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꺼꾸로 간다.'는 166분 Running Time의 굉장히 긴 영화입니다. 저녁 10시 20분에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나서 문을 나서는데 거의 새벽 1시 반이더군요. 불꺼진 거리에서 차를 몰고 오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암튼 상당히 긴 영화입니다.
 


이미 많은 예고편과 기사들이 얘기하는 것과 같이 '벤자민'은 늙은이로 태어나 시간을 거슬러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가진 '벤자민 버튼'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환타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생 때 읽었던 소설 하나가 생각이 나더군요. 로버트 네이선의 '제니의 초상'이란 작품인데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이어서였는지 몇번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대적 배경도 '벤자민'과 비슷합니다. 1차대전이 끝난 대공황 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니까요. 여기서 '제니'는 뭐랄까요 '벤자민'이 시간을 꺼꾸로 먹는 'Time Reverser'라면 시간을 건너뛰는 'Time Skipper'라고 해야되나요. 가난한 화가 '이벤'이 저녁에 공원을 지나다 혼자 놀고있는 소녀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10살 남짓한 이 소녀는 유행에 한참을 지난 옷을 입고 처음 보는 낮선 '이벤'에게 스스럼 없이 대하며 헤어지는 순간에는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제니는 갑자기 중학생 정도로 훌쩍 커져있다가 다음 순간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급격하게 성숙해지며 나타납니다. 전쟁을 거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의 모습에 놀라던 '데이지'의 모습에서 스케이트 장에서 훌쩍 커버린 '제니'를 보며 본인의 눈을 의심하던 '이벤'의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라는 점도 눈에 익은 형식입니다. 가깝게는 '포레스트 검프'도 있었고 약간 멀게는 '마지막 황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경음악도 어째 '마지막 황제'를 연상시키는 건 나만의 생각이였을까요? '벤자민'의 차별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세월을 꺼꾸로 먹는 주인공이라는 아이디어에 있다고 보면될 것 같습니다. 피츠제랄드의 단편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이 영화는 10년 전이나 그 전이라면 화면 상에 구현하기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을, Voila! CG의 힘을 빌어 전혀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관객들이 공감하며 몰입할 수 있게합니다.


'벤자민'을 그렇지만 빛나게 해주는 일등공신은 특수효과였다기 보다는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힘이 크다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수긍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70대 노인이면서도 마음은 10대에 불과한 인물의 내면을 그와 같이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누군가 말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던 그가 놀랄만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상을 탈지는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에 노미된 것만으로도 그의 연기력은 이미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든 배우의 연기를 보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꺼꾸로 간다.'는 근래에 보기 드문 걸작이라는 생각입니다. 안보면 후회할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꺼꾸로 간다.'는 인생을 되돌아보게하는, 포기, 편견을 반성하게 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Posted by Tony Kim :

워낭소리

2009. 2. 9. 10:58 from MoViE

토요일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습니다. 경민이는 학교에 가는 날이고 어차피 집에 있어야 시간만 죽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주섬주섬 옷을 입으니까 은랑께서 부시시한 얼굴로 물어보더군요. "뭐해?" 영화 보러 간다고 했더니 뭐 같이 안가고 어쩌고 잔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같이 나가기로 하고 경민이는 알아서 학교 가라고 하고 수민이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새벽에 안개가 다소 끼었습니다. 얼마간 따뜻하던 날씨가 안개 때문에 햇볕이 가려 들이쉬는 숨 속에 습기를 머금은 서늘함이 느껴졌습니다. 동수원 CGV에는 8시 10분 도착. 같은 영화를 볼줄 알았더니 두분께서는 과속 스캔들을 보시겠다고 하셔서 저 혼자 '워낭소리'를 봤습니다.

영화는 뭐 글쎄요. 신문에서 보는 것처럼 펑펑 우는 사람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소 일상적인 웃음과 짠함을 주는 영화였다는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 연세 때에 고집 세고, 무뚝뚝하고, 말없는 할아버지와 잔소리 많고 수다스러운 할머니의 사시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슬픔보다는 웃음을 더 많이 주는 영화였다는 생각입니다. (사진관에서 '웃어!'는 정말 웃겼습니다.) 저예산의 독립영화인지라 다소 화면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느낌이 있지만 볼만한 가치는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아직도 공기가 차더군요. 토요일 오전 10시. 아직도 문을 열지않은 점포들과 토요일 오전인지라 차도 많지 않은 거리에서 문을 연 카페를 찾아서 커피 한잔을 사고 빵집에서 샌드위치 사서 영화관 로비에서 은랑하고 수민이 영화 다보기를 기다렸습니다. '과속스캔들'은 10분 늦게 시작했는데 꽤 기다렸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온 둘을 태우고 오는데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뒤에서 계속 재재거리더군요.  안개가 걷힐 생각이 없었고 차 유리에는 습기가 가득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쌍화점

2009. 1. 19. 13:22 from MoViE

은랑 여사께서 하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어제 처갓집에 갔을 때 둘째를 장모님한테 맡겨놓고 봤습니다. 신촌 아트리온에서 봤는데 주말인데도 극장이 거의 텅텅 비었더군요. 군데군데 연인들만 자리를 잡고 앉아서 보는 한적한 분위기였습니다. 뭐 개봉한지가 좀 되서 그런건지 생각보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암튼 의외더군요.

영화 내용은 뭐 간단합니다. 호모 섹슈얼이었던 고려왕이 성적 취향 상의 이유로 2세를 못보게되어 권력 기반까지 위태로워지니까, 내가 하기는 싫고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맞다 그렇게 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섹스 파트너였던 호위무사 홍림을 왕비하고 연결해줍니다. 첨에는 그런 생각이었겠죠.



'나랑 마찬가지로 너도 별로 내키지는 않겠지만 넌 암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어려운 걸 도와줘야되지 않겠어?'

그리고 같은 취향이라고 생각했을테니 나중에 서로 눈이 맞는 의외의 사태로 일이 벌어지지도 않을거라 생각했을테고요.

그런데 이런. Wrong Idea!

둘이 붙여놨더니 홍림군께서 그만 이성이 눈을 뜨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게됩니다. 호모라고 믿었던 홍림은 그러면 바이섹? 아니면 사실은 호모를 가장한 헤테로? 그 뒤는 예상된 수순.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사실 단초는 자기가 다 제공한 거지만.) 고려왕은 질투에 눈이 멀어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좀 어이없는 스토리 아닌가요? 나는 호모 섹슈얼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동성애자 사이에서도 어이없는 상황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쪽 Inner Circle에서의 사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그래도 영화 보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건 뭐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나 몰이해도 반영된 그런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별관계는 없는데도 이병헌 주연이었던 '달콤한 인생'이 많이 연상되더군요. 보스에게 버림받는 거라던지, 그 모든 사태의 원인이 보스의 여자였다는 것부터 그리고 사실 보스가 만들어놓은 문제 때문에 아니면 충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맡긴 일 때문에 부하가 보스에게 버림받고 복수를 준비하는 것 등등... 마지막에 홍림이 고려왕에게 울분을 표하던 장면에서는 "개처럼 부려먹던 나를!"이라며 분을 참지 못하던 이병헌의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뭐 사실 그닥 인상 깊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조인성의 베드신은 너무 자주 나와서 나중에는 조금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화제가 된 조인성과 주진모의 베드신도 사실 키스만 열심히 하는 수준이었고요. 스타일과 미술도 눈이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게 지나치게 번잡스럽다는 인상이었습니다. 화젯거리를 위해 베드신에 스토리가 죽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느껴지던 유하 감독의 박력이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다소 실망해다고 해야될까요?

암튼 여자분들은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은랑 여사께서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듣기로는 조인성의 다수의 노출신에 여자분들께서 굉장히 흐뭇해하더라는 후문입니다. (아유 지금 실컷 봐야지 언제 또 그런게 나오겠어 호호홍~~~ ㅡ.ㅡ;;) 송지효가 열받을 일 아닌가요? 어떻게 남자배우 노출신이 더 화제가 되니 말입니다. ^^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