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37장

2022. 5. 19. 14:01 from BoOk/pHiLoSoPhY

道常無爲 而無不爲

도상무위 이무불위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道常無爲 而無不爲

道는 통상 어떤 특정 대상을 위주로 하지않아야, 이루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無爲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않는다라는 더 심하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는데로 내버려둔다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었지만, 그런 의미라면 노자는 애시당초 이런 책도 쓰지 말았어야 하지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가는데로 내버려두라고 하려면 이런 글도 쓰는게 아니죠.)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정체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변화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변화는 위기의 모습으로도 오며, 기회의 모습으로도 다가옵니다. 어느 경우가 되었건 변화에 대응해야 되며, 하기 마련입니다.

 

개인은 처한 환경에서 자기 자신에서 가장 최선의 방도가 무엇인지 고민하여 대응하면 됩니다. 하지만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 집단 전체의 이익과 손해를 고려해야됩니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 단체들만을 위한 방도는 결국 그 집단에게도 해가 되는 모습으로 돌아오기 십상입니다.

 

세계의 많은 독제국가나 부폐한 나라들을 보면 특정 계층은 모든 부를 독차지하며 그 기회를 누리는 듯하지만 그 계층 사람들도 경호원 없이는 거리를 다닐 수 없고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려우며, 최악의 경우는 비상식적인 이유로 언제든 최악의 경우로 몰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 것 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법도 규칙도 관습도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최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때 특정 방향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공동체 전체가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특정 대상에 치우치지 말아라. 그래야 진정으로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도덕경 37장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왕후들이 이를 능히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자발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위의 첫 문장은 새로운 방도를 마련함에 있어 지향점 또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고수한다면, 즉 전체 이익을 고려하지 어느 특정 대상만을 위하는 태도를 버린다면 그 새로운 방안의 영향을 받게되는 대상들도 반발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그 방향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변화하고 지향하는 바에 동화될 것이라는 것이죠.

 

사람들은 흔히 결과의 공평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력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보상을 받는다면 불만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의 공평은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부당하게 기회를 박탈 당했다고 생각되면 이러한 불만은 차곡차곡 쌓여 결국은 조직을, 사회를 그리고 나라의 안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도 있습니다.

 

리더들은 이러한 점을 항상 고려하여 일을 추진해야된다고 이야기합니다.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무언가를 화합하여 만들려할 때, 우리는 아직 정의되지 않은 원소재를 활용하여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도록) 엄밀히 통제하면서 일을 추진할 것이다.”

 

化라는 단어가 앞 문구에서도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변화한다는 의미보다는 화합한다는 (또는 조합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앞선 장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기존의 또는 현존하는 무언가를 조합하여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作) 있을 테니까요.

 

樸이라는 단어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던 단어입니다. 무언가 구체적인 모습을 띄기 전 원재료 상태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無名이라는 단어도 수차 언급되었습니다. 아직 정의되지 않은 현상들을 의미합니다. 무언가 의미가 없는 것들을 조합하여 또는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며 새로운 법칙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鎭 즉 진압한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되어, 많은 경우 무언가를 만들려는 행위 자체를 억누르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억누른다고 억눌러지는 것도 아니고 또 억눌러야할 대상도 아닌 것 같습니다.

 

鎭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엄밀히 또는 매우 조심하여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큰 대리석 원석을 쪼아내어 조각상을 만들어낼 때 덜어낼 부분과 남길 부분을 매우 조심해서 작업하는 것처럼 말이죠. 변화의 욕구를 억누른다는 식의 해석은 노자의 내용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해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아직 규정되지 않은 밑바탕 단계라면, 이 또한 어떤 지향하는 또는 바라는 바가 없을 것이다.”

 

위의 문구에서 가르키는 것처럼 엄정하고 철저한 계획과 관리 하에 새로운 것이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재료는 가공하기에 따라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통나무는 (樸)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나무 그릇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도끼 자루가 될 수도 있으며, 악기로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릇을 만들려고 하더라도 조심해서 철처한 계획과 숙련된 작업자의 통제 하에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하는 형상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통나무의 문제가 아닙니다. 작업자의 문제인거죠. 통나무는 무엇을 되고싶다 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통나무를 탓할 수 없듯이,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이루기 위한 조직원들의 열망과 역량이 갖춰져 있더라도 잘못된 리더의 생각과 독선에 의해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무리한 욕심이 없으면 안정될 것이며, 천하가 장차 자발적으로 방향을 정할 것이다.”

 

위의 無欲과 이 문장에서의 不欲은 주어가 다른 대상을 가르키고 있다고 봅니다. 위의 내용이 원재료 상태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르키는 의미로서 無欲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면 여기서의 不欲은 리더가 무언가 의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무언가 자신을 위한 또는 Inner Circle을 위한 욕심을 가지게되면 반드시 사단이 나게됩니다. 특히 현재와 같은 민주공화정 체제 하에서는 권한은 엄밀히 말하자면 위임된 것에 불과한데 이를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활용한다면 분란이 발생될 소지만을 키우게 되죠.

 

반대로 말하면 그런 자세를 버리면 靜 즉 조직이, 사회가, 구성원이 안정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질서를 찾아가게되고 더불어 적절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죠.

 

37장은 결국 권한을 가진 사람이 무언가 편견을 가지거나 개인적 욕심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과 대신 편견과 아집 그리고 독선을 버리고 사람들의 뜻을 모은다면 사회는 계속 진전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노자도덕경 36장

2022. 4. 18. 16:36 from BoOk/pHiLoSoPhY

將欲翕之 必姑張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將欲弱之 必姑强之

장욕약지 필고강지

將欲去之 必姑與之

장욕거지 필고여지

將欲奪之 必姑予之

장욕탈지 필고여지

是謂微明 柔弱勝强

시위미명 유약승강

魚不脫於淵

어불탈어연

國利器 不可以示人

국이기 불가이시인

 

將欲翕之 必姑張之

하나로 무언가를 모으려 한다면, 잠시 그 대상들을 벌려놓아 운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도덕경 36장은 해석에 있어 다소 논란이 되는 장입니다. 첫 문장의 내용과 비슷한 구조의 내용이 네번째 문장까지 이어지는데, 이 부분의 내용을 권모술수와 관련된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첫 문장의 경우 翕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합한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이를 축소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경쟁자나 아랫사람 중 경계해야될 대상을 몰락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잠간이라도 권한을 더 주라는 식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 선상에서 약하게 하려면 잠간 강하게 만들어봐라, 제거하려는 대상이라면 잠간은 같이 해라, 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속으로는 검은 마음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이중적 모습의 냉혹한 리더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읽혀집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36장에서 앞뒤 맥락없이 경쟁자를 몰락시키는 노하우를 말하는 것은 다소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뒤에 이어서 고기는 연못을 못벋어난다는 얘기와도 연결되는 사항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요.

 

오히려 이번 장의 내용은 검증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철저한 검증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변화에 대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하였습니다.

 

첫 문장의 내용 중 “將欲翕之”라는 말은 기존의 방법이나 정책을 무언가 다른 것과 통합을 하는 변화를 추진하려할 때,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해야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을 때를 가르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必姑張之라는 이야기는 이런 시도에 앞서 잠시만이라도 정반대의 방향으로, 즉 확대해서 운영해보자는거죠. 그렇게 하면 이러한 대상 Process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이를 통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가 가늠할 수 있게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느 지방정부에서 대중교통 전용차선 운영을 검토한다고 생각해보죠. 이 경우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주말만 아니면, 주중만 운영하는 것을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기간을 정하고 한달 정도 전면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고 뭐가 보완되어야 할 내용인지, 그리고 좋은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하면 더 나을지를 확인하기 나을 수 있습니다.

 

비유가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와 같이 전면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아니면 이제 폐기를 검토하고 있는 대상이 있다면, 과연 이런 결정이 맞는지 잠간이라도 나의 의도와 반대방향으로의 검증차원의 운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 뒤의 문구들도 거의 같은 의미 입니다.

 

將欲弱之 必姑强之

장차 약화시키고져 하는 사항이 있다면, 잠시라도 강화시켜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

將欲去之 必姑與之

장차 제거해야될 항목이 있다면, 잠시라도 같이 하여 정말 제거해야될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將欲奪之 必姑予之

장차 그 권한을 빼앗아야할 대상이 있다면, 일단 권한을 주어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화할 필요가 있다.”

 

상기 네 문구의 내용은 거의 모두 현재 있는 것들을 축소하거나, 제거하는 등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강화시키는 것도 힘든 과정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무언가를 축소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큰 조직일수록 각 조직의, 그리고 담당자에게 주어진 업무가 있고 또한 그에 따르는 권한과 책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다보면 어떠한 업무 Process에 대해서는 기존 조직에서 운영하는 것 보다 새로운, 아니면 다른 조직에서 운영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고민의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동의 과정없이 리더의 판단만으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면, 조직의 반발은 둘째 치고 독선에 의한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특정 권한이나 업무 과정을 약화시키고 들어내고 다른곳으로 옮기기에 앞서 정말 이런 것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확인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대상이 되는 항목에 대해 강제로라도 증폭시켜서 아니면 집중 검증하여 정말 그 결정이 옳았는지, 파악해야된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是謂微明 柔弱勝强

이를 미명, 즉 잠간 동안의 시간을 두어 명확화하는 과정이라 한다. 강제로 무언가를 변경시키는 것보다 비록 약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微明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희미하게 밝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微라는 단어가 매우 작은 상황이나 순간을 의미한다고 보고, 明이라는 단어가 그 대상의 장단점과 이슈 및 리스크를 명확히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微明이라는 단어는 어떤 대상을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파악됩니다.

 

柔弱勝强이라는 문구는 柔弱함이 强함을 이긴다라고 해석되는데, 거꾸로 해석하면 어떤 변화를 모색할 때 너무 강압적으로 추진하기 보다 비록 약하더라도 유연한 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더 성공확율이 높다라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당장 시간이 더 걸릴터이고 무조건 ‘내말이 맞아’라고 주장하는 것 보다는 약하게 비춰질 수 있으나, 결국 더 합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거죠.

 

경험적으로도 새로운 책임자들이 자리에 올라 기존의 절차를 용도폐기 시키고 새로운 방법을 강압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종종 보고 합니다. 하기만 이럴 때 대부분 그 분께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절차도 같이 운명을 다하곤 하죠. 그리고 그 분께서 자리에 있을 때에도 그냥 하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거죠.

 

왜일까요?

 

魚不脫於淵

물고기는 연못을 빠져나올 수 없다.”

 

물고기 보고 살고 있던 연못을 빠져나오라고 하면, 그 물고기는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 연못은 이미 먹이가 다 고갈되어가거나, 오염이 임박했거나 하더라도 그 연못 안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던 물고기는 그 필요성을 좀처럼 절감하기 힘들 겁니다. 내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실상 그 절차에 익숙한 사람은 변화의 필요에 대해 실증을 하기 전까지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힘듭니다. (특히 권한이 축소되어나 없어지는 경우라면 더욱 심할 겁니다.)

 

숲 속에 있으면 숲 전체를 볼 수 없다는 비유와도 비슷한 경우죠. 권한 조정의 대상이 되는 상대는 대부분 기존 절차나 Process, 또는 생활에 익숙해져있어 더 나은 방식으로의 변경에 대해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 힘들기 쉬우며, 심한 경우는 반감과 두려움을 가지기 십상입니다. 

 

國利器 不可以示人

나라에 도움이 되는 도구는 사람들에게 지시만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도움이 되는 변화라고, 또는 새로운 절차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냥 단순히 지시만 한다고 이루어지고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에 따른 이익을, 효과를 그리고 향상에 대한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고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기존의 것을 과감히 떠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노자 36장은 안주하려는 조직을 어떻게 변모시켜야되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철저한 검증과 공감을 통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Tony Kim :

한여름 지리산 둘레길 Guide

2022. 4. 12. 13:00 from TrIp

매년 2박3일이나 1박2일로 지리산 둘레길을 찾은게 5년이 되었다. 전체 21개 코스 중 네 코스만 안가봤으니, 이제 한두번만 더 가면 거의 전 코스를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섯번 방문 중에 첫 세번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7월 마지막주나 8월 첫째주에 방문했었고, 작년과 금년의 경우는 회사 창립기념일을 이용해 봄에 갔다왔다. (개인적으로는 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여러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둘레길을 찾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휴가를 따로 내기 어려운 점이 여름 방문의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여기서는 여름 둘레길을 방문했었을 때 느꼈던 몇몇 가지들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분들이 많겠지만 나름 몇 번 방문하면서 생긴 노하우를 공유한다고나 할까.)



① 팔토시와 챙 넓은 모자는 필수, 바지도 긴 바지를 착용할 것. 썬크림 / 썬스틱과 썬글라스도 필요

지리산 둘레길은 많은 경우 산길로 이어지지만 중간중간 그늘 하나 없는 마을길을 돌기도 한다. 이 경우 날씨 좋은 봄이나 가을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여름이라면 작렬하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또한 산 속이라도 포장된 임도를 따라 걷는 경우, 햇빛에 긴 시간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가끔 둘레길을 그늘진 산으로만 도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반팔, 반바지에 모자도 안쓰고 오시는 분들이 있다. 평생 밖에서 햇빛에 단련된 업종에 종사하신 분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 특히나 사무실 근무가 대부분인 직장인들은 강한 햇빛으로 인한 화상을 온몸에 입기 십상이다. 이런 고통쯤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분들이라면, 뭐 그래 정신력을 높이 산다. 하지만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그나마 가볍게 고생으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화상이 심해지면 몸이 상할 수도 있다.

왠만하면 가릴 수 있는 부분은 팔토시, 모자, 긴바지로 최대한 가리고, 썬글라스도 해가 지기 전까지는 꼭 쓰며, 노출된 부위는 수시로 썬크림이나 썬스틱을 발라주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사용하기 편해 썬크림 보다는 썬스틱을 선호한다.)

② 물은 넉넉히, 수통도 몇 개는 가지고 다닐 것. 비상식량으로 비스킷을 추천

제주도 올레길이나 강원도 해파랑길을 다녀오신 분들이 지리산 둘레길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고 왠만한 것은 지나가며 현지에서 사면 된다는 마음으로 오는 걸 보곤한다.

아니다! 아주! 많이! 매우! 다르다.

내가 올레길이나 해파랑길을 다 돌지는 않았지만, 거기는 그래도 중간중간 식당이나 상점들을 하루에 몇번은 거치게 된다. 하지만, 둘레길은 코스 중간에 정말!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개장터 등 몇 군데 예외가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도 인월에서 출발한 첫 방문시 점심은 중간에 식당이 나오면 사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걷다가 정말 2시까지 생으로 굶으면서 걸었었다. (산 속에 식당이 있을리 없지 않는가?) 더워서 땀은 비 오듯 흐르지, 길은 험하지, 배는 고프지... 멘붕님이 나를 꼭 끌어안는 것을 느꼈었다.

중간에 힘들게 마을을 만나더라도 식당은 커녕 슈퍼 하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심에 허기가 질 것에 대비해 비상식량은 꼭 챙길 것을 권한다.

하지만 여름의 경우, 찌는 듯한 날씨에 왠만한 음식들은 상하기 쉬워 어떤 음식을 챙길지도 사실 고민이 된다. 많이들 산행시 견과류와 초코렛으로 만든 에너지바를 준비하는데, 여름에는 피하는게 좋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봉지 안에서 죽처럼 되버릴 가능성이 높다.)

뭐 나는 비위가 좋아서 끈적끈적하게 녹은 에너지바 쯤 손으로 퍼먹을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하셔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경우 포장지를 뜯을 엄두도 못 내게된다. 잘 상하지 않고, 여름에 휴대하기도 좋은 대안을 찾는다면 비스킷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이제를 선호한다. 몇 개만 먹어도 허기가 가신다.)

물론 퍽퍽한 비스킷을 더운 길 위에서 우걱우걱 씹어먹는 것은 과히 내키지않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운이 좋아 중간에 식당을 만날 자신이 없다면, 이 경우 맛은 사치이다. 한끼 때우는 목적에 충실한 것을 찾는다면 비스킷 만한 것은 없다.


그나마 식사는 하루 세번이고 아침, 저녁은 숙소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점심만 위의 방법으로 대비하면 된다. 하지만 물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여름 지리산 둘레길은 더위와의 전쟁이다. 땀을 흘리는 이상으로 물은 수시로 보충해줘야 한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 한 것처럼 가게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도중에 물이 떨어진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마을이라도 지나가면 양해를 구하고 수돗물이라도 보충할 수 있지만, 산 속에서 개울도 없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한다. (실례로 3년전 산 속에서 물 3통이 거의 다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 있었다. 점점 탈진 증세가 와서 열걸음 걷고 앉아 쉬었다가 다시 열걸음 걷는 식으로 이동했던 기억이 있다.)

배낭이 무거워지더라도 물은 최소 3통 정도 충분히 준비하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중간에 민가를 만나거나 마을 공용 수도 등을 만난다면, 물은 1순위로 보충해라. (그냥 기회가 있으면 새로 채워라.)

나는 살아 생전 수돗물을 그냥 마신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방법은 두가지다. 배낭 가득 생수를 미리 채우거나 아니면 중간에 포기하거나. (차마 쓰러지는 것은 옵션에서 빼겠다.)


배 고픈 것은 어떻게던 참아지지만, 탈수는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놀러갔다가 119에 실려오지 않도록 해야되지 않겠는가.


③ 아무리 피곤해도 장기 코스라면 빨래는 꼭

경험해보신 분들은 공감을 하겠지만 여름 둘레길은 하루 걷고나면 몸에 걸친 거의 모든 옷들이 땀으로 범벅이 되게된다. (거의 소금이 보인다.) 1박2일 정도의 단기여행에 갈아입을 옷을 넉넉히 가져왔다면 모르겠지만, 2일 이상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세탁은 필수다.

숙소에 따라 친절하게 먼저 물어보고 세탁기를 돌려주시는 사장님들도 계시지만, 샤워할 때 쓰라며 빨래비누만 주는 경우도 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끈적거리고, 쉰 내 나는 옷을 몇일씩 입어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면 당신의 무던함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피곤해도 어찌되었던 세탁은 하고 쉴 것을 권한다.

더운 여름 산속의 숙소에 빨래를 널면 대부분 다음날 출발할 때 쯤이면 뽀송뽀송하게 건조가 다 된다. 혹여 빨래가 마르지 않을까 걱정은 안해도 된다.

④ 출발은 가능한 빨리

지리산 둘레길은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힘이 드는 코스다. 하루를 통으로 걷는다면 보통 산 2~3개는 넘는다 생각하면 된다. 특히나 여름은 여기에 더위까지 더해져 더 힘들다. 숙소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저녁 먹으면서 막걸리나 맥주까지 반주로 더하면 10시도 안되 기절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혼자라면)

아침이면 온 몸이 쑤시고 조금 더 누워있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있다. 이쯤에서 그냥 접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뭐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계속 걸을 생각이라면 가능한 아침은 빨리 먹고 새벽같이 출발할 것을 권한다.

가능한 선선한 시간에 걷는 것이 나은 측면도 있지만, 산 속에서는 하루가 더 짧을 수 있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빠른 시간에 출발하면 그만큼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아침에 조금 서두르면 중간에 쉬는 시간이 더 여유있을 수도 있다. 도착지와 숙소가 이미 정해져 있더라도 최대한 더운 시간을 피하는 장점도 있다. 아무튼 가능한 일찍 출발할 것을 권한다.

야간산행이 취미라는 분들이라면 위의 내용은 해당이 안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상 지리산 둘레길은 하루 내내 걸어도 도중에 1~2팀을 만나기 어려웠고, 여름에는 더더욱이나 사람이 없다. 담력이 상당히 좋아 왠만한 것은 무섭지 않은 강심장의 소유자라면 모를까, 해가 진 아무도 없는 산 속은 다소 호러체험이 될 수 있다.


⑤ 여름 뿐 아닌 고려 사항

몇번 언급한 바와 같이 지리산 둘레길은 그냥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넘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언젠가 산 속에서 만난 분이 기억 난다. 나무에 몸을 기대고 숨을 헐떡거리며 “젠장, 둘레길이라더니…”라며 속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건 그냥 마을 둘레를 쉬엄쉬엄 도는 코스가 아니다. 그 둘레라는 말은 지리산 둘레에 있는 산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걷는다면 산을 보통 2~3개는 넘는다. 이쯤되면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등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야 된다.

다리 힘이 넘치는 분들이 아니라면 스틱은 필수로 챙기시길 권한다. 어느 구간은 매우 가파픈 경사가 몇 시간씩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스틱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매우 크다. 등산스틱은 체중을 적절히 분산 시키는 효과가 있어 무엇보다도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배낭에 들어가기 쉬운 삼단 스틱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발에 익은 편한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을 권한다. 길이 안든 혹은 발에 맞지도않는 새 등산화를 신는 것은 비단 둘레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기 산행의 경우에도 별로 권할만한 선택은 못된다. 참고로 나도 첫 둘레길 방문시 새 등산화가 맞지않아 발가락 주변이 퉁퉁 붇는 고생을 했었다. (등산화만 아니었다면 몇일 더 있었을지 모른다.) 기존에 익숙했던 등산화가 없다면 중간중간 신발끈을 조정하면서라도 발에 통증 등 무리가 가지않도록 해야하며, 꼭 발톱은 사전에 정리할 것을 권한다. (발톱이 빠져서 피가 철철 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나.)

또한 스마트폰에 대부분 기본으로 장착이 되어있겠지만,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 등 지도 어플은 필히 깔아놓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걷다가 조금이라도 애매하다 싶으면 당장 맵을 켜라. 그리고 내가 맞는 방향으로 이동 중인지 확인해라. 물론 중간에 맵에 표시된 길이 사유지 등의 사유로 막혀서 경로가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왠만하면 거의 일치한다.

주의를 소홀이 하거나 그냥 감으로 방향을 잡았다가는 엉뚱한 방향으로 헉헉거리면서 한참을 올라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몇 번 길을 잘못 들었었는데, 더운날 힘들게 오른 길이 전혀 반대 방향임을 알게되는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지리산 둘레길에는 중간중간 ‘벅수’라고 부르는 표지목이 있지만, 정작 애매한 갈림길에는 표지가 없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엉뚱한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하지만 올레길보다 많은 측면에서 환경이 열악함을 각오해야 한다.)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라면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어차피 여기 걷기 위해 온 것이니 좀 더 걸었다 생각하자라며 허허 웃어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찌는 듯한 여름 둘레길이라면 그런 성인은 찾기 어렵다. 애매하다 싶으면 지도는 꼭 확인하라.

그리고 이건 좀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경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만 이동해야한다. 왠지 마을길은 편할 것 같고 저쯤에서 지름길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믿고 감으로 이동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몇 년전 친구들과 한번 동행했을 때 이런 경험을 했었다. 그 녀석들이 우겨서 마을 둑길로 한시간을 걷었는데, 코스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작렬하는 햇살에 열사병까지 나를 부르는 것을 간신히 벗어났던 기억이 있다.)

⑥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여름이 아니어도 지리산 둘레길은 여타 제주 올레길이나 동해안 해파랑길보다 더 험하고, 편의시설도 많이 부족하다. 공중화장실은 하루 종일 가도 한번 만날까 말까하며, 카페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식당도 찾기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그만 가게라도 하나 만나면 다행이다.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목도 빈 곳이 많아 불편하다. 여기에 여름에는 벌레도 많다. 벌레 때문에 어디 한군데 자리를 잡고 사진조차 찍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사실 작년부터 봄에 둘레길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벌레 때문이다.)


하지만 둘레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경험이다. 한참을 헉헉거리며 오르다 돌아봤을 때 겹겹히 둘러쳐진 지리산 경치에 넋을 놓기도 하고, 중간중간 지나는 시골마을 길에 마음이 따스해지곤 한다. 구름과 달이 없는 날이라면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민박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숙박이 가능하다. 또한 식사도 훌륭하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등구재, 동강, 원부춘 민박에서의 아침과 저녁식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1년에 한번씩 짧게나마 방문하는 둘레길에서 많은 기운을 받고 일상을 또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다. 얼마 안남은 코스들도 소중한 마음으로 찾으려 한다.

Posted by Tony Kim :