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32장

2022. 2. 16. 13:34 from BoOk/pHiLoSoPhY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 以降甘露

천지상합 이강감로

民莫之令而自均

민막지령이자균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시제유명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知止 可以不殆

지지 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방도가 있더라도 그 이름이 없다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미미한 문제일지라도 천하는 이를 다스릴 수 없게된다.”.

 

노자의 첫장을 여기서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名은 Naming, 즉 대상을 규정하는 절차로 해석한다면, 32장의 첫 구절 ‘道常無名’, 즉 이름이 없는 방도라는 것은 여하한 이유로 채택되지 않은, 그러므로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방도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간혹 ‘도는 영원하지만 그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멋있어 보이는 해석이긴 하지만.. 무슨 말이죠?)

 

좀 더 설명을 해보도록 하죠. 예를 들어 차도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주변을 살피고 보행자의 판단 아래 눈치껏 건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모든 도로에 지하도나 육교를 설치하는 방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신호등을 설치하여 빨간불이 나오면 서고, 파란불이 나오면 건너가는 걸로 약속을 정할 수도 있고요. 이것 외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방안이 10가지, 20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앉아서 어느 방안을 채택할지 고민을 하게되죠. 아무튼 채택되지 않은 방안들은 모두 ‘道常無名’ 즉 규정되어지지 않은 (즉, 채택되지 않은) 방도가 되게되는 겁니다.

 

‘樸雖小’ 소박하고 비록 작은, 즉 아무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문제도 ‘天下莫能臣也’ 세상사람들은 다스릴 수 없게됩니다. 생각해보시죠. 길 건너는 것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방안이 없다면 이 쉬운 이슈도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게됩니다.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지도자가 만약 이를 (만들어내어) 지켜낸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찾아들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경우 여러 방도 중에 합당한 방도을 선택하여 이를 유지시키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주변의 의견을 물리치고 현실에도 맞지않는 방도를 독단적으로 수립하여 강요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최적의 방안을 만들어내고 이를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조금 더 보완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萬物將自賓’ 이런 지도자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찾아온다, 즉 모이게 된다는 말이겠고요.

 

문제가 눈 앞에 닥쳐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뭉게고 아무것도 안하는 리더들을 종종 보곤합니다.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거나. 그것이 문제를 대응하는 것이건 아니면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건, 여러 방안 중에 결국 하나의 방안을 채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리더의 몫입니다.

 

天地相合 以降甘露

천지가 서로 간에 화합하면 감로가 내리게된다.”

 

이 문장은 앞의 28장의 내용에 연결선상에서 이해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서로 알맞은 조합을 통해 개선방안을 채택하게되면, 여름철 내리는 단비와 같이 구성원들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民莫之令而自均

사람들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따르게 된다."

 

어떤 사회에 제도나 풍습, 관습 등도 그 구성원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방도가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방도와 구성원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람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 취지를 공감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도도 넓게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 취지에 공감하고, 효과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그 방도를 따르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된다면 누가 따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호등이 바뀔 때를 기다리는 것은 잠시 기다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을 누가 따로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희미해도 차를 몰면서 중앙선을 지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새로운 제도를 시작하면 이름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 이름 또한 언젠가는 다함이 있다. 뭇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끝날 것임을 알고 있다.”

 

앞에서 새로운 대안이나 방안을 제시하는 리더의 자질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면, 지금부터는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부터 시작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인데, 노자는 여기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Originality를 영원히 유지시키는 제도도, 법칙도, 관습도 있지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통용되는 방안이 언젠가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끝날 것음을 경험상으로, 아니면 본능적으로라도 알고 있습니다.

 

知止 可以不殆

멈출 때를 알면 가이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기존의 것을 멈춘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기존의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이대로 타성에 젖어 기존의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냥 하던 데로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기존의 관습에 안주해서는 어느샌가 위기에 처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주변의 국가들은 소총병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장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에 안주하는 나라가 있던가고 생각해보시죠. 그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리 기존의 제도나 세력이 강고하게 자리 잡았더라도 변화가 눈앞에 다가왔다면 변해야합니다. 아니면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유하자면 천하의 道라는 것은 마치 강과 바다로 흐르는 물줄기와 같아 끝없이 흐르는 것이다.”

 

세상의 원리라는 것은 계속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끝임없이 적응해야되며 나도 변화해야 합니다. 안일하게 기존 방식만을 유지할 것이 아니다. 세상이 그러하니 나만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 하며 노자는 32장을 마무리 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1장

2022. 1. 18. 16:27 from BoOk/pHiLoSoPhY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부가병자, 불상지기,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병자, 불상지기, 비군자지기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부득이이용지, 염담위상, 승이불미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이미지자, 시락살인. 부락살인자, 즉불가이득지어천하의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길사상좌, 흉사상우.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以喪禮處之
언이상례처지, 살인지중, 이애비읍지. 전승이상례처지
   
31장의 내용은 앞장의 내용이 이어진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쟁은 그 폐해를 들어  선택해서는 안되는 방도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무릇 훌륭한 군병이라는 것은 상스럽지 못한 도구이며 의혹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대안이 있는 이는 군병을 사용하지 아니한다.”.
 
첫 구절은 명확하게 군대는 대안이 있다면 사용해서는 안되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정적 표현을 쏟아냅니다. “상스럽지 못하다 - 不祥之器”로 시작하여, "만물이 의혹을 품고 증오하는 대상이다 - 物或惡之”라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故” 다른 대안이 있는 사람은 “有道者” 군병을 사용하는 선택지에는 머물지 않는다, “不處” 즉 그런 방안은 채택하지 않는다 이야기 합니다. 
 
어째서 이러는지는 앞장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했다고 봅니다. 폭력은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으로 비춰져, 지도자에게는 매력적인 대안 중 하나로 보이겠지만, 그 속성상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죠.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군자는 머무름에 그 왼편을 귀히 하나, 군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을 때에는 그 오른편을 귀이 한다.”
 
이 문구는 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군왕이 신하들을 모아 국정을 논할 때, 그 왼편에는 문관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무관들을 배치하였습니다. 임금이 남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동쪽에는 문관, 서쪽에는 무관들이 배치되어 있었던거죠. 조선시대 때 양반이라는 말이 동반 (문관)과 서반 (무관)들을 가르키는데, 위의 전통을 따른 작명법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왜 문관은 동쪽에 배치하고 무관은 서쪽에 배치하였을까요?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쪽이며, 서쪽은 해가 지는 쪽입니다. 전쟁은 대비는 해야될 것임에 분명하나, 막상 벌어지면 국운이 저물 수도 있는 행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위의 두번째 문장은 이러한 내용을 가르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군병은 상스럽지 못한 도구이다. 군자의 도구라 할 수 없다.”
 
첫번째 문구를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군자가 먼저 사용을 고려할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부득이한 경우가 생겨 군병을 사용하더라도 평안하고 고요하게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승리하였다 이를 미화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설명할만한 내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군병을 사용하는 것은 침략을 당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야되고 이 경우에도 냉철한 판단 아래 꼭 필요한 부분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철저히 수립하여 신중히 진행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또한 설사 승리하였더라도 전쟁 자체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여, 이를 미화해서는 안된다 이야기 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 이런 노자의 생각은 현대의 지도자 그 누구도 실행하지 못하는 가르침입니다. 특히 승리하더라도 이를 미화하지 말라하였는데, 이를 따를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얼마나 될까요? 수많은 군병들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끌려나가 전쟁에서 죽고나면, 국가는 그리고 지도자들은 그들의 희생을 용맹으로 포장하고,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미화합니다. 정말로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지도자라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경우라면 전쟁을 억지하고 방지하며, 군대를 그 목적에 한정하여 사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전쟁을 미화하는 자는 살인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전쟁을 일삼는 군주는 살인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뜻을 얻을 수 없다합니다. 자기 자신도 결국 파멸될 거라는 의미입니다.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길한 일에는 왼편을 높이며, 흉한 일에는 오른편을 높인다. 편장군은 왼쪽에 위치하며, 상장군은 오른편에 위치한다.”
 
첫 두문구는 이미 두번째 줄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군은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도 그 책임의 무거움을 항상 마음 속에 담아두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인 편장군은 상서로운 왼편에 위치 시키되, 고위 상장군은 오른편에 둔다 이야기 합니다.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以喪禮處之
“말하자면 전쟁은 상을 치르는 예를 따라야하는 것이니, 뭇대중을 살해하였다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야한다. 전쟁에 승리하였더라도 이는 상례로 처리하여야 한다.”
 
전쟁의 수많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군과 적군 모두 희생이 발생되기 마련이고, 수많은 민간인들도 남녀노소를 가지리 않고 희생당하기 마련입니다. 전쟁이 시작될 때에는 마치 우리의 앞에는 승리만이 있을 것 같지만, 그리고 희생은 오로지 적국에게만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미국도 상대적 약소국인 베트남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이라크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우었었고, 또 치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국이라는 이름으로 가리워진 상대국의 선량한 일반 대중들이 영문도 모른체 희생당하는 것은 과연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전쟁 승리가 환호할 만한 일일까요? 노자는 전쟁은 초상을 치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야기 합니다. 죽음으로 대표되는 전쟁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야할 일이지, 미화하고 환호할 대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0장

2022. 1. 13. 14:03 from BoOk/pHiLoSoPhY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사지소처 형극생언 대군지후 필유흉년

善者果而已 不敢以取强

선자과이이 불감이취강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과이부득이 과이물강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물장즉노 시위부도 부도조이    

   

29장에서 이야기한 것을 복기하면 결론은 나의 선의를 혹은 나의 지향하는 바가 옳다는 독선만으로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 구절이 극단에 치우지지말고, 교만하지말고, 필요 이상으로 일을 키우지 말라는 말도 결국은 리더의 독선을 경계하는 말이라고 생각되고요.

 

30장에서는 强, 즉 독선에 치우친 리더들이 논리나 설득이 아닌 강압을 행사하여 일을 추진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자기 확인에 가득한 리더들이 종종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고 주변의 의견을 물리치며 질책과 폭력적 수단으로 목표한 바를 달성하려고 추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중국에서 이러한 폭력적 양상은 종종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구현되고는 했고요.

 

노자는 폭력을 통한 성취는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들며, 이를 경계하라 이야기 합니다.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군주가 사람들을 돕기 위한 방도를 택한다며 군사와 같은 강압적 방식을 취해서는 안된다. 이는 결국 응당하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첫 6자는 많은 경우 “도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군주를 돕는 자는..”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 군주에 대한 이야기인데, 연결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以道佐人하려는 (도로써 사람들을 도우려는) 主者 (군주되는 사람은) 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리더들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표면적으로던 진심이던 구성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다양한 선택을 하고 개선책을 모색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밀어붙이는 방식도 포함이 됩니다. 토론과 설득 그리고 협상에는 오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 반면 강압적 방식은 일견 리더들에게는 효율적이고 신속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주기 십상입니다. 不以兵强天下라는 말은 고대 중국에서의 비유를 든 것이겠지만, 침략은 자국의 생산기반을 육성하는 것보다 군사를 통해 옆의 나라가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이 더 빠르고 쉬워 보여서 결단이라는 미명 하에 빈번히 자행되었던 방식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其事好還, 하지만 현대국가에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결국 희생을 요구하기 마련이며, 대가가 돌아옵니다.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지휘관이 머무르는 곳에 온갖 고난이 생겨나며, 대군이 지난 후에는 흉년이 반드시 발생한다.”

 

전쟁은 미래의 성장을 이끌어갈 인적기반인 젊은 청년들을 수도 없이 전장에서 희생시키며, 비록 승리로 전쟁이 마무리되어도 피를 본 상대는 복수의 기회를 노리기 마련입니다.

 

善者果而已 不敢以取强

“좋은 것은 (여러 옵션 중) 성과를 거두는 방도를 선택하고 (무리하게 더 이상 가는 것은) 그치는 것이다. 강압적인 방식을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취할 것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목표한 바를 달성하는 것이고, 그중 가장 나은 방식 (善者)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 쉬워보인다고 뒤에 발생할 부작용을 감당도 못할거면서 강압적 방식을 취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성과를 이루었다고 긍지를 가질 것도, 반대파를 쳐내려할 것도 그리고 교만에 빠지지도 말아라. 성과를 이루었으면 얻는 것 없는 상황에서는 더이상 (나아가지) 말 것이며, 성과를 얻는다고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지는 말아라.

 

첫 세문구의 내용은 결국 나를 위하여 조직의 역량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포하는 듯 합니다. 자긍심을 가지는 것도, 나의 반대파를 이 기회를 활용하여 쳐내려는 것도, 교만에 빠지는 것도 결국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과 무관하게 나를 돋보이기 하려는 행위에 불과하니까요.

 

다음 두 문구는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지를 고민할 것이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성과가 더 안날 것이 분명한데도 일을 지속하거나, 무리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만물은 장성한 이후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쇠퇴한 상황에 도달하면 더 이상 사용될 수 있는 방도가 아니게 된다. 무리한 방법은 빨리 효용가치를 잃게된다.”

 

30장의 마지막 문구입니다. 생노병사는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는 법칙입니다. 그것은 단지 생명체에만 적용될 수 있는 원리가 아니고, 국가에도 규범에도 이론에도 그밖의 거의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장에서 노자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급하게 이룬 것은 급하게 잃게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지금 일순 이룩하였거나, 쟁취하였다고 생각된 모든 것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무언가를 이루면, 그 다음에는 그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기업들이 계속 끊임없는 혁신을 외치는 것도, 지속적인 개혁이 없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직원들을 가혹한 환경에 몰아넣어 단기적인 성과를 올릴 수는 있습니다. 아니면 경쟁사 정보를 빼내거나 업체의 성과를 강탈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한순간 성과를 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계속해서 그런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과연 이것을 지속가능한 개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쉽게 생긴 돈은 쉽게 잃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자는 30장에서 전쟁으로 대표되는 무리한 방식보다는 기본을 충실이 하고,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Tony 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