대신궁에 작별의 말씀 올리시고 그런 후에 서방정토의 마중을 받잡자 생각하시어 서쪽을 향하시고 염불을 올리소서. 이 나라는 숙산변토로 마음도 불편하실 것이니 극락정토 좋은 곳에 함께 가시지요" 하고울며불며 말씀을 올리시니, 산 비둘기 빛 어의에 머리는 좌우로 갈라 빗어 올리고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작고 어여쁜 손을 합장하시고 우선 동쪽을 우러러 절하여 이세 대신궁에 작별의 말씀 올리시고 그 후에 서쪽으로 향하여 염불을 외셨는지라, 이위 마마는 그대로 주상을 품에 안고 말씀하시기를 "바다 물결 아래에도 왕궁이 있나이다" 하고 위로하시고천길 물 속으로 가라앉으시었다.

 

Posted by Tony Kim :

얼음과 불의 노래

2014. 7. 4. 17:35 from BoOk/fAnTasy

 


[합본] 드래곤과의 춤 :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 제5부

저자
조지 R. R. 마틴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3-09-30 출간
카테고리
장르소설
책소개
‘미국의 톨킨’ 조지 R. R. 마틴 일생의 대역작[얼음과 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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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시즌 3의 피의 결혼식 장면을 보고는 더 이상 1년에 한번씩 나오는 시즌을 참을 수 없어 책으로 읽기 시작. 작년 말부터 금년 초까지 거의 이 책에 빠져들었었는데 (책은 2권부터 읽기 시작) 사실 책의 내용과 드라마는 크게는 아니더라도 다소 차이가 있다. (뭐 이를 테면 하운드가 브리엔한테 살해 당하는 것 같이) 드라마와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서로를 보는 것도 재미 중의 하나.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원작은 우리나라는 그다지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지만 한번 읽어보면 정말, 진정, Really 최고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는 작품이 되시겠다. 이 엄청난 세계관과 무수한 등장 인물들의 사연들 그리고 얽히고 섥힌 사연. 혼자서 이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마틴 옹은 정말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된다. 작품 중에 용이나 화이트 워커 같은 비현실적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이 작품을 폄훼하려 하지 말 것. 호비트나 엘프가 나온다고 톨키엔을 비하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뭐 그러면 김용은 황당한 무협지 작가일 뿐인가?)

 

얼음과 불의 노래의 미덕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선과 악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질 수 있는지,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만들어낼 것인지, 정의는 정말 언젠가는 승리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작품 전체에 녹아져 있다는 점이다. 물론 조프리 같은 절대 악인도 작품에서 등장하지만 (그리고 처참하게 살해 당하지) 선량함의 화신인 듯한 대너리스의 모든 행동들은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좋게 결론이 나지는 않는다. 정의와 원칙을 따르려했던 네드 스타크는 또 어떤가. 그의 선택이 결국은 본인의 가문과 진영을 몰락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명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명분을 뒷받침할 힘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이 되어 무참히 짓밟히며 공감받지 못하는 진심은 굴레와 멍에가 되어 집요하게 앞을 옭아맨다.

 

무수한 군상들과 나라들의 방대한 사연들을 품은 얼음과 불의 노래는 현대의 고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단지 이제 두 권을 남겨둔 지금 마틴 옹이 장수하여 무사히 작품이 마무리 되기만을 걱정할 뿐이라는.

 

Posted by Tony Kim :

죽부인전

2014. 6. 17. 11:56 from FuN

부인의 성은 죽(竹)이요, 이름은 빙(憑)이다. 위빈(渭濱) 사람 운(篔)의 딸로, 계보는 창랑씨(蒼筤氏)에서 나왔다. 그의 선조는 음률을 알았으므로 황제(黃帝)가 발탁하여 음악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우순(虞舜) 시대의 소(簫)도 바로 그의 후손이다.
창랑씨가 곤륜산(崑崙山) 북쪽에서 진방(震方 동방)으로 이주하였는데, 복희씨(伏羲氏) 시대에 이르러 위씨(韋氏)와 함께 문적(文籍)을 주관하여 크게 공을 세웠다. 자손들도 모두 가업을 지키면서 대대로 사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진(秦)나라가 포학하게 굴면서 이사(李斯)의 계책을 채용하여 서책을 불사르고 유자들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 죽인 뒤부터 창랑씨의 후손도 차츰 쇠미해졌다.


그러다가 한(漢)나라 때에 와서 채륜(蔡倫)의 가객(家客) 중에 저생(楮生)이란 자가 자못 글을 배워서 붓을 가지고 때때로 죽씨(竹氏)와 어울려 노닐었다. 그러나 그 사람됨이 경박한 데다가 점차로 젖어들 듯한 참소를 잘하였는데, 죽씨의 강직한 성격을 미워한 나머지 남모르게 좀먹고 헐어서 마침내는 그 직임을 탈취하였다.


주(周)나라의 간(竿 낚싯대)도 죽씨의 후손이다. 태공망(太公望)과 함께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을 하였는데, 태공이 갈고랑이를 만드는 것을 보고는 간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큰 낚시질을 할 때에는 갈고랑이 없이 한다고 하였다. 작은 것을 낚느냐 큰 것을 낚느냐 하는 것은 꼬부라진 갈고리를 매다느냐 매달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갈고리 없는 낚시를 해야만 나라를 낚을 수 있지, 갈고리 있는 낚시를 하면 고작 물고기나 잡을 뿐이다.”라고 하니, 태공이 따랐다. 그 뒤에 과연 태공이 문왕(文王)의 스승이 되어 제나라에 봉해졌는데, 간을 유능하다고 천거하여 위수 가 즉 위빈(渭濱)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죽씨가 위빈에서 일어나게 된 유래이다.


지금도 그곳에 거하는 자손이 여전히 많으니, 예컨대 임(箖)ㆍ어(箊)ㆍ군(䇹)ㆍ정(筳)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양주(楊州)로 옮긴 자들은 소(篠)와 탕(簜)이라고 칭해지고, 호중(胡中)으로 들어간 자들은 봉(篷)이라고 칭해진다. 죽씨는 대개 재능 면에서 문(文)과 무(武)의 두 갈래로 분류되는데, 대대로 변(籩)ㆍ궤(簋)ㆍ생(笙)ㆍ우(竽) 등 예악에 쓰이는 것들로부터 짐승을 쏘고 물고기를 잡는 미세한 도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적에 실려 있어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다만 감(䇞)의 경우만은 성품이 우둔하기 그지없어서 속이 꽉 막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그리고 운(篔)의 시대에 와서는 숨어 살면서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그에게 동생 하나가 있어서 이름을 당(簹)이라고 하였는데, 형과 더불어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속을 텅 비우고 자신을 바르게 유지하며 왕자유(王子猷)와 친하게 지내니, 자유가 “하루도 차군(此君) 없이는 지낼 수가 없다.”라고 하였으므로 차군이 그대로 그의 호가 되었다. 대저 자유는 단정한 사람이니, 자기의 벗도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품격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당은 익모(益母)의 딸에게 장가들어 딸 하나를 낳았으니, 이 딸이 바로 부인이다. 처녀 시절부터 그 자태가 정숙하였는데, 이웃에 사는 의남(宜男)이란 자가 음탕한 말을 지어내어 집적거리며 유혹하자, 부인이 노하여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고 해도 절조를 지켜야 하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한번 남에게 그 절조가 꺾인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다시 설 수 있겠는가.”라고 하니, 의생(宜生)이 부끄러워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니 어찌 소를 끌고 다니는 무리가 부인을 감히 넘볼 수나 있었겠는가. 부인이 장성하고 나서 송 대부(松大夫)가 예의를 갖춰 청혼을 하니, 부인의 부모가 말하기를 “송공(松公)은 군자다운 사람으로서 그 고상한 절조가 우리 가풍과 서로 대등하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에게 시집보냈다.


그 뒤로 부인은 날이 갈수록 성품이 더욱 굳세고 두터워졌다. 간혹 일을 당하여 분변할 적에는 마치 칼을 대는 대로 쪼개지듯 민첩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였을 뿐 매선(梅仙)의 서신이 있거나 이씨(李氏)의 무언의 기대에도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감귤 노인이나 살구 아이의 청탁을 들어줄 리 있었겠는가. 간혹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밝은 저녁에 바람을 만나 읊조리고 비를 만나 휘파람 불 적에는 산뜻하고 말쑥한 그 자태를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었으므로 호사가들이 그 모습을 살짝 화폭에 담아 보배로 전하곤 하였는데, 문여가(文與可)와 소자첨(蘇子瞻) 같은 사람은 더욱 이를 좋아하였다.


송공(松公)은 부인보다 나이가 18세 위였는데, 만년에 신선술을 배우더니 곡성산(穀城山)에서 노닐다가 돌로 몸을 바꾸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이 홀몸으로 살면서 왕왕 위풍(衛風)의 시를 노래 부르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마구 흔들려서 스스로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성품인지라, 사관이 정확한 연대는 잊어버렸지만 5월 13일에 청분산(靑盆山)으로 집을 옮긴 뒤로 술에 마냥 취한 끝에 고갈증(枯渴症)에 걸려 마침내 치료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병에 걸린 뒤로는 사람을 의지해서 살았는데, 만년에 들어 절조가 더욱 굳었으므로 향리의 추앙을 받았다. 그래서 부인과 동성(同姓)인 삼방 절도사(三邦節度使) 유균(惟箘)이 부인의 행실에 대해서 장계를 올려 보고하니, 조정에서 절부의 호를 내렸다.


사씨(史氏)는 말한다. 죽씨(竹氏)의 선조는 상세(上世)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 후손들도 모두 재능을 발휘하며 절조를 고수하여 세상에서 일컬어졌다. 그러니 부인이 현덕을 소유한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아, 부인이 이미 군자의 배필이 된 데다가 사람들로부터 기특하게 여겨졌는데도 끝내 후사를 두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무지하다는 탄식의 말이 어찌 근거 없이 나온 것이라고 하겠는가.

 

※ 가정집 제1권 잡저 中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