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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1 파시즘에 대하여..
  2. 2008.10.09 創業易守城難
  3. 2008.06.01 이명박 정부는 왜?
  4. 2008.02.16 남대문과 노무현
  5. 2005.06.14 김우중 회장
  6. 2000.11.08 人生如朝露, 何自苦如此.

파시즘에 대하여..

2009. 1. 11. 22:33 from MeDiTaTiOn

우리가 흔히 듣는 파시즘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fascio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며 이 단어의 의미는 묶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좀 더 확대된 의미로 결속, 단결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유래된 단어의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국가 이념 등의 전체 집단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감래해야하고 하나의 이념이나 목표 아래 단결하자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계 2차 대전 동맹국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이러한 파시스트 정권 수립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전체주의 국가로 진행된 이력이 여타 동맹국이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랐지만 이들 유럽 동맹 2개국의 파시스트 정권 설립 배경은 상당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경제공황이 파시즘 정권이 들어서게되는 계기로서 크게 작용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대공황에 이은 파탄난 독일 경제의 모습은 문학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파비안'을 보면 대전 이후 패전국으로서의 멍에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누리던 당시의 독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생활마저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처참했던 당시 독일 일반 대중들의 처절한 모습이 에리히 케스트너의 작품에 묘사되고 있다.

국민들 대다수의 찬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자발적으로 제한받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겠냐마는 당시의 문명화된 독일 시민들은 투표에 의해 자발적으로 민주 정부였던 당시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버리고 인종주의, 전체주의를 내걸었던 나치당을 선택하게된다. (당시 독일 정치권의 명분 없는 이합집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적인 기본권과 절차들은 헌신짝 같이 버려지고 이후 광적인 민족주위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독일의 젊은이들은 희생당하고 민중은 고통받게된다. 독일인의 생활에서 검열, 사회운동 금지, 정치적 박해, 정치적 살해는 일상이되었다.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 어떤 권리도 사치라고 그전에는 생각했었는지 모르지만 기본권의 상실은 인간다움을 빼앗기는 것이고 잉게 숄의 '백장미 수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나치의 전체주의 광풍 아래에서 고통 받게되는 것은 당시의 일반 독일인 대중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의 파시즘의 등장도 독일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차이점이 있었다면 독일에서의 경우와 달리 1차대전 승전국의 일원이었던 이탈리아는 승전국으로서의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고 취약한 재정에 불구하고 참여한 1차대전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된 이탈리아 일반 대중은 독일과 같은 투표에 의한 형식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무솔리니의 무장세력인 '블랙셔츠단'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동조를 통해 파시즘 정권의 탄생에 기여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론은? 중학교 당시에 읽었었던 조반니 모스카의 '나의 학교, 나의 선생'에서 묘사된 것과 같이 파시즘은 그 존재 자체가 초등학생들에게조차도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이지는 체제였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러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머리 아프게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냐. 그런건 전부 몇몇 잘난 척하는 먹물들이나 정치인들이 들고 싸우는 주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나라가 세계의 강대국이 되어 주변국들이 우리나라의 눈치를 보고 우리 먹고 살기만 편하게 된다면 나는 상관없다. 나는 모르겠다 그런 거창한 주제는.' 이라는 단순 명료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세상에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고 때로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도 이와 같이 역사 속에서는 반드시 정답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뉴타운으로 우리동네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게 해주면, 대운하라도 파서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뒤에 일이야 어떻게 되던 단지 내 주식, 펀드만 까먹지 않으면, 내가 사놓은 땅값만 올라가게 되면, 언론의 자유니 뭐니 상관없다. 그런 건 다 잘난체 하는 시민단체 놈들이나 좌파 빨갱이 놈들이나 떠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우리나라 대다수의 지난 표심이 아니기를 그래서 나는 간절하게 기원한다. 

아무튼 성공한 파시즘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으니까.

Posted by Tony Kim :

創業易守城難

2008. 10. 9. 11:53 from MeDiTaTiOn
지난 수년간 어쩌면 우리 모두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까대기를 밥먹듯이 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군이 쿠데타를 해서라도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위가 벌어져도 아무 제재가 없는 나라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이제 최소한 할 말은 구성원들이 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선거운동 본부에 있던 사람들이 방통위원장이 되고나서 낙하산이 KBS/YTN으로 가서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좌천시키던지 해고 시키고 있다.

촛불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주머니고 학생이고 가리지 않고 구형하고 있다.

조중동 광고주 항의 운동한 사람들은 아예 몇명이 구치소에 갖혀있다.

반면에 불법 음란업소를 운영한 어청장 형은 지금 뭐하고 있는가?

공정택 교육감은 선거운동비를 불법 찬조 받은 것 같은데 왜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건가?

정관정요를 읽다보면 이세민과 방현령, 위징과의 대화중에 創業易守城難 라는 말이 오간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에 의해 얻어진 민주주의라지만 어쩌면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 아닐까.
Posted by Tony Kim :

이명박 정부는 왜?

2008. 6. 1. 17:46 from MeDiTaTiOn

Issue가 되고있는 요즘의 일련의 사안들에 대해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어렴풋하게 나마 어째서 이러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의 큰 바탕은 어찌되었던 소위 "경제 살리기"이다. 소위 7.4.7 공약으로 대표되던 것들인데 조금은 어이없는 7% 성장이라는 말 속에 이명박 정부의 목표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목표는 어찌되었던 성장에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성장을 통해 경제 규모를 키운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있고 이러한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1. 환율 하락을 통한 수출 증대
2. FTA 채결을 통한 경제 규모 확대
3. 운하로 대표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을 통한 Biz Chance 생성.

등을 둘 수 있다.

현재의 소고기 협상건도 국민들의 반대가 극심한데에 반해 강행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구성원들의 종미(혹은 숭미) 경향도 작용을 했겠지만 이미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를 한미 FTA와 연계된 사항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정말 정답이냐는 것이다. 우선은 7% 성장이라는 어이없는 목표도 그렇지만 인위적인 환율 조작을 통한 경기부양이 정말로 지금 시점에서 적합하냐는 것이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지독하게 운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침 집권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제 원자재가 폭등이라는 선물을 받게된다. 국제 원자재가 폭등은 물론 수요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주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그에 더해 부동산과 제도권 금융을 떠난 W.W. 유동성 자산들이 일시에 원자재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달러 약세가 이런 상황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부가 이것을 모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째서 이런 악수를 두었을까?

답은 정부에서 생각하는 경제 성장의 지표가 대기업 위주의 그것이라는 것이다. (환율이 조정의 기미가 보이는 순간 이미 엘지전자 주가가 두배가 되어버렸다.) 환율 조정을 통해 해외시장에서의 판가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수출기업과 대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단기적으로 가능하다. 원자재가 폭등이 없었다면 어느정도 수준의 환율 조정을 통한 대기업 경쟁력 확보는 달콤한 약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상명하달식 조직의 무소신이 만들어내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기업으로서도 현재의 환율 하락은 전혀 달가운 것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부품이 해외로부터 Sourcing 되는 상황에서 재료비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부분에서만은 원자재가 상승과 환율 하락이라는 이중 폭탄을 맞게되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규모 확대 정책도 과연 답일지에 대해서는 정말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GDP)는 작년 Russia가 새롭게 10위권 안으로 진출하면서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앞에는 물론 미국/일본/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와 같은 전통적인 선진국들도 있지만 인도/중국/브라질과 같은 나라도 있다. 그리고 우리 바로 2계단 밑에는 멕시코와 같은 나라도 있다. 그러면 과연 인도/멕시코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아니면 우리보다 경제사정이 좋은 나라인가? 물론 인구수등을 감안해야되는 것이 맞지만 멕시코의 경우만 들면 멕시코는 아직도 일부 영역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해외 원조를 받고있는 나라이다. 1인당 GDP가 비슷한 수준의 러시아와 비교하면 이건 문제가 있다. SOC나 소득 불균형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인도의 경우는 러시아보다도 오히려 1인당 GDP가 높은 수준이다. 그러면 인도의 국민들은 러시아보다 좋은 경제 여건을 누리고 있을까? NAFTA 채결 이후 멕시코는 경제 규모를 혁신적으로 키우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NAFTA 이후 일반 노동자의 소득수준은 오히려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FTA가 진행되어야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Free Trade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협상을 통해 벽을 낮추는 것 뿐이다. 협상이 왜 필요한가? Free Trade를 통해 불가피하게 발생될 수 밖에 없는 비교우위를 상실하게되는 사회 소수자를 최소화하거나 배려키 위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소고기 협상 이후의 정부의 태도를 보자면 정부가 FTA를 국민의 편에서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진행하는 것인지 일부 이익단체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미국?) 의심케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제 MBC News를 보는데 소내장 검사관련 기사를 보고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대책이라고 내놓고 하는 것들이 전부 급조되었거나 확인도 안된 아니면 내부적으로는 쉬쉬하는 거짓말 뿐이라는 것이 한심스럽다. 

Posted by Tony Kim :

남대문과 노무현

2008. 2. 16. 09:53 from MeDiTaTiOn

오늘 신문에 남대문 방화범이 자신이 불을 지른 건 노 대통령 때문이라고 했다 한다.

메이저 보수 언론들은 5년 내내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국회의원은 골프 치다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니까 이건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우스개로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심금을 울리는 말로도 받아들여져서 뭐 너무 많이 들어서 뇌리에 박혀서 일까. 아무튼 방화범은 이건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 여름 어머니와 같이 찾아 본 숭례문 안쪽 용의 그림은 조악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나는 가슴이 아파서 차마 못보겠다.

Posted by Tony Kim :

김우중 회장

2005. 6. 14. 10:03 from MeDiTaTiOn
김우중 회장을 처음으로 본 것은 대우그룹이 무너지기 얼마 전이었다. 그 당시 대우자동차에서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고객이 될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기위해서 거의 무료로 공장 투어를 시켜주고 있었다. 그때 당시에 김우중 회장이 창원공장에 왔었었고 나도 1층 로비에 지나가다 김우중 회장을 얼핏 보았다. 글쎄... 첫 느낌은 굉장히 키가 작다는 것하고 수척한 노인네 같은 이미지였다는 것이었다. 뉴스에서만 보고 신문상에서만 지면으로 보던 인물이라서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이런!"이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왜 군대에서는 사단장이 오면 정말 하늘에서 별이 내려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지 않는가. 그런 고정 관념에 비하면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늘 Seagate와 Top Management Meeting을 끝내고 술자리를 하다가 Seagate VP가 김우중 회장 이야기를 했다. 그룹장이 별로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라면서 이야기를 잘랐다. 김우중 회장이 그 길다면 길었던 도피생활을 끝내고 오늘 귀국했다. 그때 창원공장에서 보았던 그 보잘 것 없던 노인네의 모습보다 더 수척한, 너무나 지친 모습의 한 노인이 인천공항으로 사람들에게 몰려서 이리저리 치이며 들어오고 있었다. 하노이에서 비행기에 탑승할 때에는 왠 기자에게 협박 비슷한 이야기도 듣는 것도 같았었다.

대우가 좌절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나는 아직도 무슨 회사 다닐 때 받은 이상한 선전의 영향 때문에 인지는 모르지만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비행기 안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떠다니던 그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일을 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가 않는다. 수십년간을 그래도 대우가족이라는 이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우에서 꿈을 키우고 그 우산 아래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했었다는 생각을 하면 어쩌면 개인적인 생각일지라도 김우중 회장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그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어쩌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래도 경제에 이바지했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은 것 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대우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방송이 나왔을 때처럼 오늘 뉴스를 보며 가슴 한편이 찡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Tony Kim :

지금 서울의 부모님 댁에 가면 사서삼경이 한 질 있습니다. 빨간색 하드커버에 폼나게 한켠을 차지하고 있죠. 사서삼경이라고 하면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이렇게 사서하고 서경, 시경, 역경 이렇게 삼경을 통칭하여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시시콜콜하게 사서삼경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암튼 그 책 한질에 별책부록같이 껴있는 책이 또 몇 권 있는데 그 중에 한권이 한자명언집입니다. 여기에는 사서삼경 뿐만 아니라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등등 다양한 출처를 가진 글들이 짤막짤막하게 실려있는데 상당히 두껍지만.... 암튼 짤막짤막해서 더 읽기는 쉽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암튼 집에서 그걸 읽다가 정말 멋있는 말을 찾았었죠.

人生如朝露, 何自苦如此.

宋名臣言行錄이라는 책이 출처로 되어있습니다. 정말 멋진 얘기 아닙니까? 인생은 아침이슬과 같거늘, 어찌 그몸을 수고스럽게 하겠는가. 마치 인생의 모든 고뇌를 달관한 듯한 노장적 이미지가 팍팍 와 닿더군요. 그야말로 감동이었습니다. 잊어먹을까봐 수첩에 꼭꼭 눌러서 적고 계속 읽고 외었습니다. 재수하면서 몸이 고단하거나 강박관념에 시달릴 때 틈틈히 그 문구를 상기하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었습니다.

지금 장가가고 우리집에는 동아일보를 받아봅니다. 첨에는 한겨례를 받아볼까도 생각했는데.. 동아일보에서 먼저 선수를 쳐버리더군요. 동아일보도 무난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동아일보를 받아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부모님 댁에는 조선일보를 받아보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신문 읽다보면 "뭐 이런게 다있어?!"하는 말이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집에 있을때 이규태 코너는 즐겨읽곤 했습니다. 읽어볼만 합니다. 갑자기 왠 뜸금없이 조선일보냐 싶었죠? 이규태 코너 때문입니다.

대학교 일학년 때였었는데 아침에 신문을 어느날인가 읽다가 위의 人生如朝露, 何自苦如此. 에 관한 글을 읽게되었는데... 사실은 이 말을 한 사람이 정말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송나라가 금에 밀려서 남송으로 전락하면서 나라가 기울자 송나라의 대신이었던 모모씨가 옛날에 우리나라 김시습 아저씨 하듯이 산에 올라가서 모든걸 잊고서 거의 거지같이 하고 살았답니다. 세상에는 항상 여기 붙고 저기 붙는 사람이 있는 법. 송나라에서 한참 잘나가다 나라가 망하자 마자 금에 붙어버린 한 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저씨를 꼬시러 산골짜기를 돌아돌아 찾아오게 되는거죠. 그리고는 만나서 한 얘기가 위의 말이었습니다. 어차피 살아야 얼마나 살겠냐? 뭐한다고 사서 고생인데? 그래봐야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이런 얘기였던 셈이죠. 우리 나라에도 이거 비슷한 얘기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정몽주하고 이방원하고 뭐 어쩌고 말이죠. 그때 정몽주 선생께서는 이방원이 쓴 글에 답하여 이몸이 죽고죽어 하면서 유명한 글을 남겼는데... 송나라의 충신은 어떻게 했을까요? 좀더 과격한 방법을 썼습니다. 한마디 대꾸도 하지않고 바로 화장실에 가서 똥물을 퍼다 그냥 부어버린거죠.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가끔은 내 생활을 돌아보게도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는 어떻게 될것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될지 갈팡질팡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서 누군가가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나는 어차피 끝난 일인데 나 살 길이나 찾아보자라면서 조직에 남은 기간을 허송했는지, 붙어있던 나가던 최선은 아무튼 다하자였는지 말이죠.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